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22화 (22/100)

00022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 여긴 어쩐 일이야? 아, 밥 먹으러 왔겠구나?”

진한 반가움을 담고 아윈이 아이마냥 웃었다. 그 햇살 같은 미소를 보며 나는 원작의 묘사가 더없이 완벽했음을 실감했다. 그는 진정으로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것처럼 생겨먹였다. 실상은 손짓하나로 수십 명을 생매장하는 미친놈인데도.

“ 응. 그러는 아윈이야 말로…….”

“ 나도 물론 식사하러. 되게 즐거운 우연이네, 그렇지?”

결 좋은 은발이 바람에 살랑인다. 어여삐 접히는 눈가가 만들어내는 고운 눈웃음에 나는 순간 놀라 토할 뻔했다. 저거 인간적으로 좀 너무한 거 아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죄 홀릴 눈웃음이라니. 양심적으로 성별은 좀 가려라….

보면 볼수록 아윈의 외양은 충격적이었다. 도저히 사람 목 따는 미친놈이랑은 매치가 안 된다. 살생과는 완전히 반대극에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비속어 따위는 꿈에도 못쓸 듯한 이미지가 덤. 바르고 고운 말만 용납하는 교과서 같은 얼굴이랄까. 하지만 실제 물고기 셋 중 쌍욕이란 쌍욕은 쟤가 다한다. 물론 이벨린 없는데서. 뭔 저런 캐릭터가 다 있담.

“ 조금만 일렀으면 함께 식사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 오늘은 지갑 안 잃어버렸어?”

“ 풋, 설마. 소매치기를 매일같이 만날 리 없잖아.”

주고받는 대화가 편했다. 아윈이야 누구한테나 반말하는 놈이니 차치하고라도 이벨린은 세 남주인공 중 아윈에게만 말을 놓았다. 그건 아윈이 가증스레 뒤에 붙은 성을 떼고 제 이름만 날름 소개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것도 쥔 게 없는 평민인양, ‘내 이름은 아윈이야’ 하고. 원작에서 그리했듯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벨린은 격식 없이 그를 대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아윈이 평민인 건 맞았다. ‘헤브림’을 단다고 해서 없던 혈통이 생기거나 작위가 수여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헤브림이 지니는 영향력이었다. 마탑은 본래도 위세가 높은 단체다. 헌데 그 단체가 지금 유래 없이 강한 주인을 만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한 마탑을 발아래 둔 수장. 애초에 귀족과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인 터다. 따지자면 한, 왕국의 왕쯤 될까.

이벨린은 제가 왕을 친구 대하듯 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웃으며 말했다.

“ 게다가 이번엔 일행도 있는걸.”

그녀가 나를 가리켰다. 그제야 처음으로 아윈의 시선이 내게 시선이 닿았다. 언제 살살 웃고 있었냐는 듯 무감동한 붉은 눈동자. 그는 마치 길가의 돌멩이를 쳐다보듯 그렇게 지척의 나를 잠깐 응시했다. 금세 도로 이벨린을 눈에 담는다.

어머, 얘. 너 지금 나 개무시한 거니?

누가 봐도 쌩무시였지만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아윈은 후에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제국제일미녀-설정 상 여행 중이라 아직 등장 전이었다-마저 돌 부스러기마냥 대하는 인물이었다. 본디 사람에게 흥미를 잘 느끼지 않는 성정-이벨린은 여주인공이니까 예외로 치고-이라, 그런 마당에 내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될 일이다. 예상했던 무관심이었다. 특별히 아쉬울 것도 없고.

외려 당황한 건 이벨린이었다.

“ 인사해, 내 친구야. 라테 엑트….”

“ 관심 없어.”

“ 어?”

“ 안 궁금해. 그보다 오늘 좀 조심해서 다녀.”

위험한 일 없게. 아윈이 덧붙였다. 말을 마친 그가 이내 볼일이 있다며 이벨린더러 손을 흔들었다. 소년 같은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진다. 한순간에 아윈이 증발하고, 처음의 목적지였던 가게 문이 다시금 시야를 채웠다. 쟤 텔레포트 그냥 막 쓰네…. 마법천재니까 당연하겠지만 참 부럽다. 제국 전역이 제 안방 같겠구먼.

훤해진 자리를 말없이 응시하다 이벨린이 난처한 기색으로 나를 돌아봤다. 음? 난처? 나는 그녀가 왜 저런 낯을 하고 날 보는지 의아해서 고개를 슬쩍 갸웃했다. 설마 아윈의 행동에 본인이 책임을 느끼나?

“ …괜찮아요?”

“ 네?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요.”

난 어깨를 으쓱했다. 면전에서 무시당했으니 속이 좀 쓰려야 맞는 걸까. 하지만 원래 아윈은 이벨린 빼고 다 이리 대하는 놈이었다. 내가 그 앞에서 섹시댄스를 춘 것도 아닌데 관심 안준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고개까지 내저으며 난 내가 한 톨 신경 쓰고 있지 않음을 어필했다. 나는 ‘여주인공이 나보다 잘난 게 뭔데?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이렇게까지 취급이 다른 건데? 왜?!’하고 부들거리며 질투로 흑화하는 캐릭터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찬양하고 아부 떨며 찰싹 달라붙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웬? 그런 건 역할이 정해진 다른 조연들이 차고 넘치게 해줄 일이다.

“ 아무렇지 않으니 이벨린도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나름 자애로운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미소를 걸치고 위처럼 말했다. 그래, 솔직히 아윈의 무례함을 그녀가 면구해할 까닭은 없었다. 이벨린이 아윈 엄마도 아닌데 뭐. 걔가 날 때렸으면 또 몰라. 싸대기 정도 날렸으면 어장의 주인 된 바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거 인정.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벨린을 마주보는데 일순, 그녀가 묘한 표정을 했다. 늘 보던 얼굴이 아니라 순간이지만 눈에 띌 만큼 이질적인 형색이었다. 제대로 뇌리에 담기도 전에 이벨린의 낯은 다시 여상한 미소로 바뀌었다. 어, 뭐지? 순간 잘못 봤나싶어 혼동이 오는 눈을 깜박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 그럼 다행이네요. 참, 방금 만난 사람이 제가 아침에 이야기했던 그 사람이에요. 지갑을 찾아줬다던.”

“ 그래요? 그렇구나.”

난 대강 맞장구치며 가게 문을 열었다. 이벨린을 먼저 들여보내고 뒤따르며 다소 복잡한 기분으로 조금 전의 목도를 상기했다. 뭐였을까? 워낙 찰나여서 확신하기도 힘들었다. 묘한 표정이라. 기실 이벨린이 날더러 어떤 표정을 지었든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묘한 표정이든 역한 표정이든…아니, 역한 표정은 좀 큰일이네. 어쨌든 친구 무르자는 낯빛만 아니라면 솔직히 상관없는 편이 맞다.

나는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 한시의 낯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

아침부터 이벨린네로 달려가 산책에, 도서관 나들이에, 저잣거리에서 밥까지 먹고, 더불어 물고기 셋마저 차례로 조우했다. 생각지 못하게 바쁜 나절이었다. 남주인공들을 순서대로 죄다 만난 건 지금 생각해도 몹시 신기한 일이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더라. 생선데이로 명명해야지.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는 상상을 하며 자작저로 귀환했다. 해가 지려면 세 시간은 족히 남은 한낮이었다. 한밤도 아니고 신경이 쓰일만한 귀가가 아니었던지라 조용히 방에 들어가 옷이나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 아가씨!”

이제야 오셨군요! 하는 기세로 에슐라가 벼락같이 튀어나와 나를 맞이했다. 나는 덕분에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서 멀뚱 굳었다. 내 귀택만을 손꼽아 기다린 것 같은 눈치에 난 순간 내가 나간 게 어제였나 하는 혼동을 느껴야했다.

“ 어…에슐라?”

“ 마침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다들 기다리던 차였는데.”

“ 기다려? 나를?”

왜? 심지어 다들이란다. 아침까지만 해도 별달리 전해들은 얘기가 없었던 터라 난 의문에 휩싸여 에슐라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나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응? 회의실?

회의를 하면서 날 기다렸다고?

그리고 순간 한줄기 섬광이 날 강타했다. 서, 설마!

내 이름은 라테 엑트리. 귀족이죠. 그리고 열여덟이죠. 귀족가의 영양 라테 엑트리는 열여덟 살이 되도록 진지하게 교제하는 상대 없이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 그렇다면.

“ 자작님,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오, 그래. 라테.”

나는 삐걱거리는 걸음걸이로 회의실 문턱을 넘었다. 긴 원형탁자에 익숙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어색하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지까지 계신걸보니 중요한 일이 맞는 것 같은데. 그것도 내가 주인공인. …어, 그러니까 보통 여기 영애들이 나이 몇에 약혼을 하더라? 열여덟…이었던 것 같은데.

“ 여기 앉거라. 네게 긴히 할 말이 있다.”

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어머니의 옆자리에 앉았다. 얼핏 본 고운 얼굴에 걱정이 서려있었다. 어머니께서 걱정을 품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왠지 느낌이 평소와 다른 것이 내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아니, 진짜? 정말? 그치만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 다른 게 아니라…….”

과거 로맨스소설을 통해 숱하게 읽었던 귀족가 영애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답지않게 신중히 운을 띄우는 것 또한 불길함을 더해 주었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대답할 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곧장 본론이 나올 분위기다. 으아아. 난 긴장으로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버지의 말이 이어진다. 안 돼!

“ 팝콘을 통해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말이다.”

“ 정략결혼은 아직 안…네?”

엥?

============================ 작품 후기 ============================

라테 불쌍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테 불쌍...한가요? 왜지....우리 라테 돈도많고 ㅠㅠ돈이 많고ㅠㅠ돈은 많은데ㅜㅜㅜ(..

+

??생각없이 축제자랑했다가 학교신상을 셀프털이 (동공지진

++

너구리 귀여운데ㅜㅜㅜ라테 눈 처져서 귀엽다는..뜻이었어요...나쁜 뜻 아님 엉엉

+++

짜라짜라빰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3^ 히히히힛!! (..

++++

학업 생업 취미. .....학업을 포기하고 싶다....(동공지진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