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난 멍청하게 벙찐 얼굴로 아버지를 응시했다. 그런 내게 나만치 황당한 표정을 한 아버지의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정략혼이 아니야?
“ 방금 뭐라고 했느냐?”
“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 절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묶은 머리가 내 목덜미를 찰싹찰싹 때릴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뺨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시더니 내 등신 같은 설레발을 눈감아주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난 왜 그런 터무니없는 착각을 한 걸까. 회의, 심각함, 날 기다림. 이 세 가지 조합만으로 곧장 정략결혼을 유추하다니. 이래서야 부크의 협소한 사고력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난 눈물을 삼키며 이불킥을 주문했다. 여기 일주일치 결제요.
“ 다시 얘기하마. 네가 만든 팝콘이라는 과자로 사업구상을 해본 참이다. 듣기로 만드는 방법도 재료도 간단하다고 하더구나.”
가시지 않는 쪽팔림에 막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자니 아버지께서 재차 본론을 꺼냈다. 난 열이 올라 뜨끈한 뺨을 양손으로 감싼 채 말을 경청했다. 팝콘 사업이라. 그러고 보니 정작 만든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팝콘이 돈이 될까?
생각하는 순간 오리지널 팝콘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떠올랐다. 스파이시의 매콤함도, 치즈가루의 오묘함도. 또한 과거에 좋아했던 카라멜의 달콤함까지. 상기하자마자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되겠는데?
“ 우선 작은 상단을 하나 꾸려 이동하면서 판매를 해볼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반응이 좋으면 가게를 여는 식으로 할까 하는데….”
“ 좋아요! 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되는 정도가 아니라 잘하면 돈방석에 앉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건 몹시 바람직한 일이었다. 인생을 두 번 살며 깨달은 건데 돈은 늘 옳았다. 캐시는 진리다.
아버지는 내가 이리 반길 거라곤 예상치 못하셨는지,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이시다 이내 얼굴 가득 화색을 담았다. 팝콘의 창시자-여기서는-인 내가 적극적으로 찬성하니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집사도, 드푸도, 벨벳 유모도 덩달아 방실방실 웃었다. 그 웃음에서 절로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이 사업 공동출자구만?
뭐, 다함께 부자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 벌써부터 사업이 성공하기라도 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난 좀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 그런데 아버지, 벌써 퇴근하신 거예요?”
황궁으로 출퇴근하는 아버지께서 저택에 있기엔 지금은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눈가에 주름을 잡은 채 내게 말했다.
“ 유급휴가를 받았단다.”
아하. 여기에도 그런 은혜로운 날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 아무튼 라테 너도 괜찮다고 하니, 한시 빨리 사업을 추진하는 게 좋겠구나. 우선 상단은 경험이 있는 사세열 시종장이 맡는 걸로 하고….”
아버지는 들뜬 기색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다소 걱정스런 눈치였지만, 사실 그녀는 안심해도 좋았다. 애초에 소소하게 벌이는 만큼 위험부담이 큰 사업도 아닌데다, 혹여 망하더라도 내가 벌어들이는 인세로 커버할 수 있는 규모일 것이다. 아버지인 엑트리 자작은 무모한 도전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할 염려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만한 자금도 없었지만.
난 걱정 말라는 의미로 어머니더러 눈을 찡긋했다. 이게 하다 보니 빠져든다. 이러다 버릇되겠는데. 나는 가려야하는 대상을 망각하고 케니스에게 윙크를 날려 목이 날아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주의해야지.
회의는 곧 실무 쪽으로 넘어갔다.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내가 끼어들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사업에 관련해선 지식도, 경험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지루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깜박했던 피로가 다시 몰려오는 느낌이다. 나는 먼저 들어가겠다는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나왔다.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에슐라가 찰싹 옆에 붙었다. 그녀는 왠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 우리 이제 부자 되는 거예요?”
동그란 눈동자가 평소보다 초롱초롱하다. …혹시 너도 출자했니? 떠올리고 나니 벨벳유모를 중심으로 시녀 및 하녀들이 함께 모여 자금을 보탰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잘하면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 사업이겠는데. 팝콘에 대한 기대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긴, 인기가 선풍적이긴 했다.
“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아마 되지 않을까?”
“ 헤헤, 그랬으면 좋겠어요.”
“ 나도 그래.”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방으로 향했다. 조금 쉬다가 마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싶었다. 참, 산책도 해야지. 오늘 이벨린과 갔던 식당에서 먹은 크림요리는 고소함과 느끼함이 일품이었다. 그야말로 살찌는 맛. 왜 맛있음=살찜은 늘 변하지 않는 공식인걸까. 부러질 듯 가는 개미허리를 귀족여성의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이 세계가 싫었다. 흑흑. 잔인한 귀족사회.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에슐라의 도움을 받아 답답한 외출복을 벗어던졌다. 보들보들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자 속이 다 트였다. 과거엔 잠옷차림으로 집에서 뒹굴다 그대로 밖에 나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난 면역력 증가를 위해 꼼꼼히 손을 씻고 양치를 한 뒤 침대에 나자빠졌다.
너른 침대에서 한 바퀴 반쯤 구르고 푹신한 베개를 껴안았다. 아직 오후인데 벌써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다. 껌벅껌벅 천장을 쳐다보다 문득 달력에 진짜 표시를 할까싶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기념비적인~생선~데이!
주섬주섬 달력으로 손을 뻗다 돌연 떠오르는 것에 나는 팔을 멈췄다. 휘 둘러본 방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에슐라는 탈의를 도운 후 필요하면 불러달라며 방에서 나간 상태였다.
음, 스크롤이 몇 장이나 남았더라?
난 경로를 바꿔 달력대신 스크롤들을 꺼내 펼쳤다. 전에는 갑자기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쓰던 글이 막히거나 하면 스크롤을 지르러 나갔었는데, 이벨린이 등장한 후로는 그럴 일이 없었다. 물고기 구경이 존잼인데 심심할 틈이 있겠나.
한 달 전쯤 쇼핑했던 스크롤은 총 일곱 장이 남아있었다. 이 정도면 어디 으슥한 골목에 혼자 기어들어가도 칼빵 맞아 죽을 걱정은 없었다. 이벨린과 다니다보면 그닥 쓸 일도 없을 테니 아마 한동안은 이 상태에서 개수가 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나는 몰랐다. 곧 이것들을 한꺼번에 날리게 되리라고는.
============================ 작품 후기 ============================
전 돈많은 백수가 꿈이라서 라테가 핵부러워여'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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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벨린ㅋㅋㅋㅋㅋㅋㅋㅋㅋ묘한 표정 한번으로 댓글창을 점ㅋㅋㅋㅋㅋㅋㅋ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앜ㅋㅋㅋㅋㅋㅋ다양한 의견이 많아서 신기했습니당.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기위해 노코멘트할게요ㅋㅋㅋㅋ근데 남자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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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은 100 +a 편 정도로 완결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번편에 언급하려고 했는데 깜박했....'-'...내 머릿속 지우개 팔아여 사가실 분 떨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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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만화버전은 네x버 도전만화란에 '구경하는' 정도만 검색하시면 뜹니당! 저는..뜨던뎅...(동공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