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거침없는 일러바침에 이벨린이 곧장 케니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힐난이 담긴 눈빛에 케니스가 옅게 주춤한다. 그의 찔려하는 기색을 통해 내가 받은 살기가 실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찍은 건데 진짜였어! 검술천재의 살기를 간파하다니! 놀라운 나의 직감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하하, 역시 내 통찰력. 누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건 귀신같이 알아챈다니까. 근데 왜 갑자기 슬픈 기분이 든담….
“ 각하. 그녀는 제 은인이자 친구입니다. 저를 존중해주실 의향이 있다면, 부디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대우해주시길.”
이벨린이 차분히 말을 마치고 케니스를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이의 녹색 눈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에서 복잡한 심경이 엿보였다. 그래, 혼란스럽겠지. 잡아 죽이려 벼르고 있던 사생팬이 잘 보이고 싶은 예쁜이의 절친이라는데. 케니스는 제 코앞에서 알짱이는 내 얄미운 목을 비틀지 못해 괴로운 듯 보였다. 호호홋. 여주인공 실드가 짱이시다. 난 케니스의 불타는 애탐을 전혀 모르겠는 사람처럼 헤죽 백치마냥 웃었다. 제 머리색과 똑같은 새카만 눈썹이 꿈틀거린다. 잘생긴 케니스야. 니가 빡칠수록 난 더욱 즐겁단다.
내가 원래 남의 고통에 행복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게 다 케니스 때문이다. 물고기가 내게 신세계를 알려줬다.
케니스는 결국 현 상황에 순응하기로 했는지 내게서 일체의 시선을 거뒀다. 실수로라도 내 쪽은 쳐다보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눈돌림이었다. 하긴, 시야에 비쳐봤자 열불밖에 더 터질까. 현명한 선택이었다. 난 그의 가련한(?)고개돌림을 칭찬했다.
이렇게 보면 남주인공자리도 참 안쓰럽다. 아니, 물고기라서 슬픈 건가. 어쨌든 여주인공을 가장 우위에 두어야하니까. 나였다면 짝남-짝사랑하는 남자-의 친구든 은인이든 일단 명치를 휘갈기고 봤을 텐데-짝남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거고 일단은 내 혈압이 더 중요하니-. 그런 나와 달리 소설 속 캐릭터인 그들에겐 여주인공이 이 세계 유일한 여성이요 놓칠 수 없는 연인일 터였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단 하나뿐인 인물. 결코 거스를 수 없기에 곁에 붙어 나대는 조연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프랜드쉴드 믿고 깝죽대는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나름 불쌍한 친구들이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내 목숨이 달린 마당에 남 생각이 어디있담. 난 한층 안락하게 느껴지는 이벨린의 옆에 꼬옥 붙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이 명당을 떠날 생각이 없사옵니다.
재수 없게 달라붙는다고 생각했는지 케니스가 다짐도 잊고 날 힐끗거렸다. 난 그 찰나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재차 백치미소를 날렸다. 오오, 표정 썩는다. 내가 웃는 게 그만치 아니꼽니. 어지간히 보기 싫다는 낯빛에 난 더욱 환하게 웃어주었다. 방긋방긋.
“ …이만 물러가지.”
왠지 내가 케니스를 퇴치한 기분이다. 그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듯 자리를 벗어나겠다 선언했다. 아쉬울 것 없는 소식에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참고 얌전히 있었다. 케니스는 황태자보단 요주의 인물이라 개김의 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할 만큼 했다.
케니스는 그대로 돌아서는가싶더니, 잠시 멈칫하곤 고개를 틀어 제 눈동자에 이벨린을 담았다. 짙은 남색 홍채에 그녀가 비친다. 일시의 머뭇거림이 스치고 그가 입을 열었다.
“ 이곳에, 자주 오나?”
묘한 물음에 어쩐지 분위기가 바뀐다. 그렇지 참, 이거 로맨스소설이지. 나는 굳이 끼어들지 않고-그럴 이유도 없었지만-잠자코 관람객의 태도를 취했다. 이벨린은 여상한 차분함으로 그 질문에 응했다.
“ 즐겨 찾는 편입니다.”
“ 그렇군.”
그리고 케니스는 말을 고르듯 잠시간 조용했다. 이 실내에 뭔 바람인지 밤하늘 같은 흑색 머리카락이 그의 반듯한 이마를 간질였다. 나는 한결같이 반발심이 솟구치는 그 그림 같은 자태를 보며 문득 이 장면을 모니터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케니스가 귀로는 낯설으나 눈으로는 익숙한 지문을 뱉었다.
“ 처음의 말투가 더 마음에 들어.”
“ …예?”
“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
대사를 마치고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뚜벅뚜벅, 케니스가 단정한 걸음걸이로 멀어진다. 이벨린은 조금 뜬금없는 그의 말-말투가 어쩌고-에 당황한 낌새로 작아져가는 미려한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 양상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이 국면이 포함된 회차에 ‘케니스 존설♡공작각하 화이팅!’하고 댓글을 달았던 게 떠오른다. 아련한 기억이야…. 그리고 그때의 뭣모르던 내 손가락 분지르고 싶다.
이벨린은 케니스를 오래 주목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몇 번 갸웃하곤-이벨린은 여주인공답게 케니스가 제게 왜 저러는지 0.1도 모르는 눈치였다-애초의 목적이었던 책을 몇 권 끄집어냈다. 나는 쇼핑할 때 친구의 짐을 나눠드는 느낌으로 그녀가 고른 묵직한 고서를 두어 권 품에 안았다.
사서를 통해 책을 대출하고 바깥으로 나오자 보이는 하늘이 여전히 쾌청했다. 왠지 집에 있으면 죄짓는 것 같을 날씨다. 어디 놀러라도 가야겠단 생각을 하는데 돌연 이벨린이 내 품에 있던 책까지 한꺼번에 뺏어들곤 쪼르르 도서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뭔가 싶어 제자리에서 입구만 돌아보고 있자니 금세 그녀가 도로 튀어나온다. 홀가분한 빈손이었다.
어멋, 이 언니 혹시.
“ 날씨가 너무 좋네요. 우리 간단하게 뭐라도 먹으러 갈까요? 책은 돌아오는 길에 찾는 걸로 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제안이었다. 난 고려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슬슬 허기가 지던 참이다. 수도의 저잣거리에는 지방에서도 부러 찾아올 만큼 솜씨 좋은 맛집이 여럿 있었다. 날도 좋은데 식도락 즐기기에 딱이다.
나는 과거 생각 없이 맛집기행을 다니며 삼시세끼를 외식하다 드레스 옆구리가 터지도록 살이 쪘던 때를 떠올렸다. 덕분에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함께했었지. 정말 개고생이었다. 한국에서도 안하던 체중조절을 여기 와서 하게 될 줄이야. 근데 내 잘못만도 아닌 게 음식이 인간적으로 너무 맛있었다. 여긴 미원이나 다시다도 없을 텐데 어쩜 그리 꿀맛인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로 바깥음식이 제법 열량이 높았다. 살찌기 쉽단 소리다. 그래도 한 끼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자작저로 돌아가면 따로 산책을 좀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예전 자주 찾았던 맛집으로 이벨린을 이끌었다.
기실 저잣거리 또한 여주인공에게 있어선 만남의 메카였다. 주로 도서관에서 케니스를 마주치듯, 저잣거리에선 아윈을 주로 맞닥뜨렸다. 그러나 나는 그걸 염두에 두고 있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아윈까지 만나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된다 싶었으니까. 아침부터 황태자, 공작을 차례로 만났는데 점심 무렵에 마탑주까지? 하하, 그럴 리가. 무슨 모여라 물고기도 아니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아윈?”
뭐야? 오늘 무슨 어시장열리는 날이야?
이벨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고기3의 이름이 귀에 쏙 날아들어 꽂힌다. 그는 그야말로 우연히 우리와 마주쳤다. 정확히는 이벨린과. 그러니까 즐거운 맛집! 을 외치며 가게의 문을 확 열어젖혔는데 거기서 아윈이 나왔다.
…? 왜 님이.
난 처음에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윈이 가게 밖으로 나온 후 문이 도로 탁, 닫히고 내 옆에 서있던 이벨린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직후 그녀가 이름을 불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에 나는 문고리를 잡았던 손마저 한동안 허공에서 내리지 못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난 어정쩡히 들려있던 팔을 얌전히 제자리에 갖다 붙였다. 세상에, 이렇게 갑자기 아윈이. 보고 싶었는데 못 봐서 억울하다고 눈물까지 삼키며 슬퍼했던 게 꼴랑 오늘아침 일인데. 그랬는데 맙소사 얘가 지금 내 앞에 있네!
“ 이벨린!”
아윈이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거리상으론 내가 더 가까웠지만 그의 시야에 나 같은 건 일말 존재하지 않는듯했다. 그새 자동으로 병풍화가 진행된 모양이군. 뭐 새삼스럽지도 않다. 난 공기가 되어 아윈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고대하던 그의 얼굴은 실로 상상이상이었다. 얘 진짜 천사처럼 생겼잖아?
============================ 작품 후기 ============================
에인져처럼 생긴 아윈사마 ㅇㅅㅇ
구들 러브라인 좀 짚고 갈게요.
1. 연애 합니다.
남주가 라테 좋아서 손끝하나 못대고 안달복달 합니다. (신혼 외전도 있음)
2. 근데 후반부에 함.
차근차근 가는 걸 좋아해요. 취향이라. 저와 취향 비슷하신 분들은 함께 달려주시면 아리가또(꾸벅)
+
주요 인물들 머리색, 눈색 정리^0^ (이제야
중간중간 헷갈려서 바꿔써서ㅠㅠㅠ뉴ㅠㅜㅜㅜㅜ뎨둉(..
라테-금발. 옅은 갈색 눈.
이벨린-청흑발. 녹색 눈.
론드미오-백금발. 파란 눈.
케니스-흑발. 짙은 남색 눈.
아윈-은발. 빨간 눈.
참. 그리고 라테쨔응 비굴하게 생김(..
너구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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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학교축제라 씨스타랑 치타 온대요'-'
어멋........!!!!(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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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뿅뿅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 답례의 윙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