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레이나는 천천히 와인을 마시면서도 강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부탁은 어떨까?”
잔을 내려놓고, 입술에 묻은 와인을 혀끝으로 닦아내는 동작이 느리면서도 우아했다.
“오늘 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수 있어?”
레이나는 사랑해달라고 말했지만, 속뜻은 반대였다.
진정으로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었다.
겁먹고 상처 입은 이 남자를 끝도 없이 품어주고 싶었다.
강의 눈동자가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흔들렸다. 그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있지. 그 누구보다도.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니까.”
자괴감에 흔들리던 강의 눈동자가 진동을 멈추었다.
“나 같은 놈을 왜 사랑해?”
“그 오묘한 섭리를 어떻게 설명하겠어?”
“넌 무엇이든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학 일타강사잖아.”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분적분으로 설명해볼까? 아니면 벡터로?”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겠네.”
“그럼 이런 건 어때?”
레이나가 몸을 기대고 강에게 입 맞췄다.
그것은 초대의 키스였다.
긴 입맞춤이 잠시 떨어졌을 때 강이 물었다.
“한동안 나한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잖아?”
“응. 그래야 당신이 제대로 노크하고 들어올 것 같아서. 이제 열어줄게.”
이번에는 강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기분이 이상하다. 꼭 너랑 처음 키스하는 느낌이야.”
“나도 그래, 오빠.”
강은 거실 창밖을 슬쩍 가리켰다.
“누가 엿볼지도 모르니까 방에 들어갈까?”
레이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누가 본다고 그래? 저기 나밖에 없는데.”
한쪽으로는 한강을 접하고 한쪽으로는 영동대로와 접한 거실 창은 맞은편에 다른 아파트가 없어서 엿볼 사람이 없었다. 다른 빌딩 옥외광고판에 있는 일타강사 레이나를 빼고는.
“그럼 계속 거실에서 하고 싶어?”
“아니.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하고 싶어. 키스.”
그들은 손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 수진과 같이 쓰던 침대 위에 누우며 강이 물었다.
“침대를 바꿔야 할까?”
“아니. 이 침대에 제일 처음 누운 사람은 나잖아.”
“그건 그러네.”
“운명이었던 거지.”
“그랬나 봐.”
그녀를 눕혀놓고 강은 위에서 키스를 선사했다.
그의 입술은 이마와 볼을 스치고 탐험하듯 움직였다.
“간지러워.”
레이나가 웃으며 몸을 흔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간지러워하라고 하는 건데.”
그녀는 온몸에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을 한껏 즐겼다.
그 누구도 이런 감각을 선사해줄 수 없다는 걸 또 깨달았다.
“수학 문제는 답이 정해져 있잖아. 나는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해. 답하고 비슷한 것들은 여럿 있겠지만 정답은 하나뿐이지. 내 정답은 늘 오빠였어.”
“로맨틱하네.”
“그동안 오빠는 정답이 수진 씨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내가 오빠의 정답이 되었으면 좋겠어.”
“문제를 잘못 풀었던 걸까?”
“이제부터 잘 풀어봐.”
“틀리면 가르쳐줘.”
“선생님한테는 존댓말을 해야지.”
“틀리면 가르쳐주세요.”
“그래.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어.”
그녀는 강을 와락 안았다. 그것을 신호로 그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옷을 벗어던지고 X축과 Y축이 되어 절정의 그래프를 만들어갔다.
“사랑해.”
강렬한 쾌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강의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결국…… 레이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너무 좋아서.”
가쁜 호흡을 삼키는 강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이 뜨거웠던 이유는 나쁜 사랑이었기 때문이라고, 그 배덕감에 뜨거웠던 거라고 착각했어. 지금 우리 사랑은 착한 사랑인데 여전히 뜨거워.
결국 우린 서로의 정답인가.
침실 창문을 캔버스 삼아 짙어져가는 노을빛처럼, 그들은 꼭 끌어안고 식어가는 열기를 나누었다.
레이나는 거실에서 와인과 핸드폰을 갖고 왔다. 둘은 침대에서 음악을 들으며 두어 잔의 와인을 더 마셨다.
어느 순간 강이 물었다.
“한 문제 더 풀어볼까?”
그녀는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시 깊고 아득한 입맞춤. 레이나는 눈을 감았다.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시티팝이 와인처럼 부드럽다. 몸이 노을의 일부가 되어 녹아드는 기분.
눈물겹도록 행복하다. 이토록 행복을 확신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단 한 순간도 잊기 싫어. 단 하나의 감각도 놓치기 싫어.
혹여 이 남자와 맺어질 수 없다 하여도, 훗날 다시 이 찬란한 행복감을 되새길 수 있게.
*
나이가 들면 회복력이 떨어진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고 몸의 상처도 그렇고.
폭행을 당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어머니의 멍 자국은 여전히 짙었다.
“팔 깁스는 언제 푼대요?”
침대 옆에 서 있던 강이 물었다.
“다음 주까지는 하고 있으라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흐린 저녁 하늘처럼 낮고 어두웠다.
“외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올까요?”
강의 제안에 그녀를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이렇게 하루 종일 침대에 있으면 몸도 마음도 더 쳐져요.”
또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강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아버지한테 얘기 다 들었어요. 지은이 누나가 다른 어머니한테서 난 아이였다고.”
그제야 어머니는 반응을 보이며 눈을 번쩍 떴다.
“강아…….”
“괜찮아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남의 아이라서 어머니가 신경을 안 쓴 탓에 누나가 죽었다고 아버지는 말하지만…… 제 생각은 다르니까요.”
“그렇지 않다. 나는 지은이를 좋아했어. 너하고 똑같이 키우고 아꼈어. 나는 지은이를 죽이지 않았어!”
어머니는 다시 겁에 질렸다.
강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지은이를 죽였어!’살인자 취급을 하며 부당한 죄책감으로 그녀를 옥죄고 괴롭혔겠지.
딸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딸을 잃은 분노를 아내에게 고스란히 전가시켰겠지.
강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레이나에게 얻은 위로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강아…….”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잡고 있는 어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니 편해지셔도 돼요.”
“나는 정말로 지은이를 아꼈어. 그날도…….”
“말씀 안 하셔도 알아요.”
강은 어머니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버지하고 헤어지고 싶으세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어머니.
“도망가고 싶으신 거죠?”
어머니는 미동도 없었다. 몇몇 지점에서 그녀는 정신병동에 갇힌 중환자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고 이혼을 감행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어머니가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노력은 해봐야죠.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의사를 밝혔으니, 법적인 이혼은 어려울 거예요. 가능은 하겠지만 꽤나 오래 걸리겠죠. 하지만 일단 따로 사는 건 가능해요. 만약 어머니가 원하신다면요.”
어머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강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제가 혼자 지내실 만한 집을 알아볼게요.”
그녀는 부정하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저 여자친구 생겼어요.”
“응? 여자친구?”
“수진이하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어서 어머니는 보면 놀랄 수도 있어요.”
“어떤 아이인데?”
“말로 설명하기 진짜 어려운데. 수학 선생님이고 엄청 활달하고 화려한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저를 정말로 사랑해줘요.”
“그거면 됐다.”
“어머니 깁스만 풀면 소개해드릴게요.”
“그래.”
하려는 이야기는 다 했다.
돌아가려던 강의 머릿속에 어머니의 서재에서 봤던 시가 떠올랐다.
그는 묻고 싶었다.
아버지의 심장에 검은 말뚝을 박고 싶었나요? 그 주위를 돌며 춤추고 싶었나요?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나요?
강은 끔찍한 살인의 현장을 떠올리고는, 잔상이 남지 않도록 머리를 흔들었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
.
.
마음이 급했다.
어머니의 뜻을 확인했으니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
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으면 제일 좋고, 그렇지 않다면 물리적인 거리라도 두 분을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지만 계속 일 핑계를 대면서 피했다.
어쩔 수 없이 또 전화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강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블루투스로 통화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냐?”
“어디세요?”
“이제 애비의 사생활까지 감시하는 거냐?”
“지금 어머니 뵙고 나오는 길이에요.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길게는 못 한다.”
“그럼 바로 본론만 말씀드릴게요. 지난번에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어머니는 이혼을 원하고 계세요.”
“안 돼.”
“아버지. 제 말을 좀 진지하게 들어보세요. 수진이도 돈 한 푼 안 받고 이혼했어요.”
“위자료가 꽤나 지급된 걸로 아는데?”
“그건 제 잘못에 대한 부분이고요. 재산분할은 없었어요.”
“자랑이다.”
“어머니에게는 물론 최소한의 재산분할이 있어야 하겠지만, 아버지 우려처럼 경영권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어머니가 우리 회사 지분을 가져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도 안 돼.”
강은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으니까.
“수진이와 헤어지고 나서 저는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해졌어요.”
“바보 같은 놈.”
“아버지도 어머니를 놓아주시면 더 홀가분해지실 거예요. 두 분 다 더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네가 뭘 안다고!”
“아버지. 충분히 원망하고 벌주셨잖아요.”
“그딴 얘기 하려면 전화 끊는다.”
“잠깐만요!”
강은 황급히 아버지를 막았다.
“어머니를 다른 곳에 모실까 해요.”
“아들이 나서서 부모를 별거시키겠다는 얘기냐? 이건 패륜이야.”
“지금도 같이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 집은 어머니에게는 수용소나 마찬가지예요. 폭력으로 사람을 말려 죽이는 곳.”
“그렇게 좋은 수용소가 있다면 다들 들어가려고 하겠지.”
아버지는 비웃음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핸들을 잡은 강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패륜이라는 표현이 그를 괴롭혔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너무 나갔나? 이쯤에서 두 분에게 맡겨야 할까? 아니면 더 나서서 내가 어머니를 데리고 나와야 할까?
혼자였다면 해결하지 못했을 질문이었지만 그에게는 물어볼 선생님이 있었다.
빨리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
*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일요일의 일과도 달라진다.
수진은 매주 일요일 한해와 함께 서울 곳곳을 쏘다녔다. 어린 시절은 바닷가에서 보내고 20대는 온통 바다에서 보낸 한해를 위한 서울 여행 이벤트였다.
오늘 찾은 곳은 경의선 숲길. 공덕역에서 시작해 홍대 앞 연남동까지 걷는 코스였다.
지난주에 산 커플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손을 잡고 걷다가 따로 걷기도 했다.
길 양쪽에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했고 벤치도 넉넉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아 쉴 때면 나뭇잎 사이로 흩뿌리는 햇살이 빛의 베일처럼 둘을 감쌌다.
편안하게 다리를 꼰 채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던 한해가 입을 열었다.
“사토시 선생님께 어제 연락 왔어.”
“잘 지내셔?”
“응. 나도 오랜만이었어. 다음 주에 같이 보자고 하시던데.”
“다음 주? 수요일 빼고 아직 약속은 없어.”
“그 말은 수요일에 우리 못 본다는 얘기네?”
한해의 말에 수진은 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빠 투정 부리는 거야?”
“매일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매일 보잖아.”
“이번 주만 해도 월요일하고 목요일에는 못 봤어.”
수진은 한해의 뺨을 잡고 흔들었다.
“요즘 들어 왜 자꾸 귀여워지지?”
한해는 그대로 얼굴을 내밀어 그녀와 입을 맞췄다. 둘 다 아이스크림을 머금은 채 장난스러운 뽀뽀에서 시작한 입맞춤은 짧지만 강렬한 키스로 이어졌다.
“이 오빠 키스는 안 귀엽네. 무섭네.”
“방심할 때마다 키스할 겁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 풍기문란을 일으킬 것 같아.”
수진은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고 다시 걸었다. 한해도 곧장 뒤를 따랐다.
그들은 한참 쉬지 않고 걸었다. 숲길에서 나와 홍대 앞으로 접어들었다.
길게 이어진 스테이지마다 버스킹을 하는 팀들이 줄지어 연주하고 노래했다. 커버 댄스를 추거나 마술을 하는 팀도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함께 구경하다가 한해는 수진의 귀에 탄성을 질렀다.
“와, 이런 건 처음 본다.”
수진은 흐뭇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젖어들기도 했다. 눈이 마주친 한해가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뭔가 좀 불쌍하게 보는 것 같은데?”
“이런 공연은 매번 주말마다 열려. 이 자리에서.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볼 수 있지. 그런데 오빠는 지금껏 한 번도 못 봤잖아.”
“뭐…… 그렇지.”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을 테니까. 다들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데, 오빠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대신 나는 다른 공연을 봤어. 하늘 가득 형광 커튼을 드리운 오로라의 공연, 바다의 의장대마냥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청새치들의 행렬, 사람보다 더 큰 앨버트로스의 유유자적한 비행…… 이런 것들을 너랑 함께 보고 싶었어.”
수진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빠랑 같이 항해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정말 멋지겠다. 내 소원이기도 했는데. 언젠가 수진이와 함께 바다를 가로지르는 날이 올까? 도시의 불빛 같은 방해꾼 없이 한가득 쏟아지는 별빛을 함께 맞이하는 날이 올까?”
수진은 눈을 감고 한해에게 안겼다. 그의 단단한 팔이 꼭 안아주는 감촉을 느끼며 이런 상상을 했다.
이 남자의 품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막아주는 방탄 이불 같아.
힙합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을 쏟아내는 무명 래퍼의 목소리가 천천히 사라지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우리 꼭 가보자. 바다로.”
“응. 널 만나기 전부터 내 소원이었으니까.”
그는 약속하고 도장을 찍듯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잠시 서로를 안고 있던 둘은 다음 스테이지로 걸음을 옮겼다.
시끌벅적하던 힙합 스테이지와 달리 잔잔한 느낌의 어쿠스틱 스테이지였다.
앳된 얼굴의 남녀 듀오가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홍대 버스킹 거리에서 인기가 많은 장르인 힙합이나 커버 댄스보다는 관객이 적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귀에 익숙한 팝 발라드를 막 부른 듀오가 잠시 쉬는 동안 남자 멤버 혼자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저희 자작곡을 들려드릴까 해요. 들어보고 마음에 드시면 음원 사이트에도 올라와 있으니까 많이 홍보해주시고요. 공연 영상은 얼마든지 어디든 올리셔도 좋습니다.”
남자 멤버가 애정 가득한 시선을 보내자 여자 멤버가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공연을 보던 수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저 얼굴이 익숙한 거야?
그녀는 오래 걸리지 않아 익숙함의 이유를 알아냈다.
“오빠. 저 가수…… 맞지?”
한해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소월이네. 배 그만 타고 음악을 한다고 했었는데.”
그 순간, 노래하던 소월의 시선이 한해와 마주치고 그와 팔짱 끼고 있는 수진에게로 흘렀다.
홍대 버스킹 거리에서 마주친 두 커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