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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47화 (14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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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47화

가브리엘은 그렇게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싱긋 웃었다.

“하지만 장미는 공산품이랑 달리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마구잡이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생산해도 길거리에 흔히 볼 정도의 꽃이 되려면 적어도 오 년은 걸릴 거예요.”

“……그렇지.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 데다가 온실 크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세사르 경은 저 꽃 이외에도 다양한 장미를 개발할 예정이지요?”

루비카는 인어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녀는 어째서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걸까? 루비카는 그녀에 대한 평가를 재치 있는 소녀에서 무척 똑똑한 소녀로 상향 조정했다.

“그 전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한때 왕실 정원과 공작가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후일 이 장미붐이 꺼져도 클레이모어 공작가에서 새로이 발표하는 장미에 다들 관심을 가질 거예요.”

“하지만…… 왕비 전하께만 선물하는 건 어쩐지 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어쨌든 세사르과 루비카가 장미꽃을 과감히 개발한 건 예쁜 꽃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그 꽃을 널리 퍼트려 사람들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코 사람들의 교묘한 소유욕과 허영심을 부추겨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음, 제가 표현을 바꾸죠. 정확히는 왕실에 납품하는 쪽으로 해요. 그리고 왕비 전하께 정원을 꾸미고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쓰라고 해요. 아마 왕비 전하는 무척 기뻐하며 기꺼이 행하실 거예요.”

“저도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군요.”

앤이 흥미를 보였다. 그리하면 루비카가 왕비 전하의 환심을 사는 건 떼 놓은 당상이었다. 루비카는 왕비 전하에 대한 것보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선물하라는 말이 걸렸다.

“설마 이 장미를 외국에까지 알리고 싶은 거니?”

아직 테일러 장미에 대한 열풍은 세리토스 왕국 내였다. 세사르 경에게 투자할 때 칼이 외국에 수출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지만 루비카에게 그건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대륙의 남쪽은 기후도 좋고 작물도 풍부하다. 테일러 장미 이외에도 아름다운 꽃이 잔뜩 있다.

“네, 저는 이 장미를 클레이모어의, 아니, 더 나아가서 세리토스의 특산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왕비 전하를 통해 세리토스 왕국에 인연이 있는 고위층 몇몇 사람들만 가질 수 있게 하면 분명 외국에서도 지금과 같은 열풍이 일어날 거예요.”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에 대한 귀족의 경쟁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돈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것에 대한 욕망처럼 귀족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 없었다. 세리토스 왕국에는 ‘절약이 미덕’이라는 안전장치라도 있지 외국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내친김에 테일러 장미를 이용해서 잼이나 사탕을 만들어 왕비 전하께 선물해요.”

“장미로 그런 걸 만들 수 있다고?”

“사르망 왕국에서 만든 걸 먹어 본 적이 있어요. 장미꽃이 아니라 제비꽃사탕이었지만, 제비꽃으로 하는 걸 장미로 못 만들 게 뭐가 있나요.”

“지금도 무척 비싼데 굳이 그런 걸 만들어야 할까요?”

이번에는 앤이 난색을 표했다.

“비싼 장미꽃으로 만든 거니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장미꽃붐이 끝났을 때를 대비한 아이템이에요.”

가브리엘이 아주 신나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백작가에서 그녀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엉뚱한 소리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타티아나라는 친구를 만난 덕에 작은 새의 소식을 낼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어머니가 작은 새의 소식을 가십지라고 비하하면서도 혹시나 거기에 백작가의 소식이 실리지 않았는지 몰래 사서 구석구석 정독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칭찬이라도 실리는 날에는 백작 부인이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사람을 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집안에서 무시당했으나 언제나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은 타티아나처럼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어머니보다 대단한 사람이 어머니처럼 그녀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는 고양되었다.

“한때 귀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란 이미지가 중요해요. 음식은 식물이랑 달리 먹어 없어지는 거니 계속 생산해도 괜찮잖아요. 사르망의 제비꽃사탕이 사랑받는 것도 옛날에 예쁘기로 유명한 왕비가 좋아했기 때문이라고요. 사실은 그거 맛 진짜 없어요. 고급품하면 사르망제를 떠올리지만 찾아보면 사실 더 좋은 물건도 많아요. 하지만 다들 ‘고급품 하면 사르망제지.’ 하고 덮어놓고 사르망제를 찾아요. 다 이미지 덕이에요.”

그녀는 드레스 끈이 풀렸다는 사실도 잊고 팔까지 휘휘 저으며 연설을 했다. 앤이 깜짝 놀라 숄로 드러난 가브리엘의 어깨를 가렸다. 가브리엘은 그제야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저는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해요. 잼이나 사탕을 만드는 건 시도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농민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루비카는 잠시 화병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세사르 경과 만나 꽃에 대해서 즐겁게 떠들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에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맛있는 장미를 만들라고 하면 그분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세사르의 반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거나 재미있는 도전 같다고 흥미를 보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쩐지 세사르 경이라면 후자의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어머, 이미 사탕을 만든다는 전제하에서 생각하고 있네.’

루비카는 레몬주스를 마시고 있는 가브리엘을 무척 흥미롭게 관찰했다. 이제는 이 작고 귀여운 소녀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네 말대로 해 보자꾸나.”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 말을 덧붙였다.

“혹시 뭔가 원하는 게 있니? 사탕이나 잼의 생산 일부를 백작가에서 하고 싶다거나 포장케이스를 만드는 걸 담당하고 싶다던가.”

가브리엘은 칼이나 앤 같은 공작가의 가신이 아니라 엄연한 백작가의 딸이었다. 백작 영애가 자신의 가문을 제쳐 두고 공작가에 이런 사업적 조언을 하는 것도 희한했지만 그렇다고 염치없이 아이디어만 받고 모든 이익을 공작가에서 독점할 수도 없었다.

“원하는 거요?”

가브리엘이 잠시 엘리제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있긴 한데 저, 음. 부끄러운데……. 부인을 빼고 모두 나가 주실 수 있나요?”

앤은 잠깐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지만 엘리제와 함께 기꺼이 휴게실에서 빠져나갔다. 공작 부인과 단둘이 남자 가브리엘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눈을 꼭 감고 외쳤다.

“저도 솔라나 양처럼 예뻐지고 싶어요!”

“뭐?”

“어떻게 해야 그렇게 변할 수 있지요? 솔라나 양이 섬기는 분이니 가장 잘 알고 계시겠죠? 마담 카나를 만나 조언을 듣고 싶지만 그녀는 지금 무척 바빠서 저 같은 거 상대할 시간도 없더군요. 부인께서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나요?”

숨도 쉬지 않고 말한 가브리엘은 남은 레몬주스를 마저 확 마셔 버렸다. 루비카는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 되어 가브리엘은 쳐다보았다.

‘넌 이미 예뻐.’

그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엘리제에게 그 말을 했을 때 그녀가 어찌 반응했더라. 엘리제는 아주 조금 자신감을 회복하긴 했으나 루비카의 칭찬을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위로로 알았다. 머릿결을 조금 손봐 주는 것만으로도 금세 변한 안젤라와는 달랐다. 애초에 안젤라는 머릿결이 좀 이상할 뿐 자신이 제법 예쁘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재치가 넘쳤으나 외모에 관해서는 엘리제만큼이나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만약 엘리제를 그렇게 변하게 한 사람이 네게…….”

“역시 부인은 그분이 누군지 알고 계시군요. 제발 만나게 해 주세요.”

루비카는 차마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이상 유명해지는 건 사양이다.

“하여튼 그 사람이 네게 코르셋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니?”

“코르셋을 하지 말라고요? 저처럼 허리가 일자인 사람은 코르셋이 없으면 예쁜 실루엣이 안 나와요. 저보다 훨씬 마른 애들도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꽉 조이는걸요.”

“눈썹을 그리지 말라고 하면?”

“열 살 이후로 눈썹을 그리지 않고 밖에 나간 적이 없어요. 제 눈썹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거든요.”

가브리엘이 짙게 그린 눈썹을 만지며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루비카는 가브리엘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겁이 덜컥 났는지 가브리엘이 루비카의 소매를 잡았다.

“어쨌든 그분을 만나게 해 주세요.”

가브리엘은 안젤라와도 엘리제와도 다른 사람이었다. 엘리제는 소심하기도 했지만 순종적인 타입이었다. 두려워하면서도 루비카가 밀어붙이면 결국 루비카가 권한 드레스를 입고 앞머리를 자르는 것도 감내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엘리제처럼 할까?

가브리엘은 납득할 때까지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걸 좋아하는 아이로 보였다. 게다가 루비카가 그녀에게 조언하고 싶은 건 더 이상 코르셋을 꽉 조여 매지 말 것과 진한 화장은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생동감 있고 귀여운 맨얼굴을 그대로 보이라는 것이었다. 루비카는 지금 가브리엘이 자신의 조언을 납득하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엘리제처럼 나를 믿고 일단 해 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아이였다.

‘엘리제가 결정적으로 변한 건 내가 그녀를 꾸며 줬기 때문이 아니었어.’

연무장의 대시너 이후로 엘리제의 태도는 놀랄 만큼 변했다. 평소에는 편안한 옷을 입었으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더 이상 망설이거나 눈치 보지 않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찌 보일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자 엘리제는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듯 이를 찾는 과정이 다 똑같을 수 없다. 루비카는 엘리제에게 했던 실수를 가브리엘에게 되풀이할 수 없었다.

“만나게 해 줄게.”

“정말인가요? 정말 감사합니다, 부인.”

“대신 조건이 있어.”

루비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에는 루비카가 가브리엘의 손을 꽉 잡았다. 과연 이 방법이 통할지 안 통할지 알 수 없었지만 루비카는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브리엘이 엘리제와 달리 무척 적극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조건이요? 뭐든 말해 주세요.”

“매일 저녁 자기 전에 거울을 보고 ‘나는 아름답다.’라고 열 번만 말해.”

“네?”

“그런 다음에 일주일 뒤 여기에 다시 와. 꼭 내 말대로 해야 해.”

가브리엘은 두 눈을 깜빡였다. 거울을 보고 그런 말을 하라니, 어쩐지 닭살이 돋았다.

“꼭 그래야 하나요? 그냥 돈 드리면 안 돼요? 제가 이래 봬도 몰래 모아 둔 돈이 상당하거든요.”

루비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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