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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30화 (30/212)

# 30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30화

“내가 왜 그런 짓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우리란 건 압니다. 루비카님은 심성이 고우니까요. 하지만 이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다음부터 놀리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너 따위 늙고 못생긴 건 줘도 안 먹는다고 말하세요.”

사제의 입에 올라간 상스러운 말에 루비카는 당황했다.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치료의 과정입니다.”

당황하는 루비카의 손을 꼭 잡고 레페나가 단호히 말했다.

……치료의 과정.

그 말에 루비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었다. 또다시 ‘위로’라는 말을 환자가 입에 올리는 순간 그녀는 레페나가 말한 대로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너처럼 못생기고 늙은 건 100명을 가져다줘도 안 먹어!”

잠깐 침묵이 흘렀다.

루비카를 계속 놀리던 환자는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루비카는 어찌 그런 상스런 말을 하냐고 자신을 비난할까 잠깐 두려웠다.

“하하하하하!”

“아이고! 당했네. 당했어.”

“그러게 자매님한테 왜 그런 말을 했어. 이번은 자네가 너무 했어.”

“자네가 좀 늙고 못생기긴 했지.”

뜻밖에도 주위에서 루비카를 편들더니 여태 그녀를 못살게 굴던 환자를 놀리기 시작했다.

환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루비카에게 "거 참, 농담도 못하게 하네."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한 번도 루비카를 놀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가 다 나아서 수도원을 나갈 때 그녀를 몰래 불러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하고 사과를 하고 갔다.

루비카는 그날 교훈을 얻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귀족의 교양에 대해 공부할 때 책에서는 상스러운 말을 하는 건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짓이니 하지 말라고 나왔었다. 그러나 이 경우 독설을 하는 건 수준을 깎아내린 게 아니라 상대의 수준에 맞춰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는 눈높이 교육의 일환에 불과하다.

심한 말을 했다고 상대의 자존심을 상처 줬다고 미안해할 필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계속 거대하게 비틀어진 자존심을 안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살아갈 테니…….

* * *

그리고 지금 루비카는 이 콧대 높고 자기밖에 모르며 상대편의 입장을 하나도 배려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에드가의 코를 때리기로 결심했다.

루비카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공작저에 도착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녀는 에드가를 똑바로 바라보고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자꾸 저한테 반말하세요?”

루비카의 말에 에드가의 긴 속눈썹이 움찔 떨렸다.

“뭐?”

“보통 서로 존중하는 부부는 서로 존댓말을 씁니다. 제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신다면 그리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각하.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키스나 하는 방식을 쓰는 게 아니라요.”

에드가는 루비카의 말로 인해 느낀 이 황당함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키스를 종종 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말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제발 그 각하라고 부르는 거 좀 그만 둘 수 없나? 난 에드가라는 이름이 있는데.”

어쨌든 결혼도 했는데 루비카가 자신을 계속 각하라고 호칭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각하께서 저를 존중하지 않고 아랫사람 대하듯 말을 하니 제가 어찌 ‘에드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만만치 않는 여자다. 에드가는 갑자기 엄습한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루비카에게 높임말을 쓸 기분이 나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나는 왕세자에게도 편한 대로 말해.”

“국왕 전하께는요?”

“…….”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루비카는 이 오만한 남자가 자신을 마치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게 기분 나빴다. 아무리 형식적이나 부부는 부부다.

루비카는 평소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자들을 혐오했었다. 그 베르너 삼촌마저도 숙모에게는 적어도 친절했다.

“……꼭 존댓말을 해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가.”

루비카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이 오만한 공작의 코를 제대로 때리기로.

“좋아, 에드가. 앞으로 그럼 나도 이제 반말할게.”

“……뭐?”

에드가의 얼굴이 당혹으로 얼룩졌다. 현재 그에게 편히 말 놓을 수 있는 자는 왕족 외에 없다.

심지어 왕세자조차도 에드가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국왕은 에드가에게 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할 발명품을 내놓으라고 귀찮게 굴긴 했다. 그러나 혹 그의 기분을 잘못 건드려 백지 보고서를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평생 남의 꼭대기에 서 있었으며 그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과거에 있긴 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현재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이다.

“부부는 평등하잖아. 그리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꼭 존댓말을 해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아니라고!”

에드가는 뒷골이 당겼다. 머리가 찌르듯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난제에 부딪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의 삶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를 만났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루비카에게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녀가 바로 자신이 했던 소리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클레이모어 공작 부부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차가 멈췄다. 어느덧 공작저에 도착한 것이다.

“……할 수 없군. 이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루비카는 그런 에드가를 향해 마음속으로 혀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도통 적응하기 힘들었던 에드가의 아름다움에도 어느덧 적응했다. 그가 아무리 달콤한 말을 속삭여도 그의 속내를 아는 루비카는 넘어가지 않으리라.

그리고 루비카가 준비한 이벤트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도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마차가 열리자 드디어 탄생한 아름다운 공작부부의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긴 시간 기다려 지칠 만도 한데 그들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축복을 담은 흰 꽃과 하얗게 염색한 이삭을 던졌다. 에드가가 먼저 마차에서 내린 다음에 루비카를 에스코트했다.

곧 그녀의 드레스가 드러나자 하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적어도 루비카가 만든 드레스만은 에드가의 미모로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루비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치 날갯짓하는 듯 움직이는 금빛 자수에 누구보다 기뻐한 건 로사였다. 그녀는 둘러싼 하객들을 붙잡고 저 아름다운 드레스는 공작 부인의 아이디어였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 같은 꽃과 이삭의 축복은 공작 부부가 현관문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활짝 열린 현관에 당도하자 앤이 재빨리 루비카와 에드가의 머리를 귀찮게 누르고 있는 보관과 베일을 벗기고 대신에 축복이 깃든 화관을 씌워 줬다.

“고마워. 앤.”

당초 공작 부인이 되면 편히 말 놓기로 약속했었다. 앤이 화답하듯 미소 지었다.

그리고 루비카는 그녀처럼 보관을 막 벗은 에드가를 향해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서 가자, 에드가.”

순간 앤을 비롯한 주변 하객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개중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자도 있었고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자도 있었다. 그러나 루비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에드가의 팔짱을 꼈다.

“뭐해?”

놀라고 당황스러운 건 에드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루비카를 탓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무리 오만한 그라 할지라도 막 결혼식을 끝내고 피로연장에 들어서는 신부에게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줄 정도의 배짱은 없었다. 그리하면 루비카가 지금 짓고 있는 귀여운 미소도 사라질 것이고 팔짱도 가차 없이 빼 버리겠지.

“……알았네.”

알았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얌전히 함께 피로연장에 들어가겠다는 뜻도 있지만 지금 당신 뜻은 알겠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뜻도 있었다.

루비카는 그의 대답에 최대한 활짝 웃었다.

‘세상에…… 각하가…….’

‘각하가 저리 하는 건 처음 보았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은데?’

‘새로운 공작 부인을 함부로 대하면 큰일 날 것 같구려.’

잃을 것 없는 루비카는 그저 공작의 콧대와 자존심을 바짝 누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의도와 달리 하객은 그 클레이모어 공작이 루비카의 반말을 용납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그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저 에드가의 사랑이 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도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루비카는 화려히 꾸민 피로연장으로 안내되는 내내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축하의 말을 하는 하객과 사용인 모두에게 친절한 말투를 썼다. 공작 부인이기에 기꺼이 거만하게 굴 수 있음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척 거만한 말투를 써서 대하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으니……,

“거기, 후추 좀 줘.”

에드가였다. 에드가는 부글부글 끓는 얼굴을 하면서도 후추 통을…… 건넸다. 그녀의 접시 위에는 특별한 날 재력을 뽐내기 위해 향신료를 지나칠 정도로 잔뜩 바른 도요새 구이가 놓여 있었다. 후추를 뿌릴 필요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분명 자신의 신경을 긁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

실제로 루비카는 받은 후추를 요리에 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그런 에드가의 모습을 보고 하객들이 수군거렸다. 에드가의 지휘 아래 각종 무기를 개발 중인 학자들은 대체로 새로운 공작 부부의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며 금슬이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그중 몇몇 소리는 에드가의 귀에 거슬리고 남았다.

“잡혔네. 잡혔어.”

“임자 만났네.”

결국 에드가는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행복한 표정으로 만찬을 즐기고 있는 루비카에게 한마디 했다.

“정말 너무 하잖아.”

“응? 후추를 너무 쳤다고?”

루비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뻔히 들은 에드가의 말에 동문서답을 했다. 에드가는 당장 루비카의 손목을 잡고 다른 곳으로 끌고 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감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클레이모어 공작답게 냉정히 처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기분도, 루비카의 손목을 거칠게 잡을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두려움’이었다는 걸 훗날에야 깨닫게 된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

명백한 경고에도 루비카는 신경 쓰지 않고 식탁 위에 잔뜩 차려진 음식을 맛보았다. 주방은 어제 아침부터 오늘 저녁까지 음식에 총력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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