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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29화 (2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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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29화

머리는 에드가에게 당장 이런 역겨운 짓을 그만두라고 명령했으나 몸은 그것을 거부했다. 손에 닿는 루비카의 허리는 부드러웠으며 뺨에 닿는 한숨은 달콤했다. 자신이 쾌락에 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맹세의 키스를 말하나 보군.”

에드가는 자신의 힘으로 더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고 황급히 샴페인을 더 마셨다.

루비카는 그를 여전히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난 어린 눈빛에 에드가는 갑자기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노려볼 정도로 싫었나.

“불쾌했나?”

“네.”

에드가의 질문에 루비카는 단호히 대답했다. 사실 불쾌하기만 했냐면 그렇지 않았다. 에드가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황홀하게 루비카에게 키스했다.

그러나 루비카는 그녀가 느낀 ‘황홀함’보다 ‘불쾌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설사 황홀했다 하더라도 그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열정이고 충동이었다. 사랑은 충동이 아니다. 사랑은 믿음 위에 서야 탄탄하다.

루비카는 충동과 사랑을 혼동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나는 좋았는데.”

“네?”

아차, 샴페인 때문이었을까?

에드가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진심을 말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말을 내뱉고도 깜짝 놀라 루비카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루비카는 뭐 이런 어이없는 농담을 하는 경우가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에드가는 그게 제법 기분이 상했다.

“아, 됐어요. 그럼 함부로 키스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세요.”

에드가가 여느 때처럼 비꼬는 말이나 하려는 줄 알았던 루비카는 그냥 사과나 받고 이야기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루비카, 휴의 성서에는 신에게 혼인의 맹세를 할 때는 반드시 키스로 끝맺으라고 나와 있네. 나는 성서에 나온 대로 했을 뿐이야. 그대가 휴의 성서에 대해서 모를 리도 없고……”

“입술이 맞닿는 정도면 됐잖아요. 꼭, 그렇게……그렇게…….”

혀라는 단어를 차마 내뱉지 못하고 루비카가 얼굴을 붉혔다. 에드가는 그녀의 그런 붉은 뺨이 화려한 드레스와 다갈색 머리에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주변을 감싼 금빛 베일이 루비카가 말할 때마다 흔들렸다. 어지간히 아름다운 걸 봐도 감흥이 없던 그도 그 아름다움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키스와 뽀뽀는 다르잖아. 성서는 맹세의 끝을 키스로 하라고 했지 뽀뽀로 하라고 하지 않았어.”

스스로 한 말에 에드가는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였다.

방금 생각해 낸 말이지만 제법 그럴 듯했다. 루비카도 더는 그에게 대항할 만한 말을 생각해 낼 수 없는지 그를 노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이겼다.

그가 완벽하게 이겼다.

이 이상한 여자가 자신에게 반박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이겼음에도 통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그를 바라보는 루비카의 비난 어린 눈빛에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어제 밤늦게 왕성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회의를 해서 그런가, 이동하는 내내 마차 안에서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정말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이 사람 설마 고작 샴페인 한 잔 마시고 취했나?’

그 시각 루비카는 에드가를 보며 전혀 다른 추측을 하고 있었다. 에드가의 눈 아래 뺨이 마차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달리 다소 붉었다.

아까 그가 마신 샴페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샴페인에 알코올이 그렇게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세상에 술이 약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게 에드가일지도 모른다. 자고로 술 취한 사람이랑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새까맣게 까먹거나 까먹은 체해도 이쪽으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루비카는 에드가가 제정신일 때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휴, 알았어요. 그래요. 성서의 해석을 두고 일어난 견해 차이 같은 걸로 해 두죠.”

루비카가 비난하는 눈빛을 거두자 에드가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타는 목을 입안의 침으로 축이고 기어코 다음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 종종 해도 될까?”

루비카는 확진을 내렸다. 그는 확실히 취했다.

“미쳤어요? 안 돼요.”

단호한 루비카의 말에 에드가의 얼굴에 구름이 끼었다. 사실 그도 말을 꺼내고 ‘아차’ 싶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얼굴의 붉은 기운을 가리느라 샴페인을 한두 잔 마시기는 했지만 그는 평소에 포도주 네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감기 때문이군.’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샴페인을 먹어 금방 취한 듯 했다. 그가 생각해도 이 와중에 좀 어이없는 말이긴 했다. 간신히 루비카의 눈에서 비난을 사라지게 했는데 다시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에드가는 루비카에게 무례를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부 사이가 좋다는 걸 보여 주는 게 당신에게도 좋을 듯싶어.”

그런 마음과 달리 입에서 영 딴소리가 나왔다. 에드가는 경악으로 물든 루비카의 얼굴만큼이나 놀랐다.

“지금 그게 무슨?”

루비카의 손이 떨렸다. 아마 저번처럼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 듯했다. 에드가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루비카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친족들은…… 솔직히 말해서 좋은 성격이라 하기 힘들어. 가문이 한미한 당신을 업신여길 것이 분명하지. 그러나 우리가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면 내가 무서워서라도 그들은 당신을 무시할 수 없을 거야.”

에드가는 슬슬 루비카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루비카는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으로 주먹을 꼭 쥐더니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다행이군. 내 말이 영 틀린 소리는 아니었어. 잘 생각해 보면 그리 하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할 거야.’

그것은 에드가의 희망 사항이었다. 루비카가 눈을 감자마자 먼저 한 생각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 였다. 그녀가 심호흡을 한 건 에드가와 한 판 싸우기 전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용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 * *

수도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루비카는 자주 울었다. 그녀를 울린 건 수도사의 깐깐한 지적도, 배고픔도 아닌 환자였다.

“자매님, 제가 무척 외로워서 말입니다. 위로 좀 해 주면 안 됩니까?”

처음 침상에 누운 용병 출신 환자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루비카는 그 ‘위로’라는 의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노래를 불러드릴까요? 아니면 책을 읽어 드릴까요?”

루비카의 말에 환자 주변에 있던 그와 비슷한 출신의 환자들이 낄낄 웃었다.

“이거, 자매님. 많이 순진하시구려.”

“그런 위로 말고요.”

“거기요, 거기.”

“……거기라니요?”

용병이 자기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그제야 ‘위로’의 의미를 깨달은 루비카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뭐라 말도 못하고 환자실을 빠져나와 펑펑 울었다.

“아, 어차피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다 알 텐데 뭘 그리 상처받으십니까?”

“농담 아닙니까? 농담. 거 참, 농담 한번 심각하게 들으시네.”

며칠 밤낮을 고민한 뒤 루비카가 찾아가 진지하게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자 돌아온 대답은 그거였다. 더 괴로운 건 용병의 놀림에 루비카가 울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난 후 놀림이 더욱 심해졌단 사실이었다.

“그런 말에 울다니 설마 처녀십니까? 껄껄껄.”

옆방의 환자에게 그런 말까지 들었다. 그들은 루비카가 상처받은 표정을 짓거나 그러지 말라고 간절히 말하면 오히려 웃으며 좋아했다.

루비카는 그만, 이 전쟁터에서 그나마 안전했던 수도원을 빠져나가 어디 산속에서라도 숨어 살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제 레페나가 루비카를 호출했다.

레페나의 서재를 향하며 루비카는 겁에 질렀다. 필히 깐깐한 사제가 루비카에게 환자들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분위기를 흐리게 했다고 질책하리라 여겼다.

“루비카 자매님, 제가 왜 불렀는지는 알리라 생각합니다.”

“……네.”

루비카는 레페나의 얼굴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발끝을 보았다. 무서워서 문에 딱 붙어서 다가가지 못했다.

“고개를 드세요. 왜 잘못한 게 없는 자매님이 고개를 숙입니까!”

호탕한 꾸지람에 깜짝 놀라 루비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질책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레페나는 루비카를 자기 옆에 앉히고 그녀가 평소에는 먹기 힘든, 사제 앞으로만 지급되는 따스한 꿀차를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었으니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레페나 님.”

철로 만들어진 여인이라 여겼던 레페나가 따스하게 말하자 루비카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 레페나는 질린 표정을 지으며 루비카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울지 마세요. 전 우는 건 딱 질색이랍니다. 저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을 불렀습니다. 우는 걸 보자고 부른 게 아닙니다.”

“……흣, 네. 레페나 님,…… 그런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따로 부탁까지 드렸는데……오히려 놀리는 게 더 심해졌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레페나님이 한 말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루비카의 간청에 레페나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그들은 자매님을 더 괴롭힐 겁니다.”

“더 괴롭힌다고요?”

“제 등 뒤에 숨은 겁쟁이라고 놀리고 어쩌면 앙심을 품어 더 해코지할 수 있습니다.”

루비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진지하게 한 말도 무시하고 더 괴롭힌 자들이다. 레페나의 말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어떻게 하죠?”

“루비카님, 용기를 낼 수 있습니까?”

“용기요?”

“정확히 당신을 놀리는 환자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릴 수 있는 용기요.”

루비카는 손 떠는 것도 잊고 레페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나 사제의 눈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용병이었던 그자들은 힘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이 센지, 내가 거느리는 사람들이 몇몇인지, 누가 내 말에 꼼짝 못하는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다리를 잃거나 손을 잃거나, 어쨌든 용병의 세계에서 가장 바닥으로 떨어졌죠. 그들은 그 잃어버린 자존감을 자매님을 괴롭히는 데서 찾고 있는 거랍니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이렇게 놀리고 깔아뭉갤 수 있다. 그러니 바닥은 아니다.’하고요.”

“……그래서 제게 참고 이해하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레페나는 고개를 젓고 루비카의 손을 잡았다.

“그 자존감은 모두 거짓된 자존감입니다. 가짜 자존감이지요. 그건 결국 진짜 자존감을 검게 물들여 병들게 합니다. 참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병을 악화시킵니다.”

“그럼 어떻게…….”

“가짜 자존감으로 하늘까지 올라간 코를 때려서 부수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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