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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28화 (2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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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28화

사랑에 빠져 주위의 눈길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맞추는 연인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게 세상에 또 있으랴.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되면 가슴이 절로 설레고 자기 일이 아님에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하지만 멋진 남성이 자신에게 키스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멋진 남성과 예쁜 여자의 키스, 이걸 보는 게 더 좋다. 한 번에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일거양득이다. 그러나 막상 일이 닥치니 어렴풋이 대충 이렇지 않을까 했던 것과 다른 현장감이 있었다.

에드가의 오뚝한 콧날 아래에서 내쉬는 숨이 달큼하니 얼굴을 간지럽혔고 깨끗이 단장한 그의 피부에서 나는 향취가 포근하니 몸을 감쌌다. 보석같이 투명한 푸른 눈 안에는 자신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으아아아!’

결국 루비카는 점점 다가오는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두 눈을 감았다. 이윽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에 닿았다. 루비카는 자신의 입에 슬쩍 맞닿은 에드가의 입술이 무척이나 포근하고 따뜻하다 느꼈다.

잡을 때마다 차가운 손이었기에 그의 입술마저 그런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심지어 이처럼 부드러운 입술 안은 어떤 감각일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제 떨어지겠지.’

루비카는 어쨌든 입술이 닿았으니 에드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알았다. 수도 사교계에는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다. 구석 자리를 겨우 차지할 남루한 가문도 아니고 에드가는 무려 공작이었다. 귀족 영애는 물론 그에게 접근하는 배우나 가수도 많았겠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인이든 사귈 수 있는 게 에드가였다. 그러니 키스 같은 건 자신처럼 평범한 여인은 제쳐 두고 그런 아름다운 여인과…….

‘으응?’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기는커녕 슬쩍 루비카의 입술을 파고들 듯 비비기 시작했다. 루비카는 피가 얼굴에 몰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구색을 갖출 필요는 없잖아!

루비카는 한 발짝 뒷걸음질 쳐 에드가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루비카의 뒷걸음질보다 에드가의 손이 빨랐다. 그는 루비카의 허리를 잡고 있는 손을 자기 쪽으로 확 당겼다.

루비카의 허리가 에드가의 몸이 닿았다. 닿은 몸에 시작된 짜릿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그녀를 지배했다. 갑작스러운 동작에 허리가 살짝 젖혀졌고 입술이 살그머니 벌어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말랑하고 몰캉한 것이 루비카의 안으로 들어왔다. 슬쩍 들어와 조심스레 치열을 더듬던 보드라운 것은 곧 루비카의 입천장을 훑고 거세게 그녀의 안을 휘저었다.

루비카는 그만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혀가 주는 기분 좋은 촉감과 코끝에 닿는 에드가의 향취에 취해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흔히 아름다움을 추종하는 자들은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는 하수다.

아름다움은 들리는 것, 먹는 것, 맡아지는 것, 느껴지는 것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중 촉감은 인간이 처음으로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아름다움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눈에 옅은 막이 존재해 제대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한다. 아기는 손에 잡히는 부드러운 무언가가 자신을 토닥이고 먹을 것을 주는데 안심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이 촉감이 주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아기는 이윽고 앞을 또렷이 볼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도 호기심을 끄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입안에 집어넣어 본 것과 들은 것에 촉감이라는 정보를 더하려 한다.

그렇다. 혀는 촉감의 아름다움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예민하고 섬세한 기관이다. 거기에 보이는 것을 차단하면 인간은 느껴지는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루비카는 뒤늦게 눈을 감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눈 뜰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허리를 꽉 잡은 에드가의 손과 입안을 탐하는 에드가의 부드러운 혀가 그녀의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아.’

보통 남자들에게서 나는 독한 스킨 냄새도 텁텁한 술 냄새도, 땀에 찌든 향수 냄새도 하나도 나지 않았다. 대신 공기 좋은 숲속에서 나는 듯한 청량한 향기가 루비카의 코끝을 간질였다.

어째서 이 남자는 보이는 것도, 맡아지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아름다운 걸까.

난생처음 느껴 보는 촉감에 취해 루비카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허리 아래의 힘이 쭉 빠졌다. 에드가가 강인하게 루비카의 허리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루비카는 밀려오는 쾌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간신히 격정적으로 자신을 탐하는 에드가를 버텨 냈다.

“하아.”

호흡이 곤란할 때쯤이 되어서야 에드가의 입술이 떨어졌다. 루비카는 숨을 몰아쉬며 부족했던 공기를 듬뿍 마셨다. 그리고 에드가를 노려보았다.

여태까지 마주칠 때마다 항상 시렸던 푸른 눈에 이질적인 뜨거운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루비카를 바라보는 에드가의 얼굴은 황당 그 자체였다.

‘뭐야? 저 표정은? 지금 누구보다 황당한 건 난데.’

“흠흠.”

눈앞에 펼쳐진 격정적인 키스에 넋이 나가 있었던 대사제 안드레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이것으로 결혼 서약을 마칩니다. 휴 신의 축복을 두 사람에게 내립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두 사람의 이마 위에 축복의 성호를 그었다. 두 사람의 키스에 감명 받은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성호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그가 아는 모든 축복의 구절을 읊조렸다.

루비카는 대사제의 진지한 표정과 결혼식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에드가에게 바로 따져 물을 기회를 놓쳤다. 열렬한 키스 덕에 그들을 바라보는 증인들마저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이거 설마 노리고 한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심술?’

복잡한 심경이 된 루비카는 에드가의 돌발 행동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노리고 했거나 그저 단순히 심술이었다면 그런 황당한 표정을 짓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결혼 서약서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하나는 사원에서 보관할 것이며 하나는 새로이 탄생한 부부의 것입니다.”

먼저 각자의 증인이 서류에 사인하기 시작했다. 루비카의 증인은 베르너 저택이 있던 근방에 살고 있던 저명한 학자라고 하였는데 그녀는 처음 본 사람이었다.

‘어차피 증인으로 내세울 만한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증인의 사인이 다 끝난 후 자신 앞으로 온 서류를 루비카는 심드렁하니 바라봤다. 대사제가 읊은 결혼 맹세와 거의 유사한 첫 장을 넘기자 증인의 사인이 나왔고 그 다음 장에 나와 있는 신부 루비카 베르너란 이름 옆에 사인했다. 그리고 에드가에게 서류를 넘기려 하자 안드레가 그녀를 말렸다.

“이 밑으로 앞으로 새로이 얻게 될 성함이 나와 있습니다. 그 아래에도 사인하셔야 합니다. 이때는 이름만 쓰셔야 합니다.”

대사제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본 루비카는 기겁했다.

<세리토스 왕국을 건국한 세피레리토우스의 친우이자 수호자인 조반니의 후예 사본느 후작의 아들이자 웨스트윈드랜드를 해방시킨…….>

엄청나게 긴 작위와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제는 루비카의 기분을 알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휙휙 넘겨 그녀가 사인해야 할 곳을 알려 주었다. 거기에는 루비카가 결혼하면서 클레이모어 공작가에 넘기기로 한 베르너 준남작가가 마지막으로 쓰여 있었다.

‘고작 끝에 겨우 실릴 정도로 작은 작위 때문에 그 난리를 쳤었다니……’

루비카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클레이모어 공작가를 수식하는 그 어떤 작위보다 베르너 준남작이란 작위가 더 좋았다.

단순히 아버지의 작위여서가 아니다. 다른 작위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쫓아내서 얻은 거였으나 베르너 준남작이란 작위는 사람을 살려서 얻은 거였다.

‘결혼해도 공식적으로 베르너란 성이 내게 속해 있는 건 좋네.’

루비카는 사제가 알려 준 곳에 사인하고 에드가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사원에 보관할 서류에도 똑같이 사인했다.

“이로써 모든 의식이 끝났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행복한 부부가 되시길.”

안드레는 마지막까지 축복의 말을 하며 갓 탄생한 클레이모어 공작부부가 사원을 나서는 데까지 배웅했다.

“원래는 꽃마차를 타고 영지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작저까지 가시기로 했으나……, 그럼 저택에서 피로연을 기다리고 계신 하객분을 지나치게 기다리게 만들 것 같습니다. 각하, 마님. 마석마차를 타셔야 합니다.”

식장을 나온 에드가와 루비카를 마석마차로 안내하며 칼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늘 위에는 아예 별이 반짝였다. 확실히 꽃마차를 타고 가면 오늘이 아니라 다음날에 도착하는 민폐를 저지르기 적당한 시각이었다.

“영지민이 불만을 가질 텐데. 칼,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에드가의 말에 앤이 재빨리 대답했다.

“영지민들에게는 아가……. 아니, 공작 부인께서 미리 준비하라 이르신 꽃과 양초, 쿠키를 나눠 주라 일렀답니다. 심부름 나간 아이의 말로는 괜히 다리 아프게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좋은 선물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에드가의 입가가 확연히 풀어졌다. 그는 조금 뚱한 얼굴로 자기 옆에 있는 루비카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언제 그런 걸 준비했지?”

“네? 하하, 어쩌다보니……,”

공작가의 재정 따위 나 몰라라 하고 영지민에게 비싼 물건을 잔뜩 나눠 주는 낭비벽 심한 공작 부인이란 소리를 듣고 싶었던 루비카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에드가의 따뜻한 눈빛에 당황했다. 그녀는 어느새 ‘현명하고’ ‘배려심 깊으며’ ‘자애로운’ 공작 부인이 되었다.

‘이게 아닌데…….’

* * *

마석마차 안은 그사이에 신혼부부가 탈 만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에드가는 간단한 입가심 거리와 샴페인이 놓인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루비카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게 감기가 점점 더 심해지려나 보군.’

혹 자신의 얼굴색을 루비카가 오해할까 걱정스러웠던 에드가는 테이블 위 샴페인을 유리잔에 따랐다. 최대한 태평스럽고 아무렇지 않는 표정을 짓도록 유의하며 그는 얼음 덕에 여전히 시원한 샴페인을 한잔 마셨다.

“저기, 아까 결혼식 때는 대체 왜 그랬어요?”

갑작스러운 루비카의 질문에 그는 마시던 샴페인을 뿜을 뻔했다.

“뭘?”

루비카가 뭘 말하는지 안다. 하지만 에드가는 시치미를 뚝 떼며 마시던 샴페인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덜덜 떨리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숨겼다.

다행히 그는 공작이란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어 얼굴 근육을 다소 제 뜻대로 제어할 줄 알았다. 에드가는 정말 루비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 맹세의 키스 말이에요. 그냥 입술만 맞닿으면 되잖아요. 꼭 그렇게, 꼭…….”

루비카의 말에 에드가는 기껏 잊으려 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자신이 대체 왜 그랬는지 그도 모른다.

그저 맞닿은 루비카의 입술이 부드럽다 여겼다. 살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녀는 우윳빛 피부만큼이나 달고 고소한 향기가 났다. 이대로 입술이 맞닿은 채 쭉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루비카가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저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이틀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에게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게 됐군.’ 이란 감상밖에 남기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뭔가 울컥하니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루비카를 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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