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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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말씀§
다가오는 수요일 당신을 엘마이어 공작 부인의 독서 모임에 초대합니다.
· 초대 자격
- ‘용자 아메데오의 대모험’을 꼼꼼하게 읽으신 분
· 주의사항
- 해당 책을 지참할 수 없음.
- 단, 메모한 내용은 반입 가능합니다.
엘마이어 공작 부인과 함께 진정한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 주세요!
√ GUEST NAME :
口 기쁘게 참석하겠습니다.
口 참석할 수 없습니다.
※ 본 모임에서는 10세 미만의 어린이, 심약자, 노약자의 참여를 금지하고 있으니 유의하여 주십시오.
“이게 뭐지?"
이블린의 초대장을 읽은 이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위조된 괴문서인가 생각했지만, 봉투에 찍힌 인장은 확실히 엘마이어 공작가문의 것이었다.
"독서 모임에 초대한다고?"
독서 모임 같은 거야 너무 흔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문제는 모임 주제로 지정된 책이 ‘용자 아메데오의 대모험’이라는 것이었다.
‘용자 아메데오의 대모험'은 지금은 한물·간 기사 문학 중 그나마 인기를 얻은 소설이었다. 초대장을 받은 이들도 어릴 때 한 번쯤은 읽어 본 기억이 있었다.
“이걸로 무슨 독서 모임을 해?"
사교계의 독서 모임은 한마디로 ‘있어 보여야' 했다.
그 때문에 주최자들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책을 주제로 삼았고, 참석자들은 미리 암기해 온 내용을 떠들어 대며 자신의 교양을 뽐냈다.
이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참석자들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이 주최자의 능력이었다. 참석자들을 얼마나 띄워 주냐에 따라 독서 모임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용자 아메데오의 대모험’에는 교양을 뽐낼 구석이 요만큼도 없었다.
이대로 모임이 열리면 주최자인 이블린만 비웃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자기가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나 보군. 멍청하긴 주변에 말려 줄 사람도 없나?"
사람들은 이블린이 아무것도 몰라서 이런 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할 일도 없는데 가서 그 여자가 망신당하는 모습이 나봐야겠군.”
그들은 별생각 없이 초대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기쁘게 참석 하겠습니다.’에 체크한 후에 돌려보냈다.
그러자 얼마 뒤에 모임의 시간과 장소가 적힌 황금색의 티켓이 도착했다.
* * *
참석자 중 한 명인 토비아스는 시간에 맞춰 마차에 서 내렸다. 약속된 장소는 교외에 있는 크고 썰렁한 저택이었다. 토비아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실룩거렸다.
‘왜 장소가 이따위야? 공작가에 돈이 없나?'
토비아스의 부친인 채스터 백작은 서부의 대영주였다. 왕자처럼 떵떵거리며 자란 토비아스에게 눈앞의 저택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토비아스? 자네가 여긴 웬일이지?"
얄미운 목소리에 획 고개를 돌린 그는 모티머 백작가의 린지를 발견했다. 둘은 서부와 남부의 입장 차로 인해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잠깐 당황하던 토비아스는 이내 덤덤하게 대답했다.
"공작 부인의 초대에 응했을 뿐이야.”
“오, 가엾은 공작 부인께선 사이 나쁜 지들을 같은 날에 초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모르시는 것 같군.”
토비아스는 린지의 투덜거림에 동의했다. 아무리 천출이라지만 정말이지 기본적인 상식이 없었다.
"동감이군. 자네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참석하지 않았을 거야.”
“미리 말해 두지만 난 돌아갈 생각이 없네. 껄끄러우면 자네가 피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군.”
그때, 눈싸움을 벌이는 그들에게 저택에서 나온 시종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초대장을 확인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수행원에게 턱짓했다. 수행원이 황금색 티켓을 꺼내서 내밀자 그걸 확인한 시종 들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확인 감사합니다. f조 참가자시군요. 조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C조로 확인되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깐, 그 조라는 건 대체 뭐지?"
"참석자의 수가 많아서 마님께서 임의로 5명을 묶어서 조를 만드셨습니다.”
보통 독서 모임의 정원은 최대 10명 정도였다. 그런 데 5명씩 조를 묶어서 분류할 정도로 참가자가 많다 니.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알겠다."
인사도 없이 획 몸을 돌려 멀어지는 린지를 노려본 토비아스는 시종의 뒤를 따랐다.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책은 지참하실 수 없습니다. 갖고 계선 것이 있다면 수행원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런 건 없어.”
토비아스는 퍽 까다롭다고 생각하며 대충 대답했다.
정중한 미소를 지은 시종이 C라고 적혀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안에서 다른 조원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십시오.”
토비아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던 네 명의 청년이 벌떡 일어났다.
"토비아스?"
“자네도 여기 올 줄이야.”
그들은 모두 서부 귀족이었다. 아무래도 출산별로 조를 짜 둔 것 같았다.
‘멍청한 줄 알았더니 아예 머리가 없는 건 아니군.'
토비아스는 이블린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두꺼운 벽이 내려와 창문까지 폐쇄됐다.
”뭐, 뭐야!"
놀란 청년들이 펄쩍 뛰었다. 그들은 뒤늦게 잠긴 문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당기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토, 토비아스! 문이 잠겼는데 어떡하지?"
“뭐? 나보고 어쩌라고!"
“이봐! 꺼내 줘! 내 목소리 안 들려?"
곱게 자란 귀족 청년들은 처음 겪는 일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세요. 곧 신나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서 명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블린 엘마이어입니다. 저의 독서 모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모임의 주제는 ‘용자 아메데오의 대모험'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용자 아메데오가 되어 신이 주신 7가지 시련을 이겨 내야합니다.
지금부터 책의 내용에 따라 단서를 찾고 조합해서 열쇠를 얻은 후 방을 탈출하세요. 여러분에게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그럼, 살아서 다시 만나요!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청년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하는 그들의 얼굴에 철퇴를 내리듯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첫 번째 시련, 미친 폭군 샤르데나 왕의 궁전에서 탈출하세요. 5분마다 방 안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공간이 줄어든다고?
의아해하는 남자에게 이블린이 대답했다.
-벽이 움직여서 방이 점점 좁아지는 거예요!
-좁아져야 할 이유가 있어?
-그래야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죠?
-그렇군.
토비아스는 머리끝이 삐쭉 서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그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 열어! 여기서 나가게 해 줘!"
그때, 사방의 벽이 진동하며 모든 물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년들은 순식간에 폭군의 궁전 한가운데 던져졌다.
* * *
"허억, 헉!"
마지막 7번째 방에 도달한 토비아스는 희열을 느꼈다.
점점 좁아지는 벽에 공포를 느끼며 필사적으로 단서를 모아 문을 열었을 때,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얼마나 절망했던가.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뛰어난 기억력 덕에 어릴 적에 읽은 책의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끔찍한 점은 세 명의 조원들이 그의 발목을 잡는 트롤이라는 것이었지만.
그나마 한 명은 책을 꼼꼼하게 읽어 와서 도움이 되었으나, 나머지 셋은 함정이라는 함정은 다 건드리는 병신들이었다.
멍청한 조원 덕에 목소리 변조 가스를 맞고, 물속에 구두가 빠지는 공격을 당했다. 뒤이어 후춧가루 폭탄 까지 맞자 토비아스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졌다.
‘여길 나가면 그 미친 여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주겠어. 아니, 엉덩이를 마구 때려 버리겠어.'
얼마나 미치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때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조원을 느낀 그는 고함을 질렀다.
"움직이지 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숨도 쉬지 말라고! 이 돼지만도 못한 새끼들아!"
함정 중에 위험한 것이 있었으면 토비아스는 열두 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멍청한 동료는 그만큼 위험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단서를 벽의 틈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달칵 소리와 함께 황금빛 열쇠가 떨어졌다.
“하, 하하!"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움켜쥔 토비아스는 문을 열었다. 혹 밀려드는 자유의 향기가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135분 28초.”
그리고 냉정한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연회복을 입은 신사는 외교부의 수장이자 왕실 특사인 레너드 헤레이스 후작이었다. 뜬금없는 인물의 등장에 토비아스는 눈을 크게 떴다.
"축하하네, 토비아스. 자네의 c조가 3등이야.”
“그 여자는? 엘마이어 공작 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토비아스는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레너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히 5등까지는 공작 부인이 주최하는 축하 만찬에 참석할 수 있네. 그전에 좀 씻고 오게나.”
레너드가 손을 튕기자 빠르게 다가온 시종들이 그를 부축했다. 토비아스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들의 시중을 받으며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레너드는 술 취한사람처럼 휘청거리는 린지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 여자 데려와! 당장 데려오라고!"
"9등은 축하 만찬에 참석할 자격이 없네. 자네들은 책을 읽기는 했는지 의문이군. 당장 여기서 나가게.”
레너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종들이 린지와 그의 동료들을 끌어냈다. 우연히 그와 눈이 마주친 토비아스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유감이군. 나만 축하 만찬에 참여하게 돼서.”
“너, 이······!”
린지가 시뻘게진 얼굴로 끌려 나갔다. 토비아스는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블린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네들은 따라오게. 만찬장으로 안내해 주지.”
토비 아스와 동료들은 레너드의 안내에 따라 마치를 타고 이동했다. 마차가 멈춘 곳이 왕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토비아스는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만찬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적중했다.
"C조의 등장입니다.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왕과 궁정인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며 그들을 환영했다. 토비아스는 자선과 동료들의 모습이 찍힌 마도구가 한쪽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행히 편집된 영상이었다. 영상 속 토비아스는 침착한 모습으로 동료들을 이끌며 함정을 돌파하고 있었다.
"토비아스 님, 제 독서 모임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뛰어난 리더쉽과 활약,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블린이 생긋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토비아스는 멍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아, 이 미친 여자 같으니.’
모두가 토비아스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저 박수 소리를 무시하고 이블린에게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은 토비아스는 이블린이 내민 손등에 키스했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