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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33화 (433/442)

433화 건강한 모자

선령은 마음이 답답했지만 절망스러워하는 월왕에게 아까처럼 모질게 굴지는 못했다.

“전하, 어서 가서 아기님을 보세요. 마마께서 목숨을 걸고 낳으신 아이입니다.”

그제야 월왕이 옆으로 비켜섰다.

창백한 얼굴로 숨결 없이 누워 있는 목운요의 모습에 이미 세상을 떠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선령을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 보니 목운요의 가슴이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목운요의 맥을 진찰한 선령의 미간이 구겨졌다.

“금란, 금교. 가서 새 옷과 침구를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미지근한 물도 가져와서 조금씩 입에 흘려 넣어. 나는 탕약을 지으러 가야겠다.”

잘 버텨 주었지만 목운요의 몸은 단단히 상해 있었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긴 시일이 걸릴 듯싶었다.

선령이 막사를 떠나자 월왕이 얼른 침상으로 다가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목운요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허연한은 걱정 어린 한숨을 내쉬며 월왕을 설득했다.

“이제 막 깨어나서 기력이 아직 쇠할 텐데 음식부터 먹거라.”

월왕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초췌했고,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져 있었다.

“요아 옆에 있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럼 그렇게 하렴. 난 사람을 시켜 음식을 가져오라 이르겠다. 그리고 아이가 모유를 먹어야 하는데 요아의 상태로는 직접 먹이기 힘들고, 군영에는 유모도 없으니 양젖을 구해 와야 해. 끓여서 먹이면 될 거 같구나.”

“알겠습니다.”

월왕의 시선이 그제야 허연한의 품에 안긴 아이에게 옮겨졌다.

“아이…….”

허연한이 아이를 월왕의 품으로 넘겨주었다.

“안아 보렴.”

월왕의 눈빛이 흔들렸다. 심장도 요동쳤다. 품 안의 작은 생명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녀리고, 연약했다.

어느새 월왕은 편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핏줄이 연결된다고 하는 것일까?

“아들아…….”

허연한은 우의에게 필요한 물건을 지시하고는 다시 막사 안으로 돌아왔다.

막사에선 월왕이 한 손은 목운요의 몸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은 채 침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더없이 평온한 세 식구의 모습이었다.

허연한은 혹여나 그들이 깰까 싶어 살금살금 막사를 나왔다.

* * *

목운요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주변은 따뜻했고 편안했다.

꿀맛 같은 잠을 실컷 누리고 있는데 갑자기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움을 청하는 듯 아주 가녀린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순간 잠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녀가 눈을 번쩍 떴다.

주변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리고 난 뒤에야 빛이 익숙해졌다. 그런데 누군가 제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요아, 깬 것이냐?”

월왕이 감격에 겨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허연한과 선령도 얼른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요아야, 어떠니?”

목운요는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 사야……. 영아…….”

“그래, 우리 전부 있다.”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고, 꿈에서 들은 것 같은 아이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목운요가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았다.

“우리 아이…….”

“아이는 무사해.”

허연한의 눈짓에 금란이 안고 있던 아이를 목운요의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방금 젖을 먹었다. 일찍 태어났지만 아주 건강해. 선령이 옆에서 보살펴 준 덕에 이제 아무 걱정 없단다.”

포대기에 싸인 아이는 온몸이 분홍빛을 띠는 것이 꼭 말랑말랑한 찹쌀 경단 같았다. 작은 손을 얼굴 옆으로 올리고는 계속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가슴 저리게 사랑스러웠다.

목운요가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가, 엄마 여기에 있어…….”

아이도 엄마의 숨결을 느꼈는지 눈을 번쩍 떴다. 새카만 눈동자는 맑은 하늘처럼 투명하기만 했다. 작은 입을 움직이던 아이가 꽃잎같이 작은 손으로 목운요의 손가락을 살짝 쥐었다.

목운요는 그만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러자 월왕이 아이를 허연한의 품에 안겼다.

“요아, 지금은 울면 안 된다. 눈이라도 아프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목운요는 월왕의 다정한 눈길을 보자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사야, 이제 괜찮으십니까?”

월왕이 목운요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팠다.

“난 이제 다 나았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았지만 솜으로 목을 막은 것처럼 이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안심이네요.”

목운요가 아이와 월왕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천지신명은 그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그 많은 역경을 이겨 내지 않았는가.

목운요는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월왕이 여전히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요야, 깼느냐?”

“사야, 가서 쉬지 않으시고요.”

몸은 아직 회복되기 전이었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우리 아이는요?”

“아이가 울어 장모님이 데려가셨다.”

목운요가 월왕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많이 마르셨어요. 눈 밑도 어둡습니다. 수염도 엉망으로 자랐고. 예전의 준수한 모습은 다 어디 갔어요?”

월왕이 제 손으로 그녀의 손을 포갰다. 하지만 동작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벌써 닷새나 지나 그녀의 손끝에 난 상처는 다 아물었지만 손이 닿을 때마다 그날 피로 물든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던 것이다.

“너만 무사하다면 이런 꼴은 아무렇지도 않다.”

목운요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싫다면요?”

“그래도 상관없다. 네가 날 밀어내도 내가 꼭 붙어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억지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이렇게 만든 것이니. 이생에도, 다음 생에도 너만 바라볼 거다. 맹세한다.”

목운요가 손가락으로 월왕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좋아요. 약조하셨습니다. 마음이 바뀌시면 안 되어요.”

월왕이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래. 영원히.”

그녀가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평생 곁에 있을 것이다. 설령 그녀의 마음이 떠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녀 뒤를 묵묵히 지킬 테니 말이다.

* * *

목운요는 이후 며칠 동안 몸조리에 들어갔다. 허연한은 그녀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고, 선령도 하루 세 끼 식사를 직접 준비해 대령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금세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미간을 좁힌 채 목운요의 맥을 확인한 선령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내 의술이 또 성장하기라도 한 걸까? 네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 하는 말이야.”

목운요가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나도 그게 참 희한해. 예전에도 상처가 남들보다 빨리 아물기는 했어. 상처도 잘 남는 법이 없었지.”

선령이 감탄하듯 말했다.

“네 진실한 마음에 천지신명께서도 감복하셨나 보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돌아가서 장공주 전하를 뵐 낯이 생겼어.”

그때, 막사 장막이 걷히면서 월왕이 큰 보폭으로 들어왔다.

“요아, 오늘은 좀 어떻느냐?”

선령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래 월왕과 목운요의 애정 행각이 어찌나 낯간지럽던지 옆에서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눈사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던 소익이 선령을 맞았다. 아주 못생긴 눈사람이었다.

“누님, 마음에 듭니까?”

선령은 벌겋게 얼어붙은 손을 해서는 실실 웃고 있는 소익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쫓아오지 말래도 기어이 따라붙더니, 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안에서 불이나 쬘 것이지, 바보처럼 눈으로 장난이나 치고 있어?”

소익은 이마를 얻어맞고도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선령을 바라봤다.

“누님, 월왕 전하와 월왕비 마마가 닭살이라고 툴툴대지만 실은 부러운 거죠? 누님이 다른 사람 시샘하는 거 싫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요. 다 들어줄 테니.”

“……쓸데없는 소리.”

선령이 눈을 부릅뜨고는 금침을 꺼내 소익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또 허튼소리를 하면 목구멍을 막아 버릴 줄 알아.”

하지만 소익에게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보다 월왕 전하께서 얼음 조각을 그렇게 잘하신대요. 그래서 지금 배우고 있어요. 아직은 눈사람밖에 못 만들지만. 어? 누님,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잠깐만요, 기다려요! 달리면 눈사람 머리가 부서진다고요!”

“멍청아, 손으로 잡으면 되잖아. 아니면 네 머리를 날려 버리든지.”

“그건 안 돼요. 그럼 유령이 돼서 밤에 누님을 찾아가야 하는데, 누님 놀라는 거 싫어요.”

“시끄러워.”

“누님, 누님. 잠깐만요!”

밖에서 나던 소란이 잦아들자 막사 안에서 목운요가 눈을 초승달처럼 떴다.

“선령과 소익도 정분이 단단히 났어요. 그렇죠?”

“그러게나 말이다.”

월왕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이가 깨서는 작은 주먹을 쥐고 울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얼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옷고름을 풀어 젖을 물리자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문득 월왕의 시선을 확인한 목운요가 얼굴을 붉히며 옷을 밑으로 내렸다.

“사야, 군영에는 안 가 보세요?”

월왕은 목운요의 팔이 아플까 염려돼 대신 아이를 받쳤다. 그의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항과 우의에게 일러뒀으니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혁련저가 우의에게 포로로 잡혀서 북강도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고.”

“허기는 어찌 됐어요?”

“일단 하옥해 뒀다.”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북강 놈들부터 해결한 뒤에 서릉으로 압송할 거야. 아마 극형에 처해지겠지.”

그는 허기를 사적으로 벌해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됐든 허기의 아버지는 장공주의 수양아들이었다. 세간 사람들은 허기가 죽은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단, 허기를 제멋대로 없앤 것을 두고 냉혹하고 손가락질부터 할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대력조의 율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었다. 친왕을 죽이려 한 죄는 사형을 당해 마땅하고, 연좌제에 따라 그 가족까지 벌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거리낄 것 없고, 떳떳한 분풀이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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