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434화 (434/442)

434화 끝이 보이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요. 그래야 외할머니의 입장도 난처해지지 않으시겠죠. 그리고 배후가 누구인지 꼭 밝혀내셔야 해요.”

“배후는 허기도 모르는 것 같더군. 하나 몰래 그녀와 접선한 이는 북강 놈들이 확실하다. 모든 증거가 북강을 향하고 있어.”

목운요는 담담하게 웃었다.

“역시 북강이 원흉이었군요. 그간의 못된 짓을 한꺼번에 갚아 주면 되겠어요.”

“그래. 안 그래도 근래 북강의 정세가 어지럽다고 하더군. 혁련저가 포로로 붙잡히고, 육냥까지 반란을 도모하고 있어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상태일 테지.”

목운요가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살집 없이 마른 아이의 얼굴을 보던 그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놈들은 더 당해야 해요. 이번에는 우리가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살아남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월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염려 말거라. 이 원한은 내 반드시 갚고 말 터이니.”

* * *

월왕이 보낸 선전 포고 서신을 받아 든 북강 왕이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담 아우, 어찌 된 건가? 월왕이 곧 죽을 거라 하지 않았나? 한데 보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모자라 전쟁을 선포했네!”

혁련담은 심히 난처한 얼굴이었다.

“……월왕비가 독충을 빼낸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독충을 제거하는 비법을 알고 있을 줄이야.

“저 아우도 붙잡혀 생사가 불확실하네. 설상가상 우리가 심어 놓은 세작들도 싹 정리됐으니 이제 믿을 건 정녕 대력조 황실뿐이란 말인가.”

혁련담의 미간이 깊게 팼다.

“목운요, 그 여인이 북강의 장삿길까지 좌지우지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녀 말 한마디에 모든 장삿길이 완전히 봉쇄되다니요. 식량과 소금만 있었어도 월서와 충분히 일전을 벌였을 텐데 말입니다.”

북강 왕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러게 말이야. 멀쩡하던 장삿길이 하루아침에 그리 끊길 줄이야…….”

“전하, 황실에서도 월왕을 공격할 준비에 착수했겠지요?”

“그러할 걸세. 내 이미 서신을 보내 놓았어. 황제도 월왕을 치는 데 도움을 주면 식량을 일부 내주기로 약조하였네.”

“그 말을 믿어도 될까요?”

“물론 완전히 믿지는 않네. 하나 지금은 식량이 없어서 백성들이 풀을 뜯어 먹는 지경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민심이 완전히 돌아설 텐데, 그럼 혁련역지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꼴이 아닌가. 지금은 모험이라도 해야 하네. 만일 낌새가 수상하면 바로 철수하면 되지 않겠나. 북강군은 전부 철기병이라 대력조 군대보다 기동력이 우수해.”

“옳은 말씀입니다.”

* * *

보름이 지나자 목운요의 건강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군영 안에서 산책하는 것쯤은 문제없었다.

근래 들어 병사들의 출병이 잦아져 말발굽 소리가 부쩍 자주 들렸다. 항상 그녀의 곁을 지키던 월왕도 매일같이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한편, 선령이 차가운 몸을 녹이기 위해 목운요의 처소로 들어왔다. 그녀는 목운요의 품에 있는 아이부터 번쩍 안아서는 능숙하게 좌우로 살펴보았다.

목운요는 그녀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선령,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인다? 군영 상황은 어때?”

선령이 눈빛을 번뜩였다.

“연일 낭보가 날아들고 있어. 북강 놈들이 연거푸 된통 당하고 있다니까? 매일 포로들이 붙잡혀 들어오는데 그놈들을 보고만 있어도 속이 후련해.”

“어쩐지 밖이 소란스럽더라니.”

“얼마 안 있으면 북강 왕이 황실에 무릎을 꿇을 거야. 그때를 기다렸다가 황실과 연합해서 놈들을 깡그리 없애 버리면 돼.”

그 시각, 북강 왕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월왕은 북강에 대대적인 공세를 퍼부었고, 황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처절한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북강의 대군은 연전연패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혁련담이 다급한 기색으로 물었다.

“전하, 대력조 황실에서는 답신이 왔습니까?”

이를 악다문 북강 왕이 분노에 차서 말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도 유분수지. 무기 오만 개와 군마 오만 필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있어!”

“오만씩이나요? 이런 도둑놈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네.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를 돕지 않을 거 아닌가! 월왕의 기세를 보면 쉽사리 끝낼 것 같지가 않아.”

그야말로 앞뒤로 길이 꽉 막힌 상황이었다. 군대를 철수시켜도 그 많은 병사를 먹일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오나 군마들은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기른 것입니다. 이리 보내기에 아쉽지 않습니까…….”

“일단 살고 봐야 하네. 지금 우린 벼랑 끝에 서 있다고.”

결국 북강 왕은 대력조 황실의 요구대로 무기와 군마 오만씩을 상납했다.

* * *

이월 말, 다시 큰 눈이 내렸다. 북강의 군량은 이제 한 달도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북강 왕은 연합을 맺은 황실의 지시에 따라, 월서 군대를 유인하기 위해 북강 군대를 미끼로 쓰기로 했다. 월서 군대를 북계산 골짜기까지 몰아온 뒤, 황실 대군과 연합 공격을 퍼부어 전멸시킬 작정이었다.

한편, 지도를 살피던 월왕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물었다.

“황실과는 연락이 닿았느냐?”

우의가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이미 모든 채비를 마쳤습니다.”

“좋다. 북강 놈들을 완전히 없앨 때가 왔구나. 우항을 보내서 북강이 변경으로 병력을 모을 때를 기다렸다가, 육냥과 합세해 북강성을 함락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월왕은 더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지도에 쓰인 ‘북강’ 두 글자를 노려봤다. 북강을 철저히 굴복시켜 상상도 못 한 처참함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 * *

삼월 초사흘, 북강은 철기군을 파견하여 월서 대군에 격렬히 저항했다. 황실 군대까지 가세하는 통에 초토화된 월서 대군은 일단 공격을 접고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북강 왕도 이제 대력조 황실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삼월 초열흘, 북강의 군량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북강은 월서 대군을 피해 도망치는 척 그들을 북계산 골짜기로 유인했다. 골짜기에는 매복한 대력조 황실 군대가 쫙 깔려 있었다.

월서 대군이 골짜기에 진입하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리며 숨어 있던 황실 대군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고는 일사불란하게 골짜기 한가운데로 활을 겨눴다.

말을 몰던 북강 왕의 옆에는 위국후의 아들인 황실 대군 지휘관 제민이 있었다.

“제 장군, 북강의 역할은 여기까집니다. 약조한 걸 잊지 마십시오. 월서 대군에게서 빼앗은 식량의 삼 할은 우리 북강의 몫입니다.”

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서 대군은 산골짜기에 포위됐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몹시 침착했다.

그 모습을 본 제민은 감탄을 연발했다. 월서 대군의 용맹무쌍함에 시샘이 날 정도였다.

“염려 마시오. 약조한 일을 어기는 법은 없소.”

한편, 옆에 있던 혁련담은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 그는 대력조 황실과 연합하는 걸 내내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대력조에서 자신들을 경계하던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하지만 북강 왕은 대력조 황실을 신뢰하며 그들의 명에 따라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다행히 이제까지는 황실 대군이 약속을 지켰다. 배반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변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때, 말고삐를 꽉 움켜쥔 월왕이 산골짜기 위에 있는 제민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제 장군, 폐하께서는 무탈하신가?”

제민이 말에서 내려 월왕을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폐하께서는 무탈하십니다. 다만, 전하에 대한 걱정으로 시름이 깊으십니다.”

“그럼 됐네. 더 시간 끌 것 없이 어서 전투를 끝내세. 한시라도 빨리 궁으로 돌아가 폐하와 술이라도 마셔야겠어.”

월왕이 장검을 높이 쳐들고는 골짜기 입구에서 아직 철수하지 못한 북강의 철기군을 향해 소리쳤다.

“공격하라!”

고함이 땅을 울렸다. 월왕의 명령을 들은 월서 대군이 북강 군대를 향해 맹렬히 내달렸다. 황실 대군은 일단 상황을 지켜본 채 대기했다.

덜컥 겁을 먹은 북강 왕이 말했다.

“제 장군, 어서 화살을 쏘라 명하시오.”

제민이 골짜기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때가 되었군. 황실 대군은 들으라! 북강 군대가 우리 국경을 침범해 대력조의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다. 모조리 죽여라!”

제명의 지엄한 명령에, 황실 대군은 즉각 화살의 방향을 바꾸더니 북강 철기군을 향해 쏘아 댔다.

“우릴 속였구나……!”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북강 왕은 도주하려 재빨리 말의 고삐를 당겼다. 하지만 그 순간,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그의 가슴에 명중했다.

북강 왕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뼈가 아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제민, 네놈이…… 이렇게 배신을…….”

“북강 왕, 순진하게 전장에서 사람을 믿었단 말이냐?”

제민이 뒤에 있는 병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북강 왕을 생포해라.”

그사이 혁련담은 빠르게 꽁무니를 뺐다.

* * *

군영 막사 안.

밖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려왔지만 목운요의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

반면 초조함에 가만히 있지 못하던 선령은 태평해 보이는 목운요를 보고는 옆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아이를 빼앗듯 데려왔다.

“걱정도 안 돼?”

“뭐가?”

목운요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선령을 바라보며 베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나 있었다.

선령은 살짝 목소리를 낮추었다.

“절대 이간질을 하려는 건 아니고, 계속 궁금한 게 있었어.”

“어디 말해 봐.”

“월왕과 폐하께서 북강의 뒤통수를 치기로 몰래 입을 맞추었잖아. 북계산 골짜기에서 연합 공격을 하기로.”

“그랬지.”

“혹여 폐하께서 다른 마음을 품으시고, 북강을 치는 김에 함께 손을 쓰시지는 않을까 염려가 돼.”

목운요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속내를 말할까? 아니면 거짓을 말할까?”

“거짓부터.”

“폐하와 사야의 우애가 그리 깊은데, 폐하께서 그런 몹쓸 짓은 하지 않으실 거야. 나와 사야는 폐하를 믿어 의심치 않아.”

선령이 살며시 힘을 줘 입을 다물었다.

“그럼 진짜 생각은?”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어. 몰래 퇴로를 만들어 놨지. 우리 측 시위들을 제민을 포함한 여러 장군 곁에 심어 놓았고. 혹여 사야께서 위험에 처하시면 황실 군대의 장군들을 바로 없앨 거야. 그럼 반대로 사야께서 황실 대군을 손에 넣고, 그 기세를 몰아 황위까지 차지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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