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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32화 (432/442)

432화 목운요의 조산

막사 안.

수개월 만에 재회한 월왕이었다. 목운요는 몹시 야윈 그 때문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려 왔다.

선령이 여러 종류의 금침을 탁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명심해. 구전금침으로 혈맥을 막으려면 우리 둘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해. 네가 버티지 못하면 월왕도 깨어나지 못할 거야.”

“알겠어.”

손을 청결하게 씻은 목운요가 품에서 환약 한 알을 꺼냈다.

그러자 선령이 얼른 그녀를 말렸다.

“뭐 하려고? 이 환약은 몸의 기력을 끌어내지만 그만큼 몸을 크게 손상시켜! 월왕의 목숨도 귀하지만 네 안전도 돌봐야지!”

“이 약은 태아한테는 지장 없어.”

“태아를 말한 게 아니란 걸 알잖아! 지금 상태로 이 약을 먹으면 수명이 최소 몇 년은 단축된다고!”

목운요가 가볍게 웃었다.

“난 사야보다 나이가 어리니 목숨이 단축되면 백년해로할 수 있어 더 좋겠네.”

“정말 못 말린다. 아이고, 속 터져.”

얼른 고개를 돌린 선령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목운요가 제 손을 붙잡은 선령의 손을 떼어 낸 뒤 환약을 바로 삼켰다.

“그럼 시작하자. 이리 온 게 헛걸음이 돼서는 안 돼.”

우항과 우의가 북받치는 감정을 참으며 월왕의 옷을 벗겨 냈다.

목운요는 숨을 한번 가다듬고 금침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차분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월왕의 혈에 찔러 넣었다.

막사 안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온 정신을 집중해 선령과 보조를 맞추며 금침을 하나씩 놓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던 그때,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목운요가 멈칫했다. 쏟아부었던 집중력도 흐트러져 버렸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져 침까지 엉뚱한 위치에 놓을 뻔했다.

“운요?”

“괜찮아.”

목운요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우의, 또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으면 용서치 말게.”

“알겠습니다.”

곁을 지키고 있던 우의가 즉각 막사를 뛰어나갔다. 잠시 뒤, 옅은 피 냄새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순간 목운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다리를 타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양수가 터진 것이다.

그녀는 고통으로 정신을 깨우려는 듯 혀를 깨물었다. 그러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금침을 꽂아 나갔다.

‘아가야, 지금은 안 돼.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렴.’

선령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독충이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오길 빌며 속도를 높였다.

일각쯤 지나자 마지막 금침을 놓을 차례가 되었다. 독충을 제거하는 약재를 꺼내 든 선령은 제 손목을 그어 피를 낸 뒤, 월왕의 가슴 상처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던 월왕이 거세게 경련을 일으켰다. 피가 닿은 상처에서 작은 수포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목운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지막 침을 놓자 수포가 격렬하게 꿈틀대더니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벌레가 밖으로 나오려고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목운요가 월왕의 상처와 연결된 금침을 재빨리 뽑았다. 그러자 독충이 상처에서 탈출해, 피가 난 선령의 손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옆에서 대기하던 소익은 잽싸게 손을 뻗어 독충을 잡아서는 빈 단지에 집어넣었다.

선령은 그제야 안도했다.

“됐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목운요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마마!”

사서와 금란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마마, 이를 어쩝니까?”

목운요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 시선이 멈춘 선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가……! 설마 아이가 나오려는 거야? 산파, 산파를 불러오세요!”

우항은 완전히 혼이 빠져 있었다.

“군대에는 산파가 없습니다…….”

허연한이 어느새 막사 안에 들어와 있었다.

“가서 가위와 뜨거운 물, 그리고 깨끗한 수건과 침구를 챙겨 오게. 그리고 깨끗한 막사를 하나 구해서 안을 따뜻하게 덥혀야 해. 그런 뒤 요아를 데려가. 어서!”

“알겠습니다.”

선령은 침착하려 애쓰며, 출산과 관련한 기록들을 머릿속으로 수차례 떠올렸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일단은 허연한을 따라나섰다.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 목운요의 아이를 받아야 했다.

그사이 소익은 월왕에게로 다가가 금침을 빼내기 시작했다.

* * *

허연한이 목운요의 손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요아야, 곧 아이가 나온다. 정신 차려. 아이를, 월왕을 생각해야지.”

침상에 누운 목운요에게선 움직임이 없었다.

“선령, 금침을 놓으면 제일 아픈 혈이 어딘가? 거기에 침을 놓게.”

“부인?”

“어서!”

“네.”

선령의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이내 목운요의 손가락 끝에 세게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목운요가 몸을 움찔하더니 번쩍 정신을 차렸다.

“요아야, 조금만 힘을 내려무나. 아이를 지켜야 하지 않겠니.”

허연한의 말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

정신이 든 목운요는 몸이 찢길 듯한 극심한 통증을 배 주변에서 느꼈다. 눈물도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도와주세요.”

“그래. 어미가 여기에 있어.”

허연한이 목운요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겨 내야 한다. 네가 버텨 내지 못하면 아이는 어미를 잃게 되는 거야.”

“……네.”

허연한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입을 악물고 수건을 목운요의 입에 물렸다.

“요아야, 어미를 모질다고 원망 마라.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해. 아무리 아파도 혀를 깨물면 안 된다. 알겠니? 선령, 자궁 문이 얼마나 열렸나 확인하게.”

선령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두 차례 살피고는 확신이 드는지 말했다.

“여섯 마디 정도 열렸습니다.”

“됐구나. 거의 되었어. 요아야, 이제 끝나 간다.”

목운요는 입에 물린 수건을 있는 힘껏 물었다. 눈앞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허연한의 말에 따라 힘을 내 보았다. 하지만 짜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힘을 내 보려 이불을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곱던 손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이불은 그녀가 흘린 피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때, 선령이 놀라 소리쳤다.

“아이, 아이가 보입니다!”

그에 목운요가 신음을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분출하는 순간,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허연한이 다급히 물었다.

“선령, 아이는 어떠한가?”

선령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목운요가 임신한 내내 마음 편할 날이 없어 그런지 아이가 약한 데다, 조산까지 하는 바람에 꼭 고양이처럼 조그마했다.

선령은 신속하게 탯줄을 자르고는 아이의 입과 코를 닦아 낸 뒤, 아이의 작은 발을 살짝 꼬집었다.

“어서 울거라. 울어야 한다. 어미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 낳았으니 착하게 말 들어야지?”

“으앙-”

미약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령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른 뒤 따뜻한 물과 깨끗한 수건으로 아이를 정성스레 닦고는 조심히 포대기로 싸 품에 안았다.

허연한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정말 잘되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그 시각, 옆에 있는 막사에서는 금침을 빼낸 소익이 월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독충이 빠져나오자 월왕의 상처에서는 더 이상 검은 피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침까지 모두 제거했으니 지금쯤 깨어나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까. 월왕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요아, 요아, 월왕비는 어디에 있나?”

줄곧 혼미한 상태였지만 이따금 정신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순간 분명 목운요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비 마마께서는 조산을 하시어 지금 옆 막사에 계십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월왕이 신발도 신지 않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막사를 뛰어나갔다.

월왕을 발견한 우항과 우의가 다급히 달려왔다. 둘의 눈에서 기쁨이 넘쳐흘렀다.

“전하!”

“왕비의 상태는 어떠한가?”

“조산을 하셨는데, 상태는 아직 모릅니다.”

월왕이 두 사람을 밀치고 막사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막사 내부의 상황을 본 월왕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철퍼덕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이를 허연한에게 건넨 선령이 목운요의 맥을 확인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세차게 밀쳤다.

“월왕 전하?”

침상 맡에 무릎을 꿇고 앉은 월왕은 실성한 사람처럼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선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어라 말을 하려는 그때, 허연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요아…….”

월왕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목운요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가 지푸라기라도 잡듯 그녀의 옷자락을 힘껏 쥐었다.

“요아, 내가 왔다. 제발 눈을 좀 떠 보거라.”

월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목운요의 손등에 똑똑 떨어졌다.

그걸 본 월왕은 서툰 손짓으로 그녀의 손을 닦아 주었다.

“요아, 청결하지 못한 걸 제일 싫어하지? 내 닦아 주리다…….”

목운요의 손은 얼음장이었다. 월왕이 살며시 손을 제 품으로 집어넣었다.

“요아, 요아…….”

말문이 막혀 버린 월왕의 모습에 선령은 마음이 아팠지만 입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딴판이었다.

“전하, 마마께 지은 빚은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향후 월왕이 목운요를 서운케 하면 제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월왕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선령은 다짐했다.

월왕은 그녀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지 그저 손을 뻗어 목운요의 얼굴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요아, 내가 함께할 테니 겁내지 말거라.”

주변을 둘러본 월왕이 침상 근처에 놓여 있던 가위를 들어 날을 제 가슴을 향해 쥐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선령은 황급히 그를 말렸다. 다행히 기력이 쇠한 월왕의 동작은 평소처럼 빠르지 않았다.

“어찌 이러십니까? 마마께서 전하를 구하시려고 그 고생을 하셨는데, 이렇게 가시려고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

월왕이 말라붙은 우물처럼 텅 빈 눈을 치켜떴다.

“이 손 놓거라. 요아 혼자서 무서울 거야.”

아무리 용을 써도 월왕이 가위를 쥔 손을 풀지 않자 선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마께서는 아직 살아계십니다. 그러니 그런 저주는 마시고, 옆으로 비켜 계십시오. 당장 맥을 살펴야 합니다.”

그대로 굳어 버린 월왕은 한참 뒤에야 선령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요아, 요아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한데 자꾸 방해하시면 그때는 정말 잘못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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