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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25화 (325/442)

325화 내 그릇이 너무 작다

덕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 봄비와 찻잎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나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봄비 같은 경우 춘분에 내린 빗물이되 유리병에 보관해야 합니다. 찻잎은 그나마 덜 까다로운데요. 이 년 된 꽃차 나무의 여린 잎이면 됩니다. 임신 중이신 월빈 마마께서 마시는 차다 보니 차향이 너무 진하면 안 되어, 따기 전에 깨끗한 이슬로 차나무를 씻은 다음 여린 잎을 따야…….”

이슬로 차나무를 씻는다?

이쯤 되니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준비해 온 물건들이 전혀 쓸모없을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작 화과차를 만드는 데에 이렇게나 까다로운 재료가 필요한지 몰랐네요.”

목운요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보통의 화과차라면 이 정도로 까다롭지 않습니다. 다만 임신 중인 월빈 마마께서 드실 것인데 대충 때워서는 안 되지요. 덕비 마마, 제 말이 틀렸습니까?”

덕비는 가슴이 턱 막혀 와 할 말을 잃었다. 마음 같았으면 대충 만들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혹시라도 소문이 잘못 나면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그럼 군주께서 조건을 적어 주시면 사람을 시켜 다시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요.”

“네, 그럼 최대한 자세히 적어 드리겠습니다.”

목운요는 자그마치 네 장이나 빼곡히 적은 후에야 붓을 멈췄다.

콩나물 대가리처럼 빼곡히 적힌 글씨를 보자, 덕비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오늘 장공주께 신세를 졌습니다. 신첩,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알겠네. 곡 마마, 배웅하게.”

“네.”

덕비가 나가자마자 장공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으니 아마 몇 해는 걸리지 않을까 싶구나.”

목운요도 따라서 웃었다.

“사실인걸요. 월빈이 폐하의 자식을 가졌으니 당연히 각별히 신경 써야지요.”

“허허, 역시 운요구나.”

“놀리지 마세요, 외할머니.”

목운요가 장공주에게 기대며 애교를 부리자, 장공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외할머니, 혹시 화과차를 드셔 보고 싶진 않으신가요?”

“원래 화과차를 즐기지 않는데, 네가 한 말을 듣고 나니 맛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구나.”

목운요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외할머니께서도 그런 마음이 드셨다면, 수많은 대갓집 부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화과차를 팔아 보면 어떨까요?”

장공주가 다시금 크게 웃기 시작했다.

“우리 요아, 아주 돈독이 올랐구나. 좋지. 너의 그 까다롭기로 소문난 재료만 있다면, 앞으로 한동안 서릉에 화과차 향이 넘칠 것 같구나.”

화과차를 팔기로 마음먹은 목운요는 곧장 편지에 화과차 만드는 방법을 적어 월왕한테로 보냈다.

* * *

낮잠을 자고 일어난 목운요는 월왕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대청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월왕의 시선은 손에 든 서신을 향해 있었다.

“사야, 어떻게 오셨어요?”

고개 들어 목운요를 바라보는 월왕의 눈빛에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

“어디 한번 들어 보죠.”

목운요가 그의 곁에 가서 앉으며 귀를 가까이 댔다.

그에 월왕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귓불에 걸려 있는 새하얀 진주 귀걸이로 손을 뻗어 만지작거렸다.

목운요가 깜짝 놀라 하며 힘껏 그를 노려봤다.

“사야,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요?”

월왕이 머쓱해하며 헛기침을 했다.

“네가 적은 화과차 만드는 법이 서릉에 널리 퍼졌단다.”

“이렇게나 빨리요?”

“이 귀비 덕분이다. 오늘 덕비가 돌아가자마자 이 귀비가 소식을 퍼뜨려 불과 몇 시진 만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목운요는 웃음을 보였다.

“그럼 이 귀비가 큰 도움을 준 거네요.”

“화과차 만드는 법이 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벌써 불선루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구나.”

“잘됐네요. 마침 요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화과차 덕분에 꽤 쏠쏠할 것 같아요.”

목운요가 눈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다음 계획을 생각했다.

“화과차는 부인, 아가씨들한테만 파는 것이 좋겠어요. 불선루의 손님 중 여인의 비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거든요. 이참에 다시 한번 불선루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거지요.”

“여인들한테만 파는 건…….”

목운요가 웃으며 월왕을 보았다.

“혹시 그들이 쉽게 소비하지 않을 것 같나요?”

“아무래도 여인들은 이런 쪽에 큰 관심을 두지 않지 않느냐.”

그 말을 들은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사야가 봤을 땐 여인들이 오직 의복과 장신구에만 신경 쓰는 것 같죠? 그럼 당신네 같은 남자들이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뭔데요?”

“대부분 부와 권세 때문이지.”

“그럼 부와 권세를 손에 얻은 다음은요?”

“그다음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가족을 번영시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럼 그 가족들의 살림은 누가 맡죠?”

“부인들이지…….”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들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반면, 실제로는 모든 곳에 여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지요.”

“들어 보니 그럴듯하구나.”

“불선루에 여인의 비중이 적은 문제도 쉽게 해결 가능해요. 화과차가 만들어지면 외할머니를 모시고 불선루에 가서 맛보기만 하면 되죠. 여인들은 불선루에 안 가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나섰다가 비난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거니, 외할머니께서 한번 다녀오고 나면 전혀 문제없을 거예요.”

월왕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네 말이 맞다. 고모님께서 운을 떼시면 설사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대놓고 드러내진 않겠지.”

“오늘 후궁의 소식을 듣고 떠오른 생각인데, 어쩌면 여인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자 손님이 많아지면 사야께서도 소식을 더욱 빨리 전해 들을 수도 있어요. 물론, 여자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정원을 새로 단장하고 차 전문가들도 예법을 새로 배워야 하겠지만요.”

“그럼 도면 쪽은 요아가 재능이 있으니 정원을 책임지고, 궁에서 일하는 마마들을 시켜 차 전문가들한테 규율을 가르치도록 하마.”

목운요가 비꼬면서 말했다.

“사야의 재능은 돈 쓰는 데에 있나 보죠?”

머쓱해진 월왕이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흠. 나에게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요아가 장사 수단이 좋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목운요가 낮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야를 책임져야 하는데 주머니가 넉넉지 않으면 되겠어요?”

월왕이 눈치 없이 다가가 목운요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더 많이 벌어서 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군마를 키울까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말이다.”

목운요는 순간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 냈다.

“군마를 키워서 뭐 하시려고요? 설마 병사까지 키워서 정변을 일으키려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만약을 대비하려는 것뿐이다.”

“그럼 좀 더 기다리세요. 북강과 운노 쪽 상로 확장이 거의 끝나 가, 머지않아 대량의 소금이 팔릴 거예요. 그때 가서 좋은 말을 얻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월왕이 애틋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요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월서에 같이 가자꾸나.”

“월서요?”

“그래. 지금 월서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로가 벌써 옥계성까지 통했다는구나. 나중에 도로가 다 뚫리면 월서도 새롭게 태어날 거다. 비록 날이 춥긴 하나 월서의 하늘은 언제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다. 말 타고 반 시진만 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양 떼가 보이지. 드넓은 초원 경치는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목운요는 그의 가슴에 기대 머릿속으로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좋아요. 기회가 되면 꼭 함께 월서에 가요.”

월왕이 목운요의 눈을 쳐다보며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았다.

“요아. 혹시…… 만약에…… 내가 황위에 관심이 없다면, 나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겠느냐?”

월왕의 말에 당황한 목운요가 잠깐 머뭇거렸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분명 황위를 차지하기 위한 준비였을 텐데, 갑자기 황위에 관심이 없다니……. 혹시 자신이 황제의 친자가 아님을 알아 버린 걸까?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대답 없는 목운요를 보며 월왕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요아, 내가 황제가 되길 바라느냐?”

정신이 든 목운요가 손을 들어 월왕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제가 바란다고 하면 사야께서 황위를 쟁탈하실 건가요?”

“그럼.”

월왕이 단호하게 끄덕였다.

“네 지지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거다. 네가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이뤄 줄 것이다.”

마음이 찡해진 목운요가 복잡한 감정이 어린 눈빛으로 월왕의 눈을 가렸다.

“사야, 왜 저한테 이토록 잘해 주시는 건가요?”

목운요의 손길을 따라 눈을 감은 월왕의 머릿속에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운명 때문인가 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부터 인연의 끈이 단단히 묶인 거지. 널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나는구나. 바구니를 지고 있던 작은 몸집의 너는 금방이라도 바람에 꺾일 것같이 왜소했지. 그런데 두 눈은 온갖 별빛이 들어 있는 것처럼 반짝였고, 담도 어찌나 큰지 내 비수까지 훔쳐 갔었지.”

“그건 사야께서 저를 위협해서 그런 거고요. 그때 몰래 약을 타서 찌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요.”

월왕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다행이었지.”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월왕이 눈을 깜빡이자 그의 속눈썹이 목운요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사야, 왜 황위에 관심이 없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지.”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월왕은 마음속으로도 목운요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 낼 수 있었다.

“강남에서 물에 잠긴 성들을 보고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느냐?”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요?”

월왕의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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