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24화 (324/442)

324화 까다로운 화과차

* * *

한편 소우의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옆에 있던 궁녀가 어깨를 주무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선 그야말로 복과 은혜가 넘치십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늘이 나에게 시련만 주다가 드디어 호의를 보이시는구나.”

황제와의 하룻밤으로 임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소우의가 탁자 위의 찻잔을 쳐다보자, 궁녀가 냉큼 온도를 확인하고 나서 소우의에게 건넸다.

“마마께서 지금 홑몸이 아니시니 화과차가 좋다 하여 바꿨습니다. 맛이 어떠신가요?”

소우의가 찻잔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궁녀가 다급히 찻잔을 건네받았다.

“마마, 왜 그러십니까?”

“단 향 때문에 헛구역질이 나는구나.”

“그럼 따뜻한 물 한 잔 가져다드릴까요?”

“속이 안 좋은데 물이 넘어가겠어?”

침대에 기댄 소우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목운요가 내린 화과차가 생각나는구나.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안색까지 좋아지게 했었지.”

주인의 속뜻을 알아차린 궁녀가 바로 대답했다.

“마마, 전해 듣기로 온한 군주께서 잠시 궁에 머무실 것이라 합니다. 소인이 직접 찾아가 군주가 직접 만든 화과차를 얻어 올까요?”

소우의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너뿐이구나.”

“소인,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 * *

눈여우가 머물 자리를 마련해 주는데, 금란이 취용거에서 사람이 찾아왔다고 알렸다.

“취용거?”

“네, 월빈 마마의 시녀라고 합니다.”

소우의가 가임초를 먹은 상태라던 독 낭자의 말이 떠오르자, 눈빛에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들여보내요.”

“네.”

곧바로 궁녀 한 명이 들어와 목운요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무슨 일로 왔느냐?”

목운요가 의자에 앉은 채 물었다. 예쁘게 퍼진 연청색 치맛자락 사이로 분홍색 꽃신이 살짝 보였다.

궁녀는 꽃신에 박힌 빛나는 옥구슬을 보다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군주께 아룁니다. 월빈 마마께서 임신 중이라 입덧이 심해 어떤 음식도 쉽게 넘기지 못하시는데, 군주께서 직접 만드신 화과차를 그리워하십니다. 월빈 마마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 화과차를 만들어 주십사 하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금란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우의의 임신이 소저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아무것도 못 먹는다면서 화과차는 괜찮고?

하지만 목운요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다만 화과차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월빈 마마께서 내무사에 당부해 직접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재료를 써 줄 테니 준비가 다 되면 바로 만들도록 하마.”

“네. 온한 군주께 감사드리옵니다.”

궁녀가 재료 목록을 받아 돌아갔다.

“소저, 분명 월빈 마마가 일부러 소저를 난처하게 한 겁니다.”

목운요와 소씨 가문 사이의 원한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소씨 가문이 몰락할 때 소우의를 살려 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진 못할망정 임신을 방패로 지시를 내리다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알아요.”

목운요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시면서도 화과차를 만들어 드리기로 하신 건가요?”

“두고 보면 알아요.”

* * *

목운요가 승낙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우의는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목운요가 써 준 걸 내무사에 보내 준비시켜라. 하루빨리 목운요가 만들어 준 차가 먹고 싶구나.”

“네.”

어쩔 수 없어 하는 목운요의 모습을 상상하자, 소우의는 기분이 여느 때보다도 좋아졌다.

들뜬 마음을 안고 어화원에 산책하러 나가려는데, 덕비 일행과 마주쳤다. 소우의는 곧장 표정을 고치며 인사를 올렸다.

“덕비 마마를 뵙습니다.”

한데 덕비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종이를 소우의의 얼굴에 던졌다.

“네가 내무사에 이걸 준비하라고 시켰느냐?”

소우의가 깜짝 놀라며 종이를 주워 찬찬히 보았다.

“음력 섣달의 눈과 이월의 꽃, 삼월의 봄비와 사월의 싹, 오월의 죽순과 유월의 풀, 칠월에서 구월까지의 단 과일, 시월의 가을 서리와 겨울의 꿀. 이 모든 것이 갖춰져야 화과차가 얻어지노라. 이, 이건 화과차에 필요한 재료들인데…….”

덕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무사에서 이걸 보고 어찌할 줄 몰라 이 귀비한테 찾아갔다. 이 귀비가 아주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녔더구나. 후궁에 임신하고 출산한 비빈이 어디 너 하나뿐일까? 왜 다른 사람들은 조용한데 너만 이리 유난스러운 게냐?”

이 귀비가 이 목록을 보고 비웃었을 것만 생각하면 덕비는 오장육부가 아파 왔다.

소우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덕비 마마, 제가 요즘 통 뭘 먹지 못해 화과차가 생각나서 그만……. 목운요가 일부러 절 골탕 먹일 줄은 몰랐어요!”

덕비는 당장이라도 따귀를 한 대 갈기고 싶었으나 임신한 몸인지라 참았다.

“목운요, 또 목운요군. 내가 그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다시금 일을 만들다니. 편전에 가둬 외출을 금지시켜야 조용히 있을 건가?”

“마마,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아, 배가…….”

소우의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배를 부둥켜 잡았다.

놀란 덕비는 사람을 시켜 태의를 불렀다.

태의는 곧바로 도착했다.

“덕비 마마, 월빈 마마께 아룁니다. 임신 석 달째부터 안정기에 들어서긴 하나, 그래도 너무 큰 자극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바로 태아 보호에 좋은 탕약을 지을 테니, 월빈 마마께선 제때 복용해 주십시오.”

소우의는 얼굴이 하얘진 채로 침대에 기대어 조심스레 배를 쓰다듬었다.

“감사합니다.”

덕비는 마음속의 화를 애써 누르며 냉랭하게 말했다.

“푹 쉬거라. 재료들은 내가 사람을 시켜 준비할 테니 걱정 말고, 건강히 출산하는 데에만 신경 쓰거라.”

“네.”

덕비는 밖으로 나가면서 태의를 정전으로 불러왔다.

바닥에 꿇어앉은 태의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마마,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자네도 태의원에 오랫동안 있었으니, 좋은 것만 얘기하려는 걸 다 알지요. 오늘은 솔직한 답을 듣고 싶은데, 소우의 배 속의 아이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요?”

“마마께 아룁니다. 월빈 마마 배 속의 태아가 안정적이지 않긴 하나, 약을 잘 드시면 순조롭게 출산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앞으로 더 이상 몸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부주의로 몸이 상한다면? 아이와 월빈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요?”

“그게…… 여인의 출산이 워낙 위험이 많은 터라, 아이가 허약하게 태어나고 월빈 마마도 건강이 크게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알겠으니 가 보세요.”

태의가 돌아가자 시녀가 차를 올리며 물었다.

“마마. 정말 월빈 마마를 도와 화과차 재료를 준비하실 겁니까?”

“이 귀비가 이번 일을 여기저기 소문낸 이유는 날 골탕 먹이기 위해서지. 이 귀비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화과차를 만들어 내고 말 테다!”

“하지만 장공주께서…….”

“일단 재료를 다 구한 다음, 선물을 넉넉히 챙겨 직접 온한 군주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네, 마마.”

한편, 화과차 사건을 만들어 낸 목운요는 정작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황제의 몸조리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처방전을 쓸 때마다 태의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약재도 전부 그들의 손을 거치면서 혼자 공을 가로채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강남에서부터 목운요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난 태의들은 목운요를 점점 더 추앙하게 되었다.

* * *

덕비는 십여 일이나 걸려서 겨우 화과차 재료들을 모두 마련한 다음, 직접 선물을 들고 장공주를 찾아갔다.

화과차 일을 전해 들은 장공주는 덕비가 찾아오자마자 단번에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

“곡 마마, 운요를 데려오게나.”

“네, 알겠습니다.”

목운요가 도착했을 때, 덕비는 대청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덕비 마마를 뵙습니다.”

장공주가 목운요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앉거라. 요 며칠 황상의 몸조리 때문에 매일 약재들과 씨름하느라 힘들지?”

“괜찮습니다.”

“그래, 쉬엄쉬엄하거라. 덕비, 운요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 하지 않았나?”

장공주의 물음에 덕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장공주가 ‘부탁’이라고 말을 꺼낸 이상, 목운요한테 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소우의 때문에 목운요한테 부탁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덕비는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한 군주, 다름이 아니라 군주께서 만든 화과차가 임신한 여인에게 그렇게 좋다 하여 찾아왔습니다. 번거롭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월빈이 임신 중이라 통 먹지 못하고 있어요. 재료는 준비되어 있으니 군주께서 직접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재료만 준비되면 만드는 건 아주 쉽습니다.”

목운요의 흔쾌한 대답에 덕비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여봐라. 준비한 물건들을 군주께 보여 드리거라.”

곧 쟁반을 든 궁녀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목운요가 첫 번째 쟁반에 놓인 병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덕비 마마. 여기에 담긴 게 동지섣달의 설수이긴 하나, 바닥에 가까운 눈은 안 됩니다. 더구나 소설 혹은 대설 절기 때 내린 눈이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중상층에 깔린 눈이어야 합니다. 이 설수 같은 경우 흙냄새가 섞여 있어 쓸 수가 없습니다.”

쟁반을 든 궁녀들은 물론, 장공주마저도 목운요의 말에 어리둥절해했다. 고작 설수일 뿐인데 이렇게 까다로울 줄이야?

덕비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그럼 이 매화는 쓸 만한지요?”

목운요가 매화 두 송이를 집어 손바닥에 놓고 살폈다.

“그나마 이 두 송이가 쓸 만하네요.”

“두 송이만?”

자세히 살피던 덕비는 목운요가 일부러 꼬투리를 잡는 것 같아 되물었다.

“다른 매화들과 딱히 다른 점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에 목운요는 금란에게 온수를 떠 오게 한 다음, 골라낸 매화꽃을 물 위에 띄웠다. 곧 매화 잎이 서서히 퍼졌다.

“매화는 삼 년 된 매화나무 꽃이어야 하며, 품종도 설매 중의 설리홍이어야 합니다. 따는 시기도 중요한데요. 첫날에 핀 꽃이어야 하고, 정오에 꺾되 모양이 온전하고 꽃잎의 빛깔도 고와야 합니다. 또한 매화를 꺾을 땐 손이 아닌 금가위로 한 송이씩 잘라 내야 하고, 사람의 냄새가 묻지 않도록 옥 젓가락으로 집어 백옥병에 넣어 보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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