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진왕이 받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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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틀간은 무사 평온했다. 관리들은 황제의 기분을 좋게 할 방법을 생각하며 서로 잘 보이기 위해 경쟁했다.
진왕은 아우에게 누명을 씌운 사건이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 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사냥터를 떠나기 전날, 갑자기 황제가 이곳에 행궁을 지어 나중에 사냥하러 올 때 머무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궁 건축을 감독하는 업무는 진왕에게 떨어졌다.
황명을 들은 진왕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야 물론 부황의 일을 기꺼이 돕고 싶지요. 다만 지금은 이부와 예부의 일을 관장하고 있는지라,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저보다는 넷째를 시키심이…….”
“군월은 곧 월서에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너는 줄곧 군월보다 걱정을 덜 끼쳐서, 짐이 어디로 보내든 일을 잘 처리하곤 했지. 그러니 네가 행궁을 건축하는 일을 맡도록 해라. 이부와 예부 일은 군월에게 연습시켜야겠다.”
“……네.”
이 간단한 한마디에 진왕은 엄청난 정신력을 쏟아야 했다. 막사를 나가면서는 다리가 휘청일 정도였다.
* * *
목운요는 그 소식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주도면밀한 진왕이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을 줄이야.’
회귀 전의 진왕은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다른 황자에게 제압당할 수 있기에, 책사들을 곁에 모아 두고 아주 신중히 움직였다.
한데 지금의 진왕은 행동에 빈틈이 보였다. 그러니 순식간에 큰 낭패를 봤으리라.
내일로 다가온 떠날 날을 앞두고, 그녀는 장공주의 막사로 가서 차를 우렸다.
며칠 동안 이곳에 자주 방문하면서 장공주의 성격을 많이 알게 되었다. 정말 세상에 나기 드문 여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고,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한편 장공주는 향기로운 찻잔을 들고 목운요의 온순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리 까다롭게 굴어도 이 아이는 전혀 불온한 기색이 없구나.’
목운요는 장공주를 편안하게 잘 모셨다. 목운요를 보지 못할 땐 뭔가 부족한 것 같기까지 했다. 곡 마마조차 자신이 공주 전하의 총애를 잃었다고 농을 건넬 정도였다.
“군월의 다친 곳은 어떠하냐?”
월왕을 치료해 준 사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았기에, 목운요는 대범하게 웃어 보였다.
“요 며칠간 몸조리를 잘하셔서 상처에 딱지가 앉았습니다. 앞으로 며칠만 더 지나면 완전히 나으실 겁니다. 상처 부분이 가려워서 밤에 무척 괴롭다고는 하시지만요.”
장공주가 월왕에게 무척 관심이 컸기에, 목운요는 매번 그녀가 월왕에 대해 물을 때마다 최대한 자세히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 아이는 다 좋은데 자신을 너무 소홀히 대하는 게 문제야. 월서에서도 부상이 잦았지. 정말이지 황자면서도 장군처럼 생활하는 재주가 있어.”
장공주와 월왕 사이의 유대감을 깊이 이해하게 된 목운요는 말없이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내일 서릉으로 돌아가니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좀 말해 보거라. 요 며칠 여기 와서 차를 대접하고 말동무도 해 주었으니 진심으로 상을 내리고 싶구나.”
“남들은 구하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공주 전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감히 어떤 상을 바라겠습니까?”
“그래도 줄 건 줘야지. 아, 그러고 보니 월왕이 보내 준 짐승들을 손질해 모피를 얻었으니 네게 좀 나눠 주마. 돌아가서 그걸로 옷을 지어 입어라. 이제 곧 겨울이 올 테니 금방 추워지겠지. 네 가녀린 몸으론 추위를 버티기 힘들 거다. 서릉의 겨울은 무척 춥거든.”
“공주 전하의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후엔 여기 오지 않아도 된다. 짐이나 잘 챙기고 월왕과 틈틈이 놀아 두어라. 서릉에 돌아가면 말을 타고 싶어도 이곳에서만큼 편히 탈 수 없을 테니까.”
장공주가 미소를 머금은 눈으로 말을 건네자, 목운요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목운요가 잰걸음으로 막사를 나갔다.
그에 장공주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곡 마마에게 말했다.
“어느 집이나 여자애들은 참 수줍음이 많구나.”
“청춘이 참 좋을 때지요.”
장공주가 천천히 웃음기를 거두었다.
“요 며칠 계속 운요를 불렀으니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유언비어가 조금 돌고 있긴 하지만, 괘념치 마십시오.”
“떠들고 싶으면 맘껏 떠들라지. 귀에 못이 박힐 때까지 소문을 듣도록 내버려 두어라.”
“맞는 말씀이십니다.”
* * *
목운요가 막사에 도착하니, 금란이 치마가 젖은 채로 뿔이 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금란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소저, 오셨습니까? 소인이 물을 길어 오다가 조심성 없이 좀 흘리고 말았습니다.”
“어찌 내 앞에서 거짓말하는 법을 다 배웠죠?”
“소인이 어찌 감히……. 그저 소저의 화를 돋울까 봐 그랬습니다.”
“말해 봐요.”
사실 요 며칠 야영지에선 은근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목운요가 연일 장공주에게 가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샘했겠는가?
금란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나온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소저께서 월왕 전하와 급격히 친밀해지시더니 허황된 망상에 빠지셨다든가, 주제넘은 욕심을 내신다고……. 소저, 이런 풍문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 시샘하는 겁니다.”
목운요가 가볍게 웃었다.
“당연히 괘념치 않죠. 그리고 또 뭐라 하던가요?”
“그리고 소저께서 장공주 전하께 아첨하며 권세에 빌붙어 월왕 전하와 인연을 맺으려 한다는 말도…….”
금란이 목운요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목운요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자들이 실제로 한 말은 금란이 전한 말보다 더 고약하죠? 치마가 젖은 것도 해코지를 당해서인가요?”
“네……. 몇몇 시녀들이 물을 뿌리는 바람에 소인이 맞고 말았습니다.”
“물을 뿌린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 둬요. 나중에 내가 그대로 갚아 줄 테니.”
“아닙니다. 그 시녀들도 감히 대놓고 그러진 못했습니다. 소저께서 공주 전하의 손녀가 되실 수도 있으니 나중에 보복당할까 무서워 변변치 않은 꾀나 부린 거지요.”
“그래도 기억해 두고 있어요.”
어떤 자들은 참아 줄수록 더 기고만장해지는 법. 곧장 되받아치지 않으면 사람을 만만하게 여기니, 그대로 복수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았다.
금란이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사이, 사서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소저, 소청오 공자님을 주시하라고 하신 일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목운요의 눈이 밝아졌다.
“그래? 어떻게 되었지?”
“요 며칠 육공주 전하께서 줄곧 소 공자님 곁에 찰싹 붙어 계셨습니다. 그런데 소 공자님이 장완 소저와 정혼한 사이라는 것을 아시고서는, 장 소저를 찾아가 일부러 트집을 잡고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리셨습니다. 장 소저는 벌을 받고 병이 나 며칠째 막사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서릉으로 떠나야 하니, 육공주께서 청오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려 해도 쉽지 않긴 하겠지.”
목운요는 오늘 저녁에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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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가을 사냥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
며칠 내내 고기를 먹어 입맛이 없어진 목운요는 음식을 몇 입 먹다 말았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을 살폈는데, 소씨 가문의 자리를 훑어보던 중 시선이 한 곳에 떨어졌다.
‘소청오가 없네. 소아한도 없고.’
머지않아 유왕의 첩으로 들어갈 소아한을 생각하던 목운요에게 번뜩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설마 지금 소아한에게 유왕과 관련된 일이 생긴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장에 황제와 장공주, 그리고 황자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소청오와 소아한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육공주도 자리에 없었다.
곧장 뒤를 보니 장완의 자리도 비어 있었다. 대학사의 후처인 조 부인은 못내 초조한 얼굴로 자꾸만 뒤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는데 돌연 황제가 입을 열었다.
“어찌 육공주가 보이지 않으냐?”
궁녀가 황급히 다가와 고했다.
“황상, 회양 육공주 전하께서는 오후에 소 대인과 사냥하러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뭐라?”
황제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육공주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누구 하나 짐에게 고하지 않았단 말이냐! 간도 크구나!”
궁녀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송구합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공주 전하께서 절대 황상께 고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공주 전하의 행적을 누설하면 돌아와서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엄하다!”
황제가 탄식했다.
“여봐라, 어서 육공주를 찾아오너라. 날이 늦어 짐승이 출몰할 수도 있으니 위험하다.”
“네.”
시위들이 서둘러 공주를 찾으러 나섰다.
황제의 기분이 상하자 연회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들이 속히 돌아왔다.
“황상, 육공주 전하께서 짐승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실려 가셨습니다.”
“뭣이라?”
황제가 벌떡 일어났다.
“어서 태의를 부르거라. 육공주는 지금 어디 있느냐?”
“소 대인이 공주 전하를 안고 막사로 향했습니다.”
순간 목운요의 눈이 흔들렸다. 육공주가 소청오의 품에 안겨 막사로 돌아갔다는 말을 일개 시위가 내뱉다니, 제대로 간이 부은 게 틀림없었다.
당연히 소문원과 대부인도 이 말뜻을 알아듣고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그래도 소문원은 차분해 보였지만 대부인은 눈에서 기쁜 빛을 숨기지 못했다.
육공주는 황상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공주의 내조를 받을 수만 있다면 소청오는 앞길이 아주 순탄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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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녁 연회는 흐지부지되어 목운요는 막사로 돌아갔다. 한데 머지않아 곡 마마가 그녀를 찾아왔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곡 마마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장공주 전하의 분부라도 있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