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생각보다 많은 부상자
“소씨 가문의 서녀 소아한이 육공주 전하를 구하려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의녀들은 육공주 전하와 장완 소저의 치료로 바쁜 터라, 목 소저가 소아한 소저의 치료를 도우면 좋겠다고 장공주 전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아한이 육공주를 지키려다 다쳤다고? 거기에 장완도 다쳤다니, 사소한 일이 아니겠군.’
목운요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다쳤으니 응당 찾아뵈어야지요. 여기까지 오느라 곡 마마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소식을 알려 주신 장공주 전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곡 마마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곡 마마가 떠난 후, 목운요는 사람을 대동하고 곧장 소아한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안에서는 소아정과 소아령이 서로의 손을 꽉 잡고 한쪽에서 떨고만 있었다. 대부인이 그런 두 자매에게 쓴소리를 했다.
“너희 둘, 눈물이나 짤 거면 성가시게 굴지 말고 빨리 밖으로 나가거라.”
소아한이 육공주를 구하려다 다친 것이니 기뻐해야 맞았다. 괜히 눈물 콧물 흘리다가는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소아한과 소아령은 달달 떨며 막사 문으로 향하다가, 목운요와 만났다.
“운요 동생?”
대부인이 고개를 돌려 목운요와 시선을 마주했다. 두 눈이 증오로 번뜩였다.
“네가 어쩐 일이냐?”
목운요는 막사 안으로 들어와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곡 마마의 말을 듣고 왔습니다. 아한 언니가 다쳤는데, 의녀들은 육공주 전하와 장 소저를 돌봐야 하니 제가 대신 아한 언니의 치료를 도우라고 하시더군요.”
‘곡 마마가?’
대부인의 눈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목운요가 두 번이나 우의의 팔을 부러뜨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장공주의 총애를 받는 것은 제 딸 우의였을 터였다. 목운요가 우의의 기회를 빼앗아 간 셈이었다!
“네가 고생해서야 되겠니?”
침상 위에 기절해 있는 소아한의 옷은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정신을 잃은 채로도 인상을 찌푸린 것을 보니 꽤 괴로운 모양이었다.
“큰외숙모, 아한 언니의 부상이 심각합니다. 치료를 막으셔서 시간이 지체되면 언니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 치료를 막았다는 거지? 넌 대체 병문안을 온 것이냐, 아니면 나를 헐뜯으러 온 것이냐?”
목운요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제가 꼴 보기 싫으시겠지만, 그래도 상황을 봐 가며 미워하셔야죠. 지금은 언니의 상처 치료가 급선무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면, 외숙모께서 직접 언니의 상처를 치료하실 건가요?”
대부인의 얼굴이 경직됐다.
“내가 하마. 네게 신세 질 생각은 없다.”
목운요는 몸을 돌려 옆에 있던 태의에게 말했다.
“대인, 언니를 잘 살펴 주세요. 다친 곳이 연약한 어깨이고 짐승이 할퀸 자국까지 있으니,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의가 대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인, 상처 치료를 도울 생각이시라면 어서 물로 소저의 몸을 닦으십시오. 목 소저의 말대로 짐승이 할퀸 것은 꽤 심한 부상입니다. 생명이 위독할 수 있습니다.”
태의가 한쪽으로 물러나자, 대부인은 앞으로 나와 소아한의 옷가지를 벗겼다. 그러나 한 번도 누구를 시중들거나 돌본 경험이 없었기에 허둥지둥했다.
태의는 차마 기다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시녀들을 불러 도우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소저의 상처가 위험하여 더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대부인의 얼굴이 점점 경직되었다.
사실 이번에 서녀 세 자매를 데리고 온 것이 굉장히 언짢아서, 자매들에게 일부러 시녀를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따라온 이는 자신의 시녀 두 명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소청오를 돌보라고 보낸 터였다. 그러니 누가 도울 수 있겠는가?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목운요가 앞으로 다가왔다.
“언니를 더는 저렇게 방치할 수 없습니다. 사서, 큰외숙모를 한쪽으로 모시렴. 금란은 칼을 가져오고요.”
사서가 곧장 대부인의 팔을 부축했다. 대부인이 고집을 피웠지만 사서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한쪽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혔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목운요는 칼을 받아 소아한의 옷을 찢고, 깨끗한 물로 재빨리 상처를 닦아 냈다. 깨끗한 물로 닦으니 어깨에 깊은 상처가 세 군데나 있었다.
목운요가 태의에게 물었다.
“대인, 어떤 짐승이 할퀸 것 같습니까?”
“상처의 모양을 보니 늑대의 발톱이군요.”
목운요는 상처 부위에 꼼꼼히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소아한에게 이불까지 덮어 준 뒤에야, 태의에게 자리를 비켜 줬다.
태의는 소아한의 맥을 짚은 후, 한결 가벼운 얼굴을 했다.
“저는 처방전을 쓰러 가겠습니다. 약을 달인 후엔 바로 복용시켜야 합니다. 늑대의 발톱이 깨끗하지 않은 데다 소저가 크게 놀라 고열이 물러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이만 처방전을 쓰러 가 보겠습니다.”
태의가 떠나자, 대부인은 사서를 밀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분노했다.
“목운요, 무슨 저의로 이곳에 온 것이냐!”
목운요의 얼굴은 차가웠다.
“전 그저 사람을 살리려고 온 것입니다. 큰외숙모도 보셨잖습니까?”
“사람을 살려? 너처럼 악랄한 것이 아한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어떻게 알지? 허튼 시늉 하지 말고 어서 나가거라.”
목운요를 보기만 해도 대부인의 가슴에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불쾌감이 그녀를 몹시 괴롭게 했다.
목운요는 서늘한 눈빛으로 대부인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저를 내보내려 하십니까? 혹시 아한 언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시려고요?”
어차피 외부인이 없으니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었다.
대부인의 동공이 확 줄어들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아한 언니는 육공주 전하를 구하려다 다친 것 아닙니까?”
소아한은 온화하고 정숙했지만, 자신만의 줏대가 있는 사람이었다. 소아정, 소아령과는 다르게 성질을 죽이지도 않았다. 소아한이 소청오와 육공주의 일에 끼어든 데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을 터였다.
“그게 뭐?”
대부인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목운요를 노려봤다.
그에 목운요가 냉소했다.
“공주를 구하려다 다치는 것과, 공주를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은 천지 차이죠.”
소아한 하나의 목숨만 희생한다면, 소씨 가문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수 있었다. 목운요는 대부인이 소아한의 목숨을 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 무슨 헛소리야? 내가 공을 세우려고 아한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별 뜻 없이 한 말이니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목운요가 눈을 치켜떴다.
“언니는 제가 남아서 돌보겠습니다. 큰외숙모는 이만 돌아가서 쉬십시오.”
소아한은 훗날 유왕에게 시집갈 여인이었다. 게다가 사람 됨됨이 또한 괜찮았다. 대부인이 소아한을 해치게 둘 순 없었다.
“네가 나쁜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잖느냐?”
“사서, 큰외숙모를 모셔다드리렴.”
대부인이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자, 목운요는 사서에게 대부인을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부인은 두 눈을 번뜩이며 분노했다.
“네가 장공주 전하의 눈에 들었으니 네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신분이 무엇인지 잊지 마라!”
“큰외숙모.”
목소리가 다소 낮아진 목운요에겐 위엄마저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말조심을 해야 하죠.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 가문으로 돌아가면 우의 언니도 돌보셔야 하잖습니까?”
대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큰소리를 칠 순 없었다. 막사 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큰소리를 내면 자신의 체면만 깎일 것이 뻔했다.
“목운요, 네가 요즘 잘나간다고 으스대며 멋대로 날뛰는데, 호시절도 영원하진 않다는 걸 명심해라. 네가 하락세를 타는 날이 오면 인간 되는 법을 제대로 알려 주마!”
목운요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것참 감사할 일이군요. 사서, 어서 큰외숙모를 모셔다드려라.”
“필요 없어!”
대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막사를 떠났다.
목운요는 입가에 비소를 띠었다. 대부인은 자신과 대립할 생각만 하고, 제 처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문에 돌아가면 그제야 소씨 가문이 세력을 잃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한참 후, 소아정과 소아령이 느린 걸음으로 막사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운요 동생, 밖이 너무 추워서 그만…….”
목운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빙긋 웃었다.
“제가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했군요. 두 분은 오늘 밤 제 막사에서 쉬세요. 아한 언니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밤새 지켜봐야 하니 제가 이곳에 있을게요.”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자매 사이에 내 일, 네 일이 어디 있어요? 금란을 불러 막사까지 모시라고 할게요.”
“알겠어요.”
소아정과 소아령은 겁이 많았다. 피범벅이 된 소아한을 보고 너무 놀라 넋이 나갔으니, 같은 막사에 있으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할 터였다.
육공주의 막사는 아직도 태의들이 드나들며 분주한 모양새였다. 그래도 자시가 되자 서서히 안정을 찾아 갔다.
목운요는 소아한의 이마를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열은 내려간 것 같네요. 다시 열이 오르지 않을지 계속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어요.”
“소저께서 침을 놓으신 덕이 컸습니다. 태의가 처방한 약에만 의존했다면 이렇게 빨리 회복하시진 못했을 거예요.”
금란과 대화를 나누는데, 사서가 막사에 들어왔다.
“육공주 전하께선 무탈하시답니다. 하지만 장 소저는…… 얼굴에 상처를 입고 다리를 물려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냥터 근처는 모두 청소한 것 아니었나? 왜 갑자기 늑대가 나타났을까?”
“옆 산에 있던 늑대라 시위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육공주 전하께서 여우 한 마리가 마음에 들어 잡으려고 하셨는데, 그 여우가 얼마나 영리하던지 사람들을 조금씩 깊은 숲으로 유인했다고 합니다. 장 소저께서는 두 분의 사냥을 따라가려다 소아한 소저를 만나 함께 가기로 하셨다고 하고요.”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 허점투성이구나. 사실이 아닐 거다. 내일 다시 상황을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