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소씨 가문의 등장
목운요는 얼이 빠졌다. 그녀는 일찍이 월왕과 연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그의 호의를 계속 받는다면 더욱 깊이 엮이게 될 것이다.
“제가 서릉에 가는 게 걱정되어서 조력자들을 제공해주시는 것 다 압니다. 받아들일 수 없음을 용서하세요.”
그에 진 총관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부디 서둘러 거절하진 말아 주십시오. 길은 많을수록 좋은 법입니다. 만약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를 빈틈없이 보호하려면 비장의 무기가 많을수록 좋을 겁니다.”
목운요는 종이를 세게 말아 쥐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졌다. 진 총관의 말이 아예 틀리진 않았다.
‘사람이란 분명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빈틈을 보이면 도박에서 지는 거야.’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목운요는 진 총관을 문 앞까지 배웅한 후 돌아섰다.
방으로 다시 돌아간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되면 월왕과 교류가 잦아져 오히려 관계가 깊어질 텐데. 그러면 연을 끊기는 더 힘들어질 거야.’
그사이, 소청이 금란 등과 함께 돌아왔다.
최근 그녀들은 예법을 배우고 있었다. 보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들 벌써 그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요아야, 들어오는 길에 진 총관님을 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니?”
목운요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단 아버지의 사인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다.
“불선루의 다음 계획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오셨어요. 별일은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구나.”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소청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목운요도 이를 눈치채고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정작 자신도 초조함을 피할 순 없었다.
* * *
칠월 중순이 다가왔다.
목운요는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물을 재차 마셔도 허둥대는 가슴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금란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급히 부축했다.
“소저,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에요.”
왠지 모르게 오늘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는 소청도 마찬가지인 듯, 두 사람은 정적 속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 육냥이 문 앞으로 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부인과 소저께 고합니다. 사람이 찾아와 두 분을 뵙길 청합니다. 소씨 가문에서 왔다고 합니다.”
‘드디어 왔구나!’
육냥의 말을 듣자 목운요는 심장이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초조함과 긴장감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신 차가운 살기와 한(恨)이 밀려들어 왔다.
이날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던가.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한 발짝씩 조심스레 걸어왔다. 한 치의 실수도 감히 용납할 수 없었다.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 날만 기다렸다!
목운요는 너무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은 동작으로 일어나서 치맛자락을 정돈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니 딱 알맞은 곡선이 만들어졌다.
“화청(花厅)으로 모시고 와. 나와 어머니는 조금 있다 갈게.”
“네.”
“요아야.”
소청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리는 걸 보니 몹시 긴장한 듯했다.
목운요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굳은 의지로 가득했다.
“어머니, 이제 소씨 가문으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그 눈을 보자 소청은 긴장감이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
“그래.”
목운요가 활짝 웃으니 두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마치 별빛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소씨 가문의 친딸이니, 집안사람들은 모두 어머니께 공손히 예를 올려야 해요. 만약 누군가가 무례하게 대하면 직접 불러내어 처벌하셔도 되어요.”
목운요의 차분한 말투에 소청은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는 오히려 투지가 넘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네 말대로 하마.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맞서야지.”
* * *
십여 명의 시녀들이 서 있는 가운데, 화청의 손님 자리에는 둥근 꽃무늬가 수놓아진 남색 옷을 입은 여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여인은 곧은 자세로 앉아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는, 화청 안의 가구 장식을 슥 훑었다.
그때, 문 앞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뒤에 선 시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목운요가 소청과 함께 화청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 자리에 앉은 온 마마(温嬷嬷)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순간 마음에 냉기가 일렁였다.
온 마마는 노부인이 총애하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소씨 가문에서 보아 왔지만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보다 회귀 전에는 이등(二等) 마마와 시녀들이 왔는데, 이번에는 온 마마가 오다니 조금 예상 밖이었다.
소청이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목운요가 그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 주인 자리에 앉으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오른쪽에 앉았다.
온 마마는 전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호흡이 몇 차례 오간 후, 드디어 온 마마가 일어나 소청과 목운요에게 예를 올렸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겉으로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온통 격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목운요의 입가에 걸린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고개를 돌려 소청에게 눈짓하니,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는 그만 거두시지요. 어떤 연유로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온 마마의 얼굴에는 선한 미소가 가득했다.
“소인은 온 마마라고 합니다. 오늘 부인과 소저를 모시러 왔습니다. 저희 마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소 부인을 한시도 잊지 않고 남몰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훔치셨는지 모릅니다.”
소청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말하자면 너무 깁니다. 여기 마님의 친필 서신을 드릴 테니 살펴보시지요.”
온 마마는 미소 지은 채 소청을 살펴보았다. 연보라색 연잎 무늬 치마가 단아한 자태를 뽐냈고, 두 눈동자에는 거의 동요가 없었다.
그 옆에 앉은 목운요의 용모는 더욱 출중했다. 여린 연꽃의 봉오리가 막 피어난 듯 온몸에서 아름답고도 화려한 기품이 풍겼다. 얼굴은 광채를 발하는 듯했다. 한 번만 보더라도 가히 마음에 깊이 새겨질 만한 외모였다.
심지어 두 사람 곁에 선 시녀들도 기품이 예사롭지 않아, 소씨 가문의 일등(一等) 시녀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들을 살펴볼수록 온 마마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청과 목운요의 명성은 들었지만, 모두 운이 좋았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 보니 서릉의 부인들이나 규수들 못지않았다.
온 마마가 이리저리 생각할 동안, 소청이 서신을 다 읽고 목운요에게 건넸다.
서신의 내용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당시 소청을 잃어버린 경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이 몹시 담담하자 온 마마는 저도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두 모녀가 소씨 가문과의 관계를 알고 나면 매우 감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을 보니 소씨 가문과의 관계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목운요가 서신을 다 읽자 소청이 입을 열었다.
“온 마마, 저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원체 시골 사람인지라 격식과 규칙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소청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야 저를 찾아오신 연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온 마마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소씨 가문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하지만 그러한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녀는 최대한 공손하게 설명했다.
“마님께선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걸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마님께서 아무리 유능하셔도 이 땅 모든 곳을 다 뒤져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계속 부인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우연히 하언촌 장 씨의 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니 부인이 소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더 자세히 확인해 보려 했지만, 부인과 소저께서 이미 자취를 감추신 뒤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불쌍히 여겼는지 다행히도 두 분께서 경릉성에 계시단 소식을 들어 비로소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말에 수긍하듯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씨 가문은 그 잃어버린 딸이 저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잃어버린 아이는 매우 어렸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양부모님도 제게 어떤 물건이 남겨져 있었다는 말은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사실 물증이 있습니다만, 부인의 양부모께서 몰래 그것을 은자로 바꿨습니다.”
온 마마는 소매에서 옥패 하나와 누런 화선지 한 장을 꺼냈다.
“보십시오. 이 옥패는 마님의 혼수품입니다. 마님께는 두 딸이 있어, 옥패 두 개를 부인과 둘째 아가씨께 주셨습니다. 다만 부인의 양부모께서 몰래 옥패를 팔아 버린 것이죠. 다행히 아예 무정한 분들은 아닌지라, 당시 그림을 잘 그리는 이를 찾아 옥패 모양을 똑같이 그려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인의 신분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목운요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온 마마가 언급한 둘째 아가씨는 소근(苏瑾)이다. 저 사람, 겉으로는 공손한 척하지만, 소근에게만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어.’
소청은 옥패와 화선지를 자세히 비교해 보더니 놀란 얼굴을 했다.
“제가 정말 그분의 딸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드디어 친어머니를 찾다니……!”
목운요는 소청의 등을 어루만졌다.
“어머니, 너무 흥분하시면 안 돼요. 지병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외할머니께서도 분명 걱정하실 거예요.”
온 마마가 대동한 시녀들은 자신을 절제할 줄 몰랐다. 목운요가 ‘외할머니’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무시하는 눈빛을 드러낸 것이다.
목운요는 그들의 표정을 바로 알아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회귀 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소하는 노비조차 그녀를 안중에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