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소씨 가문으로 가기 위한 준비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분입니다.”
소청의 마음이 요동쳤다.
소씨 가문으로 가게 되면 그들이 운요의 혼인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이는 좀 있더라도 영 공자가 운요와 좋은 짝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한데 워낙 말솜씨가 없으신지라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오해를 받기 십상이지요. 집안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에 아픈 몸을 이끌고 저리 서둘러 가실 만큼 효심도 깊으신데, 대인께선 몰라주시니…….”
떠날 적 월왕의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자 소청은 심히 걱정되었다.
“그렇군요…….”
진 총관은 그 모습에 눈을 반짝 빛냈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과유불급이라 하였다. 드러날 듯 말 듯 말해야 절로 상상을 할 것이다.
“그렇게 밝게 웃으시는 것은 올해 설날에 처음 봤습니다. 부인의 음식을 정말 좋아하셨지요.”
진 총관과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영 공자의 인상이 어느새 몇 갑절은 좋아진 것 같았다.
“진 총관님, 그럼 천천히 가십시오.”
“부인께서도 그만 들어가 보세요.”
* * *
소금 사건에 관한 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이원일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나 황상은 그의 변명 따위 듣지 않고 곧장 감옥에 가둬 두었다.
황제가 직접 파견한 수사관이 양주성에 당도함과 동시에 소금 상인 가문들은 대대적인 조사를 받았다. 그들의 죄가 낱낱이 밝혀짐에 따라 재산은 모조리 몰수되었다. 족히 수천만 냥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목운요가 꾸며 둔 계략은 정확히 먹혔다. 월왕이 제명의 신분을 미리 위조해 놓은 것이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덕분에 제명과 습보헌은 깊게 추궁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원일은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는 온전히 그의 운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대황자와 이씨 가문의 콧대가 심히 꺾여 예전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한편 목운요는 월왕이 떠난 뒤 미처 감정을 살필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운방에 대한 조정의 태도가 어떠한지 저번에 금 부인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오늘 답신이 도착했다.
대부분 하운방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이며, 황상께서도 하운방을 몇 번이나 칭찬했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평판으로 가득하니 드디어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는 듯했다.
‘이제 하운방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어!’
수중에 돈은 많았다. 그중 일부를 투자하면 충분히 하운방이 번창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두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하운방의 분점이 양주성, 소주성, 회안성, 임강성 등지에 하나씩 생겨났다.
금란은 목운요의 쑤신 팔을 주물러 주었다. 목운요의 피곤한 안색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소저, 이제 수놓는 여인들도 많이 모집했으니 쉬엄쉬엄하세요. 직접 다 수를 놓으시려면 너무 고생하실 거예요.”
목운요는 싱긋 웃으며 금란이 계속 팔을 주무르도록 두었다.
“하운방에서 파는 옷들은 매우 비싸요. 그러니 미인책을 대충 만들면 그건 하운방의 간판에 먹칠하는 일이 될 거예요.”
“아, 제 생각이 짧았네요.”
“그보다 금란, 오늘이 며칠이죠?”
“오늘은 유월 이십오 일이에요. 그런데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자주 날짜를 물어보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이제 곧 칠월이 다 되어 가는군요…….”
목운요의 눈에서 초점이 흐릿해졌다.
회귀 전 칠월 초이튿날, 산에서 강도를 만나 쫓기다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칠월 중순이 되자 소씨 가문에서 자신을 데려갔다.
나중에 듣기로는 소씨 가문과 원수지간이었던 이가 그녀와 소씨 가문의 관계를 알고는 사람을 보내 죽이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어머니와 경릉성으로 왔고, 하운방과 불선루 두 개의 사업을 쥐고 있었다. 황상에게 치하받은 것도 여러 번에, 명성도 널리 퍼졌다.
‘소씨 가문과 원수지간이라는 그자가 이번에도 자객을 보낼까?’
그때, 소청이 하운방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에 그녀가 어머니를 맞으러 갔다.
“어머니, 오셨어요? 오늘 피곤하시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니 나야 그저 입만 움직이면 되지, 뭐. 피곤할 게 어디 있겠니?”
소청은 딸의 손을 쥐고 자리에 함께 앉았다.
“어머니, 칠월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래. 날이 점점 다가오니 내 마음도 초조해지는구나. 소씨 가문에서 찾아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요.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소씨 가문에선 우릴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
소청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뱉었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잘 대처해야겠지.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구나. 소씨 가문은 대체 왜 그렇게 널 괴롭힌 것일까?”
목운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저 또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연유를 모르겠어요. 몰래 절 죽이려고까지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정말 의심스럽구나. 넌 소씨 가문에 전혀 해를 끼칠 구석이 없었어. 그저 먹을 입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독하게 군 걸까?”
목운요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소청은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결국엔 조금씩 다 밝혀질 거예요. 소씨 가문에서 저희를 가족으로 대하지 않으면 저희도 이 혈연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소청이 딸의 손을 맞잡고 힘을 주었다.
“요아야, 걱정 마라. 네 할머니 일을 겪으면서 나도 많은 것을 느꼈어. 사람이 착하기만 하면 늘 남에게 이용당하기 마련이지. 만일 누가 우리를 해치려 든다면 가차 없이 갚아 주어도 돼.”
소청은 세상 모든 악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자신의 딸만은 무사하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지지에 목운요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었다. 마음이 따뜻한 물에 잠긴 듯 온몸이 편안하고 나른해졌다.
이내 그녀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어머니, 예전엔 늘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라고 가르치셨잖아요. 오늘은 왜 이렇게 강경히 말씀하세요?”
“바보 같긴. 당연히 네가 사람들과 잘 지내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네가 괴롭힘을 당하는 건 바라지 않는단다.”
“후후, 안심하세요. 절대 소씨 가문의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제가 어머니를 지켜 드릴게요.”
“그래그래.”
소청은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도 너무 걱정 말려무나. 요새 온종일 낯이 어둡던데, 소씨 가문 일 때문에 신경 쓰느라 그런 거지? 병사가 오면 장수가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덮으면 된다고, 다 방법이 있을 거야.”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와 대화했더니 마음이 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 그리고 금란과 금교 같은 아이들에게 예법을 가르치려고 해요. 하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주인의 얼굴이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또한 그녀는 소청 옆에 믿을 만한 하녀를 둘 생각이었다.
육냥에게 알아보도록 시키니 한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예전에 궁중에 있던 사람인지라 더욱 마음이 갔다.
“그래. 잘 진행해 보렴.”
* * *
소청과 이야기를 마치고 목운요는 하인들이 배우기 쉽도록 곧장 예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청의 곁에 둘 이와도 계약을 마쳤다.
하운방 분점도 몇 군데 더 생기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가운데, 딱 하나. 불선루가 골치였다.
원래는 불선루와의 연을 끊으려 했는데, 진 총관은 모르는 척 여전히 자문을 구하러 왔다.
게다가 진 총관과 어머니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 소청이 잔소리를 하였다. 그러니 계속 협조할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금란이 찾아와 보고를 올렸다.
“소저, 진 총관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렴.”
진 총관은 급히 안으로 들어와 공손히 인사했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매우 급한 일이 있어 소저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에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가 물러나게 했다.
“말씀하세요.”
그가 소매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읽어 보십시오.”
그녀는 곧장 서신을 펼쳐 들었다. 다 읽고 나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소저의 부친께서는 강물에서 실족사로 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그자는 소저의 부친이 알던 사람까지 죽였죠. 한 집안의 어른과 아이까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난 지 너무 오래되어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서신을 쥔 목운요의 눈에서 냉랭한 기운이 끝없이 차올랐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서릉에서 흘러나온 소문인데, 소씨 가문이 부인과 소저의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하언촌으로 사람을 보냈다가 소저가 경릉성에 계신 것까지 파악했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이리로 사람을 보낼 것 같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인 후 차분히 입을 열었다.
“소씨 가문 얘기를 꺼내시니 마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만약 소씨 가문에서 저희 모녀를 데리러 오면 더 이상 불선루를 돕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에 진 총관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릉에서 경릉성까진 별로 멀지 않습니다. 서신 왕래도 몹시 편하니 부디 불선루를 계속 맡아 주십시오.”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불선루를 왕야께 완전히 드리고 싶습니다.”
“소저, 저는 그저 신하일 뿐입니다. 불선루의 일은 왕야와 직접 의논해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진 총관이 시치미를 뗀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항상 자신과 어머니를 잘 보살펴 준 인물이었다. 그러니 마음을 완전히 독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진 총관님도 아시잖습니까. 불선루 하나만 완전히 장악하는 게 훨씬 유리하단 것을요. 이제 저희는 소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될 텐데, 왕야께서 저로 인해 입장이 불리해지시는 게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소인은 우둔한지라 그 이해관계야 잘 모릅니다. 말씀하고 싶은 게 있으시면 왕야께 직접 아뢰시지요. 전 그저 명을 따를 뿐입니다.”
목운요는 어쩔 수 없이 불선루의 일은 잠시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 총관이 소매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목운요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보다 한 가지 일이 더 있습니다.”
종이를 펼쳐 보니 많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진 총관님, 이게 뭔가요?”
“모두 왕야께서 서릉에서 체류하실 적에 맺은 인연들입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죠. 소저께서 서릉에 가게 되시면 부디 시간을 내서 이들을 찾아 주십시오. 소저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물론 마음 놓고 부리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