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주 부인의 속셈
한참 후에야 소청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소청은 온 마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시는 길 무척 고생하셨을 테니 일단 며칠 동안 편안히 머물다 가시지요.”
온 마마는 웃음기를 띤 채 대답했다.
“마님께서 부인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괜찮으시다면 빨리 준비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저희가 하루빨리 돌아가야 마님께서도 안심하실 거예요.”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음이 여러모로 조급합니다. 경릉성에 남은 사안들만 잘 처리하면 바로 서릉으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금, 사기. 이분들을 편히 쉬게 해 드리렴. 이 집은 너무 작으니 불선루로 모셔야겠구나.”
“네, 부인.”
온 마마와 시녀들이 사금과 사기를 따라나섰다.
온 마마는 불선루로 가는 길에 주위 경치를 살피는 한편 이야기를 던졌다.
“불선루의 명성이 서릉까지 자자합니다. 저희 같은 이들이 지내기에는 부적합하지 않을까요?”
그에 사금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안심하십시오. 불선루는 부인과 소저의 가게이니 몇 명 머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두 분의 말 한마디면 안에 있는 손님들을 다 내쫓을 수도 있어요.”
“부디 저희가 방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도 그녀는 엄격한 예절을 다했다. 쓸데없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온 마마는 더욱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소청과 목운요 모두 예사롭지 않더니, 주변의 시녀까지 행동과 말에 빈틈이 없어…….”
* * *
온 마마와 시녀들이 불선루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소식은 경릉성 전체에 바람같이 퍼졌다. 더불어 소청이 소씨 가문 사람이라는 소문도 떠들썩하게 번졌다.
온 마마와 시녀들이 언제 경릉성에 왔는지, 언제 소청의 집에 방문했는지, 그들의 표정은 어땠는지까지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었다.
그날 오후, 염운사 이목년의 아내인 주 부인이 불선루로 차를 마시러 왔다. 목운요는 그녀를 직접 맞이하여 이슬비가 내리는 경치로 안내했다.
주 부인은 주위 경치를 훑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곳 경치가 정말 독특합니다. 우뚝 솟은 바위에 시원한 폭포수라뇨.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듯합니다.”
“부인께서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로 손본 곳인데, 부인께서 첫 손님이시네요.”
“그럼 오늘은 차를 좀 많이 마셔야겠습니다.”
그에 살포시 웃은 목운요가 주 부인을 앉히고 직접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감상하며 대수롭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목 소저께서 곧 경릉성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씨 가문으로 가신다면서요.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출생에 이런 험난한 굴곡이 있었을 줄이야…….”
목운요는 여전히 우아하고 유려하게 차를 우렸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은 감추지 못했다.
주 부인이 이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정말 큰 경사군요! 소씨 가문이면 대단한 세도가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연을 맺고 싶어 하는데요!”
하나 목운요는 가벼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저와 어머니는 산과 들에서 자랐는걸요. 이 복이 얼마나 갈지…….”
“저는 소저가 평범한 길은 가지 않을 줄 첫눈에 딱 알아봤습니다. 서릉의 여느 규수들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기품이 뛰어나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목운요가 찻잔을 주 부인 앞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저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일부러 절 위로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위로가 아니고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걸요.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주 부인은 작게 웃더니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이 차 정말 맛있네요.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온몸이 다 상쾌해지는 느낌입니다. 갈 때 좀 사 가야겠어요.”
“부인께서 좋아하시니 포장하여 댁으로 보내라 일러두겠습니다.”
“고마워요.”
주 부인은 차를 마시다 쪽지 한 장을 꺼냈다.
“목 소저와 마음이 잘 통했는데 가신다고 하니 너무 아쉽네요. 그래서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이건 제 마음이니 부디 거절하지 마세요.”
그녀가 쪽지를 목운요에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부인.”
주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서릉에는 언제 가시나요?”
“하운방과 불선루의 일들이 다 정리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하긴, 두 사업이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두 곳 모두 경릉성의 얼굴 아닙니까? 이 대인께서 잘 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저와 부인께서 떠나시더라도 저희가 잘 살피고 있겠습니다.”
“두 분께서 잘 봐주신다고 하니 하운방과 불선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부인과 이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주 부인이 활짝 웃었다.
“별말씀을요. 역시 소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참.”
* * *
목운요는 주 부인을 배웅하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불선루를 잠시 바라보았다.
‘온 마마는 이미 주 부인이 온 걸 알아챘겠지? 앞으로 어떻게 각본을 짤까?’
금란과 금교가 조용히 목운요의 뒤를 따라와 쪽지들을 건넸다.
“소저, 쪽지가 또 여러 장 왔습니다. 모두 평소에 하운방과 왕래하던 부인들이 보낸 것이에요.”
목운요는 쪽지를 찬찬히 읽다가 가볍게 웃었다.
“소식도 참 빠르지.”
“지금 두 분이 소씨 가문 사람이라는 소식이 경릉성 전체에 퍼졌는데, 괜찮을까요?”
“소문이야 상관없어요.”
그보단 온 마마가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보고할지가 의문이었다.
침묵 속에서 방으로 들어서자, 금란이 곧장 찻잔을 내왔다.
“아까 주 부인께서 하운방과 불선루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셨잖아요. 설마 두 사업을 그분들께 넘기시진 않으시겠죠?”
“주 부인은 물론이고, 이목년과 그의 부친 이경주는 하운방과 불선루를 욕심내지 않을 거예요. 그 이유는 첫째, 황상이 이 두 사업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무덤을 파진 않겠죠. 두 번째, 이 두 사업의 수익은 그들에겐 그저 푼돈일 뿐이에요.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제 소씨 가문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죠. 이씨 가문과 소씨 가문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금란이 눈을 깜빡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난해한 표정이었다.
“소인,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그럼 주 부인께서는 왜 소저께 하운방과 불선루를 잘 돌보겠다고 하신 건가요?”
목운요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일부러 소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거죠.”
금란은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불선루에 머물던 온 마마와 시녀들이 소저께서 주 부인을 만나신 것을 봤겠네요. 그들에게 소저에 대한 인상이 더 나빠질 텐데 괜찮을지……. 괜히 중간에 껴서 그들 놀이판의 바둑알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목운요가 그녀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주 부인께서도 사실 절 이용한 것에 불과하죠. 어머니는 소씨 가문과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어 서로에 대한 신뢰는 하인만도 못할 거예요. 이렇게 우리가 소씨 가문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면 누군가는 분명 트집을 잡으려고 하겠죠. 나와 어머니는 소씨 가문의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결국 하나의 나무이니 그 몸통까지 흔들리게 될 거예요.”
옆에 있던 금교가 참지 못하고 가슴을 두드렸다.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단순히 주 부인께서 따뜻이 대해 주신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흑심을 품고 있었다니요!”
“이씨 가문과 소씨 가문은 예로부터 사이가 나빴어요. 그러니 주 부인께서 어찌 제게 좋은 마음만 있겠어요?”
금란이 옆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온 마마가 정말 소씨 가문에 가서 소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어쩌지요?”
목운요가 살짝 웃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우리는 눈에 차지도 않을 거예요. 오점일 뿐이죠. 그러니 여러분은 서릉에 가면 필히 언행에 주의해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잊지 말고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인과 소저께 누가 되지 않겠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끝까지 참다가 나중에 꼭 복수해 버려요!”
금란과 금교가 긴장한 기색으로 다짐했다.
그에 목운요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후, 그래요.”
실제로 그녀는 소씨 가문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며 이번 생을 살아온 셈이었다. 어떤 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 * *
며칠 동안 목운요는 하운방을 운영하는 데에 전념했다. 이왕 가게 된 김에 서릉에도 빨리 하운방을 차리고 싶었다.
그렇게 바쁜 며칠이 지나고, 떠나는 일정에 대해 온 마마가 재차 물었다.
“부인, 어제 마님께서 재촉하는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꼭 가족이 다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 드리다니, 제 잘못이 큽니다. 요아야, 넌 언제 떠나면 좋겠니?”
“경릉성 백성들에게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염운사 이 대인께 논의한 적이 있는데, 이 약속은 꼭 지키고 가고 싶어요.
소청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단옷날에 베풀자고 했는데, 소금 사건으로 이 대인께서 바빠지셔서 계획이 중단되었지.”
목운요가 옅은 미소를 띠고 온 마마를 향해 말했다.
“온 마마,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여기 머무시지요. 염운사 이 대인과 최대한 빨리 상의하겠습니다. 일이 끝나면 바로 떠나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온 마마는 방을 나선 뒤 불선루로 돌아갔다. 어두운 안색의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서신을 써서 서릉으로 보냈다.
진 총관은 서신이 나갔다는 소식을 목운요에게 즉각 보고했다. 목운요는 이를 듣고 가볍게 웃었다.
‘소씨 가문은 우리 모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싫어하는 듯하군. 그렇다면야 아주 시끄럽게 돌아가 줘야지. 세상 사람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녀는 과연 소씨 가문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