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과감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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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방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예상대로 초조한 표정의 소청이 달려 나왔다.
“더 늦으면 그 집 대문을 두드릴 뻔했다. 토끼 한 마리 찾는데 왜 이리 오래 걸린 거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토끼가 꽁꽁 숨는 바람에 찾는 데 한참 걸렸어요. 간신히 찾았더니 정원 곳곳을 헤집고 다니느라 그만……. 그런 그렇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어머니!”
지금껏 결정된 일이 없어서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았는데, 다관을 차릴 장소도 빌렸으니 어머니에게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다.
“좋은 소식이라니?”
“우연히 옆집 금수원의 주인을 뵈었는데, 평소 쉴 때만 가끔 찾는 곳이라 내버려 두기 아깝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곳을 빌려 다관을 짓기로 했어요.”
“다관? 하지만 하운방의 간판을 내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니? 옷을 짓기도 바쁜데, 다관을 운영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목운요는 소청과 위층으로 향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하운방에서도 큰돈을 벌지만 옷은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지어야 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앞으로 일 년 반만 지나면 소씨 가문에서 사람이 찾아올 거예요. 그땐 이 정도 돈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요아야, 정말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까?”
“뭐든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소씨 가문에서 저흴 찾아왔을 때 맞서려면 힘을 길러야 해요.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진 않아요.”
아이의 말에 소청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 네가 하라는 대로 하마.”
“걱정하지 마세요. 소씨 가문에서 다시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 거예요!”
“알겠다. 이 어미는 너만 믿으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청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소씨 가문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과연 그 산을 넘을 수 있을까? 대체 언제 넘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봤지만 좀처럼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 * *
목운요가 금수원 보수 작업에 착수하는 사이, 채월각 사건은 해결에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채월각이 하자 있는 물건을 고가에 팔아치웠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관아의 명에 따라 담로는 투옥됐다. 가게를 관리할 사람이 없자, 채월각은 잠시 동안 간판을 내리기로 했다.
그 소식에 목운요의 얼굴에 짧은 순간 화색이 돌았다가 사라졌다. 붓을 들어 뭔가를 적은 그녀는 종이를 육냥에게 건네주며 하운방 대문에 붙여 두라고 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운방 문밖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내 그들은 대문에 붙은 종이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부 안, 은홍의 말에 금 부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운요가 자신의 모든 기술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말이냐?”
“예! 목 소저가 하운방 대문에 그런 글을 써서 붙였답니다. 민가의 여인들뿐만 아니라 노비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많답니다. 하운방의 기술을 배우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너도 며칠 가서 배워 보려무나.”
금 부인이 언짢아한다는 생각에 은홍이 허겁지겁 용서를 구했다.
“부인, 제발 절 내쫓지 말아 주세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내가 언제 널 쫓아낸다고 했더냐?”
“그 말씀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시녀 하나가 문밖에서 목운요가 왔다고 고했다.
“후후, 하여간. 운요 저 아이보다 똑똑한 아이도 없을 게야. 은홍, 얼른 가서 차를 준비하렴.”
방 안으로 들어온 목운요는 절을 올리더니 다짜고짜 양해를 구했다.
“부인, 또다시 부인에게 폐를 끼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무슨 일인지 말해 보렴.”
“사실 제가 알고 있는 자수법을 경릉성의 여인들에게 모두 공개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배우고 싶다면서 몰려든 사람의 수가 예상보다 많아,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서……. 그래서 부인에게 일손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드리러 왔어요.”
울상이 된 목운요의 손을 금 부인이 꼬옥 쥐었다.
“걱정하지 마라. 외려 도움을 청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구나. 네 덕에 큰 공을 세우게 될 것 같아! 은홍, 집안의 하인들을 모두 불러오너라. 그리고 나리도 모셔 오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질서를 잘 다스려야겠지.”
“예, 부인. 지금 당장 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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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 리 가는 법.
조부 사람들이 하운방의 일을 돕고 있다는 소식은 경릉성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에 많은 대인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운방의 자수법을 일반 백성들이 전수받는다면 앞으로 경릉성에서 배곯을 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좀 더 멀리 내다보자면, 몇 년 뒤 경릉성은 고급 수예품의 생산지로 천하에 이름을 날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매한 백성을 가르치고,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보다 더 큰 공적이 어디 있으랴? 천금과 같은 기회를 하늘은 어찌 조운년에게만 내린단 말인가! 그야말로 땅을 치고 싶을 만큼 분하고 후회막심했다.
한편 금수원의 진 총관도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자신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목운요의 과감한 선택으로 경릉성에는 조만간 커다란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온갖 사람을 만나며 생사의 기로에 수없이 섰던 진 총관이다. 그런 자신이 봐도 목 소저의 과감한 행동은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입을 굳게 다문 월왕을 보며 진 총관이 슬쩍 입을 열었다.
“왕야, 저희가 목 소저를 도우러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주인님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며 강남땅에서 세력을 키우려 한다. 하나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만큼 그 행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목운요가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 그 기회를 잘 이용하면 민심을 한결 수월하게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 없다.”
그 말과 달리 월왕의 눈빛은 평소보다 몇 곱절은 뜨거워 보였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목운요한테 대체 어떤 재주가 있는지 지켜보는 보람이 있었다.
“그보다 사람을 보내 조운년을 지켜보도록 해라.”
목운요는 금 부인에게 옷을 선물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것은 순수한 의도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운요가 제 발로 금 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필경 숨겨진 속내가 있을 것이다.
“예, 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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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요가 자수법을 전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옷을 맞춘 부인들이 찾아와 무리할 것 없으니 천천히 옷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부인들 걱정하지 마세요. 예약하신 옷은 약조한 시간대로 보내 드릴 것입니다. 하운방을 믿고 찾아와 주셨는데, 저희 역시 그 신용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운요의 말에 몇몇 부인들은 기뻐하면서도 내심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운방에서 지은 옷을 빨리 받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목운요가 자신들에게 빚을 지지 않아 초조했다. 그녀에게 인정을 베풀어 좋은 인연을 맺는다면 자신들도 금 부인과 같은 혜택을 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표정의 부인들을 향해 목운요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많은 사람에게 자수법을 전수하려면 그만큼 많은 일손도 필요하죠. 괜찮으시다면 솜씨 좋은 이들을 제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숟가락을 얹을 기회가 찾아왔는데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 얼른 돌아가서 하운방으로 사람을 보내 주겠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들이 서둘러 나가는 것을 본 목운요의 입가가 쓰윽 하고 올라갔다.
하운방과 조운년이 공로를 독차지한다면 시기심에 눈먼 사람들이 엉뚱한 소문을 퍼뜨리거나 두 사람을 이간질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야 그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 주변의 견제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앞다퉈 성상에게 이 일을 보고할 터.
결국 가장 큰 덕을 보는 곳은 하운방과 조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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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여러 사람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목운요는 많은 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금수원의 보수 공사도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며칠 만에 목운요가 구상했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사를 감독 중인 금 총관이 목운요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별문제가 없다면 도면대로 계속 작업하겠습니다.”
“네, 한 번 더 도면을 살펴보고 알려 드릴게요.”
그러다 불현듯 진 총관이 공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금수원은 월왕의 영역이고, 자신은 그것을 빌렸을 뿐이다. 한 집에서 두 살림을 하려면 오해나 섭섭한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금수원 안으로 들어가자, 대기 중이던 진 총관이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목 소저, 어서 오십시오.”
“진 총관님을 뵙습니다. 며칠 전에 화과자를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으시려나 모르겠어요. 별것 아니지만 소녀의 성의를 봐서 받아 주세요.”
진 총관은 화과자가 든 상자를 허겁지겁 건네받았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공사를 살피러 오신 건가요? 말도 마십시오, 소저의 손길을 거치니 쓸쓸했던 금수원에 봄날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날마다 눈 호강 중이지요.”
진 총관의 말을 옆에 있던 금 총관이 재빨리 받아쳤다.
“진 총관님께서 일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안 그랬다면 이렇게 빨리 일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제 마음을 어찌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공사가 끝나거든 진 총관님을 모시고 좋은 차를 직접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나마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허허, 영광입니다.”
목운요라는 소녀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일 처리 솜씨부터 말하는 것까지, 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었다.
금 총관이 다시금 공사를 감독하러 나가자, 진 총관은 목운요와 함께 자리를 옮겨 앉았다.
“요 며칠 정신없이 바빠서 사야가 가실 때 배웅도 못 해 드렸네요. 결례를 범한 것이 아닐지 걱정이에요.”
“허허허,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사야도 급하게 가신 것이라 소저에게 인사도 못 하지 않았습니까. 대신 무슨 일이 있거든 자신에게 서신을 쓰라는 말을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목운요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진 총관의 말을 차분히 곱씹었다.
서신을 쓰라고? 그게 무슨 뜻인 거지? 설마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래서 경릉성의 상황을 때때로 보고하라는? 그렇다면 월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서신을 써야 할 것 같다.
“예, 사야께서도 멀리서나마 금수원의 상황을 아실 수 있게 종종 서신을 써야겠네요.”
“후후, 소저의 서신을 받으면 사야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앞으로 주인님은 자신에게 꼭 감사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