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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상태창.”
로나는 정말 오랜만에 울린 알람 소리에 귀찮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상태창을 열었다.
-매우 소량의 경험치와 빵 코인 1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
이름 : 로나
명칭 : 빵집의 주인-Lv.22
업적 : <인기 많은 빵집>, <돈 많고 재주 많은 미혼녀>, <제빵의 천재>
스킬 : <제과 제빵-Lv.4>, <재료 상점-Lv.5>, <숙련 제빵사의 손-Lv.2>, <온도 감지>, <재료 분석>, <튼튼한 몸-Lv.3>, <회복력-L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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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빵집을 운영한 지 3년째인데 갈수록 경험치가 쥐똥보다 못하게 오르더니 요즘은 아예 정체되었다.
그나마 매일 쓴 수습 제빵사의 손이 레벨 10을 넘어 숙련 제빵사의 손으로 진화한 게 다였다.
<온도 감지> 스킬은 오븐을 잘못 조정해서 빵을 태웠을 때 생겼고, <재료 분석>은 친구들과 함께 채취해 온 과일들로 디저트를 만들었을 때 생겼다.
말 그대로 온도를 감지하는 스킬과 재료들의 정보를 알려 주는 스킬이었다.
<튼튼한 몸>과 <회복력>은 빵을 만들다가 처음으로 손을 데었을 때 생겼고, 그 후 다칠 때마다 점점 레벨이 올랐다.
그러나 <제과 제빵>과 <재료 상점>은 스킬을 얻은 시기에 비해 레벨이 잘 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비싼 빵들이 팔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일하느라 바쁜 시골 평민들은 딱히 맛을 구별하지도, 가리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설탕이 듬뿍 들어가거나 버터, 치즈 등이 가득 들어간 맛있는 빵이 아니라, 싸고 식사에 곁들이거나 식사 대용으로 먹을 빵들이었다.
결국 언제나 비슷한 식사용 빵들만 팔리게 되었다.
물론 초반에는 그나마 눈에 띄는 경험치와 빵 코인을 얻었지만, 결국 들어오는 양은 점점 줄어들었고 갈수록 레벨 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 양과 코인이 많이 들어가는 비싼 재료들만 늘었다.
<제과 제빵>은 그 안에 있는 레시피를 전부 완료해야 레벨이 오르는 스킬이었다.
그것도 한 레시피를 끝내야 다음 레시피가 순차적으로 풀리는 스킬.
거기다가 재료 상점 스킬과 연동되어서 재료 상점 스킬 레벨을 올리지 못하면 다음 레시피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재료가 있는 레시피만 팍팍 해치울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명칭의 레벨과 <제과 제빵>, <재료 상점>의 레벨이 오르지 않은 지 2년이나 됐다.
열심히 새 디저트를 만들어서 팔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공짜로라도 디저트를 먹이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로나는 절박함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우선 작은 마을이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비싼 디저트를 사 가는 이가 없어서 팔기도 힘들었고, 평범한 빵만 팔아도 혼자 먹고사는 걸 넘어서 넉넉히 모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벌렸다.
초반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빵을 공짜로 먹여서라도 레벨을 올리곤 했지만, 평소에 먹고 싶었던 케이크나 디저트들이 거의 다 해금된 후에는 그 짓도 그만두었다.
어째 갈수록 자신이 빵을 공짜로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만 늘어가 기분 나쁘기도 했고, 굳이 낑낑대며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어지기도 해서였다.
로나는 현 상태에 충분히 만족했고, 지금도 레벨이 올랐다는 안내문에 오랜만에 상태창을 본 것뿐이었다.
업적도 바뀌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업적은 무언가를 달성할 때마다 하나씩 생겼는데, 능력이나 보상을 주곤 했다.
참고로 설명을 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인기 많은 빵집 – 마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빵집입니다. 가게에 손님들이 조금 더 찾아옵니다.>
-<돈 많고 재주 많은 미혼녀 - 마을에서 가장 돈을 잘 벌고 재주도 좋습니다. 결혼하면 가장 많은 재물과 미래를 보장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입니다. 매력이 조금 오릅니다.>
-<제빵의 천재 – 사람들은 당신을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명성이 조금 오릅니다.>
다만 저 조금이라는 것은 숫자로 나타나 있어서 제대로 모르겠는 것 중의 하나였다.
이 상태창은 딱히 친절하지 않았다.
설명을 해 주기보다는 자신이 ‘이런 건가?’라고 감으로 때려 맞추면 적당히 맞는 정도였다.
업적을 달성하고 나서 실제로 가게에 손님이 조금 더 들어오긴 해서 수치를 내어 봤더니, 한 10% 정도?
원래 인기 많은 빵집이었으니 좀 더 빨리 빵이 매진되었다.
매력은 좀 더 많은 사내놈이 집적거리게 되었다.
실제로 거울로 봐서는 자신의 외모는 갈색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내리고, 갈색 눈을 가졌으며, 주근깨 박힌 밀색 피부 그대로였다.
몸매도 하나도 안 변했다.
자신의 외모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재물과 미래를 보장하는 걸 보고 사내들이 꼬이더라.
명성은 마을 사람들이 좀 더 자신을 잘 대해 준달까? 인정받은 느낌?
자신에게 수작 부리는 남자 놈 중에 허접한 것들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매력 때문에 달라붙는 놈이 늘었으니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어서 오세요, 계산하시겠어요?”
로나는 오랜만에 겨우 숫자가 바뀐 상태창을 치워 버리고는 계산대 앞으로 다가오는 손님에게 집중했다.
그녀는 어릴 적 얼굴 그대로 야무진 인상으로 자랐다.
전생이었다면 학교 선생님이 학급 초기에 ‘너 반장!’이라고 할 만한 얼굴이었다.
약간 올라간 눈꼬리와 높은 코, 꾹 다물어진 입, 큰 키가 그랬고, 하루 종일 빵을 반죽하고 굽는 노동으로 단련된 몸과 여자치곤 낮은 목소리가 그랬다.
그건 로나가 사는 판타지 세계에서 신붓감으로 유리한 것들은 아니었다.
특히 같은 또래 여자애들보다 밋밋한 몸과 혼자 빵집을 하느라 결혼이 늦어졌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지만 그걸 다 뛰어넘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제과 제빵 기술이 그랬고, 그 기술로 번듯하게 운영해 나가다 못해 마을에서 최고 인기 있는 빵집의 주인이라는 것이 그랬다.
결국, 누군가와 결혼해 돈을 벌어야 하는 시골 남자들에게 스스로 돈을, 그것도 아주 잘 버는 로나는 마을 최고의 신붓감이 된 것이다.
로나가 막 빵집을 차릴 당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마을에 좀 이름 날린다 싶던 남자들은 로나의 빵집이 대성황을 이루자 빵집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로나는 그들의 생각이 너무 뻔해서 한숨만 내쉬었다.
어디서 자신이 힘들게 가꾼 가게를 결혼이라는 이유로 날름 집어삼키려고 한단 말인가?
자신에게 찝쩍거리는 놈들의 머릿속은 전부 자길 꼬셔서 잘나가는 상점 계산대에 앉아 띵가띵가거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을에 좋은 남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른 여자들과 결혼한 후였다.
그들이 한창 결혼하려고 애쓸 때, 자신은 빵집을 운영하느라 애썼으니 후회는 없었다.
로나는 차라리 노예 시장에서 적당한 놈을 데려와 안 보이는 데다 인장을 찍고 남편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결혼 적령기 남정네 놈들이 가게 안에서 머뭇거리며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차라리 빵 카페를 할까?
머무르는 시간당 돈을 내라고 하든가, 아니면 커피라도 사서 앉아 있으라 하는 거지.
통행도 방해하고 저게 뭐야?
로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안녕, 로나.”
“안녕하세요, 로날드 씨. 계산해 드릴까요?”
“하하, 응. 부탁할게. 그건 그렇고,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지금 눈앞에서도 계산할 생각은 안 하고 자신의 잘난 얼굴을 믿고 찝쩍거리는 놈이 하나 있다.
“아뇨. 내일 쓸 반죽을 만들어야 해서요.”
“내가 도와줄까? 혼자 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요. 제 가게인데, 제가 해야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너의 가게가 아닌 건 아니잖아. 내가 도와줄게.”
싱긋- 웃는 입꼬리와 그 안에 보이는 새하얀 치아는 반듯했고.
“빵 만드는 비밀을 아무에게나 알려 줄 수 없죠.”
“내가 ‘아무나’야? 실망인걸.”
실망한 표정을 하는 팔자 눈썹과 울망거리는 푸른 눈은 충분히 여성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만했다.
“네. 우리가 무슨 사이였나요? 빵집 주인과 손님이잖아요?”
“……뭐. 그렇지.”
“그렇죠.”
그러나 로나는 전혀 동요하지도 않고 볼도 조금도 붉히지 않은 채, ‘이것은 영업 미소입니다-’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철벽에 조금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 로날드가 이내 울망거리는 눈동자와 묘하게 모성애를 건드리는 잘생긴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뇨.”
“……응?”
“빵 만드느라 바빠서요. 아, 다음 분 계산해 드릴게요! 로날드 씨, 더 할 말이 있으신가요?”
로나가 싱긋- 웃었고, 로날드가 결국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로 물러났다.
로나는 로날드가 넓은 어깨를 축 내리고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제 얼굴 잘생긴 거 이용해서 뻔한 수작을 부리는 모습이 같잖다.
게다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당연하게 반말을 하는 모습은 역겹고.
예의를 어디다 팔아먹고 다니냐?
너랑 나 친했어?
빵집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인사조차 안 했던 놈이 친한 척하고 있네.
로나는 속으로 실컷 빈정거리다가, 손님 중 여성들이 그의 어깨를 보며 안타깝다는 한숨을 짓는 것을 들었다.
하…… 거지 같다.
로나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다시 영업 미소를 띠고 다음 손님의 계산을 도왔다.
조그만 시골, 평민 여자 혼자서 이끄는 작은 빵집.
진상들이 오가는 최고의 핫 플레이스!
오늘도 빡치는 가슴을 부여안고, 로나는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
* * *
장사가 끝나고 상점을 치우는데, 마을 여자애들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 여자애가 수도로 여행을 갔다가 맛있는 디저트를 사 왔다고 다 같이 먹자는 거였다.
자신의 빵집은 마을 여자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작은 빵집에 놓여 있는 티 테이블 몇 개가 그런 모임 하기 편한 곳이기도 했고, 로나가 그들에게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미혼의 여성들이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수다를 떠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했고.
로나는 여자애들에게 문을 열어 주며 익숙하게 차를 끓이려 부엌으로 들어갔고, 뒤에 남은 친구들도 익숙하게 가게 뒷정리를 돕고 차 탁자에 둥글게 앉았다.
근황 이야기와 디저트 칭찬이 이리저리 오갔다.
로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수다에 낄 만큼 특별한 일이 있지도 않았고, 로나가 이 모임의 고참이라서 느긋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주근깨 달린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안 아까워?”
“뭐가?”
그 말투가 묘하게 비꼬는 말투라 로나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로날드 말이야. 로나 언니가 로날드를 찼다고 마을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낮에 있었던 일이 소문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 빵집 안에 있던 손님이 한둘도 아니고, 작은 마을인 만큼 소문이 쉽게 돌았다.
게다가 로날드는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였기도 하고, 로나 자신은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여자였으니.
소문이 돌아도 여러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주근깨가 로날드를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고.
주근깨뿐만 아니라 몇몇 여자애들의 눈초리가 사나운 것 같기도 하고.
친구라 해도 정말 친한 친구들은 이미 다들 결혼한 지 오래였다.
여기서 결혼 적령기는 여성은 열다섯 살부터 스무 살 사이, 남성은 열여덟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다.
현대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이런 미친! 다들 미성년자!?’라는 기분이지만 여기선 그렇다는데 어쩔 건가.
이해는 된다.
마수도 있고, 의학도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서 평민들의 평균 수명은 끽해야 50세에서 60세 사이니까.
그러니까 주근깨의 말뜻은 ‘너는 나이도 많은 주제에 그런 미남이 사귀자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어?’이었다.
빵집 경영에 힘을 쏟다 보니 로나의 나이가 결혼 적령기 끝에 다다른 스무 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