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1/154)

1

로나는 시골 마을 여관집의 세 번째 딸로 태어났다.

아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오똑한 코도 아니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것도, 장미꽃 같은 뺨을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시골 여자아이였다.

다만 로나는 다른 아기들보다 조용하고 울지 않는 아기였는데, 조금 자라서도 아이답지 않게 떼쓰는 일도 별로 없었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데다가,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아이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집이었다면 ‘우리 애는 천재예요!’라든가 ‘신동이 아닌가?’ 하는 팔불출 이벤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시골 여관집 세 번째 아이였고 부모님보다는 언니들 손에,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자랐기에 그저 손이 덜 가는 아이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런 로나는 그녀의 성격과 똑같이 야무진 얼굴로 자랐다.

어디에나 하나쯤은 있을 만한 똑 부러지게 의사 표현을 하는 야무진 아이.

그게 로나였다.

하지만 로나에게는 사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녀가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과 상태창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태창.”

로나가 작게 중얼거리자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 창이 휙- 나타났다.

=====상태창=====

이름 : 로나

명칭 : 빵집의 주인-Lv.0

업적 : -

스킬 : <제과 제빵-Lv.1>, <재료 상점-잠김>, <수습 제빵사의 손-Lv.1>

===============

로나가 다섯 살 때, 반쯤 장난으로 상태창이라고 중얼거리자 눈앞에 정말로 푸른 상태창이 떠올랐었다.

상태창에는 이미 ‘빵집의 주인’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빵에 관한 스킬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집안일을 돕던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었다.

명칭인 빵집의 주인은 말 그대로 빵집의 주인이었고, 스킬 제과 제빵은 제과 제빵과 관련된 레시피를 보여 주는 스킬.

수습 제빵사의 손은 빵을 만드는 스킬과 만든 빵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스킬이었다.

재료 상점은 ‘빵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를 살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글이 있었지만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로나는 그 상태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판타지 세계, 게다가 평민 여자의 삶.

딱 봐도 복장 터지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가.

하지만 이 상태창만 있다면,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전생한 것치고는 아무것도 없다 싶었더니 뭔가 혜택을 주긴 한 모양이다.

이왕 주어진 상태창이니 그 능력을 갈고닦아 제 미래를 꽃피우리라!

로나는 굳게 결심했었다.

그러나 로나의 결심과 달리 그 상태창은 무려 5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제빵에 관련된 일을 하기에 상태창을 발견했던 다섯 살은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엄마도 언니들도 부엌일을 돕는 건 허락했지만, 오븐에 손대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현대처럼 아이의 정서를 위해 같이 쿠키를 만드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로나는 빵을 만드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제 고집을 이기지 못해 언니가 한두 번 반죽을 만지게 해 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걸로는 상태창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이론적으로 익히는 것이 도움 될까 하고 엄마가 빵을 만들 때 이것저것 물어보고 마을 빵집에 기웃거려 봤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로나는 상태창을 열고 5년 동안이나 오븐을 사용하지 못했다.

“로나, 손은 깨끗이 씻었니?”

“네, 엄마.”

그리고 로나가 열 살이 된 어느 날 엄마는 요리해 보자며 그녀에게 손을 씻고 오라고 했고, 로나는 바로 세면대로 달려가 손을 씻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녀는 드디어 상태창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며 무엇을 만들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크게 대답했다.

“빵요! 빵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하긴, 로나가 빵에 관심이 많았지. 그럼 밀 빵을 만들어 볼까?”

엄마가 그렇게 말하며 아직 손이 닿지 않는 로나를 대신해 찬장에서 밀가루와 소금 등 몇몇 밀 빵을 만드는 재료를 꺼내 주었다.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지?”

“그럼요!”

로나가 자신이 빵을 만들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던 걸 기억하기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로나 스스로 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짧은 다리로 요리대 앞으로 달려갔다.

나무로 된 그릇에 밀가루와 우유를 넣고 작은 손으로 쭈물거렸다.

조금의 시간과 발효의 기다림이 지나고 로나가 낑낑거리며 반죽을 오븐에 넣을 때도. 오븐 앞에서 빵이 익고 마침내 꺼낼 때까지도, 그녀의 어머니는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온전히 로나의 손으로 빵을 만들었을 때, 로나의 귓가에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바로 상태창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는 엄마가 신경 쓰여 조용히 빵만 내밀었다.

어릴 적 조심히 알아본 바로는 전생과 같이 상태창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고, 전생에서 ‘그냥 저 사람 미쳤나?’ 하고 말 일조차 여기선 충분히 이상한 것으로 몰려 죽을 수 있었다.

그걸 안 순간 로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조금 야무진 어린아이를 연기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가치관이 다른 만큼 위험했다.

“잘했어, 로나.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니, 대단한걸?”

“감사합니다.”

“이제 먹어 볼까? 맛은 어떻나 봐야지?”

엄마가 칼을 들고 빵을 자르자 갈색의 거친 겉면이 잘리는 소리가 울리고 곧 뽀얗게 잘 익은 속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대로 작은 조각을 잘라 입 안으로 가져갔다.

“어머!”

“맛이 이상한가요?”

“아니, 아니란다. 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네! 빵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걸!”

엄마의 칭찬에도 로나는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에게 스킬이 있는 만큼 남들보다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엄마가 앞으로 로나 혼자 오븐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오븐을 써야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써 보지 않겠는가!

“그럼…… 앞으로 직접 오븐을 써도 되나요?”

“음…… 좋아!”

“와아!”

엄마의 허락에 로나가 양손을 번쩍 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의 엄마가 부드럽게 미소 짓다가 단호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하지만 꼭 주의하겠다고 약속하렴. 오븐은 매우 위험하단다.”

“네, 엄마. 약속할게요.”

로나가 두 팔을 내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제야 엄마는 다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나는 헤헤헤 하며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조금 힘든데, 방에서 쉬어도 될까요?”

“그럼! 많이 긴장했나 보구나? 오늘 저녁엔 로나가 만든 빵을 먹자!”

“네, 엄마! 좋아요!”

로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짧은 다리를 움직여 2층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딸이 같이 쓰는 방은 좁고 낡은 데다가, 침대가 세 개나 놓여 있었지만, 로나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언니들은 일하러 가서 방에는 그녀뿐이었다.

로나는 자신의 낡은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휴. 어린애인 척하기도 어렵다니까.”

엄마 앞에서 애교가 가득 담겼던 어린애 말투는 어디로 사라지고 한탄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로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열 살짜리한테 오븐을 쓰게 하는 것도 현대인 시선에서 보기에는 좀 아닌 거 같지만…….”

그도 그럴 게 현대의 오븐도 아니고 직접 불을 피워 사용하는 오븐이었다.

화상 위험이 훨씬 큰 걸 사용하는데 열 살짜리에게 맡기는 건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골의 평민 어린아이는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집안일을 돕는 법이다.

그렇게 따지면 열 살 때 오븐을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노동력으로 써먹느라 바쁘면 바빴지.

특히 자신은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했으므로 로나는 별말을 더 붙이지 않고 상태창이라고 중얼거렸다.

-소량의 경험치와 10 빵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재료 상점이 열렸습니다.

=====상태창=====

이름 : 로나

명칭 : 빵집의 주인-Lv.0

업적 : -

스킬 : <제과 제빵-Lv.1>, <재료 상점-Lv.1>, <수습 제빵사의 손-Lv.1>

===============

“됐다!”

드디어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다.

빵집 주인의 레벨은 그대로였지만, 재료 상점의 잠김이 풀린 것이다.

로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재료 상점을 불렀다.

“아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리고 그녀는 실망하며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눈앞에 떠오른 재료 상점은 레벨1인 만큼 가장 기본적인 제빵 재료들밖에 없었다.

밀가루와 달걀, 우유, 이스트와 소금, 설탕…… 등등등.

정말 딱 기본적인 재료만 있었다.

얻은 빵 코인으로 재료들을 살 수 있는 것 같았지만, 품질이 달라서 그렇지 지금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물론 지금 시대에 잘 도정된 밀이나 좋은 달걀, 가공된 우유 같은 건 구하기 힘들지만…….

비싸서 그렇지 있기는 했다.

“잠깐! 설탕은 엄청 비싸지 않나?”

로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꼭 저걸로 빵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재료를 되팔면 되지!”

그녀는 그대로 상점 창에서 설탕을 사들이려다가 다시 좌절하며 뒤로 누웠다.

결제창 바로 위에 빨간 글씨로 ‘재료를 파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쉽게 돈을 벌 방법을 막아 놓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지…….”

로나는 달관한 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미래는 꼼짝없이 빵집 주인이 될 모양이다.

그녀는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회사원의 마지막 테크트리라는 치킨집은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이 있지만, 거기에 빵집은 없었다.

그것도 손수 하나하나 만드는 빵집은 더더욱…….

전생에 널린 게 노하우가 가득 쌓인 프랜차이즈였는걸.

물론 먹는 건 아주 좋아했지만 만드는 건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다.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시간과 노력을 쏟는단 말인가?

관심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다들 분업해서 일하는 대신,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가 현대 아닌가.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 환생한 결과, 그녀는 수제로 하나하나 만드는 빵집의 주인이 될 운명인 것 같았다.

다른 일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시골의 여관집 딸이, 그것도 세 번째 딸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평민의 직업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지위도 낮은 데다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적었다.

그리고 그녀는 빵을 좋아했다.

만드는 것은 별로였지만 먹는 것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 시골 아이로 환생한 만큼, 그 부드럽고 달콤한 빵과 디저트들은 꿈에서나 맛볼 수 있는 거겠지.

“그래. 검술 능력이나 마법 능력. 이런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

그 많은 판타지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아무리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해도 그런 능력을 갖추면 분쟁에 휘말린다.

그에 반해 빵을 만드는 능력이라니.

기껏해야 레시피를 노리는 이들이 있는, 사고라곤 그런 일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하거나 피비린내 나는 그런 일과는 거리가 먼 능력이다.

“사 먹을 순 없어도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야!”

로나는 그렇게 외치고 앞으로 이 능력을 열심히 키워 상태창의 명칭처럼 작은 빵집을 하나 열고 빵집의 주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있던 푸른 창이 띠링- 하며 알람을 울렸다.

-빵집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명칭의 레벨이 오릅니다.

=====상태창=====

이름 : 로나

명칭 : 빵집의 주인-Lv.1

업적 : -

스킬 : <제과 제빵-Lv.1>, <재료 상점-Lv.1>, <수습 제빵사의 손-Lv.1>

===============

빵집의 주인 뒤에 있던 Lv.0이 Lv.1로 바뀌면서 알림을 울린 것이었다.

“오오오. 상태창도 나를 응원해 주는구만!”

자그마한 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열심히 빵을 만들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열일곱 살.

평민들이 성인이라고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로나는 마을의 작은 건물을 사서 자신의 빵집을 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