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러 들어온 남편 (59)화 (49/75)

59화

“하아…….”

깊은 현태의 한숨 소리에 희우가 고개를 들었다. 저 때문에 회사 일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건 아닌가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

하지만 희우의 사과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현태가 희우의 몸을 당겨 안아 버렸기 때문이다.

품 안에 들어온 희우의 몸은 생각보다 작았다. 끙끙 앓았기 때문인지, 혼자 떨었기 때문인지 몸이 뜨끈뜨끈했다.

쿵. 쿵. 쿵.

현태의 거센 심장 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당황해하던 희우는 이내 천천히 숨을 내쉬며 머리를 현태의 가슴에 기댔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안전한 느낌에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대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몇 분 후.

이제 떨어져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불안하고 무서웠던 마음에 일단 안기긴 했는데 빠져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한 희우가 눈만 데룩데룩 굴렸다.

그렇다고 현태가 손에서 힘을 푼 것도 아니었다. 처음 저를 당겨 안았던 것처럼 현태는 여전히 팔에 힘을 꽉 주고 있었고 이제는 어깨를 토닥이기까지 했다.

토닥 토닥 토……닥.

이상하게 어색한 박자.

희우는 저 못지않게 현태도 어색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누군가를 위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그런데도 내 전화에 달려와 줬구나. 그래도 이건 너무 어색하잖아.

“풉!”

품에 안겨 있던 희우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며 웃자 현태가 의아해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웃지?

“기현태 씨, 지금 포옹 풀 타이밍 놓쳤죠?”

그런 생각까지 한 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어색한 상황은 맞는데 품 안에 쏙 들어온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대로 있고 싶기도 했다.

고개를 숙이고 큭큭 대던 희우가 고개를 들고 현태를 바라보며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냈다.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위로?”

“네. 위로. 덕분에 이제 많이 진정됐어요. 하나도 안 무서워.”

눈매는 벌건데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뻤다.

그래, 이건 너 때문이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네 탓이야.

희우의 어깨를 토닥이던 현태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목덜미로 움직였다. 풀어 헤친 머리카락 안으로 들어간 손이 가느다란 목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희우의 커다란 눈 안에 제 얼굴이 담긴 것을 본 순간 현태의 입술이 둥글게 휘어졌다.

“싫으면 말해.”

그리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희우에게 키스했다.

놀라서 둥글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어 가 제 것인 양 속을 헤집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곳에 남아 있는 달콤한 호흡과 어찌할 바 모르는 작은 살덩이를 잡아채 제 안으로 힘껏 빨아 당겼다.

다른 이와 숨결을 나누는 일이 이리도 황홀하고 아득한 일인지 몰랐다. 말랑하고 쫀득한 입술은 몇 번이고 머금어도 질리지 않았다.

고개가 젖혀진 채 현태에게 호흡을 온전히 앗기고 있던 희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현태는 잠시 입술을 떼고 희우의 얼굴을 응시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저 때문에 부푼 입술이 예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아래위로 향한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얽혔다.

“숨 다 쉬었어?”

“네?”

“대답하는 거 보니 다 쉬었네.”

커다래지는 희우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현태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과는 다른 각도로 입술을 물었다. 여전히 온몸이 녹아 버릴 만큼 달고 맛있었다.

키스에 환장한 놈이라고 욕해도 좋았다.

이대로 몇 시간도 붙어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수정이 장담한 대로 백오십억 원을 횡령하고 종적을 감췄던 직원은 하루 만에 검거됐다.

“빨리 잡혀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게요. 정말 간도 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빼돌릴 생각을 했지?”

“처음엔 그렇게까지 많이 빼돌릴 생각은 아니었대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대담해진 거죠. 길면 꼬리가 잡히는데.”

범인이 검거됐지만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이는 족족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간이 크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부터 백오십억 원이 있으면 뭘 하고 싶냐는 이야기까지.

“범인이 잡혀서 그런가? 본부장님 표정이 완전 봄날이던데요?”

“공 대리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아까 결재받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잖아.”

“왜요?”

“나한테 수고했어요, 이러더라니까!”

“무서워!”

직원들에게 빈말이라도 수고했다느니, 잘 지내냐느니 하는 인사 한 번 건네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마주치면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게 전부였고, 심기가 불편한 날엔 그마저도 하지 않고 무시할 때가 많았다.

* * *

방학식을 맞이하여 아이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방학 계획표 다 받았지?”

“네!”

아이들의 대답이 활기찼다. 평소에도 이렇게 씩씩하게 대답하면 얼마나 좋아.

희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성적표 부모님 잘 보여드리고!”

“네에!”

“방학 때 푹 쉬고, 다치거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와. 그럼 인사할까?”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아이들의 인사를 끝으로 아이들은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모처럼 한가한 오후 시간을 맞이해서 이슬을 제외한 6학년 교사들이 교사 연구실에 모였다. 이슬은 내일이 결혼식이라 방학식 끝나자마자 조퇴했다. 특별휴가를 신청해도 된다고 했지만 학기 마무리까지 다 할 거라며 이슬은 고집을 피웠다.

“드디어 방학이네요.”

“그러니까요. 저는 6학년 담임 처음 해서 엄청 긴장했거든요. 그런데 올해 6학년 애들이 너무 착해서 학교폭력도 거의 없었잖아요. 내 친구도 6학년 담임인데 거기는 6학년 애들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학폭도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난대요.”

“헉! 말만 들어도 머리 아프다!”

“방학 때도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나가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희우 맞은편에 앉은 혜정은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동료 교사들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말이 없지는 않았기에 한참 수다를 떨던 다른 교사들이 혜정을 보며 물었다.

“혜정 샘, 어디 아프세요?”

4반 선생님의 질문에 혜정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니야.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나 오늘 조퇴 신청했어요.”

“아, 네. 메시지 보내신 거 봤어요.”

“결재도 다 받은 거니까 이상한 소문은 좀 안 냈으면 좋겠어요.”

“네?”

“방학 잘 보내고, 개학 날 봐요.”

혜정은 자기 말만 하고 교사 휴게실을 나가 버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헐. 우리 의심하는 거 맞죠? 혜정 샘 근무지 무단이탈한 건으로 교무실 불려간 거.”

“그러네요. 어쩜 저렇게 이야기하지?”

“혜정 샘 때문에 우리도 한 소리 듣고 왔는데. 너무 하네, 진짜.”

지극히 혜정스러운 행동에 희우는 딱히 화가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얌전하다는 생각도 했다.

“교실 정리 다 했죠? 아참! 이슬 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

분위기도 바꿀 겸 희우가 상큼하게 웃으며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저요!”

“저도 갈 수 있어요.”

희우의 질문에 6학년 교사들 대부분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런데 결혼식 장소가 창원이라서 어떻게 움직이죠?”

“여기서 운전 가능한 사람이 우정 샘하고 준환 샘?”

“앗! 저 차가 수리 들어가서요. 주말 지나야 수리가 끝난대요.”

준환이 곤란한 표정으로 답했다. 희우는 운전을 할 수는 있었지만 즐기지 않았고, 장거리 운전은 좀 걱정이 됐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을 마친 희우가 앉아 있는 다른 교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우정 샘하고 내가 운전하는 걸로 해요. 차에는 세 명씩 타면 되겠다. 그죠?”

“네!”

“그럼 우리 내일 어디서 볼까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만 모처럼의 나들이에 희우는 괜히 마음이 설렜다.

* * *

“기현태 본부장님? 현태야!”

몇 번을 불러도 현태가 대답이 없자 수정이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제야 들었는지 고개를 번뜩 든 현태가 수정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제 출발해야 돼.”

“어딜?”

“이것 봐! 잊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오늘 우리 부서 회식이잖아. 너하고 나 발령받고 나서 첫 회식이라 꼭 참석해야 한다고 내가 다섯 번은 이야기했잖아. 기억 안 나? 네 시간 맞춰서 겨우 오늘 정한 거야.”

수정이 팔짱까지 끼고 잔소리를 해 댔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회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까부터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자리 싫어하는 거 알아. 그래도 부서원들 모두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니까. 잠깐이라도 참석하고 가.”

수정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번에 큰일을 겪으면서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었다. 희우에게는 조금 늦는다고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잠깐 시간을 내서 집에 데려다주고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식 장소가 어딘데.”

현태의 질문에 수정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 * *

회사 근처 고깃집 안.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근처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다 보니 예약하기도 어려웠다며 직원 한 명이 너스레를 떨었다.

“캬아, 본부장님과 함께 회식이라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로또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