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254)

* * *

뺨과 목에 더운 숨과 함께 입술이 닿아 왔다.

부끄러움과 뜨거운 시선이 맞부딪치다가, 서로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가만히 있어.”

세화가 제 옷 매듭에 손을 올리려는 것을 백기하가 막았다.

전부 다 자기가 하겠다는 말에 그녀의 고개가 슬쩍 옆으로 틀어졌다.

‘이거 풀기 어려울 텐데.’

그리고 세화의 걱정처럼 그는 여러 번 손을 잘못 움직였다.

“……이, 이게 왜 잘 안 되지?”

반대쪽 고름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더 단단히 고정하기도 했고.

“이게…… 아닌가?”

치마 역시도 매듭을 찾다가 더 세게 잠가 버리기도 했다.

그가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환족의 의복은 잘만 벗기더니 인세의 옷에선 이리 헤매고 있을 줄이야.

“…….”

그 웃음소리를 들은 남자의 목덜미가 더더욱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분주한 손만은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어스름한 촛불 사이로 그녀의 동그마한 어깨가 새하얗게 떠오르듯 드러났다.

사슴같이 긴 목 아래로 보이는 쇄골의 음영에 남자의 울대가 순간 격하게 움직였다.

그 찰나의 반응을 세화 역시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나비 날개처럼 애처롭고 긴 속눈썹이 약간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며 내려앉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백기하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 그녀가 그러했듯 따뜻한 애정을 담아 제 입술을 눌렀다.

그 온기가 닿은 부분부터 손이 저렸다.

그녀의 얇은 눈꺼풀이 다시금 떨리는가 싶더니, 채 사라지지 않은 부끄러움 사이로 많은 감정과 단단한 믿음이 뒤섞인 시선이 드러났다.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손바닥을 들여다본 듯 알 수 있었으니까.

아니. 제가 하고 싶은 일이 곧 상대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감각이 곤두서고, 나른했던 공기가 단번에 묵직해졌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입술이 겹쳐졌다.

닿는 듯한 가벼운 입맞춤이 상대의 호흡마저 집어삼키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녀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던 물그릇과 수건들이 백기하의 손길에 성급히 밀려났다.

“……아!”

그의 혀가 그녀의 붉고 도톰한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치열을 더듬으며 입천장을 간질이던 가벼운 움직임이 곧 그녀의 입술을 빈틈없이 삼킨 채 신음과 호흡마저 가져가 버렸다.

“흐…….”

머리가 어지러웠다.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걱정하던 이 남자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셨을 리가 없는데, 이 혀는 대체 왜 이리 달콤한 건지.

서로의 타액으로 미끈하게 젖은 혀가 제 안쪽을 간질일 때마다 세화는 매달리듯 그의 단단하고 각진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조금 더 바짝 다가서고 싶어서, 겉옷만 훑어 내렸던 그의 의복 목깃 사이로 가는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대로 밀어젖혔다.

근육의 움직임이 선명한 단단한 몸이 그녀의 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밤새 비가 내린 공기는 서늘했지만 몸은 금세 달궈지기만 할 뿐 조금도 열이 식지 않았다.

신음과 한숨이 동시에 흘러나온 순간 그들은 지금 닿지 않으면 숨이 멎기라도 하듯 절실하게 서로의 드러난 맨몸을 끌어안았다.

상대의 매끄러운 피부 위를 세세히 더듬으며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찾아냈다.

탄탄한 가슴을 문지르던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끝이, 어깨를 지나 척추뼈를 따라 그의 등줄기를 문지르며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

그의 몸이 순간 바짝 긴장하며 두터운 목 안쪽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울렸다.

뜨거운 팔이 그녀의 몸을 끌어당겨 제게 더 바짝 붙였다.

“세화.”

짧은 음성에 무서울 만큼 다급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 채 벗겨지지 않고 거추장스럽게 남아 있는 의복을 벗어 내렸다.

“세화.”

달아오른 목소리가 연신 그녀의 입술을 불렀다.

그녀는 이런 때가 좋았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더 생각할 수 없다는 듯. 그가 오로지 그녀만을 눈에 담고, 조금이라도 더 세차게 서로를 끌어안기 위해 조급함을 보이는 이런 때가.

이건 그저 욕망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깊이 있는 마음은 알아보지 못할 도리가 없다.

하여 그녀도 그 늪에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달아날 생각도 없지만 달아나게 놓아두지도 않을 그 깊고 점성 있는 감정에.

“잠…… 흐읏!”

붉고 도톰한 그녀의 입술이 또다시 한입에 삼켜졌다.

갈급하게 움직이는 그의 혀가 안쪽을 훑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뒤틀렸다.

그는 그 작은 저항조차 막아 내려는 듯 곡선이 완벽한 그녀의 등줄기를 커다란 손으로 잡으며 내려가 얇은 허리를 또다시 제게 바짝 붙였다.

“하아……. 세화. 주세화.”

강하게 빨린 입술이 금세 부풀었지만 그는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하얗고 동그마한 가슴이 그의 맨가슴 위로 바짝 짓눌리는 느낌이 선명했다.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고정한 그가 다른 손으로 제 가슴 위로 닿는 둔덕을 손에 가득 움켜쥐었다.

“으, 흣……! 흣!”

다른 이가 만져 보지 않은 곳을 아플 정도로 잡아 오는 악력에 그녀가 도리질 쳤다.

하나 그는 그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호흡을 달게 받아 마시고 신음을 집어삼켰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가 주변을 정신없이 오갔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새로운 신수로 탈바꿈하는 그녀를 보았을 때의 제 불안감을.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마음도 진짜고, 그녀의 탈피를 기뻐하는 마음도 진심이며 그녀가 더욱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으면 하는 바람도 정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뒤를 언제까지고 지켜 낼 거라는 다짐도 더할 나위 없이 진심이었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 낯선 불안감은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아올랐으면 하면서도 제 옆에만 있어 주었으면 하고.

너른 환계를 앞마당처럼 달리게 하고 싶으면서도 너무 멀리 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이 이중적인 마음은. 너무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만은.

아찔하도록 민감한 그녀의 안쪽 피부를 제 혀로 맛보고, 체온이 생생히 전달되는 맨몸을 강하게 끌어안는 동안에는 어쩐지 이 여인을 온전히 제가 소유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여 그는 붉고 도톰한 살덩이를 갈급한 사람처럼 삼켰다.

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온 얼굴에 촉촉이 제 입술을 눌렀다.

미려한 얼굴선을 오가던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귓불 근처를 간질이다가 하얀 목을 타고 점점이 내려왔다.

그런 그의 행동이 버거울 만도 하건만 세화는 그를 밀어내거나 몸을 뒤로 빼는 대신 오히려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딱딱해진 그의 어깨를 언제까지고 다독이고, 제 모든 체온을 나눠 주고 싶었다.

때때로 보여 주는 그의 표정이 그녀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어떤 결심이 그토록 무거웠는지.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그녀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걸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줄 수 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여 그의 시선 앞에 낱낱이 드러난 하얀 가슴 위로 그의 입술이 내려앉는 동안에도.

그녀는 오히려 새까만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혼인하는 거예요. 미리.”

그가 잠시 멈칫했다.

하얀 둔덕 위를 배회하던 열감 어린 시선이 그녀를 향해 올라왔다.

“어떻게 말해도 당신은 나에 대한 책임감을 내려놓지 않을 테니까요.”

세화는 제 눈앞에서 빛나는 그의 수려한 눈가를 쓰다듬다가 눈썹 사이에 입을 맞췄다.

굳어진 그의 눈 끝에도 입을 맞추고 선이 완벽한 코끝과 살짝 벌어진 입술 끝에도 입을 맞췄다.

“나도 당신을 그렇게 아껴 주고 싶어.”

당신이 해 준 것처럼.

세화가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속삭였다.

“늘 당신의 옆에서 손을 잡아 주고, 건강과 식사를 챙겨 주고. 더 이상 내가 아닌 당신 스스로를 위한 일만 하게 해 주고 싶어요.”

그의 눈가가 설풋 떨렸다.

“늘 웃게 해 주고 싶고, 계절마다 의복을 꼼꼼히 신경 써서 챙겨 주고 싶고, 그러다 당신이 아플 때면…….”

그녀의 시선이 단단한 몸 위를 잠시 떠돌았다.

“그 녀석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놈의 영력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냐?”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잘못될 것이라는 교룡의 말보다 그의 상태가 더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신을 고쳐줄 방도가 있을까.

혹 정말 내가 그 빛의 폭포 속에서 사라져야 한다면 그 전에 반드시 당신을 낫게 해 주어야 할 텐데.

“당신이 아플 때면 밤새 그 옆에 앉아 당신을 간호하고. 아프지 말라고 손을 잡아 주고.”

그녀가 다시금 그의 얼굴 위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 밤 내내 내가 당신 대신 아프고 싶겠죠.”

세화가 떨리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갛게 웃었다.

“사랑하니까.”

“……!”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그의 시선이 격하게 요동쳤다.

“그러니 당신은 뭐가 되었든 불안해하지 말아요.”

내가 다 고쳐 줄 거니까. 어떻게든.

잃어버린 당신의 불사를 돌려주고. 그 몸을 낫게 하고.

나 또한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당신의 곁에서 오래도록 손을 잡고 있을 거니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한 그의 시선과 마주하며 다시 한번 웃었다. 코끝을 부딪친 채 짧게 물었다.

“알았죠?”

“…….”

“왜 말이 없어요. 알았죠?”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게.

백 서방이라는 호칭을 몇 번이나 곱씹고 세화의 짧은 질문에 늘 같은 답변을 반복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그저.

“……주세화.”

신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간신히 꺼내 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이름 하나로 그녀는 아주 많은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붉어지는 그의 눈가와 떨리는 그의 입술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여 그녀는 애처로운 그의 몸을 끌어안고 제가 먼저 그의 입술을 삼켰다.

가느다랗게 유지되던 그의 인내심은 그때 끊어져 버렸다.

그가 그녀를 왈칵 끌어안았다.

신음과 숨이 순식간에 섞여 들던 순간, 비단 금침 위로 그녀를 눕힌 그가 빈틈없이 그녀의 위를 제 몸으로 감쌌다.

“주세화.”

그의 것이 아닌 듯한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마치 짐승처럼 위협적으로 흘러나왔다.

“……절대로.”

그녀가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입맞춤이 숨 가쁘게 시작됐다.

“으……흣!”

하얀 다리가 옆으로 벌어진 채 그의 큰 손 아래에 짓눌렸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 위로 붉은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절대로.”

푸른 혈관이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를 물고 빨며 아플 정도로 부푼 욕망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체온이 자비 없이 뒤섞였을 때였다.

“흑……!”

그녀의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됐다.

처음 겪어 보는 열락은 그녀의 머릿속을 송두리째 날려 버렸다.

“흐…… 하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라고.

그는 가쁜 호흡 사이로 처음으로 제 본심을 그대로 내보였다.

그녀의 체온이 그에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호흡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고 가는 몸은 아무리 힘주어 끌어안아도 부족하기만 했다.

하여 그녀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한 번 더 말해 달라고.

그것이 부탁인지 다그침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으나. 점점 더 빨라지는 그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아득하게 멀어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의 몸을 세차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사랑, 해요.”

그의 붉어진 눈가로 거센 탐욕이 들어찼다.

흉포한 소유욕과 깊이를 모르는 애정이 혼돈처럼 번져 들었다.

그가 본능대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의 눈앞에도 불꽃이 튀었으나 그는 단 한시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열락의 시간이 갈라진 신음을 품은 채 조금도 쉬지 않고 그 밤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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