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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둑 키스 (2/72)

2. 도둑 키스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듯 급박하게 내려앉았다.

“앗!”

내부가 흔들리자, 재혁은 이나를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괜찮아요?”

“네.”

재혁은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비상 버튼을 눌러 보았다.

인터폰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이나가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일까요?”

“잘 모르겠군요.”

그때, 엘리베이터가 다시 흔들렸다.

“추락하나 봐요.”

“쉽게 추락하지 않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재혁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배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천장에 쿵- 하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엄맛!”

“뭐야? 안에 누구 있어요?!”

“사람 있습니다.”

재혁이 대답하자, 위에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점검 중이라니까, 왜 거기는 올라탔대?!”

“야! 사람 탔는지 확인하라고 했지?!”

“아까 분명 다 내렸는데… 문이 잘못 열렸나?”

자신들을 두고 싸우고 있는 그들을 향해 재혁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되는 겁니까?”

“쫌만 기다리세요. 이거 끝날 때까지는 어차피 못 나가니까.”

“안전한 겁니까?”

“당연하죠. 층마다 안전장치 다 되어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5분만 기다려요. 바로 내려 드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툴툴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이 멀어졌다.

“다행이군요.”

“네, 놀랐어요.”

상황이 파악되자, 이나는 재혁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녀를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채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닿은 그의 가슴 언저리에서 체취가 시원한 향수 향기와 함께 몰려 들어왔다. 자꾸만 중독되는, 그런 향이었다.

이나가 부담스러운 마음에 어깨를 비틀자, 재혁은 잊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놓아주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재혁은 아쉽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왜 아쉬워 하는 거지 강재혁?’

그 사이, 어둠 속에서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다시 엘리베이터가 덜컹대며 내려앉았다.

“앗”

예상 못 한 흔들림에 재혁은 다시 한번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음에도 그의 손은 능숙했다.

잠시 뒤, 점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 정도 더 흔들려요~”

“그렇다는군요.”

재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저 혼자 설 수 있. 엄맛!”

이나가 빠져 나오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덜컹거림이 강해질수록 이나를 끌어 안는 재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근- 두근-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이나의 귓가를 울렸다.

“….”

잠시 후, 덜컹거림이 끝나자 위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됐습니다. 이제 아래층에서 문 열어 드릴게요.”

“네.”

어둠 속이었다.

이제는 나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던 찰나.

이나의 입술에 무언가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그것은 분명 입술이었다.

껴져 있던 불이 켜졌다.

놀란 이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 것도 모른 척하며 앞을 보고 있는 재혁이었다.

‘뭐지? 착각한 건가?’

그녀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그럼.”

 재혁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성큼성큼 멀어졌다.

“저!”

이나의 외침에 재혁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렇지 않은 재혁의 표정에 이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아니요.”

재혁은 몸을 돌려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다짜고짜 키스한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매만져 보았다.

입술이 닿았던 촉감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

재혁의 말은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이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예 없던 일로 하지는 맙시다.’

아리송한 말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조금만 아는 척을 하자는 건가? 아니면 모른 척을 하자는 걸까?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덧 공항에 도착했다.

마침 제주행 비행기가 도착해 있었다.

언제 나올까 고게를 갸웃할 때, 문 안쪽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찬아!”

이나가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자 엄마 역시 이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엄마와 손을 잡고 있던 다섯 살배기 아이가 이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이를 보자, 이나의 얼굴에 회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찬아!”

“엄마아!”

아이가 품에 안기자 이나는 있는 힘껏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잘 갔다 왔어?”

“웅!”

“엄마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다가온 엄마가 이나를 향해 말했다.

“밤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얼마나 칭얼댔는데~ 안 그래요, 왕자님?”

“그래도 차니 안 울었어. 그치? 할머니?”

“그래? 우리 찬이 이제 다 컸네?”

“응! 나 다 컸어!”

그렇게 해후의 기쁨을 나누는사이, 엄마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섰다.

찬의 유치원 선생님인 김 선생님이었다.

김선생님을 본 이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못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저희 엄마 잘 챙겨 주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해요.”

“어유 감사라뇨. 저야말로 너무 감사했는걸요. 감귤 농장에서 농사 도울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하하~ 아주 우연~~히 만났는데 참 다행이네요.”

수줍은 김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이나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제주도에 간 엄마가 김선생님을 만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이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엄마는 김선생님 옆으로 다가가 그를 칭찬했다.

“말도 마. 얼마나 고마웠는데! 차도 태워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우리 집이랑 가깝다면서, 오늘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요?”

엄마의 말에 김 선생님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가 막 대답하려는데, 이나가 그의 말을 막았다.

“피곤하실 텐데 실례야.”

“아니요. 저는,”

“감사해요. 제가 나중에 유치원에 찾아뵐게요.”

이나의 말에 김 선생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깃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는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안 그래도 저도 그… 약속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어머님. 그럼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가시죠.”

김 선생님이 무거운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자, 이나가 캐리어를 빼앗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밖에 택시 잡아 뒀어요.”

“택시…요? 제가 태워 드리면 되는데…!”

“아니요. 돈까지 다 냈어요.”

“어차피 집도 근처고….”

엄마는 김 선생님과 이나를 이어주려는 듯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끼어들었다.

“그래~ 어차피 같은 방향인데 그냥 타고 가자.”

“아니야, 택시 기사님 오래 기다리셔서 안 돼. 찬아. 선생님 가신대. 인사해야지.”

“또 뵙겠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찬이가 황당한 인사를 하자, 김 선생님은 귀엽다는 듯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럴 때는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하는 거야.”

“네! 안녕히! 가세요!”

“그래, 찬이. 월요일에 보자?”

“네!”

이나는 미련 없이 뒤돌아 게이트로 향했다.

김 선생님은 아쉬운 듯, 세 사람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게이트를 나온 이나는 택시 승강장을 지나서 버스에 올라탔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불평을 툴툴댔다.

“그럴 줄 알았다, 택시는 무슨.”

이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다.

찬은 피곤했는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이나의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김 선생인가 그 사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언니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데, 다 힘쓸 일뿐이더라니까.”

다시 한번 김선생을 추켜세우는 말에 이나는 재빠르게 화재를 돌렸다.

“이모는 어떠셔?”

“아파 죽지. 그래도 김 선생이 비료 주는 거랑, 급한 불은 껐으니까 이제 치료만 해야지.”

“다행이네….”

“그, 김 선생인가 하는 사람, 참 이상하지?”

“뭐가?”

“아니, 휴가를 왔다면서 왜 3박 4일이나 농장에서 일을 해 주냐고. 어떻게 알고 왔을까? 네가 말했어?”

“내가 뭐 하러.”

“찬이가 말했나? 하여간, 김 선생 덕분에 잘 있다 왔어. 하루 종일 농장 일 도와주고, 저녁에는 나랑 찬이랑 언니까지 태워서 여기저기 구경도 가고.”

“….”

“그 사람, 너 좋아하나?”

“엄마, 찬이 있잖아.”

“뭐 어때. 찬이도 아빠처럼 잘 따르던데, 넌 생각 없니?”

“없어. 그만해.”

“뭘 그만해. 이런 말만 나오면 꼭 그러더라?”

“누구 만날 생각 없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만나야지. 으구… 불쌍한 것. 아빠도 없이.”

엄마가 측은한 듯 찬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엄마는 이런 얘기를 할 때면 꼭 찬을 끌어들이곤 했다.

이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

문득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강 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 그리운 건가…?’

차창 밖으로 바라본 김포 대교의 한강은 노을빛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어젯밤.

재혁은 강남의 한 클럽 복도를 걷고 있었다.

“이 방입니다.”

재혁은 노크도 없이 방문을 확 열었다.

방 안에는 네 쌍의 남녀가 잔을 나누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화를 내려던 그들은, 들어온 사람이 재혁인 것을 확인하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 버렸다.

재혁이 안으로 들어서자, 방의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남자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형 왔어?”

재혁의 사촌 동생이자, 재혁의 전 약혼자 유리와 만나고 있는 현준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재혁은 들고 온 선물을 테이블 위에 툭- 하고 던졌다.

그 탓에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이 넘어지며 담겨 있던 술이 테이블 아래로 쏟아졌다.

“아씨! 아! 아닙니다, 형님.”

재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준에게 말했다.

“간다. 작은아버지께 제대로 말해.”

재혁이 할 일 다 했다는 듯 돌아서자 현준이 그를 불렀다.

“형, 이왕 왔는데 유리 좀 보고 가지? 화장실 갔는데.”

현준의 말에 방안의 분위기가 다시 얼어 붙었다.

재혁이 현준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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