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네?”
순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놀랐지만, 나는 간신히 내색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겁니까?”
“네? 뭘……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불.”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 덕에 이안의 움직임이 대충은 보였다.
나는 이안이 가리키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내 오른손이, 이불을 주름이 가도록 꽉 쥐고 있었다.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얼버무리려 입을 연 때였다.
“불안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내 손에 쥐어진 이불의 주름이 더 심해졌다.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대는 거짓말에 참 소질이 없습니다.”
소질이 없기는.
‘바보.’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면서.
“뭐가 당신을 그렇게 불안하게 하는 겁니까?”
“아니라니까요, 그런 거. 잠이 안 와서 그래요?”
“이상해서 그럽니다.”
이안이 내게로 돌아눕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시선에 나는 괜히 눈을 꾹 감았다.
“……뭐가 이상한데요.”
“날 상대로는 온갖 잔꾀를 써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던 당신이.”
“…….”
“대체 무엇을 잠도 못 이룰 정도로 어려워하는 건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지금 나를 추궁하는 게 아니었다.
또 뭘 숨기고 있는 거냐고 으르고 노려보던 평소와는 달랐다.
그래서 더,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뭐. 털어놓으라는 이야긴 아닙니다. 어차피 난 고민 상담에 소질도 없으니.”
“…….”
“하지만,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도와주시겠다고요?”
“들어 보고.”
그럼 그렇지. 나는 입을 삐죽였다.
웬일로 다정한 말을 하나 했네.
이안이 픽,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낮게 웃었다.
“그러니 불쌍한 이불은 좀 놔주십시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옅게 웃음기 어린 저 말이, 꼭 무뚝뚝하게나마 나를 위로하려는 것 같아서.
‘저 냉혈한이 그럴 리 없다는 건 알지만.’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 갔다간 이안에게 내 비밀을 들킬 것만 같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안 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이불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때쯤이었다.
“내일 보죠.”
나지막한 밤 인사가 귓가를 울렸다.
그날 밤, 나는 결국 펜던트를 꺼내 놓지 못했다.
* * *
“드디어 보여요!”
차창에 코를 박은 채 내가 외쳤다.
저 너머로 수도의 외벽이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수도가 엄청 번화하긴 했구나.’
리칼리온도 국경을 책임지는 요새 도시인 만큼 나름대로 정비가 됐다는 느낌이었는데, 수도의 화려한 아름다움과는 역시 차원이 달랐다.
검문소에서 잠시 검문이 있었으나, 이안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병들은 잽싸게 경례하곤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마차 행렬이 수도 안으로 매끄럽게 입장했다.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오늘 주말인가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물론 수도는 어딜 가든 사람에 치이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거리가 꽉 차 있진 않았다.
게다가, 다들 우리 마차 행렬을 보며 환호하는 것 같은데?
‘잠깐. 설마, 이 사람들.’
전부 우릴 마중 나온 거야?
나는 잠시 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들리는 사람들의 함성이 내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제국의 수호자들이시여!”
“귀환을 환영합니다!”
앞을 내다보자, 말을 탄 성기사 중 몇몇은 헤벌쭉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기도 했다.
“엇, 성녀님이시다!”
고개 내민 나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성녀님! 여기도 봐 주세요!”
“꺅! 여기도요!”
“성 재스퍼 님의 환생체시여!”
또 나왔네, 저 환생 소리.
굉장한 부담감에 나는 말문이 꽉 막혀 버렸다.
그때, 웬 인간들이 마차 행렬의 속도에 맞춰 미친 듯이 달리며 외쳤다.
“성녀님!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제국일보에서 나왔습니다! 게이트에 흠결이 있음을 어떻게 예지하신 겁니까!”
“엘룬 신께서 매일 성녀님 꿈에서 예지를 속삭여 주신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나는 마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기자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수도로 들어와서 속도를 낮추고 있다지만, 저게 가능해? 이 나란 달리기 실력으로 기자를 뽑나?
“성녀님! 제발 한 말씀만!”
“성녀님의 예지 덕분에 수천 명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그래.
워프 게이트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졌구나.
허풍쟁이가 되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취재당하는 건 익숙하지 못했다.
마차와 같은 속력으로 달리는 기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말을 버벅대고 있을 때였다.
“미안하지만.”
이안이 불쑥 내 등 뒤로 다가왔다.
“내 부인께선 수줍음이 많으셔서.”
그렇게 말한 이안이 커튼을 내려 버렸다.
“꺄아아악―!”
잠시 뒤, 마차 밖에서 미친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 * *
“밖이 소란스럽군.”
황제, 라시드가 툭 던지듯 말했다.
막 그에게 보고서를 건네던 국무대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 조아렸다.
“그, 그러하십니까? 소인의 귀엔 잘 들리지 않습니다만…….”
그럴 리 없었다. 아주 잘 들렸다.
“성녀님 만세!”
“꺄악, 이안 님! 한 번만 봐 주세요!”
최고 인기의 음유시인이라도 맞이한 듯한 저 함성이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황성에서 중앙 대로가 있는 번화가는 꽤 거리가 떨어진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전해질 만큼 거대한 함성이었다.
“이안의 귀환일이 오늘이었던가?”
“예, 예. 그렇습니다, 폐하.”
고개 조아리며 국무대신이 식은땀을 더 흘렸다.
라시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그 속을 국무대신이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안의 탄생부터 제 동생에 대한 열등감으로 몸을 뒤틀었던 라시드다.
이안의 귀환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반응 역시 탐탁잖을 게 분명했다.
‘폐하께서는 아직 백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신 상황이니 더더욱…… 흐흠.’
라시드의 눈치를 보며 국무대신은 생각에 잠겼다.
라시드는 젊고 잘생겼으므로 인기 있을 요소가 충분했지만, 그의 황위 계승 과정에서 발생했던 의혹이 문제였다.
선황 부부의 갑작스러운 타계.
오래 앓던 폐병이 악화되어 선대 황후가 먼저 사망했고, 그 뒤 선대 황제가 의문사를 당했다.
라시드는 선황의 의문사가 이민족 라쿰의 짓이라 결론 지었고, 그 보복으로 라쿰의 본거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여전히 선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갖고 있었다.
‘선황 폐하께서 이안 황자님을 황태자로 책봉하기 전 미리 죽여 버린 것이 아니냐는…….’
“국무대신.”
라시드의 살벌한 목소리에 국무대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 부르셨사옵니까. 폐하?”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내용이, 사실인가?”
라시드의 살기 어린 눈동자에 국무대신이 움찔 굳었다.
‘헉.’
화나셨다.
국무대신은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역시 화를 내실 줄 알았다.
저 보고서는 조금 전 마탑에서 황실로 보내온 것이었다.
오늘 새벽 발견된 신물질, ‘성마석’의 존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었다. 기존의 마력석보다 훨씬 강력한 이 새로운 마석은 제국의 번영을 불러올 것이다.
‘문제는, 성마석을 발견한 것이…….’
국무대신은 황제에게 들르기 직전 읽어 보았던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성마석은 내재된 힘이 강력한 만큼 인체에 직접 접촉하면 마력 과다 흡수 현상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리칼리온의 백성들은 이러한 성마석을 성석으로 오해해 환자의 몸에 접촉시키는 등 오용을 저질렀습니다.’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해 준 귀인이 없었더라면, 모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마석의 위험성을 경고해 준 이.
그게 다름 아닌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 아이린 그레이스였다고 했다.
‘안 그래도 게이트에 흠결이 있다는 걸 예지했다는 이유로 다들 그 여잘 떠받들고 있는데!’
전문가인 마도학자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결함을 새로운 성녀가 예지했다.
그 사실은 제국민들에게 엄청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전설 속 예지의 성녀인 재스퍼가 환생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국무대신은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잘된 일이 아닙니까? 성녀 아이린은 이안 님의 부인. 즉, 황실의 일원입니다. 성녀 아이린의 인기가 높아지면 자연스레 황실의 인망도 드높아질-”
“그렇게 생각하나, 국무대신은?”
라시드가 희번덕 눈을 부라렸다.
국무대신은 꿀꺽 침을 삼켰다.
내내 잠자코 듣고 있던 황후, 로렐라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은 참 좋겠군. 머릿속이 그리 꽃밭이니 살아가며 걱정이 없겠어.”
“황, 황후 폐하. 신은 그저…….”
“내, 친애하는, 동생이.”
콰직, 보고서를 구기며 라시드가 씹어뱉듯 말했다.
“처음으로 여자를 안았다. 차라리 그 상대가 하찮았다면 나는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 아니, 오히려 박수라도 쳤을 거다.”
“…….”
“하지만, 그 상대가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권능을 지닌 성녀라? 고작 두 달 만에 중대한 일을 두 개나 예언하다니. 이 정도로 뛰어난 성녀가 제국에 또 있었던가?”
“그, 그것이…….”
라시드의 말에 황후의 표정이 순간 얼음처럼 굳었다.
국무대신이 뻘뻘 땀을 흘리며 황후의 눈치를 보았다.
둘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시드가 구긴 보고서를 오물이라도 된 양 저 멀리 던져 버렸다.
“평생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해 오던 놈이 우연히 사랑에 빠진 여자가 천재적인 성녀라. 경은 이게 말이 되는 확률이라 생각하나?”
“신은, 그것이…… 그러니까.”
국무대신은 이제 땀으로 목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황제가 아이린과 이안의 인기가 높아지는 걸 경계하리라는 것은 그도 예측했었다.
그러나 지금 라시드의 히스테리는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라시드의 눈이 희번덕 빛을 발했다.
“내 친애하는 아우가, 이 형님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지.”
“……예?”
국무대신이 예의도 잊고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또 시작이시군. 이안 님에 대한 저 밑도 끝도 없는 의심병……!’
“내 아우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성격이야. 사랑이란 건, 받아 본 자가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라시드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안이 응당 받았어야 할 황실 어른들의 애정을 가로챈 건 다름 아닌 라시드임을 알았기에, 국무대신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아우가 성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아니. 난 다른 쪽에 걸지.”
라시드의 시선이 창문 너머, 함성이 울리는 쪽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황위에 욕심이 난 동생이 성녀를 포섭했다고 말이야. 이 형님을 치기 위해서.”
국무대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라시드의 광기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안에 대한 열등감이라는 이름의 광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