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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64)화 (164/218)

164화

저분이 취했나?

신재헌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오랜만에 한잔하신 건 맞지만 저렇게 취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그를 도와주러 가려던 신재헌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비틀거리던 주이안이 팔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헛손질하는 모습이었다.

“!”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가눈 건 S급의 균형감각일 것이다.

물론 쓰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주이안을 지켜보던 신재헌은, 그에게 뭐라고 하는 대신 소리 없이 다가갔다.

“…….”

다소 난감한 얼굴로 와인창고를 헤매고 있던 주이안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떨어뜨릴 뻔했다.

―탁.

와인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면 신유리나 소예리 헌터에게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기겁했던 주이안은 누군가 병을 받아주자 멈칫했다.

“아…….”

그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신재헌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신재헌은 그의 눈을 지켜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감사합니다.”

그 사이 주이안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담담한 목소리다.

하지만 신재헌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컨디션 안 좋으세요?”

그의 목소리에 주이안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그는 그렇게 넘어가려는 듯했다.

―달칵.

하지만 신재헌의 답 대신 돌아온 건 와인창고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

주이안이 멈칫하는 사이 신재헌이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왔다.

“얼마나 안 좋으세요?”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정말요?”

“네.”

문답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잠시 침묵하던 신재헌이 불쑥 물었다.

“그럼 이건 왜 못 봐요?”

그는 어느새 앞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말레티아의 검이 주이안의 목 옆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있었다.

아무리 힐러와 딜러의 동체시력에 차이가 있다지만, 정면에서 목으로 다가오는 검을 보지 못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시야가 흐려졌음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 좁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이건.”

뒤늦게 제 목 근처로 다가온 붉은 대검을 발견한 주이안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신재헌이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교황이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문이야 들었지만, 단순한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단안경을 쓰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소하다면 사소한 소식 하나를 들었을 때부터는 느낌이 이상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가 종이를 멀리하며, 대외활동 시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될 낭독문을 모두 외워온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신재헌의 의심에 불을 지핀 건, 저번 학교 RP던전이 끝난 직후였다.

‘……?’

그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린 주이안 헌터는, 제 손에 보상으로 놓인 학생증이 처음엔 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치유 계열 스킬은 특히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은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더 많은 치유 스킬을 썼던 던전은 수두룩하게 많았는데.

그리고 그의 의심에 완전히 도장을 찍은 건 오늘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신재헌의 치료를 끝낸 주이안은 신유리를 부르면서, 이상한 쪽으로 손짓했던 것이다.

신유리가 있는 곳에서 다소 틀어진 방향에.

눈을 다친 적은 없을 텐데 왜 저러지?

긴가민가하던 도중에 본 게 이 모습이었다.

확실했다.

다쳐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로 주이안 헌터의 시력에 이상이 생긴 거다.

“눈, 어떻게 된 거예요?”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조금 침묵하던 주이안이 말했다.

“이 던전에서 나가면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신재헌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상태 점점 안 좋아지는 거죠?”

저번 학생증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

신재헌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주이안은 침묵했다.

“혹시.”

신재헌은 그런 그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부터 의아했던 것이 있었다.

왜 자신과 소예리 헌터는 직업 보너스가 20%인데, 교황인 주이안 헌터만 50%인지.

정말, 던전이 어려워서 힐에 보너스를 줬을까?

그런 배려를 할 줄 아는 시스템이었다면 애초에 게이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스킬 효과 보너스를 받는 대신에 대가가 있는 것.

“힐 페널티예요?”

그 말에 주이안은 다시 멈칫했다. 덕분에 아니라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탁.

검을 인벤토리로 던져 넣은 신재헌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이건 보여요?”

그가 주이안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주이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쉬면 어느 정도는 회복될 거예요. 컨디션 문제도 있으니.”

저 말에는 함정이 있다.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완전히는 아니란 거죠?”

“…….”

거짓말이나 둘러대기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결국 주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재헌은 입술을 깨물어다.

“……힐할 때마다 시력에 영향이 가는 거예요?”

주이안은 그 말도 부정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한 끝에 그가 말했다.

“……팀에는 알리고 싶지 않아요. L급 던전에서 힐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의 말에 신재헌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러다가 아예 안 보이게 되면요? 이거 영구적인 거예요?”

아니면 이 빌어먹을 RP던전만 나가면 끝나는 건가?

주이안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디버프 형태로 있지만, 던전을 나가서까지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신재헌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이걸 팀에 말도 안 하고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어떡해?

물론 그런 주이안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L급 던전에서 힐러의 치유 스킬 없이 움직이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였으니까.

하지만 팀의 그 누구도 주이안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무엇이든 방법을 찾는 것이 맞았다.

비밀도 별로 없는 양반이 이번 던전에선 왜 이렇게 비밀이 많나 했더니…….

“설마 개인 퀘스트가 이거랑 관련된 거예요?”

주이안이 이번 던전에서 감춘 건 이것뿐이었다.

결국 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력을 잃지 않고 RP던전 클리어.”

그 말에 신재헌이 눈을 감았다. 새까매진 눈앞에서 주이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게 조건이에요.”

미치겠군. 뇌까린 신재헌이 눈을 떴다.

“왜 진작 말 안 했어요?”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이안 헌터는 아픈 미소를 지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나라도 말 안 했을 것이다.

신유리가 랭크 하락된 상태에서 탱커도 없는 파티가, 힐러까지 잘못됐다고?

활동 범위가 줄어들다 못해 아예 없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

신재헌이 이마를 짚었다.

주이안 헌터는 모두가 자신을 위해 몸을 사리다가 잘못되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 L급 던전에 들어선 지도 벌써 몇 개월. 지금까지 장시간 게이트를 막아온 데다 얼마 전에는 SS급 던전까지 떴으니, 곧.

결정적인 위기가 닥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주이안 헌터는 더욱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주이안 헌터, 이건…….”

그래도 이대로는 아니었다.

신재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팀에 말하고 방향을 찾죠.”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분이 자책하지 않게 해 주세요.”

신재헌은 멈칫했다.

‘그분’이 누군지 바로 알아들었으니까.

딜러 둘로 탱킹까지 끝냈던 파티가, 신유리의 랭크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신유리는 차고 넘치게 서포트하고 있었다.

그래도 때로는 조금 더, 조금 더…… 강해져야만 할 때가 있었다.

이곳이 L급 던전인 이상 그런 상황은 반드시 올 거다.

‘저택의 손님(SS)’ 같은 던전보다 더욱더.

“조금만 더 빨리 강해졌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게 자책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주이안 헌터가 다시 웃었다. 아픈 미소다.

신재헌은 소예리 헌터가 저 미소를 너무나 안타까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웃을 땐 마음껏 웃어야지, 저렇게 보는 사람도 아프게 웃는 게 어디 있어.’

그리고 그건 신재헌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신유리도 그렇겠지.

이번 뒤풀이에서 억지로나마 특단의 조치를 주이안 헌터에게 먹인 것도 다 같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혼자 안 아픈 척하지 말라고. 고통을 삼키지 말라고.

하지만.

“쉿.”

주이안 헌터가 제 입술에 검지를 대고 옅게 웃었다.

비밀로 해 주세요, 그렇게 속삭이면서.

이 사람은 또 감추려고 하고 있었다.

신재헌은 고개를 저었다.

“공략에서 빠져요. 회복이 가능한지도 불분명하잖아요. 무엇보다 시력을 잃으면,”

그가 주이안의 어깨를 잡았다.

“개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이 던전을 클리어하더라도 주이안 헌터는 던전을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치유 스킬을 안 쓸 순 없어요.”

“아뇨, 내가 어떻게든 할게요.”

신재헌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약 먹고 버티는 한이 있어도 치유 스킬은 줄이실 수 있게. 다른 두 사람한테도 말해서 공략 속도를 늦추더라도 방식을 바꿔서―”

그의 말에, 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여유롭게 클리어할 던전은 아니잖아요, 신재헌 헌터.”

좀처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싸늘한 시선과 온화한 시선이 부딪쳤다.

주이안 헌터가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거예요.”

나는, 내가 두 눈을 잃어도 좋으니, 모두가 살아 돌아가기를 원해요.

신재헌이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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