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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65)화 (165/218)

165화

포를랭 자작은 최근 위장병을 얻었다.

“물만 마셔도 속이 쓰리니, 원.”

물뿐인가? 술과 커피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부터 속이 뒤집어지니 마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근데 이젠 안 마셔도 속이 아파, 안 마셔도!”

그는 가슴을 쿵쿵 쳤다.

근래 포를랭은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은 있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었다.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

그가 씹어뱉듯 말했다.

일단 에델바이스에 보낸 리카스.

그 멍청하고 우유부단한 둘째에게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정보를 얻어내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자마자 보내온 소식이 이거였다.

[세냐가 장시간 외근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한동안은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딴 멍청한 정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 하다못해 그 애가 어딜 갔는지나]

그렇게 편지를 쓰던 포를랭 자작은 결국 화가 치밀어서 회신도 안 하고 둘째의 편지를 씹어 버렸다.

또 첫째 놈은 어떤가?

‘출, 출정한다!’

밤에만 멀쩡해지는 병이 대체 뭔지는 몰라도 진실을 알아볼 시간은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대외에 노출시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놈은 마지못해 출정한 것처럼 현장에서 뭉그적거리더니, 초보 기사들도 잡을 수 있는 몬스터 무더기 앞에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몸, 몸이 안 풀려서 그렇습니다.’

키칼은 그렇게 변명했지만 포를랭 자작 역시 검을 익힌 사람이었기에 그 변명이 영 시원치 않게 들렸다.

검 자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잖아?

게다가 키칼의 움직임은 어딘가 이상했다.

제 힘을 과신하는 것처럼 과도한 힘이 필요한 동작을 했다가 몸이 꼬여 볼썽사납게 넘어진다든지.

마치 힘이 세졌다가 급격히 약해진 것처럼.

오히려 병에 걸렸던 것이 세니아가 아니라 키칼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이런 못 미더운 놈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지.”

결국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겠군.

그가 비장한 각오로 몸을 일으켰다.

제 딸을 견제하려 든다는 일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걸 감수할 때가 되었다.

이대로 에델바이스 백작가가 더 날아다녔다가는 포를랭 자작가가 더 눈총을 받게 생겼으니까.

“어떻게 저런 실력 좋은 기사들을 골라 들이는지는 몰라도…….”

포를랭 자작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에델바이스 백작가에 관한 서류. 당연히 게이트 방어율은 99%였다.

“쯧.”

혀를 찬 포를랭 자작은 애써 부러움에 찬 시선을 거둬들였다.

기사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그들도 결국 사람.

게이트전이든 다른 전투든 가장 중요한 건 보급이다!

그는 에델바이스의 그 보급 라인을 건드릴 생각이었다.

“네 맘대론 안 될 거다, 세니아.”

그가 이를 갈며 방에서 나갔다.

***

그리고 얼마 후.

“돌아오셨습니까, 마탑주님!”

“탑주님의 활약이 대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자자합니다!”

소예리는 에델바이스의 마력석 광산으로 돌아오자마자 찬양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별것 아니었어요.”

클로나 에이센은 사근사근하고 조용한 성격답게 그 말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였지만, 소예리는 달랐다.

맞아! 내 공도 뛰어났지! 얼른 더 찬양해!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빼도 박도 못하게 페널티였으므로, 그녀는 표정을 능숙하게 감추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연구에 진척은 있었나요?”

“아, 예!”

마법사들이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건 에델바이스에서 처음 채취된 마력석입니다. 이 지역 마력석의 마력 방향이…….”

그러면서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충 에델바이스 마력석 광산의 무늬가 어떤 식으로 나타난다더라, 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렇네요.”

마력석 샘플을 살펴본 소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석에는 꼭 인쇄한 것처럼, 신기할 정도로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가지고 오신 마차는 어떻게 할까요?”

마법사 하나가 불쑥 물었다.

“마차요?”

마차를 내가 왜 가져와? 난 날아왔는데?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밖에 나가 보니, 정말 마차가 있었다.

“보급 마차?”

이게 왜 여기 있지? 그냥 지나가는 길 아냐? 에델바이스 보급 마차인가?

“이건 제 마차가 아니에요.”

끌고 온 것도 아닌데.

[감정(B)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예리가 습관적으로 스킬을 사용해 마차를 살폈다.

“?”

어라?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보급물자]

보급물자로 나오는 건 맞는데…….

[소유주 : 포를랭 자작가]

소유주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닌데요?

다가가 확인해 보니 내용물도 가관이었다.

겉은 잘 포장되어 있었지만 감정 스킬엔 분명히 보였다.

[식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보임]

감정 스킬은 주이안 헌터의 독 감지 스킬과는 달라서 물건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게 먹을 것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지!!!

이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포를랭 자작가에서 수작질을 부린 거였다.

하여간 그 늙은이, 가만히 있어도 곧 리카스 드 포를랭이랑 같이 모가지가 떨어질 텐데 기다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최근에 이 근처엔 비도 안 왔는데, 마차가 젖어 있습니다.”

그때 소예리와 함께 물건을 살피던 마법사가 말했다.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러게요?”

포를랭에는 비 왔을걸? 소예리는 예쁘게 웃었다.

“아무래도 마차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그녀가 마부를 보니 마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포를랭에서 온 자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이 마차, 중간에 멈춘 적 있나요?”

“예, 예?”

마부는 화들짝 놀랐다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당, 당연히 있습니다. 저희도 식사를 하니까요.”

주변의 호위 인력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겁에 질린 얼굴은 똑같았다. 뭐에 협박이라도 당해서 짐을 바꿔치기 당했나?

대충 각본이 짐작이 갔다.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저렴하다 저렴해]

소예리가 혀를 차며 채팅을 올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유리)>>> 왜요 뭐가 저렴해 나도 같이사자]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에델바이스에 또 포를랭이 수작부리는 것 같아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이안님)>>> 또…… 말씀이십니까?]

주이안 헌터마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이게 동제국처럼 위협적이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리카스 보내 놓고 모가지 털릴 준비나 하고 있는 애들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설치는지는 소예리도 모르고 하늘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님)>>> 또를랭?]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넵 또를랭]

어떻게 이런 찰떡같은 별명이 있을 수가!

소예리가 웃음을 삼켰다.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얘네가 이번엔 밥에 장난치려고 했나봐요]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감정 써보니까 소유주 포를랭으로 뜨는 식용불가 보급물자가 에델바이스에 돌아다니고 있어용]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유리)>>> 이야 진짜 가지가지 한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유리)>>> 보급 물자 다시 한번 검수하라고 할게요]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OK]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유리)>>> 땡큐땡큐]

우리 신유리 헌터님은 인사성도 참 바르지.

소예리가 옅게 웃었다. 다시 클로나 에이센의 온화한 가면을 쓴 그녀가 손짓했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온 물건 같으니,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올게요.”

그녀의 손짓에 마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무래도 계획과 다르게 굴러가는 모양이었다.

소예리는 모른 척, 호위 인력과 함께 마차를 하늘로 띄워 올렸다.

요대로~ 온 대로~ 고대로~ 포를랭으로 배달해드립니다~

***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별 수작을 다 부리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욕을 할 순 없었다.

바로 앞에 더 황당한 놈이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리카스 드 포를랭이었다.

니네 아빠가 수작 부리던 거 걸렸더라……. 넌 알고 있니?

그걸 알 리가 없는 리카스 드 포를랭은, 심지어 내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며 ‘착한 오라버니’ 흉내를 내고 있었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줄은 몰랐어.”

이제 깨달았으면 내 앞에서 좀 꺼져주겠니?

“영지민들을 위해 하는 일인걸요.”

난 수줍게 웃어 주었다. 물론 좋아서 웃는 건 아니었다.

열 보 전진을 위한 반 보 후퇴였다.

첩자로 내 품으로 굴러 들어온 이 친구를 잘 다듬어 주면, 이놈은 훌륭한 반역의 새싹으로 자라날 테니까.

어서 동제국에 정보를 흘려서 역모죄의 새싹이 되어줘!

“그래도 대단해.”

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리카스는 나름 쫙 깐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불쾌하기만 할 뿐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얘 너무 느끼해요ㅠㅠ]

지 목소리가 매력적인 줄 아나 본데 아쉽게도 이쪽은 감미로운 ASMR로 유명한 주이안 헌터의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다.

네가 목소리 깔아 봐야 그냥 뭉개진 목소리일 뿐이야…… 그만둬…… STAY…….

“요즘 네 덕에 카르만의 게이트가 전체적으로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지? 네가 정말 오라비로서 자랑스럽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리카스의 얼굴을 보니 나는 정말 헌터로서 한 대만 치고 싶었다.

그가 감탄했다는 눈으로 내 책상을 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칭찬 레퍼토리도 좀 바꿔보렴.

심지어 지금은 바쁘지도 않았다.

게이트 2차 홀딩 중비 중에, 급한 게이트 몇 개만 처리하면 되니까 한가해도 이보다 한가할 수가 없었다.

아, 혹시 포를랭 자작은 이것보다 한가한가?

그래서 얘가 이렇게 날 바쁘게 보나?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리카스는 거듭 감탄하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게이트 대응팀을 구성하는 거야?”

규칙은 매뉴얼에 있단다……. 하지만 난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건 사제랑 마법사랑…….”

모두가 알 만한 지식이었지만, 리카스는 처음 듣는 것처럼 들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물었다.

“마법사들하고 사제들이 에델바이스에 많던데, 특별한 협정이라도 맺은 거야?”

속 보인다, 속 보여.

“그런 건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부부부드럽게 웃어주기! 웃어줄 생각이 점점 사라져갔지만 난 애써 웃었다.

“그럼 만약 새빨간 게이트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

그때 리카스가 물었다.

고놈 참 바쁘다.

얘길 들어 보니, 이놈은 동제국 킨나의 첩자이기도 하고 포를랭 자작이 보낸 첩자이기도 했다.

두 쪽에 정보 보내주느라 아주 바쁘겠어요, 친구.

특히 게이트 대응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두 쪽 모두 듣고 싶을 거라……. 잠깐.

오.

난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아, 새빨간 게이트요? 이건 다른 데랑 조금 달라요.”

이 정보는 이미 미야에도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포를랭이 미야와 교류할 리가 없으니 알 리가 없었다.

“워낙 잘 알려진 거라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먼저 검사를 세 명 정도 배치하고.”

딜3.

“뒤에는 방패를 잘 쓰는 성기사 두 명과, 사제 한 명, 마법사 한 명이면 돼요.”

탱2힐1보조1.

“사제가 이렇게 적어도 돼?”

“네.”

네니오. 안 됩니다.

이렇게 보내면 주이안 헌터가 불 뿜습니다.

하지만 난 예쁘게 웃어 주었다.

“뒤의 성기사들이 모든 공격을 막아줘서 치유 마법을 쓸 일이 적어지거든요.”

희대의 멍소리였다.

하지만 그걸…… 리카스는 고오급 정보랍시고 받아 적기 시작했다.

스파이 짓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예요, 친구.

난 그에게 자세하게…… 약을 팔기 시작했다.

아마 얼마 안 있으면 이놈이 전한 정보가 드러날 것이다.

무려 S급 던전에 ‘딜3탱2힐1보1’을 넣는 희대의 조합을 쓰는 놈들이.

물론 그 조합을 쓰는 건 포를랭 가와 동제국밖에 없을 것이다.

왜?

미야에는 이렇게 안 알려줬거든!

난 다시 오라비 어쩌고 하며 느끼한 소리를 늘어놓는 리카스에게 빙그레 웃어주었다.

목숨줄 얼마 안 남은 놈인데 내 예쁜 얼굴이라도 보고 가렴!

잘 가!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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