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63)화 (163/218)

163화

주이안과 특단의 조치 게이트(?)는 금세 끝났다.

“저도 앞으로는 같이 먹겠습니다.”

주이안 헌터는 그렇게 약속했다.

그제야 우리 셋은 만족하고 농성(?)을 그만두었다.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인데, 음, 생각보다 뒷맛이…….”

주이안 헌터는 그제야 진실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뒷맛 엄청 남죠.”

그거 마시면 이를 닦아도 하루 반나절은 특단의 조치 맛만 난다니까?

주이안 헌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좀 개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먹었을 땐 몰랐다며 미안해하는 그의 등을 우리는 합심해서 두드려 주었다.

“앞으론 주이안 헌터도 많이 먹어요.”

우리만 맛없는 거 먹을 수 없다는 ‘혼자 죽을 수 없다 정신’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주이안 헌터에게 특단의 조치를 먹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기 몸도 좀 챙겼으면 좋겠다, 싶어서.

***

그렇게 한바탕 시끄럽게 굴면서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벌써 밤이었다.

새까만 밤.

술 마시면 프리허그하는 버릇이 있는 소예리 헌터는 벌써 우리를 각각 네 번씩은 끌어안고 있었다.

“흐아아아암.”

늘어져라 하품을 한 소예리 헌터가 다음 희생양(?)을 찾아다닐 때였다.

“자, 이건 어떠세요?”

주이안 헌터는 다섯 번째로 안기기 직전에, 소파에 있던 쿠션을 주고 그녀의 프리허그를 피해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잠들기 직전의 소예리 헌터에게 안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S급 보조계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거든 저 품에 그대로 안겨도 좋다.

“너~무 졸려.”

소예리 헌터는 쿠션을 꼬옥 끌어안으며 소파로 엎어졌다.

주이안 헌터가 겉옷을 벗어 소예리 헌터에게 덮어주는 게 보였다.

“S급도 취하게 하는 술이 이 세계에도 있어?”

대체 얼마나 독한 거야, 이거?

S급이 취하는 술은 독 종류로 구분되어 한국에서도 구하려면 헌터 전용 백화점에 가야 했다.

근데 던전산 소주는 한 병뿐이었잖아? 그럼 이 세계 술이 얼마나 강한 거야?

“?”

난 병을 흔들어봤지만 알 수 없었다.

난 A급 상태였지만 체질이 체질이라 그런지 잘 취하지도 않았다.

원래 소예리 헌터가 잘 취하긴 하는데…….

난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았다.

고로롱 잠든 소예리 헌터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

픽 웃음이 나왔다.

취해서 쓰러지다시피 잠들었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금방 취하고 금방 풀리는 사람이니까.

아마 저러고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멀쩡해져서 ‘2차!!!’ 하며 우렁차게 외칠 것이다.

2차를 못 갈 세계라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별도 잘 보이네.”

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이나 문을 열면 소예리 헌터의 방음벽 스킬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유리창 너머로만 밖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는 아주 쏟아질 듯 별이 가득했다.

이렇게 가만히 별 본 게 얼마 만이더라?

헌터 되고 나서는 지구 밤하늘보단 던전 밤하늘을 더 많이 봤으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

다 비어가는 병을 흔들어본 난 괜히 눈썹을 치켜올렸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개인 퀘스트(MAIN) : 수호]

물론 날 심란하게 하는 건 이 퀘스트 덕이 가장 컸다.

은하 서버보다 높은 능력치 상태로 클리어하라고?

요컨대 원래의 나를 뛰어넘으라는 소리였다.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나가기 전에 S급은 되겠지?”

하지만 새삼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 25세, 딜러(A)

체력 : 1750000 (+10000)

근력 : 60000 (+40000)

마력 : 250000 (+10000)

민첩 : 50000 (+31120)

지구력 : 20000 (+10000)

방어력 : 20000 (+10000)

특수 버프 “천상의 힘(S)” : 스킬 발동 속도 10% 증가, 받아들이는 버프 효과 10% 증가]

상태창을 보니 A급이 되어 깔끔하게 떨어진 능력치가 보였다.

일반적인 딜러 S급들이 140만 이상의 체력을 가지는 걸 생각해보면, S급의 능력치 수준은 이미 넘었다.

문제는 S급으로 승급할 수 있느냐인데.

―탁.

난 깔끔하게 비어버린 병을 던졌다 받으면서 생각했다.

가능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야 돼요.’

신재헌은 랭크업을 하려면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들을 때야 헌터협회장 모가지 같은 것밖에 생각 안 났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난 힘을 원했다.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헌터계에는 사람은 속여도 시스템창은 못 속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게 딱 맞는 말이었다.

나는 몰랐던 욕망을 시스템창은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저택 던전에서도, ‘가장 아끼는 물건’으로 내게서 ‘힘을 실현할 수단’인 검을 가져간 것이다.

힘. 내가 힘을 원하는 이유.

새삼스럽지만 당연하게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였다.

모두와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은 진입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왜요? 왜 안 되는데?’

그리고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서.

10년 전 게이트 사태. 첫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왔던 날.

지치고 다친 몸으로도 난 병원 대신 집을 찾아갔다.

문제는 은령아파트 앞이 미지의 힘으로 막혀 있다는 점이었다.

‘왜 못 들어가?’

내가 살던 은령아파트 앞에는 거대한 게이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노란색 게이트는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었다.

문제는 나와 신재헌이 있던 은령고등학교의 돌발 게이트와, 인근에 있던 은령아파트의 돌발 게이트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던전을 클리어하고 왔을 땐, 이미 은령아파트의 주민들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간 지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미 입구가 닫힌 게이트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부디 은령아파트의 누군가는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오길 기대해야 했다.

‘……다, 다시 저 이상한 게 일렁이고 있어!’

게이트라는 이름조차 없던 당시에는 그 일렁이는 게이트 입구를 기현상 내지는 ‘이상한 것’이라고만 불렀다.

은령아파트 게이트 앞에서 굳은 듯이 얼마나 서 있었을까.

나와 신재헌은 은령아파트를 집어삼킨 게이트가 다시 일렁이며 움직이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건…….’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죽어, 새로운 헌터가 입장 가능한 상태임을 나타낸다는 건.

……들어가서 진실을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그날 나도 신재헌도 가족을 잃었다.

신재헌은 어차피 눈칫밥 먹던 사이라며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난 그의 손이 떨리는 걸 분명히 보았다.

그때 그를 감싸줄 정신은 없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나는 나보다 멀쩡해 보이는 신재헌에게 기대었다.

죽고 싶다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신재헌도 충격이 심했을 텐데.

그때 생각한 것도 결국 힘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나왔으면…….’

게이트에 누군가 입장한 뒤 한 시간 동안만 다른 사람이 입장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진 뒤.

죽도록 후회해도 과거로 돌아갈 순 없었다.

내가 꼴랑 A급인 던전에서 그렇게 떨지만 않았어도 은령아파트 사람들이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가족을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재헌도 그에게 눈치 주며 못살게 굴었던 삼촌 대신 그를 챙겨주었던 숙모를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힘을 갈구하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빠르고 강했다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어휴.”

괜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한숨을 내쉬어 봐도 머릿속이 맑아지지 않았다.

이럴 땐 찬바람 쐬어야 하는데.

창문을 열까 말까, 고민해본 난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았다.

고롱고롱.

방음벽 유지하는 사람이 꿀잠을 자고 있으니 창문을 여는 건 방음벽이 깨질 위험이 있었다.

―탁.

결국 난 병을 곱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침 유리창에 비쳐 보이는 신재헌에게 손짓했다.

“여봐라.”

“?”

주이안 헌터는 소예리 헌터가 2차 때 찾을 술을 미리 찾으러 간 상태였다.

2차 시작할 때 술 다 떨어졌다고 하면 힘 빠진 토끼처럼 축 어깨를 늘어뜨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넓은 로비에 남은 건 나와 신재헌밖에 없었다.

“나?”

상황을 알아챈 신재헌이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응. 너.

“가서 한 병만 더 가져오거라. 이거랑 똑같은 걸로.”

내가 들고 있던 병을 뒤로 던졌다.

―탁!

저도 모르게 받았는지 받고 나서야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신재헌이 말했다.

“이거 하극상이다? 이거 페널티감이야. 알아?”

요컨대 황제한테 어디 명령이냐, 뭐 이런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보는 눈 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시스템도 모르겠다는데?”

페널티 위기 안 뜨잖아?

내 말에 신재헌이 투덜거리면서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저래 보여도 기분 맞춰 주는 거다.

싫고 귀찮은 건 정말 싫고 귀찮다고 하는 놈이니까.

“…….”

문득 그 생각을 하니 씁쓸해졌다.

어릴 때도 지금도 기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져다줄 걸 그랬나.

괜히 볼을 긁적여 봐도, 이것 역시 늦은 일이었다.

***

“복잡해 보이네.”

지하 계단으로 들어선 신재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원래 신유리 술버릇이 그랬다.

스스로는 안 취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신재헌이 보기엔 안 그랬다.

필름 끊겨야만 취하는 건가, 평소랑 다르면 취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신유리는 지금 취해 있었다. 평소에 미뤄뒀던 부정적인 생각들에 빠져 있는 걸 보면.

“더 갖다 주면 잘까?”

S급일 때에야 적당한 주량을 맞춰줄 수 있었지만 A급인 지금은 좀 긴가민가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신유리와는 달리 소예리 헌터는 술자리가 시작할 때부터 들떠 있었다.

그녀는 낯선 이 세계의 술도 몇 번 입에 대 보더니, 금세 제 취향을 찾아 몇 병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건 다~ 내 거!’

그렇게 말하면서 행복하게 웃던 그녀는 정말 원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해댔다.

‘아니, 이렇게 드셔도 돼요?’

지켜보던 신재헌이 좀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자 소예리 헌터는 발끈했다.

‘신시안 교단에서 나오셨어요? 내 쾌락을 막지 마라아!’

이미 반쯤 취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 옆에서 물 마신 죄밖에 없는 신시안 교황님은 당황해서 콜록거렸다.

“소예리 헌터님도 이쪽 사람 다 되셨다니까.”

이러다가 술맛 좋다고 인벤토리에 넣고 가는 거 아닌가 몰라.

몇 병 넣어가야 하나?

어차피 이 세계에 다시 오진 못하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그 교황님은 어디 가셨지?”

아까 분명 먼저 와인 가지러 오시지 않았나?

와인창고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습관적으로 가볍고 소리 없이 내디디던 걸음이, 문득 와인창고 앞에서 멎었다.

“……?”

와인창고 안에는 주이안이 있었다.

……신재헌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