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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6)화 (6/218)

6화

근데 3코인을 누구 코에 붙이냐?

자고로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인 법인데.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내가 나온 거 말고.

난 저택을 가리키며 물었다. 기사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그들 사이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는 세니아와도 아는 사이였는지, 머리 위로 이름이 보였다.

[밀리샤(B)]

[세니아 드 포를랭에게 직접 사사함 – 3년 전]

역시 기사답게 퓨어딜러였다. 세니아가 검을 가르친 모양이구나.

어쩐지 걸어오는 자세가 잘 잡혀 있더라니.

“아가씨, 훈련장에서 이렇게 아가씨를 다시 뵙게 되니 감동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검 한번 잡아보려고 나온 거야.”

너희처럼 화려하게 운동했다간 쓰러지고 만단다. 스펙 올리고 나서 운동 제대로 해야지.

하지만 내 생각이 읽힐 리 없는 밀리샤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아니, 나보다 더 아파 보여! 널 보는 내 마음이 더 아파!

“……저희는 언제나 아가씨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가 말을 이었다.

“저택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건, 아마 어제의 사건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기사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고요.”

“어제의 사건?”

자고로 체력 회복엔 휴식이 최고다.

집 바로 밑에 게이트 열릴 위험도 없는 이 평온한 세계에서 퍼질러 자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어제저녁, 기절하듯 잠든 바람에 어젯밤의 소식을 못 들은 나는 눈을 끔뻑였다.

무슨 일 났었나?

“저택에 무슨 일 있었어?”

혹시 너희도 지하실에 게이트 같은 거 열리니?

하지만 기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지하실에서 게이트가 튀어나오는 것보다 더 어이없는 소식이었다.

“황궁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알현실에서 죽어나간 귀족이 수십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뭐?”

난 눈을 크게 떴다.

알현실에서 누가 뒈지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지금 그 알현실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신재헌이 뭘 했다고?

“저희 가문도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밀리샤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다른 기사들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기사로서는 입을 닫아야 하지만, 스승에게 제자로서 예의를 지키고자 은밀히 말해주는 듯했다.

“……주인님들께서 현 황제 폐하보다는 그 숙부 되시는 분을 더 지지하신 건 사실이니까요.”

[서브 퀘스트 : 세간의 소문 진행 중]

[포를랭 가의 정치적 성향 확인(완료)]

[다가올 소식 기다리기(미완료)]

다가올 소식은 또 뭐야?

난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기사들의 걱정과는 달리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신재헌이 미쳤다고 우리 가문 목을 날리겠냐? 내 목도 패키지로 날아가게?

“흉흉한 소문이 돈다니 신경 쓰이겠지만, 그래도 검에 집중하도록 해.”

난 대충 입을 털어댔다.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잡는 게 기사들의 사명이니까.”

이건 내가 대한민국에서 자주 했던 말이었다.

[게이트에서 죽기 직전까지 검 들고 설치는 게 딜러의 사명이죠.]

그 말은 쪽팔리게도 뉴스까지 타 버렸다.

거기다 지식나무의 [헌터/헌터(국내)/S급/신유리(딜러)] 항목에 실리기까지 했다.

아!!!!!!!!!!!!!

갑자기 생각하니까 과거의 흑역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었던 기자처럼 기사 밀리샤도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흔들림 없이 수련 일정 재개하겠습니다!”

그 뒤로 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B급 딜러들이 입을 맞추어 말하는 모습은 병아리 합창단같이 귀엽기만 했다.

“……그래, 난 그럼.”

난 떨떠름한 얼굴을 숨겼다.

감동 너무 심하게 받은 거 아니냐?

기사들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난 훈련장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밀리샤가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니.”

난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B급 꼬꼬맹이 도움 받아서 뭐 하냐? 가서 저기 병아리 기사단이랑 같이 수련이나 하렴.

“……죄송합니다.”

하지만 밀리샤는 지나치게 죄송해했다.

돌아보니 대충 얼굴에 생각이 보였다. 내가 자존심 상해서 거절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가 죄송해할 게 뭐가 있어?”

날 시한부 영애 몸에 처박아버린 시스템이 잘못 아닐까?

난 그의 이름을 흘끗 보면서 말했다.

“밀리샤 경, 같이 훈련하러 가 봐.”

난 기사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밀리샤의 얼굴이 벅찬 감동으로 차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제 스승이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온 게 너무나도 기쁜 듯했다.

밀리샤가 힘차게 기사들 사이로 달려가는 사이, 난 검손잡이에 드디어 손을 올렸다.

[서브 퀘스트 : 검제의 귀환 클리어!]

[보상 : FULL체력 +1, 방어 +3]

이걸로 처음 던전 진입했을 때보다는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난 내 상태창을 다시 켜 보았다.

[세니아 드 포를랭 / 25세, 일반인

체력 : 54

근력 : 2

마력 : 0

민첩 : 2

지구력 : 5

방어력 : 3]

처음 왔을 땐 아예 방어력 항목도 없었는데, 아주 감동스럽다.

이제 문 쾅 닫는다고 피통 깎일 일은 없겠지?

[서브 퀘스트 : 이열치열 클리어!]

[보상 : FULL체력 +10]

검을 들기만 해도 수련으로 쳐주는지, 이열치열까지 클리어되었다.

이제 내 풀피통은 64다.

와, 처음에 비해 무려 6.4배의 성장! 대단하다! 감동스럽다!

그건 그렇고.

난 억지 감동을 구석으로 치워버리며 검을 들어 보았다. 근력이 2라 그런가, 무지막지하게 무거웠다.

이거 들고 휘두르는 거 가능하긴 하냐?

―스릉!

그래도 검 뽑던 가락은 있어서 쉽게 뽑혔다. 팔이 뻐근하게 아팠지만.

[과도한 근육 사용으로 데미지를 받습니다.]

[–10]

시스템 메시지를 무시하며 난 검을 살폈다.

[포를랭 가의 훈련용 검(C) : 기사들의 손때가 묻어 길이 잘 들어 있다.]

보너스 스탯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내 검과는 당연히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검을 잡으니 기분이 좀 들뜨는 것 같다.

“오랜만에 잡는 것 같네.”

내가 검을 훅 휘둘러보았을 때였다.

[검사로서의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신의 상점 레벨 업!]

오? 상점 레벨업도 하는 거였어?

뭐 살 만한 게 생기긴 했나? 설마 또 쪼꼬미 물약 아니지?

“신의 상점.”

작게 중얼거리자 곧바로 신의 상점 판매창이 떴다.

목록은 전에 봤던 무료 쪼꼬미 물약을 포함해 여러 가지로 늘어 있었다.

[신의 상점 Lv. 2]

그렇게 쓰인 창 아래로 판매 물품 목록이 보였다.

[외형 변경 – 100C]

[인벤토리 영구 증가 – 10000C]

[포만도 물약 – 1000C]

별 쓸모 없어 보이는 물품 사이로 감동스러운 라인업이 눈에 띄었다.

[실명 물약 – 2000C]

실명 물약은 또 뭐야?

독 같은 거? 내 칼에 바르면 상대가 실명하는 거?

[실명 물약(D) : 마시면 실명합니다. 음독만 가능.]

“?”

왜 있는데? 왜 존재하는 건데?

어이가 없어서 목록을 훅 내렸다. 그랬더니 좀 쓸모 있어 보이는 게 눈에 띄었다.

[체력 회복 물약 – 100C]

[마법의 신분 증명패 – 2000C]

마법의 신분 증명패? 설명을 보니 꽤 흥미로웠다.

[이 신분패를 제시하면 어느 곳이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1회용)]

근데 아쉽게도 난 도둑놈이 아니라서 흥미는 거기까지였다.

이게 끝이야?

아니꼬워지려는 순간 눈에 띄는 물건들이 있었다.

[은하 서버 인벤토리 열쇠 – 20000C]

[은하 서버 스킬 열쇠 – 30000C]

“오?”

난 눈을 크게 떴다.

[은하 서버 인벤토리 열쇠(S) : 은하 서버에 저장된 ‘신유리(S)’의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무작위로 1개 가져옵니다. (1회용)]

[은하 서버 스킬 열쇠(S) : 은하 서버에 저장된 ‘신유리(S)’의 스킬창에서 스킬 1개를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이거야말로 대박이었다.

인벤토리야 운 나쁘게 먹을 거라도 걸리면 코인 날리는 거지만 스킬은 달랐다.

특히 내가 주로 사용하는 잔상 계열 스킬이 나온다면 그만큼 대박일 수가 없었다.

제발 스킬! 제발!

근데 문제가 있었다.

[현재 보유 Coin : 1000C]

와! 30배만 모으면 된다! 다시 감동에 벅차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아가씨, 황궁에서 친서가 도착했습니다!”

놀라서 신의 상점을 픽 꺼버렸다.

황궁 하면 이제 신재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받는 즉시 확인하라는 황명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곤란해하는 기사의 말에 난 저택을 돌아보았다.

지금쯤 다 자고 있을 터였다. 귀족들은 늦게 일과를 시작하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황가의 편지는 귀족만이 열어볼 수 있다. 세니아의 기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문으로 온 서신이니 자작 부부에게 먼저 가야 하지만 일어나 있는 사람이 없어 세니아에게 가져온 듯했다.

그럼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내가 열어볼게.”

난 검을 다시 정리해 꽂아 놓고, 기사에게 돌아섰다.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황궁의 친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새하얀 편지는 과연 황궁에서 온 것인지 흙먼지 하나, 구김 하나 없는 깨끗한 편지 그대로였다.

들고 온 자가 얼마나 곱게 모셔 왔을지 짐작이 갔다.

난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본 신재헌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까만 흑발, 늘 사용하는 스킬의 영향으로 짙푸른 색으로 물든 눈동자. 그의 얼굴은 늘 장난기에 반쯤 물들어 있었다.

유쾌한 놈.

난 그를 생각하며 편지를 열었다.

[제국의 검들에게.

그간 내 행보에 섭섭한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편지는 신재헌치고는 엄청나게 진지하게 시작되었다.

거기까진 나도 웃음을 참으면서 봤다. 근데 그 다음 문장에서 난 얼빵한 표정으로 입을 벌려야 했다.

[마음만을 품은 게 아닌 자들은 어젯밤, 알현실에서 모두 죽었다.]

알현실은 황제를 만나는 공간이다. 알현실에서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건, 다시 말해 그가 모두를 죽였다는 소리였다.

난 눈을 크게 떴다.

신재헌…… 세게 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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