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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7)화 (7/218)

7화

[서브 퀘스트 : 세간의 소문 클리어!]

[보상 : FULL체력 +1, 신의 상점 Coin +3]

퀘스트 클리어 창이 지나갔지만 난 편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장난기 많은 신재헌이 몬스터 대신 사람한테 검을 휘둘렀다는 게 좀 상상이 가질 않아서.

물론…… 우리가 들어온 RP던전이 중세 배경인 데다 황권 강화가 서브 퀘스트고, 대륙 멸망을 막아서 이 L급 RP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제국 내부부터 정리하긴 해야 했다.

[불경한 생각을 한 자들이 알현실의 그자들뿐만이 아니란 걸, 짐은 알고 있다.

그러니 각 가문에 친히 친서를 내려 고한다.]

분명 이 글씨체는 익숙한 신재헌의 글씨체가 맞았다.

물론 이 나라 언어로 쓰여 있는 걸 시스템창이 알아서 번역해주는 거였지만, 쓴 사람이 신재헌이 확실하다는 걸 알려주듯 번역된 글씨체도 신재헌의 글씨체였다.

[카르만은 검으로 후계자의 자질을 시험하는 나라.

짐 역시 힘을 잃었던 동안 그 ‘시험’을 받았으며, 통과하였으니 이제 내가 그대들을 다시 시험에 들게 하고자 한다.]

난 눈을 크게 떴다.

[하여 각 가문의 적법한 핏줄들에게 고한다. 2주 후, 각 가문에서 다시 한번 실력을 증명하라.

황가에서 파견된 자가 계승식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계승식을 통과해 진정한 실력을 보인 자들은, 카르만의 이름이 걸린 검술 대회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 목이 달아난 자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알현실까지 끌려가 죽은 놈들이 허접스러운 귀족은 아닐 터였다.

적어도 굵직굵직한 놈들을 해치워 본을 보였으리라.

그 자리를 채우게 해주겠다는 소리는 다시 말해, 이번 검술 대회가 신분상승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오…….”

난 짧게 감탄했다. 신재헌, 감동인데?

있어 보이는 말투로 쓰였지만 저 계승식 이야기는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건 기회였다.

게다가 신재헌도 내 사정을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세니아가 갑자기 아파서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귀족가의 일원보다, 가주가 되는 게 더 힘이 될뿐더러…….

무엇보다 세니아 드 포를랭을 중독시킨 놈이 이 집에 있는 이상, 이 집구석을 뒤집어엎든 털고 나가든 해야 하니까.

여러모로 좋은 소식이다. 내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다시 한번 계승식을.”

내가 작게 중얼거린 말과 황가의 친서는 포를랭 가를 들썩이게 했다.

다른 가문들도 지금쯤 파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문만큼 시선이 쏠린 곳은 없었다.

계승식에서 비교적 깔끔한 실력 차이로 후계자가 정해졌던 다른 가문과는 달리, 우리 가문은 세니아의 갑작스러운 탈락으로 다른 놈이 후계자가 되었으니까.

[과연 세니아 드 포를랭 영애는 원래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내게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 있었다.

***

계승식은 한 가문의 후계자를 정하는 행사다.

이미 후계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다시 한번 계승식을 치르라는 것에 불만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황가가 직접 감독한다는 선언에.

어차피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계승식에서 승리한 거라면 다시 해 봐야 결과는 다르지 않을 텐데, 황가의 감독을 싫어하는 놈들은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왜 자꾸 과거형으로 말하냐면 걔들은 이미 모가지가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눈치 좀 챙기지.”

어휴. 약한 헌터들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상대가 나보다 강한지 살펴보는 능력이다.

상대가 몬스터든 사람이든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한데 설쳐 봐야 모가지만 날아갈 뿐이니까.

그런 의미로 신재헌에게 까분 귀족들은 아주 멍청했던 셈이었다.

그가 빙의하기 전에 황제가 얼마나 약골이었는지 몰라도, 사람이 어느 날 기세부터 달라지면 몸이라도 좀 사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이 RP던전의 귀족들은 생각보다 더 멍청한 듯했다.

“어떻게 사람이 하루 만에…….”

“난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차피 알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일부는 신재헌이 수를 써서 비겁하게 알현실의 귀족들을 죽였을 거라는 이야기도 해댔다.

신재헌이 귀찮게 왜?

한술 더 뜨는 놈들도 있었다.

“황제가 강한 척 소문을 부풀려서, 현 황가를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렇게 떠든 놈들은 어김없이 알현실로 불려갔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가 이 소식을 방구석에서 꿰고 있을 수 있는 건 헌터 채팅 덕분이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여튼 황궁 정리는 대충 끝난 것 같아요]

신재헌은 그렇게 가볍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소문에 밝았던 그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사람을 이곳저곳에 심어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들을 빠르게 캐치한단 말인가?

시장바닥 한가운데에서 황제 욕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와, 대체 언제 사람을 심어 놨대.”

무슨 틈이 있어서?

아무래도 판타지뽕짝 세계에 제대로 적응한 건 주이안 씨만은 아닌 듯했다.

“그건 그거고.”

난 수련 이틀 차에 돌입하고 있었다.

어쨌든 상대는 A급인 키칼 드 포를랭이다. 난 F급도 아닌 일반인으로 랭크되어 있고.

A급과 일반인의 스탯 차이는 현격했다.

“A급 따위한테 질 수는 없지.”

하지만 스탯 대신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분명 존재한다.

난 절망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방 안을 뒤지고 있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의 방을. 왜냐고?

[서브 퀘스트 : 과거의 추억]

[세니아 드 포를랭이 수련했던 당시의 기록인 ‘수련 일지’를 찾아보세요.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몸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보상 : FULL체력 +10]

이런 퀘스트부터,

[서브 퀘스트 : 바쁘게 돌아다니기]

[오랫동안 너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수련의 기본은 체력! 일상생활이 가능한 체력을 만들어 보세요.

[조건 : 10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기]

[보상 : FULL체력 +10, 근력 +3]

이런 꿀 같은 퀘스트들이 잔뜩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수련도 수련이지만 일단 체력이랑 기본 스탯이 있어야 수련도 효과를 볼 것이 아닌가?

칼 들고 설치는 것도 스펙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인이 시스템창을 보게 되면 이렇게도 스펙업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세니아 드 포를랭 / 25세, 일반인

체력 : 200

근력 : 15

마력 : 0

민첩 : 10

지구력 : 8

방어력 : 13]

그래도 서브 퀘스트 열심히 해서 체력도 많이 올랐다.

방어력 10부터는 하녀가 문을 쾅 닫아도 체력이 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쑥쑥 크는 재미가 있네.”

게임이면 아주 재밌었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건 현실이었다.

S급의 기본적인 체력은 수백만 대다. A급 체력이 높으면 120만 정도였고, 낮으면 직군에 따라서 40만 정도도 되었던 것 같다.

“그럼 저놈도 적어도 90만은 될 거란 말이지.”

근데 내 체력은 200이네?

이 스탯으로는 아직 무리였다.

어쨌든 계승식이니 체력을 깎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목에 검만 갖다 대면 끝이겠지만, 지금 상태면 키칼 드 포를랭인지 뭔지 하는 세니아의 오빠 놈이 검 한 번만 휘둘러도 검풍에 사망각이었다.

“그럼 내 체력이 적어도 10만은 넘어야지.”

그러려면 일반적인 딜러들 기준으로 한 C급은 되어야 한다.

그것도 2주 내로 체력을 10만 올려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일일 퀘스트 : 매일매일 진지하게]

[강해질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연무장을 한 바퀴 뛰세요.]

[보상 : FULL체력 +10%]

“헐.”

+10%라고?

피통이 200인 지금 10% 늘어봐야 20이지만, 이건 내 체력이 커질수록 효과가 커질 거다.

게다가 일일퀘스트였다. 이거 대박인데? 그럼 하루에 한 번 계속 나온다는 거 아냐?

난 재빨리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일단 사용 가능 스킬부터.

[세니아 드 포를랭(일반인) 보유 스킬

- 포를랭 4검식(A) [사용불가, 스탯부족]

- 포를랭 3검식(B) [사용불가, 스탯부족]

- 흘려보내기(A) [사용불가, 스탯부족]

…….]

사용불가만 산더미였다. 쭉쭉 아래로 내려 보니 드디어 랭크가 낮은 스킬이 하나 나왔다.

[받아치기(C) [사용불가, 스탯부족(체력 300 이상)]

다른 건 스탯이 너무 부족해서인지 얼마나 더 올려야 쓸 수 있는지도 안 나와 있었지만, 이건 달랐다.

[받아치기(C) :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쳐 데미지를 반사한다.]

문제는 받아치기를 성공할 수 있느냐였다.

A급 따위의 공격을 못 받아칠 리가 없지. 능력치만 된다면 말이다.

난 어느새 내 방에 한 자루 가져다놨던 검을 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침 시간도 새벽 5시였다.

[포를랭 1검식(F)]

현재 사용 가능한 스킬은 이것뿐이었다.

이거라도 어떻게 반복 사용해서 랭크업 해야지, 별수 있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퀘스트가 떴다.

그렇지!

[서브 퀘스트 : 포기하지 않는 마음]

[포를랭 1검식을 3회 완벽히 수행하세요.]

[보상 : FULL체력 + 100]

“100?”

스킬 세 번 쓴다고 100? 대박인데?

훈련장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그럼 일단 가서 한 바퀴 뛰면 체력 10%에, 검식 3번 쓰면 100이다 이거지?

“아니지.”

난 걸음을 멈췄다.

3검식 먼저 써서 풀체력 300 된 상태로 10% 보너스 받으면 총 330 되는 거 아닌가?

뇌에 근육 붙었다는 딜러들이 머리 쓰는 순간이 언제? 바로 지금!

능력치 계산할 때!

이게 훨씬 이득이었다.

“좋아.”

기사단 훈련장에 나간 내가 손목을 풀고 있을 때였다.

“세니아.”

아직 이른 시간이라 기사들이 없는 훈련장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포를랭 자작 부부였다.

새벽인데 여기서 왜 튀어나오세요?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물론 RP던전 규칙에 맞게 말은 곱게 해 주었다.

내 말에 포를랭 자작 부부가 서로를 보다가 나를 주시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자작부인이었다.

“혹시 요즘 수련하는 게, 계승식이 다시 치러지기 때문이니?”

하긴 널브러져 있던 딸이 갑자기 튀어나가서 검 휘두르기 시작하면 놀라긴 하겠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시 기회가 왔으니까요.”

서브 퀘스트 깨서 스탯 올리려고요.

사실 자작인지 뭔지 되는 건 관심 없고 어쨌든 후계자는 되어야 했다.

내 말에 포를랭 자작이 눈을 크게 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냐, 무리하지 마라. 네 마음도 이해하지만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에서는…….”

그 몸 누워있을 때보다 20배 강해졌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이 말이 맞아. 기쁜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단다.”

포를랭 자작부인이 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면서 말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알잖니.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네가 앞으로 무엇이 되든 너는 변함없이 내 딸, 네 오라비들의 동생이라는 걸.”

만약에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저 이야기를 들었으면 뭉클했을 것이다.

그래, 나한텐 RP던전이지만 저 사람들한텐 세니아가 진짜 딸이 아닌가.

게다가 그 딸은 폐병으로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을 잃고 폐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한번 검을 잡은 것이다.

그들은 두려울 것이다. 딸이 더한 절망을 경험할까 봐.

하지만 난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헤엄칠 수가 없었다.

저렇게 말하더라도 이 집 어딘가에는 분명, 세니아에게 독을 먹인 놈이 있을 테니까.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어머니, 아버지.”

걱정은 땡큐! 하지만 방해는 노땡큐!

난 가볍게 웃어주고 검을 다시 쥐었다.

내 밝아 보이는 모습(?)에 안심했는지, 자작 부부는 나를 얼마간 지켜보다가 돌아갔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좀 해 볼까.”

포를랭 1검식은 세니아 드 포를랭이 원래 눈 감고도 쓸 수 있어야 할 스킬이다.

그런데 난 처음 보는 스킬이라, ‘난 사실 세니아가 아니오’ 하고 광고할 게 아니라면 남들 앞에서 써볼 순 없었다.

자작부부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내가 검을 고쳐 쥐었을 때였다.

“세냐.”

또 뭐야? 돌아보니 이번엔 키칼 드 포를랭이었다.

너는 또 이 시간에 왜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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