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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32)화 (132/133)

132.

“제 눈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 금방 끝날 거예요.”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서동연은 길 잃은 아이처럼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가 제 손등에 입술을 댄 행위조차 그대로 둘 만큼.

이현이 손을 맞잡은 채 조금씩 가이딩 마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른 하프 좀비들의 경우 아예 여러 명을 두고 한 번에 방사 가이딩을 했다.

서로 품은 감정이 같지 않아 색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크윽…….”

그와 동시에 이질적인 힘이 몸속을 헤집기 시작하자 서동연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이현과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쪽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의 일부분이 손아귀에서 포일처럼 구겨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요…….”

서동연은 하프 좀비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였다. 그런 그를 가이딩하는 이현도 서동연이 게걸스럽게 제 가이딩 마력을 빨아들이자 관자놀이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들어갔다.

이현의 아랫입술이 윗니에 짓눌릴 때마다 불그스름한 색을 머금어 갔다.

서동연이 저도 모르게 이현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도 풀어 내기를 반복했다. 실시간으로 힘이 사라져 가며 아주 깊숙한 물속으로 몸이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발로 땅을 박차기만 해도 날아갈 듯하던 몸이 무거운 추라도 매단 것처럼 늘어졌을 때, 이현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끝났어요. 정말 잘 참았어요. 서동연 씨.”

가이딩을 하는 이현도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으나 서동연이 느끼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 못 할 수준이리라.

“……진짜 어색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서동연이 제 두 손을 내려다보며 죔죔을 배우는 아기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게 생경했다. 분명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는 이 몸을 달고 살았던 게 분명할 텐데도.

“괜찮아요. 조금씩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이현은 서동연과 같은 힘을 지녀 본 적이 없기에 그가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거대할지 차마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손을 잘게 떨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는 있었다.

“그래. 괜찮아지겠지. 이렇게 약한 소리 튀어나오는 것도 신부 앞이라서 그런가.”

서동연이 그동안 살아온 세계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서동연은 누구보다 강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자신이 하프 좀비의 힘을 잃었다는 걸 알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놈들이 떠올랐으나 어떻게든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쪽―.

“어……?”

“이 정도는 봐주라. 한수호한테는 비밀이다. 그 새끼가 알면 나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을지도 몰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술을 꾹 눌렀다 떨어진 말캉한 감촉에 이현이 눈을 끔벅거렸다.

서동연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마저 잃은 지금, 한수호와 마주쳤다가는 일방적으로 당할 테니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이현이 정신을 차렸다. 한수호와 입을 맞출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설레고 가슴 뛰는 감정 대신 심장을 가득 울린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겠다.”

서동연이 어떤 성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오늘따라 유독 안쓰러워 보여 방심하고 말았다.

제 의지가 섞여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수호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이현이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다가 그 부위 또한 서동연의 입술이 닿았던 곳이라는 걸 인지하고 손등마저 벅벅 문지를 때였다.

“이현아, 다 끝났어?”

“아. 수호 형.”

닫혔던 문이 열리고 장신의 그림자가 연구실 안으로 드리워졌다. 이현이 현재 있는 장소는 개인 연구실이었다.

재건된 협회 본부 건물의 5층에 자리 잡고 있는.

“네. 방금 전에 서동연 씨 가이딩했거든요. 이제 가이딩해야 하는 하프 좀비들이 없으니까 내일부터는 연구에 다시 전념하면 될 것 같아요.”

하프 좀비들 중 가이딩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이미 제한된 구역으로 쫓겨났다. 그곳은 좀비 치료제를 거부한 이들이 사는 곳과는 다른 장소로, 감옥에 가까웠다.

일정한 영역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협회에서는 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시했다.

몸에서 칩을 떼어 내면 칩이 바로 폭발하게끔 설정도 해 놨다. 그 때문에 칩에 이상이 생기면 에스퍼들이 곧장 파견을 나가 해당 하프 좀비를 척살했다.

“고생이 많았네. 서동연이 이상한 짓 하지는 않았고?”

그날의 일과를 보고하듯 종알거리는 입술이 오늘따라 유독 붉어 보이는 건 착각일까.

짙은 시선이 이현의 입술 위를 배회했다. 한수호가 손을 뻗어 이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평소보다 먹음직스러운 입술을 보자 참기 힘든 충동이 들끓었던 것이다. 한수호는 손쉽게도 충동에 제 몸을 내어 줬다.

“아…….”

새까만 속눈썹이 갓 날갯짓을 배운 어린 새처럼 파들거렸다.

순간 한수호에게 서동연과 있었던 일을 얘기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으나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정말 서동연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 같았다.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자.’

하프 좀비의 능력도 잃었으니 서동연은 정말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다.

한동안 연구실 안에는 적당한 온도를 머금은 살덩이들이 스치는 소리만이 질척하게 울려 퍼졌다.

“이제 집에 갈까?”

“좋아요.”

가쁘게 숨을 내쉬는 이현의 입술을 엄지로 문지르며 한수호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강필이 서동연에게 붙잡혀 온 뒤로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천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한수호가 가장 먼저 한 건 좀비 웨이브에 휩쓸려 폐허가 되어 버린 협회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상징적인 의미도 큰 만큼 생존한 모든 이들이 달라붙어 예전보다도 더 커다란 건물을 뚝딱 지어 냈다.

“가는 길에 솔이도 데려갈까요? 아직 하원하려면 시간이 좀 남긴 했는데.”

협회 본부 건물을 중심으로 주거시설도 복원됐다. 이현은 개중에서 도심에서는 살짝 거리가 떨어진 동네에 있는 2층 단독주택을 새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아이가 있기에 층간소음 걱정이 없는 집을 고른 거였다. 당연히 이현의 집에는 한수호도 함께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협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식 커플이 됐다.

“그러자. 솔이한테 줄 선물도 샀고.”

“어떤 거요? 어? 이거 솔이가 가지고 싶다고 했던 게임기 아니에요?”

“맞아. 흘리듯이 말하고 한 번도 사 달라고 조르지 않았잖아. 그 모습이 기특해서.”

한수호는 차에 시동을 걸고 조수석 문을 먼저 열어 줬다. 뒷좌석에 놓여 있는 쇼핑백을 본 이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현이 것도 샀어. 참고로 내 것도.”

“역시 형 센스는 진짜 최고예요.”

그는 김솔이 최근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게임기에 대해 얘기할 때 이현의 눈동자 또한 반짝거렸던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 손.”

“이렇게요?”

보답을 바라고 한 행위는 아니었으나 이현이 뭐라도 주고 싶어 하는 눈치라 한수호가 오른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미 시동 걸린 차는 부드럽게 차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입을 맞추고 싶었으나 충동을 내리누르고 다른 행동을 택했다.

이현이 살포시 얹은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얽어 넣으며 한수호가 가느다란 손끝에 입술을 붙였다.

그 상태로 이현을 힐끔 바라보자 하얗던 귓불이 잘 익은 딸기처럼 색을 머금는 게 보였다. 저절로 입매가 흐무러졌다.

“어? 전화 온다. 잠시만요.”

그러나 달콤한 시간은 오래 흐르지 못했다. 이현이 양복 재킷 안쪽에서 느껴지는 진동음에 한수호의 손을 놓았기에.

한수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현이 핸드폰을 귀로 가져다 대는 걸 곁눈질로 은근하게 살폈다.

이렇게 이현과 연인이 되어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같은 집으로 퇴근하는 시간이 문득 꿈처럼 느껴졌다.

거리는 참혹했던 전쟁의 흔적이 드문드문 느껴질 정도로 활기가 넘실거렸다.

세상은 정강필이 야욕을 드러내기 전,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아직 서울을 벗어나면 채 처리하지 못한 좀비 떼들이 들끓고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였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계단을 밟듯이.

“진표성 에스퍼? 웬일이에요?”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지 통화하는 사이야? 가이드, 나 정말 섭섭하다, 진짜.

차 안은 적막했기에 이현과 통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들렸다. 한수호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졌다.

분명 사적으로 이현에게 연락하는 걸 자제하라고 충고하듯이 말한 게 오늘 오전이었다.

물론 제 말을 듣자마자 콧방귀를 뀌던 얼굴이 눈에 선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충고를 무시할 줄은 몰랐다.

핸들을 쥐고 있는 둥글게 말린 주먹 위로 손등 뼈가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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