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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31)화 (131/133)

131.

정강필을 도운 이들은 모두 죄의 경중에 따라 한 명도 빠짐없이 처벌됐다. 이미 숨이 끊어져 처벌받을 수 없는 이들 또한 정강필처럼 유골이 감옥 안에 안치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가족들이 시위를 이어 가는 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떠나간 이들을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이현과도 평소 친분을 나누던 이들이 있었다. 이현의 마음 또한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 중인데도 여전히 가시가 박힌 듯 불편했다.

복잡한 마음을 내리누르듯 이현의 얇은 눈꺼풀이 새까만 눈동자를 암흑 속으로 감췄다.

‘형을 믿을게요.’

서로의 혀가 맞닿은 입술을 타고 부드럽게 넘나들었다. 이현은 한수호가 가져온 피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러나 이미 죽은 걸로 알려진 사람의 이름을 꺼내지는 않았다.

한수호의 말대로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제 피를 대신할 만한 것을 찾았으니 기뻐해야 한다.

피를 뽑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묵직한 탈력감이 온몸을 내리누르고는 했다. 그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해 준다면야 이현 또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형도 지금처럼 저를 계속 사랑해 줘요.’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고백은 가슴 안에 여운처럼 남았다. 이기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다른 것들은 뒤로하고 한수호와 자신의 현재, 그리고 미래만 떠올리기로 했다.

이현이 가느다란 팔을 뻗어 한수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가볍게 힘을 주자 커다란 덩치가 쏟아지듯 이현에게 내려앉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쓰레한 맛이 감도는 입맞춤은 짙은 색의 초콜릿을 떠올리게 했다.

* * *

“신부, 이거 나 진짜 해야 돼?”

“본인의 선택이죠. 다만 계속 하프 좀비로 있고 싶으면 몸 안에 칩을 삽입한 후 지도에 그려진 영역 안에서만 살아야 해요.”

“하아…….”

능력자들이 먼저 좀비 치료제를 맞고, 이어 평범한 사람들 또한 새롭게 재건된 협회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좀비 치료제를 접종했다.

물론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지의 약물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도 사람들을 더한 공포 속으로 몰고 갔다. 좀비들에게 느끼는 두려움과는 다른 방향으로.

‘좀비 치료제를 맞지 않은 분들은 제한된 구역 내에서만 생활하셔야 합니다. 물론 에스퍼들의 수가 부족한 이상 안전은 보호막에만 의지하셔야 됩니다.’

협회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좀비 치료제는 아직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들이 모두 맞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좀비 치료제를 맞았다. 게다가 안정성 또한 능력자들이 먼저 나서서 괜찮다는 걸 증명하니 신뢰가 생긴 것도 있었다.

남은 건 하프 좀비들에 대한 처우였다.

인간도, 좀비도 아닌 이들. 그러나 가진 힘은 에스퍼에 버금가는 존재들.

‘제가 가이딩을 해서 하프 좀비들을 원래대로 돌릴게요.’

해결 방법을 제시한 건 이현이었다. 이현의 가이딩 능력은 여전했다. 하프 좀비들은 이현의 가이딩 마력에 노출된 순간, 하프 좀비일 때의 능력을 잃고 보통 사람으로 되돌아갔다.

‘반발력은 더 심할 거야. 말 안 듣는 놈들은 어쩌게?’

진표성이 가벼운 의문을 표했다. 일반 사람들도 좀비 치료제를 맞아야 한다고 하자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항의했다.

하물며 하프 좀비는 소유한 힘을 잃어버리는 상황이다. 반발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따로 관리해야지. 일정 구역에서 지내도록 하면서.’

이미 대세는 능력자들 쪽으로 기울었다. 협회는 한수호를 중심으로 빠르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양측의 전투에서 상당수의 하프 좀비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특히 능력이 강한 놈들이 대부분 죽어 버린 탓에 하프 좀비의 전력은 예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이현의 앞에서 불만스럽게 눈썹을 씰룩거리며 종알거리고 있는 이가 하프 좀비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른 하프 좀비들한테는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잖아요. 저한테 가이딩받으라고.”

“그거야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러지!”

“…….”

이현이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을 지켰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놀랍도록 뻔뻔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나는 신부도 지켜 줘야 하고. 멋있는 모습도 앞으로 계속 보여 줘야 하는데! 힘도 다 잃어버리고 쭈글쭈글하게 지내 봐. 지금도 신부는 저 한수호 새끼만 갓 태어난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다니잖아. 힘도 잃어버린 나를 신부가 거들떠나 보겠어?”

따발총처럼 쏘아진 말에 이현의 침묵이 더 길어졌다. 언뜻 침 몇 방울이 얼굴 위로 튄 것도 같다.

말없이 손을 들어 얼굴을 스윽 쓸어내리자 그제야 서동연이 따개비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현의 입꼬리에 은은하게 매달려 있던 미소마저 자취를 감췄다는 걸 이제야 파악했기 때문이다.

“서동연 씨가 지금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든, 아니면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가든 제가 수호 형을 저버리는 일은 영영 없을 거예요.”

듣기 좋은 미성이지만 지금만큼은 이현의 목소리가 온통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귓가를 북북 긁어 내리는 듯했다.

가능성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단호하게 밀어 내는 목소리에 서동연이 오른손을 들어 심장께를 짚었다.

“아, 아프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차라리 사지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슴이 욱신거려 서동연의 눈빛이 깊은 밤바다처럼 어둑해졌다.

“서동연 씨한테도 예외는 없어요. 하프 좀비로 계속 남아 있기를 원하시면 여기를 떠나셔야 해요.”

이현도 냉정하게 서동연을 밀어 내는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그에게 말한 대로 연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누군가는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하지만, 이현은 제 마음이 오래도록 빛이 바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서동연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마음은 소중하다. 그렇다고 한들 그의 마음을 받아 주지도 않을 거면서 희망 고문을 하는 건 단호하게 그를 밀어 내는 것보다도 더 잔인한 행위였다.

이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 가이딩해 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 봐야지.”

지금까지는 에스퍼든, 가이드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면 일반 좀비가 됐다가 하프 좀비로 변이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 속에서 원래 지니고 있던 능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 이현에게 가이딩을 받아 하프 좀비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온 이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중에서 에스퍼나 가이드로서의 능력을 각성한 자는 없었다.

서동연 역시 하프 좀비가 되기 전에도 능력자의 힘은 가지지 못했다.

“힘을 잃는 것보다…… 신부랑 떨어져서 사는 게 더 싫으니까.”

서동연이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백하자 이현이 그와 더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신이 뭐라고, 서동연이 이렇게까지 진심을 내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가이딩은 키스로 해 주면 안 돼? 이래 봬도 나 진짜 엄청 큰마음 먹고 하는 건데.”

“그건 안 돼요.”

서동연한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그와 입을 맞추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대신 손잡고 해 줄게요. 다른 이들은 다 방사 가이딩으로 했어요.”

이현이 제 손보다 훨씬 커다란 서동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서느런 온도가 맞닿은 접촉면을 따라 온몸으로 미약하게 번져 나갔다.

“이거 영광이네. 아쉽지만.”

서동연이 가볍게 제 손 위로 포개어진 이현의 손을 뒤집어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얽어 넣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헐겁게 만났던 두 개의 손이 틈 없이 맞붙었다. 손등을 두들기는 낯선 접촉에 이현의 손끝이 움츠러들었다.

“신부야, 순식간에 끝내 줘. 생각보다도 무섭네.”

이현의 가이딩 마력을 느꼈을 때, 당시의 감각이 되살아나려 했다. 서동연이 맞잡은 손을 들어 이현의 손등 위로 제 입술을 얌전히 붙였다.

눈만 움직여 이현을 바라보며 웃자 이현이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동연뿐만이 아니라 다른 하프 좀비들도 이현의 가이딩 마력에 극심한 두려움을 내비쳤다.

하프 좀비가 가진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그 증상이 심했다.

서동연은 하프 좀비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현재 그는 누구보다 두려운 감정의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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