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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20)화 (120/133)

120.

한수호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신과 이현을 번갈아 바라보는 진표성의 팔을 붙든 후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순진한 사람한테 막 스킨십하고 그러는 거 보기 안 좋아. 아껴 줘야지.”

진표성이 한수호에게 붙들린 팔을 빼낸 후 그를 뾰족한 눈길로 흘겨봤다. 이현의 붉어진 얼굴만 봐도 한수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벌써 연인이라도 된 듯 한수호는 종종 진표성이 보는 앞에서도 이현에게 가벼운 스킨십을 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진표성은 가슴 한가운데가 욱신거려 손바닥에 붉은 상흔이 생기도록 주먹을 꽉 쥐는 버릇이 생겼다.

“이현이가 좋아해서 하는 거야.”

진표성의 시비에도 한수호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그가 이현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진표성을 위해서라도 자신과 이현의 사이에는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걸 계속해서 알려 줘야만 했다.

“싫어했으면 절대로 하지 않아.”

얼굴을 뚫을 듯한 날 선 시선에도 한수호는 눈을 피하는 대신 분한 빛으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 바라봤다.

“그러니까 얼른 마음 정리해. 그게 너한테도, 이현이한테도 최선이야.”

한수호에게 이현이 전부이듯 기억을 되찾은 이현에게도 한수호는 전부였다. 서로가 있었기에 과거의 끔찍한 시간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기억이 없다면 모를까. 당시의 기억이 서로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한 한수호와 이현은 절대 서로를 놓아줄 수 없는 관계였다.

이현도 진표성이 제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를 바라볼 때마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책감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 줄 사람은 아니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한수호 입장에서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나 이현의 마음이 진표성에게 기울 수도 있으니까. 이현의 마음속을 차지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건 알아도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진표성을 단념시키는 수밖에.

“……마음이 내 의지대로 되는 거였으면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어.”

진표성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한 후회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 이현이 한수호에 대한 감정을 깨닫기 전에 자신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면 지금 이현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미적거린 게 천추의 한이었다. 지금이라도 이현에게 다가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현이 한수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어렵게 먹은 마음마저 힘을 잃었다.

한수호의 곁에 있는 이현은 참 행복해 보였다.

정강필에게 못된 짓을 당한 이후로 이현은 가끔 불안 증세를 보이고는 했다.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한다거나 환영이라도 본 것처럼 멍하니 서서 식은땀을 잔뜩 흘린다거나.

그럴 때 이현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연약해 보여 진표성도 놀라 그에게 다가가 보듬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의 이현은 무의식중에도 진표성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러다가도 한수호가 나타나면 그제야 제대로 된 안식처를 찾은 사람처럼 편안한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자 이현에게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깨닫게 됐다.

“미안하다.”

한수호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진표성이 이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 또한 처음이었다.

팀원들을 전부 아끼지만 유독 마음이 쓰이는 대상은 있기 마련이었다. 진표성이 그랬다.

처음에 알파 1팀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말을 안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반항적인 모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한수호가 진표성의 어깨를 강한 힘으로 쥐었다 놨다. 진표성이 흉곽이 들썩거릴 정도로 거칠어진 숨을 고르더니 먼저 연구소 바깥쪽으로 향했다.

“왜 안 와? 좀비 치료제 완성된 거 실험해 봐야 한다며.”

그러다 한수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자 고개를 돌려 일부러 큰 목소리를 냈다. 한수호가 엷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현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사이여도 그와 자신의 관계 또한 쉽사리 끊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실험을 어떻게 하게?”

한수호가 곁에 다가오자 진표성이 실험 방법에 대해 물었다. 아직 그는 한수호가 자진해서 좀비 치료제를 맞은 걸 몰랐다.

“좀비 몬스터나 일반 좀비 하나만 있으면 돼.”

확실하게 치료제의 효과를 알려면 좀비에게 물리면 된다. 한수호가 첫 번째로 실험체가 된 이유였다.

일반인에게 이 실험을 했다가는 정신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 좀비에게 물린 후 회복 포션을 마신다 해도 물릴 당시의 공포와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자신은 그동안 수없이 다쳐 봤다. 좀비에게 물린 적은 없어도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어 왔다.

이현의 부모님에게 실험을 당한 이후로 정신마저 가죽처럼 질겨졌다.

자신보다 더 적합한 실험체는 찾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좀 외곽으로 나가야 해. 나랑 진수 형이 아침에도 순찰하면서 좀비들 싹 쓸어 버렸으니까.”

좀비는 정말 끝도 없이 기어들어 왔다. 결계석이 다 해제된 상태라 그들을 막아 줄 만한 건 물리적으로 세운 구조물이 다였다.

그 때문에 에스퍼들은 틈만 나면 순찰을 돌면서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외곽 쪽으로 움직였다. 종로구를 벗어나기도 전에 철조망 사이로 손을 뻗고 있는 일반 좀비 하나가 보였다.

“저기 하나 있네.”

“캬햐악―!”

좀비가 된 지 얼마 안 된 놈이었다. 볼 한쪽이 너덜너덜한 걸 빼면 다른 곳은 멀쩡했다.

입 주변과 가슴 앞부분이 핏물에 젖어 엉망인 걸 보니 좀비가 된 후 사람을 잡아먹은 게 분명하리라.

탁한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먹잇감을 찾아 댔다.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이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보였다.

“팀장,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한수호가 일반 좀비에게 다가가 한껏 벌어진 입 사이로 제 팔을 집어넣으려 하자 진표성이 식겁해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이현이가 완성한 좀비 치료제 나한테 주사했어. 좀비한테 물려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해야 해.”

“……하.”

진표성이 답답한 숨을 토해 내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에 대한 자각이 아예 없는 걸까.

한수호는 알파 1팀의 구심점이었다. 한수호가 잘못된다면 멘탈이 흔들릴 이들이 최소 열 명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알파 1팀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능력자들까지 전부 한수호를 리더로 믿고 따르는 중이었다. 이현도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위험한 일을 자처했다니 당최 믿기지 않았다.

“생각이 있는 거야? 차라리 나한테 시켰어야지!”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자신보다 한수호의 가치가 더 높다. 만약 한수호보다 먼저 이현이 좀비 치료제를 완성한 걸 알았더라면 진표성은 기꺼이 제 목숨을 운명에 맡겼을 거다.

“내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해.”

한수호가 진표성에게 붙들린 손을 빼낸 후 말릴 새도 없이 좀비의 이빨 사이로 집어넣었다.

우드득―.

좀비는 자청하는 먹잇감을 마다하지 않았다. 코끝에 느껴지는 먹음직스러운 살 내음에 그대로 한수호의 손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팀장!”

좀비가 한번 물어 버린 것에서 끝내지 않고 살점을 뜯으려 했다. 진표성이 그대로 손톱을 휘둘러 좀비의 머리통 반을 날려 버렸다.

코 아래만 남은 머리가 여전히 한수호의 손에 달라붙어 있었다.

“크윽…….”

한수호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좀비의 이빨을 떼어 냈다. 손등과 손바닥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았다.

피가 새어 나오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한수호가 몸속의 반응을 살폈다.

에스퍼도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로 변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능력도 잃어버렸으니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마력부터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야만 했다.

“내 눈 좀 봐 봐.”

진표성이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은 심정으로 한수호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좀비가 된다면 눈부터 희뿌연 막이 쓰인 듯 변해 가기 때문이다.

“마력이 멀쩡히 움직여.”

“하아……. 진짜 팀장…….”

시간이 흘러도 한수호의 눈동자는 여전히 검녹빛 그대로였다. 이어 한수호가 마력을 움직여 그림자까지 일으켰다.

제 수족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며 능력 또한 멀쩡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심장, 방금 발치까지 떨어져 내렸었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한수호가 눈앞에서 좀비로 변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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