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84)화 (84/133)

084.

생애 마지막 발악을 하듯 버둥거리던 S급 좀비 몬스터의 머리 위로 실선이 그어졌다. 식욕으로 번들거리던 눈이 빠르게 생기를 잃어 갔다.

“부팀장, 오랜만이야.”

“진표성…….”

지상으로 추락하는 좀비 몬스터의 썩은 몸뚱이 위로 수인화한 진표성이 모습을 나타냈다. 임태한과 시선이 마주친 진표성이 눈썹을 찡긋거렸다.

“내가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어떡해.”

진표성이 가볍게 임태한의 허리춤을 잡아채 지상으로 착지했다. 임태한도 그때쯤에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팀장도 같이 왔어. ……제정신이 아니기는 하지만.”

진표성의 말대로 한수호는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목이 떨어진 사체들이 검은 피를 바닥으로 뿌리며 추락했다.

안 그래도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공간에 새롭게 뿌려진 피로 악취가 지독하게 피어올랐다. 이나리와 황두학이 놀라 한수호를 쳐다볼 정도로 한수호는 일대의 좀비들을 쓸어 버리다시피 했다.

뒤에서 밀려오는 좀비들에게 압도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좀비들이 순간이나마 정적 속에 잠겼을 정도로 엄청난 위용이었다.

“팀장님!”

임태한이 한수호를 향해 달려갔다. 이렇게 능력을 사용하면 폭주 위험 수치가 보지 않아도 급속도로 오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이는 한수호의 몰골에 임태한이 침음을 삼켰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그동안 봐 왔던 한수호의 모습 중 가장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가이드와 아이를 구하러 떠났던 팀장이다. 가이드를 대할 때마다 이상해지던 팀장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임태한은 가이드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단번에 파악했다.

혹시 이미 가이드가 잘못된 걸까.

그의 마지막이 서동연에게 납치당하는 거였기에 임태한도 내내 이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야 했기에 제대로 티를 못 냈을 뿐.

“김이현 가이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불러도 반응 없이 주변에 가득한 좀비들을 도륙하기 바빴던 남자가 이현에 대한 얘기에는 반응을 보였다.

“……알아낸 정보는.”

한수호는 임태한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현을 잃은 후 한수호는 곧장 임태한의 흔적을 쫓아 이동했다.

어린아이와 일반인 두 명이 있어 속도가 나지 않기에 마주치는 좀비들마다 몰살했다. 그 바람에 폭주 위험 수치가 치솟아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오히려 두통이 있는 게 나았다.

사라진 이현의 환영이 때때로 한수호의 앞에 나타나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한수호는 돌아 버린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여실히 알게 됐으니까.

“……진수가 독에 당했습니다.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한수호가 이를 악물었다. 김종현의 배신에 이어 김진수까지 다쳤다. 그동안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알파 1팀이 부상을 입은 적은 많지만 사경을 헤맨 경우는 없었다.

“벙커 안에 있는 건가?”

이나리와 황두학, 이낙균이 필사적으로 벙커에서 나오는 문 쪽에는 더 이상 좀비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임태한이 무리해서 좀비들을 밀어 냈고, 진표성과 한수호가 합류해 좀비들을 도륙하자 좀비 웨이브도 주춤거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비어 있던 공간은 다시 좀비들로 빼곡하게 채워질 게 분명했다.

“일행 중 한 명이 협회장 비서실 소속 직원인데, 아무래도 협회장이 협회장실이 있는 건물 지하에 비밀 실험실을 개설한 것 같습니다. A급 에스퍼에게도 치명적인 독은 그 실험실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고요.”

벙커로 연결되는 문 쪽으로 향하는 한수호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임태한이 그동안 알게 된 정보를 공유했다. 한수호의 눈동자에 이채가 돈 것도 그때였다.

자신과 진표성이 가이드 센터로 들어가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흔적을 찾은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현과 정강필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나머지 일행을 진표성에게 맡기고 한수호가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져 봤으나 이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강준이 묶여 있던 건물 옥상에도 가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한수호는 그때 정강필이 자신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비밀 루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만약 정강필이 협회에서 멀리 벗어난 게 아니라 협회장실이 있는 건물 지하로 이동했다면 단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게 설명이 된다.

“생존자 수는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나?”

“……위험합니다. 가이드들과 하급 에스퍼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이동 중에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수호가 벙커 입구에 다다라 숨을 골랐다. 팀원들을 살피는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다행히 김진수를 제외하면 눈에 띌 만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이나리와 황두학은 여기 남아서 생존자들을 지켜. 김진수는 나와 나머지 팀원들이 데려갈 거니까.”

한수호의 지시에 이나리가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수가 괜찮아질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싶지만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했기 때문이다.

“진수는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낙균이 벙커 문을 열고 들어가 김진수를 어깨에 둘러메고 나왔다. 김유진이 걱정스러운 듯 따라 나오려고 했으나 이나리가 안쪽에 들어가 상황 설명을 했다.

“……진수 형.”

진표성이 김진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고통이 심했는지 단정했던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져 있었다. 눈은 감긴 상태였으나 보지 않아도 흰자위 또한 충혈됐을 게 뻔했다.

“으으…….”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김진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허옇게 부르튼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숨이 델 듯 뜨거웠다.

“빨리 이동하자. 가이드 행방에 대한 실마리도 찾은 거지?”

“응.”

“그러면 먼저 출발해.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나도 들었으니까. 나는 꼬맹이랑 다른 사람들 벙커로 이동시키고 뒤따라갈게.”

현재 김솔과 김민지, 신민우는 근처 건물 옥상에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을 데리고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접근할 수 없어 급한 대로 떼어 놓은 거였다.

진표성의 어깨를 한차례 두들긴 한수호가 먼저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그의 뒤를 임태한과 이낙균이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제발…….”

이낙균이 몸을 꿈틀거리는 김진수의 등을 토닥거리며 믿지도 않는 신을 간절하게 찾았다. 차라리 자신이 다쳤다면 지금처럼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 텐데.

“좀비 웨이브의 방향도 저희 쪽으로 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상 현상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임태한이었다. 현재 한수호는 방해가 되는 좀비들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단검을 휘두르면 여지없이 썩은 몸뚱이가 조각난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썩은 육신은 그 자리를 곧바로 채운 좀비들의 발에 짓밟혀 순식간에 피와 육편으로 변해 갔다.

“우리 쪽에서도 이상 증상을 보이는 하프 좀비 하나를 확보했었어. ……가이드한테 특이한 능력이 발현됐거든.”

“김이현 가이드한테요?”

“응.”

차라리 이현에게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이현은 제 곁에 남아 있었을까. 이현의 곁을 맴돌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자문해도 대답을 찾을 수 없어 한수호는 답답한 숨만 터트리듯이 내쉬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증상인 것 같아.”

강준과 김진수에게서 보이는 증상은 다른 듯하면서도 유사했다. 한수호는 김진수의 피부 위로 검은색 핏줄이 불거졌다가도 금세 가라앉는 모습을 예리한 눈길로 살폈다.

“하프 좀비 측에서 가지고 있었던 독인 건가?”

“네. 진수가 등을 길게 베였는데 그때 독이 몸속으로 침투한 것 같습니다. 회복 포션으로도 증상은 크게 호전되지 않는 것과 상태를 보면 일반적인 독이 아닌 게 확실합니다.”

에스퍼들은 기본적으로 독에 관한 교육도 받았다. 좀비도 어떻게 보면 독을 가진 존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건물에 다가갈수록…… 좀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네요.”

협회장실이 있는 건물은 협회 건물 중에서도 높이가 높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이드 센터만큼은 아니어도 건물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했다.

그때 한수호 일행을 따라오던 좀비 웨이브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모든 좀비들이 떨어져 나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좀비 웨이브 전체가 따라오는 것에 비하면 수는 미미했다.

“저것들부터 처리한 다음에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를 바로 수색하도록 하지.”

건물 근처를 배회하던 좀비들도 한수호 일행의 존재감을 느끼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키히이익……!”

“그어어…….”

수십을 넘어가는 수였으나 에스퍼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랄 게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살을 물어뜯으러 달려드는 괴물들을 향한 증오와 투지만이 가득했을 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