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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83)화 (83/133)

083.

김유진은 황두학을 가이딩하면서도 우울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괴로워 몸부림치던 오빠의 얼굴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딩 마력은 가이드의 심리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형, 괜찮을 거야.”

황두학은 자신도 불안하면서 김유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남매가 얼마나 끈끈한지 곁에서 지켜봐 온 세월이 있었다.

김진수도 김유진이 위험하다는 걸 안 이후로 하루라도 빨리 협회에 도달하기 위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렵게 재회해서 제대로 회포를 풀기도 전에 김진수에게 일이 발생했다. 김유진의 속은 엉망일 게 분명했다.

“맞아. 그럴 거야.”

김유진이 고개를 들어 황두학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황두학의 말대로 김진수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는 듯이.

* * *

“조금만 더 밀어 내!”

“무리예요! 좀비 놈들이 저희들의 존재를 이미 알아채 버렸어요……!”

황두학이 이낙균의 말에 문틈 사이로 밀고 들어오는 좀비 떼들에게 물줄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좀비들을 문에서 1미터도 채 되지 못하는 거리로 밀어 내는 게 고작이었다.

“숨 좀 돌리고 있어.”

지친 황두학을 대신해 임태한이 능력을 사용했다. 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폭이 좁은 탓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면 나머지 인원은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갸아아악―!”

“크르르……!”

황두학이 밀어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좀비들의 수가 워낙 많은 탓에 좀비 몇 마리가 순식간에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갯과형 좀비 몬스터가 질질 흘린 침이 문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어깨 위로 타액이 떨어져 역한 냄새가 나는데도 임태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임태한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태한이 대기 중에 흐르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 결과였다.

“부팀장님, 코에서 피가…….”

황두학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대를 아우르는 소용돌이를 발생시킨 탓에 임태한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빛이 얼마 들어오지 않아 어둑한 공간에서도 하관을 빨갛게 물들이는 피는 선명하기만 했다.

“내가, 먼저 바깥으로 나갈 테니까…….”

황두학의 걱정에도 임태한은 길을 뚫는 것만 생각했다. 좀비 웨이브가 벙커 위를 지나다닌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고 폭주 위험 수치가 어느 정도 내려가자마자 길을 뚫기 위해 지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좀비 웨이브에 속한 좀비들은 끈질겼다.

그동안 임태한과 알파 1팀은 좀비 웨이브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문제는 잠깐 방향이 틀어졌다가도 원래대로 돌아오기 일쑤라는 거였다. 결국 힘을 합쳐서 길을 뚫는 정공법을 택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소용돌이의 힘이 약해지려고 해 임태한이 마력을 더 불어 넣은 순간이었다.

“쿨럭…….”

“조금만 더 버텨 봐, 제발…….”

김진수가 왈칵 검은 피를 토했다. 계속해서 피를 토해 낸 여파로 김진수의 안색은 푸르죽죽했다. 이낙균이 피로 범벅이 된 김진수의 입가를 소맷귀로 닦아 내며 애원했다.

김진수의 등을 어루만지며 사태를 지켜보던 이나리가 채찍을 꺼내 오른손에 휘감았다.

“진수 오빠 등 잘 받치고 있어요. 제가 올라가서 부팀장님 도와줄 테니까.”

최소 A급 에스퍼는 되어야 쏟아지듯 다가오는 좀비들을 조금이나마 밀어 내는 게 가능했다. 그렇기에 A급 에스퍼들은 모두 한 명씩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번갈아 가며 힘을 보태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앉은 A급 에스퍼들이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김유진과 다른 가이드들은 자리를 이동하면서 그런 에스퍼들을 한 명씩 가이딩하는 중이었다.

“하아…….”

임태한이 뻐근한 감각이 이는 가슴을 문지르며 상체를 문 바깥으로 빼냈다. 일대는 소용돌이로 엉망이었다. 소용돌이에 휩쓸려 날아가는 좀비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 때문에 임태한도 귀가 욱신거릴 정도였다.

이미 벙커 위쪽에 있던 공사장은 폐허가 되어 일부 골조 외에는 좀비들에게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무리해서 소용돌이를 일으킨 덕분에 지상으로 올라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불과 십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좀비들이 한데 뒤엉켜 임태한을 향해 팔을 뻗으며 괴성을 질러 댔다.

“캬아아악!”

“캬아악!”

“크히이익……!”

크기도, 모양도 다른 것들이 식욕으로 번들거리는 회색빛 눈알만큼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자잘한 것들은 뭉쳐 있다고 한들 임태한의 목숨을 위협하기에는 무리였다.

“키히이이익―!”

가장자리에서 허우적거리던 S급 좀비 몬스터가 소용돌이의 힘에서 벗어나 포효했다. 거대한 독수리형의 몬스터였다.

양쪽 날개를 활짝 펴자 일대 주변으로 어둑한 그림자가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살점이 썩어 날개 중간중간 공백이 있어도 일대를 아우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좀비 몬스터의 한쪽 눈은 이미 다 썩어 뻥 뚫린 눈구멍만 남아 있었다. 눈은 하나뿐이지만 더욱 예민해진 청력과 후각이 임태한의 존재를 인식했다.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임태한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좀비 몬스터가 만들어 낸 바람의 힘까지 더해졌다. 체구가 작은 좀비들은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날아다녔다.

“부팀장님!”

이나리가 벙커 문을 열고 나와 임태한의 곁에 섰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힘이 강해 몸이 휘청거리자 임태한이 이나리의 팔을 붙들었다.

“위험하니까 다시 내려가.”

“혼자서 어떻게 저놈을 해치우려고요. 지금 컨디션도 좋지 않아 보이는데.”

S급 좀비 몬스터 하나만 있었다면 임태한 혼자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돌이가 잦아들며 다른 좀비들도 꿈틀거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나리가 임태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지키고 선 이유였다. 마력을 불어 넣자 채찍이 중력을 거슬러 뻣뻣하게 허공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나마 10시 방향이 좀비들의 수가 적네요. 일단 저쪽으로 길을 뚫고 폭탄이라도 찾아서 터트리든지 해야겠어요. 좀비들의 이목을 끌 수 있게.”

임태한 혼자 몸을 움직이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정신도 못 차리는 김진수를 데리고 이동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좀비 웨이브에 장악된 일대는 부상자를 부축하고 뚫기에는 너무 위험천만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키히이이……!”

“목청 한번 우렁차네.”

이나리가 채찍을 창처럼 오른손에 들고 좀비 몬스터의 머리통을 조준했다. 거대한 몸체에 비해 머리는 자그마해 맞히는 게 쉽지 않아 보였으나 망설임은 없었다.

이나리의 손에서 날아간 채찍이 좀비 몬스터의 부리 끝에 스칠 때였다.

“끼히이익!”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좀비 몬스터가 고개를 틀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채찍은 머리통을 꿰뚫는 대신 볼에 기다란 상흔을 남기고 그 너머로 날아갔다.

“……괜히 S급 좀비 몬스터가 아니라 이거지.”

한 번에 죽이지는 못해도 치명상은 입히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채찍을 던진 대가로 얻은 건 날아오던 좀비 몬스터의 속도를 아주 약간 늦춘 것뿐이었다.

“기다려.”

좀비 몬스터가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가려는 이나리의 팔을 붙잡아 멈추게 한 후 임태한이 그대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도약질 한 번에 좀비 몬스터의 머리 위까지 몸을 띄울 수 있었다. 임태한은 지상으로 추락하는 대신 소리를 따라 고개를 움직이는 좀비 몬스터의 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끼힉! 끼히익!”

묵직한 타격에 좀비 몬스터가 날뛰기 시작했다. 임태한이 바람을 일으켜 일반 좀비 둘의 머리통을 꿰뚫은 채찍을 뽑아내 이나리에게 되돌아가도록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좀비 몬스터 머리 주변의 공기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반쯤 썩어 내린 살점이 바람에 갈리며 뼈가 조금씩 드러났다. 썩은 피가 바람에 섞여 들어 사방으로 콩알처럼 튀었다.

“끼히이이……!”

좀비 몬스터가 살기 위해 강하게 몸을 흔들어 댔다. 임태한이 균형을 잡으려 좀비 몬스터의 목덜미 쪽을 잡았다가 뭉텅이로 깃털이 뽑혀 그대로 등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순식간에 하체가 좀비 몬스터의 몸체에서 벗어나 허공에 달랑거렸다. 임태한은 떨어지기 직전에 좀비 몬스터의 몸통에 손을 박아 넣었다.

“끼히익……!”

고통은 느끼지 못해도 좀비 몬스터가 더욱더 격하게 몸을 흔들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임태한의 모습에 이나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좀비 몬스터가 내지르는 괴성에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채찍이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쏘아져 나가 좀비들의 머리통을 하나씩 터트렸다.

“두학아, 너는 나리 좀 도와. 나는 부팀장님 쪽으로 갈 테니까.”

“네.”

전투가 이어지자 이낙균과 황두학도 벙커 문을 열고 지상으로 나왔다. 며칠 동안 지속된 전투에 다들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지금처럼 무리하더라도 좀비 웨이브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어 도주로를 확보해야만 했다.

“쿨럭, 쿨럭…….”

소용돌이를 유지하면서 S급 좀비 몬스터까지 상대하자 폭주 위험 수치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 임태한이 한차례 피를 토한 후 하얗게 점멸되는 시야에 까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문 순간이었다.

“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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