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목청 자랑하지 말고 따라오라니까.”
진표성이 제 주먹 모양대로 파인 곳을 한 번 더 때린 후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렵하게 움직였다.
“캬하아아아악―!”
대로한 외뿔 구렁이가 진표성을 뒤쫓아 갔다.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좀비들이 쥐포처럼 바닥에 들러붙었다.
“이놈을 어디에다가 던져두고 오는 게 좋을까.”
눈가를 가릴 듯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려다가 손의 상태를 깨닫고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입바람을 불었다. 언뜻 여유로워 보이지만 진표성의 팔과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짝 쫓아오는 외뿔 구렁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확실하게 유인하기 위해 열받게 한 건 좋은데 지나쳤던 모양이다.
“으윽…….”
몸을 움직이면서 일반 좀비 하나의 머리통을 밟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부패가 심하게 진행됐는지 밟자마자 머리가 물크러졌다.
몸 상태가 괜찮았다면 금세 균형을 잡았겠지만 지속된 전투에 피로도가 근육에 쌓인 상태였다. 잠시 미끄러진 대가는 컸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외뿔 구렁이가 순식간에 진표성의 몸을 제 몸통으로 휘감기 시작했다. 내장이 우그러지는 고통에 진표성의 미간이 살벌하게 찌푸려졌다.
졸지에 외뿔 구렁이를 온몸에 두르게 된 진표성이 간신히 팔을 바깥으로 빼냈다. 털에 감싸인 상체의 근육이 선명하게 맥동했다.
좀비들의 피에 물들어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던 손톱이 외뿔 구렁이의 외피를 뚫고 박혀 들어갔다.
울컥 치밀어 오른 핏물이 입 바깥으로 토해졌다. 신선한 피 냄새에 외뿔 구렁이와 근처에 있는 좀비들이 아우성쳤다.
“키이익―!”
피 냄새에 입맛이 도는데 먹잇감의 반항이 심상치 않았다. 다 잡은 먹잇감을 으스러뜨리고 있던 외뿔 구렁이가 성가신 비명을 질렀다.
고통은 없으나 하필 진표성이 손톱을 박아 넣은 위치가 근육이 지나가는 자리라 먹잇감을 조이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이대로라면 먹기 좋은 먹잇감을 놓칠 것 같았다. 외뿔 구렁이가 입을 활짝 벌려 진표성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빠져나와.”
소리 없이 외뿔 구렁이의 머리 위에 나타난 한수호가 그림자로 외뿔 구렁이의 머리가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했다.
날카로운 가시처럼 생긴 그림자가 외뿔 구렁이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끔 입천장과 혀에 제 몸체를 박아 넣었다.
“……온몸이 욱신거려.”
잠깐이어도 외뿔 구렁이의 힘에 짓눌린 여파는 선명하게 진표성의 몸에 남아 있었다. 그나마 상체는 괜찮았지만 허리 아래쪽은 뼈가 부러져 다리가 기기괴괴한 모양으로 틀어져 있었다.
내상도 입은 탓에 진표성의 입가는 온통 핏물로 젖어 있었다. 건강해 보이던 혈색이 이현 못지않게 창백해졌다.
“조금만 참아.”
한수호가 그림자를 움직여 진표성의 몸을 휘감았다. 진표성이 바들거리는 팔을 움직여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서 회복 포션을 꺼내 마시기 위해서였다.
웬만하면 참겠지만 느껴지는 고통으로 보아 뼈가 한두 군데 부러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손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결국 진표성은 회복 포션 마시는 걸 포기하고 고통스러운 숨을 골랐다.
차라리 죽일 목적으로 외뿔 구렁이를 상대했다면 지금처럼 큰 부상을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S급 좀비 몬스터는 적당히 상대하는 걸로는 움직임을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
폭주 위험 수치까지 높아지자 외상과 내상의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한수호의 어깨에 걸쳐진 진표성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한수호가 곁에 있기에 안심하고 몸의 긴장을 푼 거였다.
한수호가 다리에 마력을 순환시켜 빠르게 벙커 입구 쪽으로 향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에 진표성이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 방울방울 맺힌 식은땀이 두 사람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뚜욱, 뚝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캬햐악……!’
“크르르……!”
한수호가 진표성을 구한 사이 벙커로 들어가는 문은 재차 좀비들에게 뒤덮여 있었다. 한수호의 주변으로 좀비들의 그림자들이 일어나 좀비들을 밀어 내기 시작했다.
백을 넘어가는 좀비들을 밀어 내는 건 한수호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수호의 반지에 박힌 마석이 아름다운 빛을 허공에 흩뿌릴수록 목에 불거진 핏줄이 선명해졌다.
“팀장, 지금.”
진표성의 신호에 문이 드러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수호가 벙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숨을 고를 여유도 없었다. 문이 닫힐 때까지 좀비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그림자를 움직여야 했다.
“키이이익―!”
한수호와 진표성이 멀리 떨어뜨려 놨던 외뿔 구렁이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달려들었다.
“왜 이렇게 천천히 닫혀.”
당장이라도 외뿔 구렁이가 거대한 머리통을 벙커 입구에 집어넣을 것 같은 긴박한 순간이었다. 한수호가 좀비들을 밀어 내던 그림자 중 일부를 움직여 외뿔 구렁이가 오는 방향에 그림자로 만들어진 장벽을 세웠다.
콰아아앙―!
“키이이……!”
“쿨럭…….”
장벽이 외뿔 구렁이의 머리와 부딪쳐 부서지는 동시에 드디어 벙커의 문이 닫혔다. 장벽이 깨지면서 생긴 반발력이 한수호를 덮쳐들었다.
“이제 내가 팀장 부축해야 하는 거 아니야?”
“됐어.”
한수호의 하관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진표성이 가볍게 던진 농담을 마다한 한수호가 진표성을 데리고 계단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어, 어……. 조심히 좀 걸어. 나 지금 환자라고.”
중간중간 한수호의 몸이 비틀거릴 때마다 진표성이 잔소리를 해 댔다. 한수호는 말없이 얼굴 아래와 상체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옷으로 닦아 냈다.
그러나 소맷귀만 피에 젖어 들어갈 뿐 별다른 소용은 없었다. 마침내 벙커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시야가 확 밝아질 때였다.
“팀장님!”
초조하게 계단 입구를 서성이던 이현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이게 도대체…….”
동그랗게 뜨인 눈이 엉망으로 흔들렸다. 바로 이런 이현의 표정을 보게 될까 봐 핏자국을 최대한 숨기려던 거였다. 한수호가 이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래 봤자 핏자국은 가려지기는커녕 음영 진 얼굴만 두드러질 뿐이었다. 한수호의 어깨에 매달려 늘어져 있던 진표성이 고개를 들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가이드, 나는 안 보여? 나도 엄청 다쳤다고.”
혹시나 제 얼굴이 잘 안 보여 한수호만 걱정하는 건가 싶어서 얼굴이 잘 보이도록 고개를 뒤로 확 젖히기까지 했다. 이현의 떨리는 시선이 진표성에게도 닿았다 떨어졌다.
“이쪽으로 와요.”
이현이 놀란 심장을 다독이듯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한수호와 진표성을 소파가 있는 쪽으로 이끌었다. 한수호가 진표성을 소파 한군데에 내려놨다.
자세가 바뀌면서 다리가 소파에 닿은 탓에 진표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바지가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다리가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한수호도 진표성이 누운 소파 건너편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전투의 여파로 아직도 숨이 거칠었다.
정강필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부상 정도를 살폈다. 그 사이 이현은 욕실로 달려가 수건을 적셔 한가득 들고 왔다.
“전투가 엄청 치열했나 보구나.”
“말도 마요.”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김솔도 슬그머니 진표성에게 다가갔다. 진표성이 놀라 오른손을 허우적거렸다. 제 꼴이 아이가 보기에는 정서상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꼬맹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 방에 들어가 있어.”
“저도 도울래요.”
하지만 김솔은 진표성의 으름장에도 고개를 젓고는 이현에게서 수건 하나를 받아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건을 쥐어 얼굴을 톡톡 건드리는 손길에 진표성이 결국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입은 웃고 있지만 진표성의 눈동자는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자신도 한수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다쳤는데도 곧장 한수호에게 향하는 이현 때문이었다.
“……아저씨, 많이 아파요?”
“응. 그렇네.”
김솔이 기민하게 진표성의 감정을 파악했다. 우울하게 가라앉은 그의 얼굴에 안절부절못하며 핏자국이 가득한 상체를 물수건으로 닦아 냈다.
한수호의 어깨에 짐짝처럼 올려진 채 내려올 때 수인화가 풀려 진표성은 현재 벌거벗은 상태였다. 가장 심각한 건 다리 쪽 부상이지만 상체에도 검은색에 가까운 멍 자국이 가득했다.
“솔아, 누나랑 같이하자.”
김민지도 진표성에게 다가와 상처 위의 피를 닦아 냈다. 그사이 정강필은 회복 포션을 꺼내 진표성에게 건넸다.
“반은 마시는 게 좋겠다. 내상도 심각해 보이니까.”
진표성이 회복 포션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다 입 안에 머금고 넘겼다. 화한 느낌이 입 안에 머무르다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번져 갔다.
“바지는 아예 잘라 버리는 게 좋겠는데.”
현재 진표성의 다리는 건드는 게 무서울 정도로 부어 있었다. 바지도 일부분은 뜯어져 있었지만 회복 포션을 바르려면 아예 자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제가 가위 가져올게요.”
“아니야. 손으로 뜯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