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강준과 이현이 떠나면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원인이 사라진 것이니 다시 좀비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떠나는 일행을 따라올 수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지반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아래 벙커는 멀쩡하더라도 탈출 경로가 무너진 지반에 파묻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산 채로 매장될 위험성을 감수하기에 신민우는 에스퍼로 각성하지도 못한 일반인이었다. 벙커 안에 있다가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 손쓸 새도 없이 죽을 게 분명했다.
“각자 오십 정도만 처리하고 내려가지.”
“그래. 외뿔 구렁이만 믿을 수는 없으니까.”
한수호의 제안에 진표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좀비 몇 마리를 골로 보낸 터라 손톱을 따라 썩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표성이 가장 앞에 있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며 좀비들이 한 무더기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도 발에 힘을 줘 좀비들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두개골이 함몰되고 그 안에 있는 뇌수가 찐득하게 신발 밑창에 달라붙는 감각은 언제 느껴도 소름 끼칠 만큼 끔찍했다.
“키히익……!”
“어이쿠.”
진표성은 일부러 외뿔 구렁이들은 공격하지 않고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외뿔 구렁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외뿔 구렁이 중 한 마리가 진표성이 있는 쪽으로 휙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와 맞지 않는 빠른 속도였다.
진표성이 아슬아슬하게 외뿔 구렁이의 공격을 피해 옆쪽으로 몸을 틀었다. 진표성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아우성치는 좀비들을 방패 삼아 미꾸라지처럼 외뿔 구렁이의 뒤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얘는 오히려 좀비가 돼서 덜 위험해진 것 같기도 하고.”
좀비 몬스터가 됐을 때 더 위험한 종류가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상대하기 쉬운 종류도 있기 마련이었다. 외뿔 구렁이는 후자였다.
외뿔 구렁이는 보통 빠른 속도로 먹잇감을 잡아챈 후 몸통 힘을 이용해 으스러트린 다음에 통째로 삼키는 습성을 지녔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좀비들에 비해서는 속도가 빠르지만 원래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움직임이 한층 둔해졌다.
진표성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좀비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캬하악…….”
“끄륵, 끅…….”
“크헉…….”
진표성을 잡지 못해 화가 난 외뿔 구렁이가 좀비 한 무더기를 그대로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썩어 버린 살점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외뿔 구렁이의 외피를 타고 바닥으로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키이이익……!”
성인 남성의 얼굴만 한 눈동자가 번뜩이며 먹잇감을 찾아 데구루루 굴러갔다. 희뿌연 막이 씌워진 눈동자는 시력이 없다시피 한데도 살기 짙게 번들거렸다.
“더 날뛰어라, 더.”
진표성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외뿔 구렁이를 좀비들이 모인 곳으로 유인했다. 좀비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일부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는 외뿔 구렁이에게 달라붙어 썩은 살점을 긁어 댔다. 민첩하기로 유명한 외뿔 구렁이지만 숫자에는 장사가 없었다.
거대한 몸통에 달라붙은 좀비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외뿔 구렁이의 움직임 또한 느려졌다.
“하아……. 쉴 틈이 없네.”
하지만 외뿔 구렁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진표성은 허벅지 근육이 터져 나가도록 쉬지 않고 외뿔 구렁이 두 마리의 공격을 피해 움직였다.
중간중간 좀비들의 공격도 피하면서 수를 줄여 나가야 했기에 마음 편히 숨 쉴 시간조차 없었다. 에스퍼 정복이 팽팽해지도록 부풀어 오른 몸체가 위험스럽게 흔들렸다.
진표성의 공격은 몬스터 못지않은 야생성을 담고 있었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그가 몸을 움직인 자리에는 여지없이 머리통이 반으로 갈라진 사체가 남았다.
“키이이……!”
외뿔 구렁이의 머리가 아슬아슬하게 진표성의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득한 타액이 외뿔 구렁이의 입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진표성이 재빠르게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타액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등에 맞고 말았다. 치이익, 천이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산성액이 농축된 것과 같은 타액에 옷이 금세 녹아내려 등에 달라붙으려 했다. 진표성이 할 수 없이 상의를 벗어 던졌다. 좀비들 사이로 던진 에스퍼 정복이 좀비들의 이빨에 뜯겨 누더기가 되어 갔다.
“가이딩받고 싶다.”
이현이 애써서 내려 준 폭주 위험 수치가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었다. S급 좀비 몬스터를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려니 마력 사용량이 늘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려다 손이 피범벅이라는 걸 깨닫고는 신경질적으로 다가오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키이이이이익―!”
“팀장 쪽도 장난 아닌데.”
진표성과 한수호의 전투 스타일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진표성은 육체의 폭발적인 힘을 이용해 S급 몬스터의 발톱마저도 잘라 내 버리는 손톱으로 적의 육신을 난도질했다. 포지션을 따지자면 근접 딜러에 가까웠다.
반면 한수호는 그림자를 이용해 원격과 광범위한 공격도 가능하지만, 직접 그림자로 만든 무기를 손에 들고 근접해서 싸우는 방식을 즐겼다.
한수호의 단검 중 하나가 외뿔 구렁이의 눈알에 박혀 들었다. 외뿔 구렁이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에 근처에 있던 좀비들의 고막이 터져 나갔다.
한수호도 영향을 받았는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외뿔 구렁이에게서 거리를 벌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단단히 열받은 외뿔 구렁이가 한수호를 바짝 따라갔다.
스프링이 한계까지 눌렸다 튕기는 듯한 폭발적인 속도였다.
“팀장……!”
당장이라도 한수호의 몸뚱이 정도는 외뿔 구렁이가 한껏 벌린 입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한수호의 능력을 잘 아는 진표성이 순간 철렁이는 가슴에 한수호를 큰 목소리로 불렀을 정도로.
“여유롭게 전투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야?”
걱정이 무색하게도 한수호는 우아해 보일 정도로 몸을 반 바퀴 회전해 달려드는 외뿔 구렁이의 머리 위에 가뿐하게 올라탔다.
외뿔 구렁이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었다.
“키이이……!”
한수호는 나머지 눈에도 단검을 박아 넣었다. 단검을 손잡이 삼아 외뿔 구렁이 위에서 버티자 회색빛 눈알이 단검의 날을 따라 부드러운 푸딩처럼 갈라졌다.
오랜 시간 푸욱 끓인 듯한 검은색 스튜 같은 진액이 갈라진 눈알을 따라 흘러내렸다.
올라탄 외뿔 구렁이가 꼬리로 바닥을 쿠웅, 쿵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하필이면 벙커로 내려가는 문이 있는 위치였다.
지금은 주변을 내리치고 있지만 문에 직격타가 들어가면 여닫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키익, 키이익……!”
한수호가 주변에 몰려든 좀비들의 그림자를 움직여 외뿔 구렁이의 몸체를 옭아맸다. 그림자를 빼앗긴 좀비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스스로 몸을 바치듯이 외뿔 구렁이 아래로 쓰러졌다.
일대가 걸쭉한 핏물로 물들어 갔다. 한수호가 그림자를 이용해 외뿔 구렁이의 몸체 구석구석에 구멍을 뚫어 버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몸속 가득한 핏물이 빠져나가자 외뿔 구렁이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져 갔다.
“이러다 얘 사체 되는 거 아니야?”
진표성은 아예 외뿔 구렁이 두 마리의 꼬리가 엉키도록 해 놓고 왔다. 한수호가 있는 쪽이 벙커로 들어가는 입구라 돌아온 거였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단검이 눈알에 박힌 외뿔 구렁이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한 마리쯤은 사체가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아니, 외뿔 구렁이는 가만히 놔두자고 할 때는 언제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외뿔 구렁이가 개미 떼들에게 잡아먹힌 지렁이 꼴을 하고 있었다. 진표성의 말에도 한수호는 외뿔 구렁이 하나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진표성, 이놈 다른 쪽으로 유인하고 와. 문 열어야 하니까.”
두 사람이 지상으로 나와 전투를 한 지도 한 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계속해서 벙커 쪽에 진동이 전해질 테니 이현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진표성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몸을 움직여 외뿔 구렁이의 머리통을 뻐억 소리가 나도록 갈겼다. 손톱으로 긁어 내리지 않고 일부러 주먹을 쥐어 때렸더니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키이이……?”
거대한 외뿔 구렁이의 머리통이 찰나 바닥에 처박혔다가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반쯤 썩은 눈동자에 의아한 기색이 어리는 순간이었다.
“이쪽으로 따라와.”
진표성이 한 번 더 외뿔 구렁이의 얼굴 옆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주먹 모양대로 외뿔 구렁이의 얼굴이 움푹 파였다.
성가시게 하는 존재를 확실히 인식한 외뿔 구렁이가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괴성을 질러 댔다. 살점이 군데군데 끼어 있는 이빨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키히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