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66)화 (66/133)

066.

한수호와 자신은 도대체 어떤 사이였던 걸까.

처음에는 자신은 그를 잘 알지 못하는데 마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어 두려움을 줬던 사람이다. 특히 그를 가이딩할 때마다 심장이 불길하게 뛰어 조마조마했다.

그랬던 사이인데. 도대체 어느새 이만큼 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됐는지 새삼 신기했다.

이현이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이현의 미소를 마주한 한수호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당장이라도 이현의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본능을 이기지 못한 손끝이 이현을 향해 뻗어 나갈 때였다.

“다들 와서 밥 먹어.”

마치 한수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처럼 진표성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거실로 나왔다.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있는 모양새가 여지없이 살림꾼이었다.

한수호가 차오르는 한숨을 내리누르며 이현을 향해 손을 건넸다. 아직 기운이 없어 보이니 부축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 한수호를 힐끔거리던 김솔도 소파에서 내려와 이현에게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솔이도 아저씨 부축해 주려고?”

“네에.”

아이의 양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현이 거절하지 않고 김솔의 손을 잡았다. 시야에 한수호가 손끝을 말아 쥐는 게 보였다.

“팀장님도 저 부축해 주셔야죠.”

한수호의 손이 완전히 접히기 전에 이현이 제 손을 커다란 손바닥 위에 툭 얹었다. 손에 닿아 오는 온기에 입가에 맺혀 있는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한수호가 자연스럽게 이현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집어넣어 단단히 깍지를 꼈다. 김솔도 한수호를 따라 이현과 손깍지를 끼기 위해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세 사람, 드라마 찍지 말고 음식 식기 전에 와서 먹어.”

어느새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진표성이 한마디를 더했다. 가만히 놔두면 찌개가 다 식을 때까지 손만 잡고 꽁냥거릴 것 같아서였다.

“보기 좋구만. 그냥 놔두지 그러니.”

진표성의 옆에 와 선 정강필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간간이 한수호에 대한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걱정을 많이 했다.

감정이 결여된 것처럼 살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듯해 죄책감이 한결 덜어졌다.

“하나도 안 어울리는구만.”

진표성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사이좋게 걸어오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듯 화목해 보이는 모습에 심사가 꼬인 탓이다.

“이걸 다…… 진표성 에스퍼가 만든 거예요?”

하지만 진표성은 이현이 식탁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자 금세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살짝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같이 도와드려야 했는데.”

이현이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너무 편안하게 있었던 것 같다.

“너는 아팠잖아. 두통은 좀 가라앉았냐?”

진표성의 손끝이 스치듯이 이현의 이마에 닿았다. 미열이 있으나 안색은 한결 나아 보였다.

손에 남은 온기가 아쉬워 진표성이 이현에게 반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곧 이현이 몸을 뒤로 물려 두 사람의 거리는 이전보다 더 멀어졌다.

“……괜찮아요.”

이현이 반사적으로 힐끔 한수호의 표정을 살폈다. 한수호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이상하게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으로 김민지와 신민우도 들어왔다. 김민지도 이현처럼 진표성에게 미안한 눈치였다.

“설거지는 저희가 할게요.”

부엌에 들어온 김민지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신민우에게도 손을 들라고 눈짓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왜 다들 눈치를 보나 몰라.”

“입조심 좀 해요.”

신민우가 구시렁거렸으나 눈을 부라리는 김민지 때문에 결국 김민지처럼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네, 네. 설거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얄미운 소리 안 하면 입 안에 가시 돋아요? 도대체 왜 그래요?”

“아니, 뭘. 설거지한다니까?”

“……됐으니까 빨리 앉아요.”

차라리 신민우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김민지가 그의 팔을 잡고 식탁의 가장 구석 자리로 향했다.

“다들 앉아서 배불리 식사들 하게. 앞으로 한동안은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정강필이 소란스러운 장내 분위기를 환기하듯이 손뼉을 짝 쳤다. 그의 말대로 식탁 위 음식은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화려했다.

“아저씨, 솔이랑 여기에 같이 앉아요.”

김솔이 냉큼 이현과 잡은 손에 힘을 줘 이현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그래.”

이현이 한수호와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고 의자에 앉았다. 얼굴에 닿아 오는 시선 두 쌍에 볼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밥, 이 정도면 충분한가?”

“……네. 감사합니다.”

정강필이 내민 밥그릇에 이현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직 정강필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떠오른 게 아니라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상황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반영하듯 그가 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이현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밥그릇으로 내렸다.

이현의 주먹을 두 개 합쳐 놓은 것 같은 밥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식사량을 훨씬 넘는 양이었다.

“아이 밥도 곧 가져다주마.”

“괘, 괜찮아요……. 이거 솔이랑 같이 나눠 먹어도 충분해요.”

이현이 정강필을 말리고 옆에 놓여 있던 앞접시에 밥 반 공기를 덜었다. 그러더니 앞접시는 제 앞에 놓고 밥그릇을 김솔의 앞자리에 놓았다.

“솔아, 밥 부족할 것 같아?”

“아니요.”

밥 반 공기도 김솔의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많았다. 김솔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가이드, 이것부터 먹어. 내가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끓인 거니까.”

진표성이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커다란 냄비에서 닭 다리 하나와 전복 두 개를 골라 국그릇에 덜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해산물은 엄청 귀했다.

몬스터가 등장한 이후 바다는 몬스터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던전이 바닷속에서 열리면 클리어하기가 훨씬 힘든 까닭이다.

더군다나 좀비들 때문에 육지와 해로가 막힌 경우도 많아 배송비까지 어마어마하게 비싸졌다. 그 때문에 해산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진표성이 해신탕에 넣은 재료들은 모두 냉동된 상태로 벙커 안에 보관되어 있었던 거다. 특수 보존 처리된 것들이라 상태도 괜찮았다.

“……나도 전복 먹고 싶은데.”

전복을 보는 신민우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언제 먹어 본 건지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였다. 현재 국자를 들고 음식을 나눠 주고 있는 사람은 진표성이었다.

진표성은 분명 자신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떠 줄 테니 그때까지 전복 하나는 남겨 달라고 소심하게 어필한 거였다.

“자, 너도 실컷 먹어라.”

“감사합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진표성이 냄비 안에 들어 있는 전복 중 실한 것을 하나 골라 닭고기와 함께 그릇에 덜어 신민우에게 건넸다. 신민우가 지금까지 본 표정 중 가장 행복하게 웃으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진표성도 그에 대한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 낼 수 있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평소에는 선량해 보이던 사람들도 잔혹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신민우의 이기적인 행동은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진표성은 이어 다른 이들에게도 해신탕을 적당량 덜어 줬다. 한수호도 이현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먹고 있어. 나는 강준, 밥 좀 챙겨 주고 올 테니까.”

강준은 아직도 자루 속에 있는 상태였다. 사지를 결박해 두기는 했으나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몰라서였다. 진표성이 강준이 먹을 음식도 그릇에 덜어 손에 들고 부엌을 나섰다.

“지혈 좀 해 줄 걸 그랬나.”

자루는 온통 말라붙은 피로 엉망이었다. 잘해 줄 필요는 없는 놈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취하고 있기에 너무 짐승처럼 취급한 것 같아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야, 강준.”

진표성이 음식이 든 그릇을 옆에 내려놓고 자루의 입구를 풀었다. 여전히 강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표성이 바닥에 부딪쳐 다친 뒤통수 쪽을 살폈다.

“피가 멎었네. 이걸 진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나.”

예상했던 일이다. 일반 좀비나 좀비 몬스터는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준은 하프 좀비가 됐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경우였다.

지금은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정신 좀 차려 봐.”

진표성이 강준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강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곧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으…….”

“이거 몇 개로 보여?”

손가락 두 개가 강준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강준의 눈이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다가 진표성의 얼굴로 향했다.

“물……. 물, 좀 주세요…….”

“알았어.”

강준의 목소리는 사포로 성대를 박박 긁은 것처럼 거칠었다. 진표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으으, 으, 으으…….”

강준이 사지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부릅뜬 눈이 새빨개 눈동자 색이 회색인지, 흑갈색인지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힘이 들어간 목 위로 시퍼런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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