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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67)화 (67/133)

067.

“야, 너 왜 이래?”

진표성이 부엌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강준에게 되돌아갔다. 어디 하나 부러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을 뒤트는 강준 때문에 진표성은 그의 팔과 다리를 억눌러야만 했다.

“흐아아……. 몸이, 너무 괴로워…….”

강준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괴로운 비명을 질러 댔다. 때마침 전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던 신민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복을 내려놨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솔은 입 안 가득 든 밥을 씹지도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 버렸다. 이현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이 좀 부탁해요.”

“네.”

김민지에게 김솔을 부탁한 이현이 강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김민지가 김솔을 제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아이가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품에 고개를 묻게 한 후 떨리는 등을 토닥거렸다.

한수호도 이현의 뒤를 따라 거실 쪽으로 나갔다. 정강필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진표성 에스퍼.”

“너는 왜 이쪽으로 왔어? 위험하니까 떨어져 있어.”

진표성이 근처로 다가온 이현을 보며 인상을 썼다. 이현은 진표성의 팔에 떠밀려 뒷걸음질 치면서도 강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수호가 진표성이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능력을 사용했다. 그림자가 일어나 강준의 사지를 결박했다. 강준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눈을 부릅뜨고 살려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목…… 목이 너무 말라요…….”

그가 의식을 차린 뒤부터 계속해서 하는 말이었다.

“여기, 무, 물이요…….”

신민우가 이번에는 눈치 빠르게 부엌에서 물을 가져와 진표성에게 건넸다. 진표성이 물잔을 들어 강준의 입가로 흘려 보냈다.

“물 좀 마셔 봐. 목마르다며.”

“흐으, 쿨럭…….”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으면서 정작 입 안에 물을 넣어 주자 강준은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목에 솟은 핏줄이 더욱 불거졌다.

“……저러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일반 좀비로 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준은 정말 몸 안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있었다. 신민우가 끔찍한 광경에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눈동자의 흰자위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실핏줄이 다 터져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정도였다.

“진표성 에스퍼, 한 가지 실험해 봐도 될까요?”

“……실험?”

진표성의 걱정과 달리 이현은 여느 때보다 냉철하게 강준의 상태를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의 상태를 보면서 축적된 정보들이 있었다.

“네. 한수호 에스퍼가 그림자로 움직임을 속박하고 있으니까 걱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진표성이 강준을 살려 둔 이유도 이현 때문이었다. 이현의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그렇기에 진표성은 이현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현은 협회 내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였다. 그것도 좀비 바이러스 연구 쪽에서는 연구소장 다음으로 명망 있는 연구원이었다.

“내 옆쪽으로 와서 해.”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표성의 근처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강준은 눈을 부릅뜬 와중에도 이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핏발 선 눈에 기이한 열기가 어렸다.

“크흑, 너, 때문에…….”

이현의 가이딩 마력에 휩쓸리지만 않았어도 강준은 여전히 하프 좀비로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었을 거다. 한순간에 능력을 잃고, 이제는 이도 저도 아닌 괴물이 되어 버렸다.

살면서 느껴 본 고통 중 가장 끔찍한 고통이 온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졌다. 사지가 결박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제 몸의 가죽을 스스로 뜯어냈을지도 모를 만큼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강준 씨, 갈증이 아직도 심한가요?”

이현이 습관적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배회하고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이현의 질문은 강준의 이성을 완전히 앗아갔다.

“크아아……!”

강준이 입을 활짝 벌리고 이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림자가 스르륵 움직여 강준의 이마를 휘감았다. 머리통까지 바닥에 고정된 강준이 이를 딱딱거렸다.

“손톱으로 제 손가락 끝에 상처 좀 내 주실 수 있어요?”

담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농도 짙은 살기가 강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현은 발작도 일으키지 않고 냉철한 눈으로 강준을 살폈다.

진표성으로서는 처음 보는 이현의 모습이었다. 이현의 직업이 두 개라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잠시 이현이 연구원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게 늦었다.

“뭐?”

지금 자신이 들은 게 맞는 걸까.

진표성이 제 앞에 내밀어진 하얀 손가락을 보면서 말문을 잃었다.

“강준 씨한테 피 좀 먹여 보려고요. 아무래도 물이 아니라 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것 같거든요.”

강준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태평하기만 했다. 진표성이 서서히 오르는 혈압에 이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였다.

“제 피로 하죠.”

말릴 새도 없이 한수호가 그림자 단검으로 손가락 끝을 그었다. 검지손가락 위에 새빨간 선혈이 꽃술처럼 맺혀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현을 살벌하게 노려보던 강준의 눈동자가 한수호의 손끝에 고정됐다.

“피…… 피다…….”

강준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핏방울이 맺힌 손가락을 바라보는 눈빛에 보는 이도 경악할 만큼의 욕망이 서렸다. 일반 좀비들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때의 눈빛과도 유사했다.

또옥, 똑. 한수호가 강준이 한껏 벌린 입 안으로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입술을 적시며 떨어지는 피에 강준이 정신을 못 차리고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한수호는 강준이 입맛을 다실 만큼만 피를 준 후 손을 뒤로 물렸다.

“이 정도면 됐습니까?”

“네…….”

이현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강준의 상태를 관찰했다. 실핏줄이 터졌던 흰자위와 얼굴의 혈색이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눈동자 색도 회색빛이 아니라 흑갈색이었다. 다만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했다. 강준은 현재 마약을 다량 흡입한 사람의 반응과도 닮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정확한 건 연구소에 가서 연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현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격하게 뛰었다. 제자리걸음이던 연구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르는 실험체의 등장이었다.

다만 이현은 사람 형태의 좀비로는 연구를 한 적이 없었다. 가끔 동료 연구원들이 일반 좀비와 하프 좀비로 실험할 때에도 이현은 좀비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집중했다.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대의를 위해 꼭 필요한 희생.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수많은 이들을 딜레마에 빠트린 이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현이 어두운 눈길로 강준을 내려다봤다. 강준은 지금도 느껴지지 않는 핏방울을 찾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현이 알파 1팀에 파견되기 전에 마지막까지 실험하던 좀비 치료제를 떠올렸다. 부모님의 연구소 지하에서 발견한 자료들을 숨겨 둔 제 아지트 또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좀비 치료제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무책임한 말이었다. 과학적 증거가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현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능력과 강준의 존재는 분명 좀비 치료제 연구가 막힌 부분을 뚫어 줄 열쇠가 되리라는.

“저희 협회 쪽으로 이동한다고 했죠? 연구소가 제대로 기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게…….”

이어지던 이현의 말은 위쪽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끊기고 말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혹시 지진 일어난 거예요?”

한쪽 구석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마른침만 삼키고 있던 신민우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한순간이지만 커다란 굉음과 함께 벙커 안이 진동했다.

긴 여정을 떠나기 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았던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신민우가 불길한 기분에 식은땀이 배어나는 손바닥을 바지 위로 문질렀다.

“팀장, 우리가 먼저 나가 봐야 할 것 같아.”

“대부님, 안쪽 상황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나가 봐. 이놈도 내가 사고 못 치게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S급 에스퍼들의 기감에 심상치 않은 기척들이 잡히고 있었다. 한수호가 강준을 묶고 있던 그림자의 힘을 거둬들였다. 팔을 걷어붙인 정강필이 강준의 목덜미를 잡아 방 한쪽으로 움직였다.

“피……! 더 줘……!”

강준이 발밑에 밟힌 벌레처럼 바르작거렸다. 그러나 정강필이 짧게 목덜미를 내리치자 힘없이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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