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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65)화 (65/133)

065.

“왜? 혼자 있는 건 또 무서운가 보지?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이어진 진표성의 말은 신민우의 자존심을 건들기에 충분했다.

“무섭기는 누가 무섭다고 그래요? 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거든요? 저 좀비 새끼도 데리고 가는 거죠? 설마 여기에다가 두고 가는 건…….”

신민우의 시선이 강준에게 못 박혔다. 왜 아직까지 에스퍼들이 강준을 살려 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가 생각하기에 강준은 이미 일반 좀비나 다름없었다.

만약 강준도 이곳에 놔두고 간다면 강하게 항의할 생각으로 얘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진표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였다.

“이 새끼를 왜 여기에다 두고 가.”

새로운 종처럼 변한 걸 목격한 후였다. 어쩌면 강준은 좀비 치료제 연구에도 획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표성이 자루를 꺼내 사지가 묶인 강준을 들어 집어넣었다. 자루 입구까지 단단히 묶고 한구석에 치워 뒀다.

“그래서 결정했어?”

신민우가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더니 곧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은 두고 가는 거죠?”

진표성이 가지고 있는 식량의 양을 계산했다. 벙커에 있는 양까지 합하면 어느 정도는 신민우에게 나눠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달 동안은 배부르게 먹을 만큼 두고 갈게.”

“네? 아니, 두 달 치만 두고 가면 어떡합니까? 저는 좀비들 상대할 능력도 없는데.”

진표성은 나름 계산해서 호의를 보인 거였다. 성인 남성이 두 달 동안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을 양이면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민우는 만족을 못 하는 눈치였다. 위험을 무릅쓸 용기도 없는 주제에 자신의 권리만 요구하는 모습을 보자 진절머리가 났다.

“야.”

한마디 더 하려던 신민우가 낮게 깔린 진표성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제야 주변 분위기가 느껴진 것이다.

제 안위만 생각하느라 목소리를 높인 건데 진표성의 굳은 표정을 보니 선을 넘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동안 봐 왔던 진표성의 포악한 행동까지 떠오르자 등골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내가 네 보모야? 같이 가자는 것도 싫다, 두 달 치 식량 남겨 주는 것도 싫다, 뭐 어쩌라는 거냐?”

인간적으로도 정이 안 가는 놈이었다. 진표성은 자신이 절대 선량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신민우랑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에 그냥 이놈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떠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표성이 들끓는 감정을 식히기 위해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두 달 치 식량만 남겨 두고 가요.”

결국 신민우가 꼬리를 내렸다. 더 얘기했다가는 두 달 치 식량이 일주일 치로 줄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 너만 여기에 남는 걸로 하고. 우리는 떠날 준비 바로 하자.”

진표성의 말에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표성이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 안에서 신민우의 식량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물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신민우가 진표성의 눈치를 보며 말소리를 줄였다. 하루에 두 병은 마셔야 하는데 진표성이 두 병씩 두 달 치로 계산했을 때 훨씬 못 미치는 수의 물병을 꺼내 놓아서였다.

“눈치 좀 키워요, 진짜. 부엌이랑 욕실에 물 나오니까 식수가 부족하면 그 물 마시면 되잖아요.”

보다 못한 김민지가 다가와 신민우의 어깨를 툭 쳤다. 이현의 발작이 가라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지금도 진표성의 신경은 이현에게 쏠려 있는 게 제 눈에는 보였다.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의 진표성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신민우를 보자 답답한 감정이 치솟았다. 아마 그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미운 정이 든 모양이었다. 이러다 신민우가 진표성한테 한 대 얻어맞을 것 같았다.

“……너도 떠날 거냐?”

신민우도 그나마 일행 중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 준 이가 김민지라는 걸 알았다. 막상 지하 벙커에 혼자 남을 생각을 하자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네. 저는 솔이랑 아저씨랑 계속 같이 다닐 거예요.”

신민우가 넌지시 같이 남기를 원하는 티를 내자 김민지가 칼같이 잘라 냈다. 신민우에게 자그마한 연정은 있을지언정 그와 생사를 함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하 벙커에서 벗어나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프 좀비들에게 가축처럼 사육되던 시간도 버텼다. 그에 비하면 지금과 같은 생활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끝까지 살아남자. 너도, 나도.”

김민지의 단호한 태도에 신민우는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답지 않게 진심 어린 말만을 남겼다.

“나중에…… 다시 또 만나요.”

김민지도, 신민우도 안다. 지금의 인사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그러나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마음이 지쳐 버렸다.

이 정도의 희망적인 이야기는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보다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제 또 한동안 못 씻을 수 있어. 반나절 후에는 출발할지도 모르니까 너도 준비해.”

진표성이 김민지에게 욕실을 가리켰다. 이어 신민우에게도 눈짓했다.

“……왜요?”

“따라와. 벙커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기능 알려 줄 테니까.”

신민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으슥한 데로 데려가서 때리기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진표성은 정말 신민우에게 필요한 정보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줬다.

특히 그가 혹시라도 여기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알려 준 후 외웠는지 확인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식사만 하고 떠날 거야. 그때까지 혹시 마음 바뀌면 말해.”

“……알겠습니다.”

비록 신민우가 얄밉게 굴기는 했으나 진표성은 그에게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다. 신민우는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야 친절하게 구는 진표성 때문에 혼란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면 연민의 감정은 느끼는 것 같아서였다. 진표성을 따라갈까 잠시 고민이 됐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듯이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다.

진표성은 신민우에게 마지막까지 해 줄 수 있는 걸 다 해 준 후 부엌으로 향했다. 이제 또 한동안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못할 테니 떠나기 전에 든든하게 먹을 생각이었다.

약해진 이현의 체력을 북돋워 줄 생각으로 진표성이 보양식 재료들을 모아 손질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진표성의 곁으로 정강필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가겠구나.”

“얼마 만에 나가는 거야?”

“글쎄다.”

의뭉스럽게 웃는 정강필을 흘낏 본 후 진표성은 요리에 집중했다. 만약 자신과 한수호, 정강필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끼니 따위 가는 길에 전투식량으로 대충 때웠을 거다.

그러나 이현이 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현은 피를 보고 발작을 일으켰다.

가는 길에도 수없이 피를 볼 텐데, 그때마다 발작을 일으키면 체력이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말 것이다. 김솔도 어린아이인 만큼 밥을 든든하게 먹이고 출발하는 게 좋았다.

“나도 도우마.”

정강필도 진표성을 도와 음식 준비를 했다. 주방에서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는 동안 이현은 멍한 정신을 다잡기 위해 물을 조금씩 마셨다.

“아저씨, 아직도 아파요?”

“아니야. 이제 괜찮아.”

김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현의 허리춤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창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파 보였다.

자신이 김솔을 보듬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아이를 괜스레 걱정하게 했다. 미안한 마음에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자 김솔이 배시시 웃었다.

현재 이현의 머릿속은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이 이어졌다. 아이의 웃음을 지켜 주기 위해 이현은 최대한 고통을 숨기고 입꼬리에 힘을 줬다.

“진통제 하나 먹어요.”

때마침 한수호가 이현에게 작은 알약 하나를 건넸다. 현재 이현의 상태에는 회복 포션보다 단순한 진통제가 더 효과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이현은 마다하지 않고 곧바로 알약을 입 안에 넣어 삼켰다. 물도 없이 삼키자 목구멍에 찌르르한 통증이 일었다.

“무울…….”

김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현이 손에 쥐고 있는 물병을 가리켰다. 이현이 물병을 들어 뒤늦게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입 안 가득하던 쓴맛이 가시면서 미세하게 찌푸려졌던 미간도 펴졌다.

“이동할 때 저한테 안겨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수호가 여느 때처럼 무감정하게 말했다. 마치 이현과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던 순간이 꿈인 것처럼.

하지만 이현은 그 간극이 서운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눈은 여전히 다정했기에. 지금은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얼룩져 있기까지 했다.

“그럴게요.”

이제는 그에게 제 안전을 온전히 맡기는 것도 망설이지 않게 됐다. 이현은 이렇게 계속 꿈이 이어지다 보면 꿈속에서 한수호 또한 만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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