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조금 더 강하게 잡아당겨!”
“이이익……!”
어떻게 해서든 쓸 만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움직임은 뱀형 좀비 몬스터를 자극하고 말았다.
천장 부근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좀비 몬스터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캬하악―!”
“아악……. 저, 저리 가……!”
남자 한 명이 목에 달라붙은 좀비 몬스터를 떼어 내기 위해 팔을 절박하게 허우적거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목을 지나는 동맥을 꿰뚫었다.
피이잇, 펄떡거리는 목 줄기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안 그래도 흥분한 좀비 떼들을 강하게 자극했다.
“캭! 캬악―!”
“크햐아악!”
“크르르―!”
먹잇감에게서 흘러나온 신선한 피에 좀비들이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한 마리가 질러도 끔찍할 소리였다. 너덜너덜한 성대가 만들어 낸 소리는 사람의 내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생존자들의 볼에 땟국물이 흘렀다. 눈시울이 붉어진 이들은 필사적으로 쇠창살에 매달렸다. 덜컹덜컹, 쇠창살이 흔들리는 소리가 절박했다.
딛고 있는 바닥이 강도 높은 지진의 영향권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죽어……!”
한 남자의 희생으로 드디어 생존자들 중에서 가장 덩치 큰 남자가 쇠창살 하나를 떼어 냈다.
쇠창살을 든 남자는 곧바로 뱀형 좀비 몬스터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원래는 일반 무기로 꿰뚫리지 않을 외피는 좀비화되면서 표피가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뱀형 좀비 몬스터가 사람의 목에 달라붙어 체액을 빨아 먹고 있어 다행이었다. 좀비 몬스터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크으, 아으악……!”
목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가 난 남자가 바닥을 양 팔꿈치로 밀어 내듯이 눌렀다. 활짝 벌어진 가슴 위로 굵직한 핏줄들이 덩굴처럼 피어올랐다.
크게 홉뜬 눈은 흰자위가 온통 인두로 지진 것처럼 새빨갰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초점이 사라지고 탁한 회색빛으로 눈동자가 물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씨이발……!”
뱀형 몬스터를 죽이고 숨을 고르고 있던 남자가 눈물 젖은 욕을 짓씹었다. 좀비 몬스터의 체액이 뚜욱, 뚝 떨어져 내리는 창끝을 좀비로 변해 가는 남자의 머리통에 박아 넣었다.
무너진 틈으로 좀비들의 손과 팔이 뒤집힌 벌레의 다리처럼 허우적거렸다. 다른 생존자들도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이음매가 헐거워진 쇠창살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아저씨…… 이거 받으세요…….”
여학생도 그 틈에 쇠창살 두 개를 집어 와 이현에게 하나를 건넸다. 이현은 완전히 좀비로 변해 회색빛 눈을 희번덕거리는 일반 좀비와 대치하는 중이었다.
일반 좀비가 입맛을 쩝쩝대면서 이현과 김솔을 향해 다가왔다. 짧은 시간에 썩어 내린 살점이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여학생도 이현의 옆으로 와 섰다. 두 손으로 꽉 쥔 쇠창살의 끝이 목표물을 제대로 조준하지도 못할 정도로 흔들렸다.
다들 알았다. 눈앞의 일반 좀비를 처치한다고 해도 살아 나갈 가능성은 요원하다는 걸.
좀비들이 쌓는 탑은 높이 쌓였다가,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튼튼한 제단으로 완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뱀형 좀비 몬스터처럼 그들의 위를 스르륵 기어 오는 존재가 한 마리만 더 난입해도 생존자들은 좀비들의 제단 위 제물이 될 터.
“다들…… 살아남읍시다…….”
덩치 큰 남성이 생존자들을 둘러봤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생존자였던 일반 좀비가 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캬하아악―!”
이현이 할 수 없이 김솔을 바닥에 내려놨다. 한 손으로 일반 좀비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건네주는 쇠창살을 받아 들면서 바닥에 내려놨던 짱돌을 오른손에 쥐고 쩌억 벌리고 있는 입 속에 처박았다. 앞니 몇 개가 단번에 부러졌다.
일반 좀비는 입이 틀어막히자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현이 왼손에 든 쇠창살로 좀비의 손을 쳐 낸 후 어깨와 팔이 연결되는 지점을 쇠창살 끝으로 찍었다.
멀찍이 밀어 내려 했으나 힘에서 밀렸다. 이현의 발뒤꿈치가 바닥과 마찰했다.
“크흐……!”
갸갸갸갹, 짱돌의 표면에 닿은 좀비의 이빨이 돌의 표면을 긁어 내렸다. 그럴 때마다 좀비의 이빨이 뿌리째 흔들렸다.
색이 변해 가는 잇몸이 아직은 선홍빛을 띠는 핏물로 흠뻑 젖어 들어갔다. 회색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인육에 대한 욕망만이 가득했다.
이현은 자신이 푸줏간에 걸린 고기가 된 듯했다. 일반 좀비의 눈동자에 맺힌 욕망대로라면 자신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피를 뚝뚝 흘리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이현의 발끝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은 모두 손에 쇠창살을 들고 쇠기둥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좀비들을 쳐 내는 중이었다.
아직 반 이상은 쇠창살로 막혀 있지만, 현재 뚫린 부분으로만 좀비 떼가 몰려들어도 큰일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존자들은 힘을 모았다. 다들 하프 좀비들에게 사육되다시피 하며 지내는 동안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었다.
희망 없는 생활에 무기력하게 지냈지만 막상 죽을 위기에 처하자 생애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듯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솔아, 아저씨 뒤쪽에 있어.”
이현의 옆에서 함께 일반 좀비를 상대하고 있는 여학생, 김민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고 싶었다.
현재 닥친 위기를 헤치고 무사히 나간다고 해도 ‘차라리 그때 죽을걸.’ 하는 후회가 들지도 모른다. 가족과 친구들이 다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을 때 수도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다고.
하지만…….
김민지가 곁에 서 있는 이현을 힐끗 바라봤다. 이현은 좀비의 입을 돌로 막은 상태로 쇠막대기를 어깨에서 빼내 이번에는 좀비의 턱 밑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완전한 창의 형태가 아니기에 좀비의 살을 꿰뚫는 건 쉽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눈앞의 놈이 일반 좀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더욱 그랬다.
좀비가 된 지 오래된 개체는 살점이 썩어 문드러져 상대적으로 무기를 쑤셔 넣기에 용이했다.
“할퀴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물리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니까요.”
이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진작에 눈앞의 일반 좀비처럼 식욕에 잡아먹힌 괴물이 되어 버렸을 거다.
“네……!”
그렇기에 김민지는 힘을 냈다. 이현의 바지를 붙들고 있던 꼬마와도 눈이 마주쳤다. 자신의 어린 동생은 지키지 못했다.
동생의 목이 좀비들에게 물어뜯기는데도 혼자 살겠다고 비겁하게 도망쳤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전히 귓가에는 동생이 죽어 가면서 내지른 단말마 비명이 환청으로 들려온다.
지금도 그랬다. 이전에는 너도 이제 죽으라는 소리로 들렸는데 지금은 누나라도 살라는 간절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좀 죽어……!”
김민지가 이현이 만들어 놓은 상처 구멍에 자신이 쥐고 있는 쇠창살의 끄트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 힘이 강하지 않아 뼈와 근육에 쇠창살이 자꾸만 밀려 나왔다.
하지만 소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김민지의 도움에 이현이 힘을 냈다. 벌어진 틈새로 쑤셔 넣고 있던 쇠막대기의 끝이 일반 좀비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르륵…….”
피 끓는 소리가 났다. 막대기의 끝에서 두개골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살기로 반질거리던 눈동자가 안개처럼 생기를 잃어 갔다.
“으아아아! 씨발, 좆같은 좀비 새끼들―!”
“오른쪽 더 막아!”
“막고 있다고, 씨이발!”
이현이 막혔던 숨이 터진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생존자들이 모인 곳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들려왔다.
좀비들이 지척까지 밀려들어 온 것이다. 좀비들의 고함이 넓은 공동 안을 음울하게 물들여 갔다.
생존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그에 비하면 귓가에 윙윙거리는 모기의 날갯짓만큼이나 볼품없었다.
“솔아, 여기에 가만히 있어.”
“네에…….”
이현이 중앙 부근에 김솔을 뒀다. 김솔은 당장이라도 이현의 품에 안겨 들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작은 주먹을 옹골지게 쥐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하나 쥐었다. 다른 손으로는 던질 수 있는 만한 것들을 앞에 끌어모아 놨다.
“흐읍……!”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이현이 팔에 힘을 줬다. 이미 좀비 두 마리를 상대하면서 팔근육을 혹사했다.
근육들이 찢어졌는지 심상치 않은 통증이 팔에서 느껴졌다. 회복 포션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회복 포션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허억, 헉…….”
이현이 일반 좀비 한 마리의 머리통을 쇠막대로 밀어 냈다. 뒤통수를 가격당한 건지 반쯤 튀어나온 눈구멍을 이용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만큼 끔찍한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이현은 몇 번의 전투를 반복하면서 사람이었던 좀비의 살과 뼈를 가르는 감각이 어떤지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평생 잊히지 않을 감각이었다. 이현이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내는 흔적이기도 했다.
“으아아악……!”
생존자 중 한 명이 좀비 몬스터에게 끌려갔다. 원숭이처럼 생긴 좀비 몬스터 한 마리가 긴 팔을 이용해 생존자의 머리채를 잡아챈 것이다.
“안 돼! 이쪽 더 막아……!”
하필 끌려간 생존자는 힘이 센 남자였다. 한 명의 부재일 뿐인데도 대가가 컸다. 일반 좀비 두 마리가 기어코 바닥을 기어 올라왔다.
“커흑…….”
좀비 몬스터에게 끌려간 남자의 가슴팍이 이빨에 헤집어졌다. 아직 뛰고 있는 심장과 그 아래 가득 들어찬 내장들이 찢어진 살결 사이로 보였다.
“살, 고 싶어…….”
산 채로 가슴이 뜯기는 고통에 생존자의 눈가를 타고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시야가 부예졌다. 이현이 절박하게 중얼거리며 생존자가 방금 전에 끌려가 비어 버린 공간을 채웠다.
“캬하악―!”
악귀처럼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일반 좀비는 하체가 없었다. 회색빛과 핏빛이 어우러진 눈동자가 바지 아래로 드러난 이현의 발목을 뚫어지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