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상체밖에 없는데도 좀비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스스스슥,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바닥을 기어 온 일반 좀비가 이를 드러내며 괴성을 질렀다.
“아저씨!”
근처에서 무작위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찌르고 있던 김민지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현을 불렀다. 당장이라도 이현의 발목이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이빨에 물어뜯길 것만 같았다.
“흐으엉…….”
“캭, 캬악―!”
일반 좀비의 움직임을 멈춘 건 김솔이 던진 돌멩이였다. 엉엉 울면서 던진 돌이 정확하게 좀비의 입과 눈에 맞았다.
아이는 경기하듯이 몸을 떨면서도 이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솔이 시간을 벌어 준 틈을 타 이현이 몸을 뒤로 물렸다. 정신을 차린 일반 좀비가 재차 바닥을 기어 이현에게 다가왔다.
눈구멍을 통해 쇠창살이 지나갔다. 쇠막대기의 표면을 따라 끈적한 피가 이현의 손까지 흘러내렸다.
미끈거리는 감각에 모골이 송연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이현의 품속으로 김솔이 달려들었다.
“아, 아저씨…….”
김솔은 이현을 잃을 뻔했다는 충격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팔을 뒤로 빼 냈다. 뇌수 섞인 핏물이 막대기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이현이 쇠막대를 힘껏 휘둘렀다. 방금 죽인 일반 좀비의 등을 타고 새로운 형상이 나타났다.
악어를 닮은 좀비 몬스터의 머리가 으깨졌다. 머리 쪽이 무언가에 맞은 듯 움푹 파여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힘 빠진 팔로는 두개골을 으깨기는커녕 이번에야말로 어딘가를 물렸을지도 모른다.
“이거 왜 이렇게 흔들려―?”
1초가 1분 같은 시간을 힘겹게 생존자들이 버티고 있을 때였다. 원래도 좀비들이 올라오면서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중심을 잡고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흔들림이 심했다. 생존자들 중 일부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균열이……. 바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김민지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미줄처럼 퍼져 가는 균열을 따라 회색빛 먼지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바닥 위로 꾸역꾸역 기어오르고 있는 좀비들 때문에 균열은 점점 심해졌다.
“솔아, 눈 꼭 감아.”
“네…….”
한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가 바로 나타났다. 게임이었다면 스릴감이 넘치는 상황이겠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이었다. 이현이 김솔에게 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닥이 흔들리는 터라 좀비들도 쉽사리 생존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섬처럼 갈라지는 바닥 위에서 생존자들은 추락에 대비했다. 좀비에게 물려 죽든, 바닥에 떨어져 죽든 결과는 같았다.
생존 욕구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력하게 죽어 가던 이들조차 막상 죽음이 닥쳐오자 절박하게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들고 버텼다.
쿠르르릉, 거대한 기둥이 조각조각 나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뒤집어지는 시야에도 이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지금도 좀비들은 어떻게 해서든 먹잇감을 물어뜯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섬처럼 나누어졌던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갸아악―!”
이현이 팔을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쇠막대로 후려쳤다. 죽이지는 못했다. 그저 달려드는 방향을 다른 쪽으로 치워 냈을 뿐이다.
몸이 바닥으로 푹 꺼지는 아득함에 정신이 없었다. 이현은 부디 크게 다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김솔을 안은 팔에 힘을 줬다.
“아아악……!”
“쿨럭, 쿨럭…….”
“캬학―!”
쇠기둥의 잔해는 인간과 좀비를 가리지 않았다. 돌덩이에 온몸을 두들겨 맞는 건 예사였다.
쇠기둥 안 군데군데 박혀 있던 철근에 배를 꿰뚫린 생존자는 차마 상처 부위를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다.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내는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캬하아…….”
큰 부상을 입은 생존자 곁에서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일반 좀비 하나가 생존자의 배에 달라붙었다.
일반 좀비 하나를 시작으로 근처에 있던 좀비 떼들이 생존자를 향해 덮치듯이 달려들었다. 삽시간에 생존자의 모습이 좀비들에게 가려졌다. 보이는 거라고는 덜덜 떨리는 손 하나뿐이었다.
“아, 아파…….”
신선한 피 냄새에 광분한 좀비들이 내는 소리에 생존자의 신음은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이 씨발 새끼들아……!”
근처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생존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울부짖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지옥을 헤쳐 나오던 사람이 푸줏간에 걸린 고기처럼 난도질되고 있었다.
하나의 덩어리 같은 좀비 떼들의 등에 굴러다니는 잔해를 들어 던졌다.
“캬악―!”
좀비들은 귀신같이 먹잇감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알았다. 그들이 달려들었던 생존자는 이미 한 마리의 고기가 된 이후였다.
등을 가격하는 자극에 고개를 돌린 일반 좀비 한 마리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를 따라 새 먹잇감의 존재를 인식한 좀비들이 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존자가 양손으로 돌을 던지며 반항했지만 그 또한 손끝부터 좀비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결국 이렇게…….”
김민지가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팔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살고자 발악했으나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고작 몇십 분 정도 수명을 늘린 게 다였다. 기적적으로 에스퍼로 발현된다면 모를까, 이제는 죽음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프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인간도, 좀비도 아닌 존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하프 좀비에게 붙잡혀 그들의 진면목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결과 김민지에게 그들은 또 하나의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민지가 상처투성이 손을 들어 근처에 있던 철근을 가져왔다. 부러진 팔 대신 다른 손으로 철근을 잡고 목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턱 아래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단두대의 칼날 같았다.
“으윽, 흑…….”
억눌린 울음이 떨리는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이현과 김솔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어……?”
그러나 이어 눈에 보이는 광경에 김민지는 들고 있던 철근을 놓치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 *
자신의 앞을 막아선 하프 좀비들을 하나만 남겨 두고 모두 도륙했지만 들썩이는 가슴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들끓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냥, 죽여……. 커흑…….”
사지가 모두 떨어져 나간 채 꿈틀거리는 김태훈의 목을 한수호가 발로 밟아 지그시 짓눌렀다. 목젖이 우그러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김태훈은 현재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잘려 나간 살점이 꿈틀거리며 조금씩 재생되고 있었지만 더뎠다.
한수호가 마력을 상처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프 좀비들을 상대하면서 터득한 전투 방법이었다.
“팀장, 가이드 잡혀간 거야?”
진표성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다가왔다. 김태훈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그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차가웠다.
“……두학이는?”
“급한 고비는 넘겼어. 김종현도 제압해 놨고.”
한수호가 눈을 감고 짙은 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고작 서두에 불과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한수호의 표정에서는 어렴풋이나마 어려 있던 혼란들이 모두 씻겨 내려간 상태였다.
“고문해서 본거지 알아내. 숨은 간당간당하게 붙여 놓고.”
“그건 내 전문이지.”
진표성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피에 젖은 김태현의 머리채를 쥔 채 질질 끌고 구석으로 사라지는 발걸음에 불편한 심기가 묻어났다.
한수호는 김태훈을 진표성에게 맡긴 후 사지가 결박된 김종현을 향해 움직였다.
혹시라도 혀를 깨물까 싶어서 입에는 재갈을 물린 상태였다. 두 팔이 뒤로 돌려져 다리와 함께 묶인 터라 그는 무릎을 꿇은 자세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한수호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당당했다.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임태한이 무거운 목소리로 한수호에게 보고했다. 선 굵은 얼굴이 짙은 그늘에 휩싸여 있었다.
한수호의 날카로운 시선이 김종현을 훑어 내렸다. 김종현은 아킬레스건이 잘린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정신을 잃은 채 온몸이 피범벅 되어 있는 황두학과 달리.
“으읍……!”
“입을 열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되지.”
“……팀장님.”
바닥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수십 개의 창으로 변해 김종현의 몸을 꿰뚫었다. 김종현의 목 아래가 순식간에 핏물로 젖어 들었다.
급작스럽게 닥친 고통에 김종현의 흰자위를 가로지르는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김종현의 육체가 살기 위해 근육과 살을 변화시켰지만 그때마다 한수호가 교묘하게 근육이 움직이는 방향을 툭 끊어 놨다.
“흐으읍……!”
임태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동료였던 이가 변절자가 되어 모시는 상관의 손에 난도질당하는 장면은,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잔인했다.
김종현의 눈동자가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서늘하게 굳어 있는 한수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이낙균.”
“네, 팀장님.”
“이 새끼 깨워.”
“……네.”
한수호가 근처에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이낙균을 불렀다. 이낙균이 착잡한 표정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흐읍, 윽…….”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까무룩 정신을 놓았던 김종현의 눈동자가 눈꺼풀 사이로 다시 드러났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김종현이 입고 있는 옷이 녹아내려 피부에 눌어붙었다.
화상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다. 김종현의 눈동자에 가득했던 웃음기는 이제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눈동자 위로 습막이 생겼다.
눈물을 참을 겨를도 없었다. 살면서 느껴 봤던 고통 중 가장 지독했다. 김종현이 재갈이 붉게 물들도록 이를 악물었다.
살이 타오르는 지독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건 한수호를 제외한 모두였다.
“말하지 않아도 돼.”
“흐으…….”
한수호가 김종현의 앞에 몸을 굽히고 앉았다. 머리채를 쥐어 수그러드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보통 고문을 하면 알고 있는 바를 말하라고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수호는 김종현에게서 얻어 낼 게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시체와 다른 의미로 무감정한 눈동자였다. 코앞에서 한수호와 시선을 주고받는 김종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두려움에 젖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