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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21화 (21/133)

021.

폭발음이 잦아들고 진동이 가라앉았을 무렵 생존자들의 앞에는 더 큰 고난이 닥쳐왔다.

“그어어……!”

“캬학, 크햐악―!”

“크르르―! 캭―!”

좀비 떼들이었다.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이 무리 지은 채 안쪽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봇물 터지듯 엄청난 기세였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좀비들도 다시 쇠기둥으로 돌아왔다.

한눈에 봐도 원래 이 공간에 있던 좀비 떼들의 몇 배를 넘어가는 월등한 숫자였다.

“아아악! 으아아아악―!”

“입 닥쳐! 씨발, 뒤지려고 작정했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한 남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남자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자를 따라 사람들 중 일부가 반쯤 미쳐서 날뛰었다. 오줌을 지리는 자도 있었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으윽…… 뭐야…….”

기절해 있던 중년 남성도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그러다 난리가 난 주변 상황을 보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쇠창살 근처로 다가갔다.

“캬하아악―!”

“흐이익……!”

좀비들이 서로의 몸을 발판 삼아 쇠창살 위로 손을 뻗고 있었다. 일반 좀비의 손톱에 긁힐 뻔한 팔을 뒤로 뺀 중년 남성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이 다급했다. 말라 가던 고간 위에도 새로운 오줌 자국이 번져 나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남자 두 명이 열린 쇠창살 문을 닫았다.

“흐윽, 흐아아…….”

덜컹, 덜컹, 덜컹……. 요란하게 흔들리는 쇠창살에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이제는 소리를 죽이는 것도 소용없었다.

몰려든 좀비들은 먹잇감의 위치를 이미 확실하게 인지한 후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휘휘 돌려 가면서 주변을 살펴봤지만 애초에 하프 좀비들만 뛰어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망칠 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아, 안 돼……. 나는 죽기 싫어…….”

“엄마……. 엄마…….”

지옥의 단면을 떼 온다면 이런 광경일까.

문을 붙들고 있는 남자 두 명을 제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모였다. 이현도 김솔을 품에 안은 채로 몸을 움직였다.

가이드 전용 무기라도 있다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으련만 손에 쥔 무기라고는 짱돌이 전부였다.

품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온기에 이현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김솔의 몸을 감쌌다.

휑한 살결 위로 소름이 돋았다.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나가야만 했다.

“솔아, 아저씨 목 꼭 안고 있어야 해. 할 수 있지?”

“네…….”

김솔이 이현의 목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트렁크에 홀로 갇혀 있었을 때의 공포가 떠올랐다.

그때 눈앞의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은 굶어 죽거나, 아니면 혼자 남았다는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 나가 좀비에게 물려 죽었을 거다.

지금도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한 가지 달라진 건 이현의 존재였다. 그것만으로도 김솔은 온몸을 짓누르는 공포심을 버텨 낼 수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요!”

“내가 무슨 수가 있다고!”

“칼이라도 감춰 놓은 거 없어요? 뭐라도 무기로 쓸 만한 걸 가져왔어야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뱉어 내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가 하는 말에 중년 남성이 손을 치켜들었다.

여자는 때려 보라는 듯이 오히려 눈을 부릅떴다. 중년 남성에게 제 얼굴을 들이미는 행동에 광기가 비쳤다.

“이이익……!”

“거기 두 사람, 싸우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도와요! 이러다 문 열린다고요!”

아직 좀비들은 완전히 위로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다. 서로의 몸을 발판 삼아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협동이라는 개념이 좀비들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극한의 굶주림이라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좀비들의 손이 철창의 바닥을 짚을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살점이 반쯤 떨어져 나간 손들이 바닥을 마구잡이로 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문드러진 살점의 일부가 바닥에 흔적처럼 남았다. 손톱의 일부가 떨어지기도 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

설상가상으로 좀비 몬스터 중 뱀처럼 생긴 한 마리가 스르륵 철창의 틈새로 기어들어 왔다.

몬스터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친 사람은 이현을 괴롭히던 중년 남성이었다.

“쉬이익…….”

얼굴 반쪽이 썩어 녹아내린 놈이었다. 한쪽만 남은 눈이 비명이 들리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놈의 입술 사이로 드러난 혓바닥 위에 새하얀 곰팡이가 가득했다.

“쉬익! 쉭―!”

“아아악……!”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좀비 몬스터가 중년 남성의 어깻죽지와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다른 곳은 다 썩었는데 날카로운 독니는 건재했다.

인간의 살점은 송곳니에 걸린 순간 무른 두부처럼 푸욱, 푹 파였다. 남자가 상처 난 부위를 필사적으로 손으로 누른 채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늘에서 졸지에 뜨거운 땡볕 아래로 내던져진 지렁이 같았다.

“다들 피해!”

뱀 형태의 좀비 몬스터를 제외하면 아직 우리 안쪽으로 침입한 좀비는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직 살아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와도 어떻게 해서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났다.

우두둑, 우둑, 기형적으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으니까.

“크흐으……. 으아악……!”

중년 남성이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처음 맛본 먹잇감이 좀비로 변해 가자 뱀 좀비 몬스터는 다른 먹잇감들을 향해 관심을 돌렸다. 턱 밑에 고인 새빨간 피가 뚜욱, 뚝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 끝났어……. 틀렸어…….”

절망감이 빠르게 생존자들 사이로 전염됐다. 문을 막고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털썩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다들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그 바람에 새로운 먹잇감을 찾던 좀비 몬스터가 주저앉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익―!”

“으아아……!”

남자의 목 줄기가 단번에 송곳니에 꿰뚫렸다. 이현은 생기를 잃어 가는 남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 상황에서 지내온 건지 깨달았다. 협회에서 일하다 보면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이 좀비 영역이 된 지역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 마련이었다.

하프 좀비들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여전히 인육을 먹는다. 그들이 가축처럼 인간을 사육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협회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구하지 않았다. 대신 남아 있는 인간의 영역에 병력을 집중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협회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갖은 모양으로 몸부림쳤으나 죽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현의 음울한 시선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살려, 주, 크르륵…….”

살려 달라는 말조차 남자는 끝맺지 못했다. 목덜미를 꿰뚫었던 송곳니가 재차 성대가 있는 부분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그르르…….”

“흐윽, 어떡해요……. 우리 다 죽을 거예요…….”

앳된 외모의 여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직일 수 없는 방향으로 몸이 뒤틀렸던 중년 남성이 좀비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회색빛 눈이 희번덕거렸다. 쩌업, 쩝, 입맛을 다실 때마다 채 삼키지 못한 끈적한 타액이 입가를 타고 질질 흘러내렸다.

일반 좀비가 되면 시력이 퇴화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지척이었다. 여학생이 급히 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존재를 들킨 후였다.

“크하악―!”

“꺄아아악!”

중년 남성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가올 죽음에 눈을 질끈 감았던 여학생은 아픔 대신 귓가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타격음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보이는 광경은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허억, 헉…….”

“크륵, 크르르…….”

이현이 돌을 들고 여학생의 앞을 막아섰다. 돌의 뾰족한 부분에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이현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도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머리카락의 일부와 살점까지 묻어 있는 돌덩이를 허공에 휘둘러 털어 내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현이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중년 남성, 아니 한 마리의 일반 좀비가 되어 버린 놈의 머리통을 연이어 가격했다.

퍼억, 퍽, 무언가를 찧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반 좀비가 감전된 사람처럼 사지를 떨었다. 이현은 좀비의 사지가 축 늘어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사람 두 명의 신선한 피를 맛본 뱀 좀비 몬스터는 남은 사람들을 공격하는 대신 쇠창살을 타고 올라갔다.

“끄윽, 흑, 크하으―!”

일반 좀비 한 마리를 간신히 해치웠지만 실시간으로 변이하는 사람이 남았다. 모두 다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지는 사지가 비현실적이었다.

이현은 온몸의 피가 빠르게 굳는 듯한 아찔한 감각에 휩싸였다. 뼈가 함몰되고, 뇌수가 으깨지는 감각이 손끝에 선명했다.

시야가 맑아졌다가도 금세 부예졌다. 수많은 좀비 몬스터를 실험체로 활용할 때 이현은 불현듯 죄책감에 휩싸이고는 했다.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거의 잃은 존재들이지만, 이현은 그들의 심장이 여전히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몬스터든, 좀비 몬스터든 사람을 해치는 존재인데도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차라리 좀비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 내는 상황이었다면 충격이 덜했을까.

알파 1팀을 따라다니면서 진표성에게 시린 현실을 깨우쳐 주는 말까지 들었다. 예전에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이미 그들은 누군가를 물어뜯는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이현이 방금 죽인 좀비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물어뜯기도 전에 이현이 숨통을 끊어 버렸다.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마음껏 토해 낼 수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저씨…….”

“괜찮아. 아저씨 정말 괜찮아, 솔아…….”

이현이 시야를 회복하기 위해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품 안의 존재를 지켜야 했다.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영웅 행세하는 거냐고 누군가 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현은……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이거라도 주먹에 두르세요……. 자칫 물리기라도 하면…….”

이현 덕분에 방금 목숨을 구한 여학생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밑단을 찢어 냈다. 엉망으로 흔들리는 이현의 오른손을 여학생이 방금 뜯어낸 티셔츠의 천으로 감쌌다.

여학생의 얼굴도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이곳에 남은 자들 중 절박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이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도 살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다. 생에 대한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면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테니까.

이현의 행동에 살아남은 다른 이들도 손에 무언가를 쥐기 시작했다. 일부는 아직 좀비들의 손이 닿지 않는 쪽으로 가 힘을 합쳐 쇠창살을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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