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20화 (20/133)

020.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이 한데 뒤섞여 우글거리는 공간이었다. 그들이 애타게 손을 뻗고 있는 곳에는 김솔과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 갇혀 있었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우리가 쇠기둥 위에 올려져 있는 탓에 좀비들은 끔찍한 괴성을 지르면서 발광을 했다. 시력도 퇴화한 것들이 먹잇감이 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한 듯했다.

덩치가 큰 좀비 몬스터 한 마리가 쇠기둥에 썩어 내리는 제 몸뚱이를 쿵쿵 박아 댔다. 쇠기둥이 튼튼해 보이기는 해도 몬스터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터라 그때마다 기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끄윽, 흑……. 아저씨…….”

이현을 발견한 김솔이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울어도 주변의 사람들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제 몸을 지키기에 바빴다.

레스토랑에서 서동연이 던진 나이프에 귀가 잘렸던 중년 남성도 우리 안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한쪽 손목은 피 묻은 천에 감싸인 상태였다.

“캬하악―!”

“조용히 해! 너 때문에 좀비들이 더 달려들려고 하잖아!”

아이의 울음소리에 좀비들이 더 흥분했다. 김솔의 옆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가 김솔의 등을 강하게 쳤다.

김솔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른 등을 들썩이며 우는 모습에 이현의 눈시울 또한 붉어졌다.

“여기에 잠깐만 있어. 지금은 신부를 감시할 인력이 부족해서.”

이현의 눈에만 끔찍한 광경인 걸까. 서동연은 나들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휘파람을 불었다.

벽을 디딤돌 삼아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쇠기둥 위로 손쉽게 올라갔다. 우리 문은 닫혀 있지도 않았다.

밖으로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그대로 개떼 같은 좀비들 위로 떨어지게 되는 구조였다.

별다른 능력도, 무기도 없는 사람이라면 자살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들었다.

“다녀올게. 울지 말고 나 기다리고 있어. 오늘 제대로 못 한 데이트 이어서 하게.”

이현을 우리 안에 내려 준 서동연이 이현의 머리카락을 커다란 손으로 흐트러뜨리고 사라졌다.

서동연의 온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털어 낸 이현이 서둘러 김솔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김솔과 재회했다.

“아저씨…….”

아이가 작은 팔을 벌려 이현에게 온몸으로 안겨 왔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는 괜찮아 보였다.

사진의 배경도 이곳처럼 끔찍한 곳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서동연이 사진을 찍을 때만 김솔을 다른 장소로 데려갔던 모양이다.

이중적인 그의 모습에 이가 갈렸지만 어차피 그는 그런 놈이었다. 서동연에 대한 분노는 금방 털어 낸 이현이 김솔의 상태를 자세하게 살폈다.

“미안해, 아저씨가 너무 늦게 와서.”

“아니에요…….”

김솔은 이현을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안심하는 듯했다.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버텼으니 기절하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었다.

애착 인형처럼 끌어안고 있던 토끼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이현에게 매달렸다.

“아픈 곳은? 열은 안 나?”

이현이 김솔의 이마를 매만지면서 혹시라도 다친 곳이 없나 살필 때였다.

“씨발, 누구는 도살당할 가축처럼 사육되는데 여기 놀러 왔어?”

레스토랑에서 본 중년 남성이었다. 남성의 귀에는 피 묻은 천이 친친 감겨 있었다. 손목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현을 노려보는 남성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남성이 이현과 김솔을 향해 다가왔다.

좀비들의 괴성이 지척에서 들려오는 공간에서 이현은 같은 인간 또한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했다.

“이놈이 리더 새끼 이거라고. 다들 알아들어?”

중년 남성은 분명 서동연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인간들만 남게 되자 그의 언행은 거침이 없어졌다.

그가 다른 이들을 둘러보면서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반반한 얼굴만큼 아래도 끝내주나 보지? 어떻게 꼬셨어? 응? 그 새끼 어떻게 꼬셨냐고!”

“윽…….”

“아저씨한테, 흐윽, 손대지 마요……!”

붕대가 감기지 않은 손이 이현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이현이 품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발치로 굴러떨어졌다.

우리 안에는 스무 명 가량의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중년 남성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수의 퀭했던 눈에 기이한 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김솔만이 중년 남성의 다리에 달라붙어 그를 이현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실수인 척 밀어 버려요……!”

김솔의 등을 밀쳤던 남자다. 젊은 남자의 말에 힘없이 앉아 있던 사람들 일부도 한 사람씩 목소리를 보탰다.

“그래. 밀어 버려! 그래야 저 좆같은 좀비 새끼들이 조금이라도 조용해지지. 저 소리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이현이 숨이 막혀 와 중년 남성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어 내렸다. 다리도 움직여 퍼억, 퍽 소리가 나도록 찼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꿋꿋이 이현의 숨통을 옥죄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진짜 될 대로 되라지, 뭐.”

중년 남성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이현이 서서히 우리의 바깥으로 움직이려는 남자를 저지하기 위해 무릎을 이용해 남자의 고간을 터트릴 기세로 가격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타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억…….”

“커흐, 콜록, 콜록…….”

엄청난 고통에 중년 남성이 고간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검은자위가 넘어가 흰자위만 보일 정도로 남자의 표정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이현이 목을 움켜쥐고 거친 기침을 토해 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주먹만 한 돌을 발견했다.

돌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몰라도 말라붙은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솔아, 흐, 이리로 와…….”

이현이 돌을 꽉 움켜쥐고 김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는 게거품까지 무는 중년 남성과 이현을 번갈아 보는 눈동자들에 두려움이 서렸다.

생각보다 독한 이현의 행동에 다들 몸을 사렸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전형적인 비겁자의 모습이었다.

“아저씨…….”

이현이 품에 매달려 오는 김솔을 꽉 끌어안으며 눈에 독기를 품었다. 여기에서 얕보였다가는 정말로 저들의 손에 좀비 밥이 될지도 모른다.

짐작건대 알파 1팀이든 협회 본부든 어딘가에서 자신을 구하러 온 것 같았다. 이현은 제 가치를 잘 알았다.

날고 긴다 하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이현이 어린 나이에 수석 연구원 자리를 차지한 건 운이 아니었다. 이현을 시기하는 자들도 이현의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렇기에 이현은 갑자기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알파 1팀과 함께 임무에 파견 보낸 상부의 지시가 의아했다.

말로는 연구에 진전이 없으니 직접 현장에 나가서 좀비들의 특성을 더 파악하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취지라면 모든 연구원들이 현장에 파견되어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수락한 건 상부에서 혹시나 이현의 비밀을 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또한 한수호에 대한 호기심도 결정을 내리는 데 한 몫했다.

“아저씨는 괜찮아.”

무의식중에 눈으로 뻗어 나가려는 손을 이현이 주먹을 쥐어 멈췄다. 대신 김솔을 품으로 바투 끌어안았다.

아이의 온기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위안을 가져다줬다. 혼자 있었다면 이현은 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을 거다.

김솔이 같이 잡혀 왔다는 생각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서동연의 미친 짓거리에도 담담한 태도로 응한 건 모두 그래서였다.

이현이 김솔을 안은 상태로 모서리 쪽으로 향할 때였다. 우리 안에 모인 사람 중에서 가장 얌전히 있던 단발머리의 여자가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이현을 공격했던 중년 남성은 고통이 심한 나머지 기절해 버렸다. 아무도 남성을 챙길 생각을 하지 않아 덩그러니 정중앙에 방치된 상태였다.

우리 안의 사람들은 이현과 중년 남성의 상황이 일단락되자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단발머리의 여자만 이상한 행동을 했다.

현재도 우리의 바닥은 좀비들의 발악으로 흔들리는 중이었다. 이현도 걸음을 옮기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잔뜩 주어야 할 정도였다.

혹시라도 여자가 돌발 행동을 할까 봐 주의 깊게 살피는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크르르―! 캬악―!”

“캬하악! 캭!”

좀비들은 체력의 한계도 없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진즉에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텐데. 인육에 대한 탐욕만 남은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괴성을 지르고, 먹잇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인 건 우리를 둘러싼 좀비들의 수가 서로 탑을 쌓을 정도로 엄청 많지는 않다는 거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좀비들은 서로의 몸을 지지대 삼아 순식간에 쇠창살 안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왔을 테니까.

“저기, 저쪽 이상하지 않아요……?”

한참 동안 불안한 얼굴로 입만 벙긋거리던 여자가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를 냈다. 기절한 중년 남성을 제외한 사람들이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현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어……?"

앳된 얼굴의 남자애가 눈을 부릅뜨고 여자처럼 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정말 회색 벽에서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미줄 같은 균열도 일어나는 듯했다.

쇠기둥을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 중 일부는 벽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고개를 휙 돌리고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우리 안에 갇힌 이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벽 쪽에서 일어나는 이변이 어떻게 작용할지 몰라 불안하기도 했다.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이현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자신을 구하러 온 이들이 만든 흔적이라고.

하지만 쿠르르릉, 소리를 내며 회색 벽이 무너져 내렸을 때 이현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쥐어야만 했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음이 들려왔다. 쇠기둥이 놓여 있는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이현이 김솔의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생존자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까지 뒤섞여 장내가 아수라장이었다.

“으아악……!”

사람들이 흔들리는 바닥에 딱 붙은 채 버텼다. 아슬아슬하게 가장자리까지 몸이 밀려난 이도 있었다.

사람만 영향을 받은 게 아니었다. 좀비들 또한 굉음과 진동 때문에 더욱더 괴성을 지르며 발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