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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19화 (19/133)

019.

웃는 얼굴과 달리 테이블 위를 가로지른 날카로운 살기가 이현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이현이 얕은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잘 먹겠습니다.”

이현은 어쩔 수 없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손이 떨려서 챙챙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레스토랑 안에 울려 퍼졌다.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등허리가 온통 축축했다. 간신히 스테이크 조각 하나를 썰어 입 안에 넣었다.

턱을 움직여 씹자 고기 안에 갇혀 있던 육즙이 터져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적당히 달콤하고 새콤한 맛의 소스와 어우러진 스테이크의 맛은 훌륭했다.

다만 이현은 일반 좀비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살점이 썩어 가는 냄새를 지독하게 맡은 이후로 핏물이 흘러나오는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 버렸다. 자신도 몰랐던 변화다.

“우윽…….”

“이런. 내가 냄새나지 않게 요리하라고 지시했는데. 맛이 별로야?”

이현이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입을 틀어막았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이제는 식은땀이 속눈썹까지 내려앉았다.

인내심으로 버텼지만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속에서 치받는 구토감은 점점 심해졌다. 그런 이현을 살피는 서동연의 눈가로 짙은 그늘이 졌다.

“요리사 데려와.”

“네.”

의자에 등을 늘어뜨린 서동연이 주변에 있는 하프 좀비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 남성이 하프 좀비에 손에 이끌려 왔다. 하프 좀비는 서동연의 발치에 끌고 온 중년 남성을 내동댕이쳤다.

“오늘 중요한 손님한테 식사 대접할 거니까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요리하라고 했잖아. 잊었어?”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요리를……. 힉―!”

서동연의 손에 들린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던 나이프가 중년 남성의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귀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감각에 중년 남성이 눈을 크게 홉뜨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이현은 중년 남성이 인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눈동자 색도 양쪽이 같았고, 무엇보다 남자는 지나치게 겁에 질려 있었다.

반쯤 잘린 귀에서 붉은색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동연의 뒤에 서 있는 하프 좀비가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중년 남성이 참지 못하고 실례를 범했다. 베이지색의 바지 앞섶이 짙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제발 한 번만 자비를……. 아악……!”

“쓸모도 없는 손인데 무겁게 달고 다녀서 뭐 해.”

이번에는 포크의 날이 정확하게 남자의 손목으로 파고들었다. 남자가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혀까지 잘리고 싶은 거야?”

“흐윽, 아, 아닙니다…….”

중년 남성이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았다. 남자는 가까스로 고통을 견디며 절박하게 생명을 구걸하고 있었다.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 또한 중년 남성처럼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데리고 가.”

“네.”

서동연이 눈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하프 좀비가 중년 남성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갔다. 남성이 끌려가는 자리를 따라 지린내가 풍겼다.

“미안하네. 애써 준비한 데이트인데 엉망으로 만들어서.”

“……괜찮습니다.”

사과였지만 받는 이의 얼굴이 희게 질려 갔다. 이현은 간신히 대답했다. 허벅지 위로 모아 잡은 두 손이 힘을 준 게 무색하게도 벌벌 떨리고 있었다.

“자꾸 무서워하니까 기분이 별로야.”

겁에 질릴 만한 행동을 해 놓고 한다는 말이 딱 사이코패스 같았다.

이미 인육을 먹어 온 자들이다. 같은 종족을 물어뜯었던 놈들이 이성이 돌아왔다고 해서 정신 상태가 멀쩡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치게 희망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괴물은 현재 인간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흥미가 빠르게 식은 모양이었다.

“이만 일어나자. 계속 먹게 했다가는 도로 다 게워 내게 생겼으니까.”

억지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큼은 고마웠다. 이현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안경은 왜 쓰고 다녔던 거야? 안경 안 쓴 얼굴이 훨씬 예쁜데.”

서동연이 두 팔을 하늘 위로 쭈욱 뻗으며 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현의 안경은 그가 망가뜨렸다.

사실 가이딩을 하는 것만 아니면 안경은 필요 없는 물건이기는 했다. 이현은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쓴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안경 쓰는 걸 좋아해서요.”

안경을 썼던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한테도 밝히지 못한 비밀이었다.

“안경을 좋아해? 그러면 안경 고르러 가자.”

일부러 꾸며 낸 듯이 시무룩하게 양 눈썹을 늘어뜨리고 있던 서동연이 활짝 웃으며 이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서동연이 손을 잡아 오자 소름 끼치는 감각이 흘렀지만 차마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방금 전에 피를 흘린 채로 끌려 나간 중년 남성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서 나던 지린내 또한.

레스토랑을 나와 도착한 곳은 안경점이었다. 다양한 안경들이 가득한 곳에서 이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거 써 봐.”

이현이 서동연이 건넨 새빨간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다가 얼굴 위에 걸쳤다.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안경이었다. 서동연이 턱을 괴고 침음을 흘리더니 순식간에 이현의 얼굴에서 안경을 벗겨 냈다.

“별로다. 이번에는 이거.”

뿔테 안경 다음으로 건넨 건 은색의 반무테안경이었다.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거지만 이현은 곧잘 소화해 냈다.

“이거는 좀 괜찮네.”

이후로도 이현은 매장 내에 있는 안경테란 안경테는 죄다 한 번씩 착용해야만 했다. 개중에서 이현한테 어울렸던 테를 몇 개 골라낸 서동연이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앞에는 점원 복장을 한 하프 좀비 한 명이 영업용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네, 손님.”

서동연이 건넨 카드를 받아 든 직원이 신용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긁는 시늉을 했다. 서동연은 정말 이현을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의 뜻대로 돌아갔다. 하프 좀비들 사이에서 그의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최소 수십의 하프 좀비들이 서동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이현의 눈에 띈 하프 좀비의 수만 그 정도이니 실제로는 수백 이상이 서동연의 지시하에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프 좀비의 능력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B급 이상의 능력자로 협회는 판단했다.

B급 이상의 능력자는 능력자 전체를 놓고 보면 많은 수가 아니었다. C급과 D급의 능력자는 하프 좀비와 일대일로 대면한 순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런 이들을 수백 이상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자가 서동연이었다. 게다가 그가 부리는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까지 생각하면 전력이 어마어마했다.

협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이현이 납치를 당하면서 얻게 된 단 하나의 소득은 하프 좀비의 본거지를 찾았다는 거다. 이만한 전력이 다른 곳에도 더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직접 와서 겪어 보니 알 수 있었다. 알파 1팀의 무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그들만으로 하프 좀비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건 자살 임무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게다가 팀워크가 좋기로 유명한 서울 지부 알파 1팀 내에서 배신자까지 나온 상황.

이현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협회 안에 있는 누군가를…… 한편으로 만든 건가요?”

서동연이 점원 역할을 하고 있는 하프 좀비가 포장해 주는 안경테를 받아 들다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그게 아니라면…… 알파 1팀에서 배신자가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서로 색이 다른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서동연이 손가락에 건 쇼핑백을 가볍게 휘두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글쎄에~?”

말끝을 올리는 모양새가 의뭉스러웠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알파 1팀에만 문제가 생긴 게 아닐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표정 풀어. 우리 오늘 처음으로 데이트 한 날인데 즐거워해야지.”

이현이 아랫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서동연이 이현의 어깨 위로 제 팔을 걸쳤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눈시울이 시큰했다.

이현은 정말 진심으로 알파 1팀 사람들이 그리웠다. 한수호뿐만 아니라 자신을 놀리기 바쁘던 진표성까지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을 때 멀리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데.”

이현의 귀에는 어떤 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흐릿한 소음이었지만, 서동연은 단번에 무슨 소리인지 알아챈 눈치였다.

“빠르게 움직일 거니까 눈 감고 있어.”

들고 있던 쇼핑백을 이현의 품에 안겨 준 서동연이 그대로 이현을 품에 안아 들었다.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 이현이 반사적으로 서동연의 목을 끌어안았다.

서로의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친 눈동자에 이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현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볼 것 같은 날카로움이 언뜻 보면 장난스러워 보이는 눈동자에 깃들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내가 꼭 공주님을 납치한 악당 같네.”

자신이 공주님이라고 지칭된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서동연이 악당이라는 점에는 이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었다.

눈을 감아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세기만 봐도 서동연이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크햐악―!”

“캬악, 학!”

“크르르…….”

서동연이 속도를 서서히 늦추기 시작할 즈음 이현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들이 모여들었다.

설마 생각하는 장면은 아니겠지.

혹시나 했던 마음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눈을 뜬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이현이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얼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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