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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16화 (16/133)

016.

이곳까지 오면서 처리한 좀비들의 숫자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좀비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본부 쪽이랑 연락도 되지 않아.”

한수호가 손에 들고 있던 연락용 아티팩트를 품에 갈무리했다. 김솔을 본부 쪽에 보내기 위해 오기로 했던 이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근방에 아티팩트를 교란하는 무언가가 있어.”

하프 좀비는 마석의 마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능력자였던 이들도 하프 좀비가 되면 마석을 다루는 능력을 잃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하프 좀비가 에스퍼의 능력까지 가지게 된다면 인류는 진즉에 멸종했을 테니까.

그들도 협회 측과 전투를 하면서 전리품으로 아티팩트를 갈취해 가고는 했다. 그러나 사용을 못 하니 장신구처럼 쓸 때가 많았다.

통신 아티팩트를 교란하는 용도의 아티팩트라면 반드시 능력자가 있어야 했다.

“크윽…… 서, 선배님…… 도대체 왜…….”

“너한테 악감정은 없어.”

한수호가 이 난관을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생각해 내기 위해 고민에 빠진 순간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침묵이 감도는 공간에 진동했다.

황두학이 배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주먹만 한 크기로 뚫린 배에서 피와 뒤섞인 내장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일반 좀비처럼 보이기 위해 입었던 보호복이 삽시간에 새빨간 빛깔로 물들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진표성이 재빠르게 김종현의 목덜미를 붙잡아 뒤로 당기지 않았다면 황두학의 심장은 김종현의 손아귀에 붙잡혀 터졌을 거다. 진표성의 대처 덕분에 황두학이 즉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학이가…….”

평소 조용하던 이낙균도 방금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한동안 인식하지 못했다. 얼어붙은 입술은 문장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무너져 내리는 황두학과 손끝이 벌겋게 물든 김종현을 번갈아 보는 눈동자가 깨질 듯 떨렸다.

“……팀장님, 지금 제가 본 광경이 환상은 아니겠죠?”

충격에 빠진 건 임태한도 마찬가지였다. 임태한은 진표성처럼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막내의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데도 몸이 굳어버렸다.

“황두학!”

이나리가 황두학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진 황두학을 품에 안아 올리는 이나리의 눈시울이 새빨갰다.

“쿨럭, 쿨럭…….”

“황두학, 정신 잃으면 안 돼. 조금만 참아.”

서둘러 회복 포션을 꺼내 피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상처에 부었다. 구멍 난 자리를 따라 부글부글 핏빛 거품이 끓어올랐다.

상처를 지혈하는 가느다란 손이 덜덜 떨렸다.

“누나…….”

황두학은 임무 중에는 이나리를 절대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격의 없이 지내도 공과 사는 구분하려고 하는 이나리 때문이었다.

초점이 흐릿해진 눈동자가 거센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 여기 있으니까…….”

황두학을 안심시키려던 이나리가 이를 악물었다. 임무 중에 동료가 다친 적은 많다. 하지만 동료의 손에 팀의 막내가 사경을 헤매게 된 경우는 없었다.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이였기에 황두학이 무방비하게 김종현에게 당한 거였다. 황두학이 등 뒤에서 다가오는 살기를 느꼈을 때는 이미 그의 손에 배가 뚫린 후였다.

평소 김종현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나리는 그 또한 한 명의 동료라 여겼다. 믿음이 한순간에 배반당한 상황에 가슴이 미어졌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선배한테 하는 말버릇하고는.”

“미친 새끼가!”

진표성이 좀비 보호복이 다 찢어지도록 몸을 부풀린 채로 김종현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맞붙으며 나는 소리가 웅웅 퍼져 나갔다.

“크르르…….”

“크햐악―!”

“캬악!”

예상보다 느껴지는 기척이 적었을 뿐이지 좀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인간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을 제외하면 좀비 영역이라고 봐도 될 만큼 좀비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근처를 배회하던 좀비 떼가 알파 1팀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표성, 비켜.”

촤아아악, 음울한 색의 칼날이 진표성이 상대하던 김종현의 팔목과 발목의 힘줄을 끊고 지나갔다.

무섭게 굳은 얼굴로 벌어진 상황을 살피던 한수호였다. 한수호가 움직이자 멍하니 있던 이현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는 김종현에게서 새빨간 피가 뿜어졌다. 허공을 도화지 삼아 흩뿌려지는 피의 양은 황두학이 흘린 피 못지않게 많았다.

“으윽…….”

황두학을 사경으로 몰아넣고도 죄책감 없이 비뚜름한 미소를 짓던 입매가 우그러졌다.

김종현의 발치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그의 사지를 결박했다. 제 그림자에게 몸이 속박된 김종현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황두학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땅에 닿은 김종현의 옆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고통으로 부릅떠진 눈이 한수호에게 닿았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어. 다들 9시 방향 쪽으로 도주로 뚫어.”

황두학을 끌어안고 있는 이나리를 제외한 알파 1팀이 충격을 뒤로하고 움직였다. 한수호가 지시한 방향 쪽의 좀비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몸짓이 필사적이었다.

“끼에엑―!”

“캬하악!”

좀비들의 단말마 비명이 탑처럼 쌓여 갔다. 이나리는 황두학의 입 안에도 회복 포션을 흘리고 상처 부위를 옷을 찢어 압박했다.

황두학의 입술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상처는 아물고 있지만 제대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나리의 눈가에도 결국 황두학처럼 눈물이 고였다.

황두학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다.

이현도 김솔의 손을 잡고 서둘러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부상에는 효과가 없을지 몰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다친 새끼를 지키는 어미처럼 주변을 경계하던 이나리가 이현에게 곁을 내어 줬다.

“가이딩이라도…… 할게요.”

“……알겠어요.”

이현이 늘어진 황두학의 손을 붙들고 가이딩 마력을 있는 대로 쏟아 넣었다. 안경 속 이현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눈을 감거나 내리깔 정신도 없었다. 그만큼 이현도 황두학이 잘못될까 봐 절박했다.

이현의 손안에 담긴 황두학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황두학의 눈꺼풀은 어느새 감긴 채였다. 이현이 가이딩을 하는 상태로 황두학을 업고 일어나던 이나리의 시선에 이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된 건 그때였다.

“팀장……!”

콰아아앙―!

한수호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하려던 이나리의 목소리는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에 잡아먹혀 버리고 말았다.

일반인이라면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짙은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워 나갔다.

폭발에 휘말린 잔해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폭발이 일어난 곳과 가까운 위치에 있던 좀비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육편이 되었다.

“솔아, 괜찮아…….”

“우윽, 윽…….”

이현이 김솔을 품에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매캐한 연기에 잠깐 닿은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간신히 무너지려는 정신을 붙들고 버텼다.

볼 쪽에서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도 들었지만 손을 들 수도 없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당장이라도 목 줄기를 훑고 지나갈 기세였다. 이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품 안에 담긴 작은 온기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더 주는 것뿐이었다.

폭음에 상한 귀는 먹먹했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있었다. 황두학이 쓰러지고 난 이후부터 장내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현은 김솔이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아이의 시선을 차단했다. 이현도 정신이 없어 김솔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김솔은 황두학이 쓰러지던 순간부터 패닉에 빠져 있었다.

아이는 황두학의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를 보고 말았다. 생기 가득한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흐릿해지는 것 또한.

익숙한 장면이었다.

김솔은 그 순간 한 남성이 여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을 향해 뻗어 있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경련하더니 축 늘어지는 모습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말았다.

가느다란 목덜미에서 치솟던 핏줄기는 황두학의 배에서 흘러나오던 피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엄마…….”

김솔이 이현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현은 그제야 자신도, 김솔도 심하게 몸을 떨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드디어 찾았네.”

이현이 눈이 따가운 것도 잊고 눈을 부릅떴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어렴풋이 비치는 얼굴이 낯익었다.

자욱한 연기와 비슷한 색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자신을 직시하는 눈동자에 이현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굳어 버렸다.

“잘 있었어? 내 신부.”

미친놈, 이라는 욕이 턱 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이현은 그 말을 내뱉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때의 만남이 끝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처음 서동연과 마주친 순간부터 이현은 그와의 악연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이 지금일 줄은 몰랐다. 처음 그를 만났던 날 이후로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실 한동안은 그를 잊고 지냈었다.

임무에 파견된 후 그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게 다였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그를 마주쳐도 힘들 텐데. 지금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더욱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서동연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사슬이 되어 온몸을 결박한 것만 같았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뚱이는 이현의 의지를 배반하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그사이에 애까지 생겼네.”

이현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한수호를 비롯한 알파 1팀이었다. 그러나 서동연은 혼자 오지 않았다.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듯 해치우던 알파 1팀은 갑자기 등장한 하프 좀비들 때문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곁에 있던 이나리도 황두학과 함께 사라졌다. 날아오는 잔해를 피하기 위해 이나리가 이현이 있는 장소와 반대편으로 몸을 움직인 까닭이었다.

이변을 느끼고 이현에게 다가가려 했을 때는 늦었다. 이미 그녀와 황두학의 주변에 하프 좀비들이 나타난 뒤였다. 황두학을 먼저 공격하는 놈들 때문에 이나리의 발 또한 묶이고 말았다.

“이거 마음에 안 든다. 예쁜 얼굴이 다 가려져 있잖아.”

굳어 버린 이현과 달리 서동연은 눈매까지 둥글게 휘어 보였다. 이현의 볼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는 움직임이 상황에 맞지 않게 다정했다. 따끔한 통증에 이현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상처도 나 있고.”

그러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불쾌했던 서동연이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분명 이 안에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로 보들보들한 살결이 감춰져 있을 텐데.

안경도 마찬가지였다. 서동연은 망설이지 않고 안경을 벗겨 내 손안에서 으스러뜨렸다. 이현은 그가 제게 중요한 물건을 망가뜨리는데도 손끝을 움찔 떠는 것 말고는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나랑 같이 가자.”

서동연이 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일반 사람의 손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손가락이 길고 매끈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 너를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부하들을 좀 많이 데리고 왔거든. 아무리 한수호라도 꽤 버거울 거야.”

이현이 제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서동연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주변의 상황과는 괴리가 느껴질 정도로 산뜻한 표정으로.

“아니면 이 아이 때문에 그래?”

서로 색이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아이의 등에 못 박히듯이 고정됐다. 이현이 바들거리는 팔에 힘을 줘 김솔을 꽉 끌어안았다.

“아이도 같이 데려갈까?”

턱을 검지로 가볍게 두들기던 서동연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활짝 웃었다.

“……아이는 건들지 마요.”

“그러면 나한테 협조해. 나도 아이는 웬만하면 건들지 말자는 주의거든. 자라나는 새싹이잖아.”

서동연의 손이 김솔의 정수리로 향했다. 이현이 굳어 버린 몸을 간신히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서동연이 이현의 팔을 붙잡는 바람에 몇 걸음 멀어지지도 못했다. 위험한 시선이 김솔의 몸을 훑어 내렸다. 시선이 길게 머문 곳은 여린 목 줄기였다.

날카로운 살기가 위협적으로 주변에 감돌았다. 잘못 입을 열거나 몸을 움직이면 그 순간 살기가 형태화해 김솔의 목을 분지를 것만 같았다.

이현의 간절한 시선이 서동연의 등 뒤로 향했다. 그러나 알파 1팀 중 누구도 당장은 이현을 도와주러 오기 힘들어 보였다.

서동연의 돌아 버린 눈동자는 이현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서동연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이현의 표정을 관찰했다. 커다란 눈동자에 체념이 어린 순간 색이 다른 눈동자가 즐거움으로 빛났다.

이현의 등과 오금 아래에 팔을 집어넣어 몸을 일으킨 서동연이 일대를 스윽 훑어봤다. 성인 남성과 아이를 함께 들어 올리고도 그의 움직임은 가뿐하기만 했다.

알파 1팀의 살벌한 공격에 이끌고 온 부하 몇 명이 벌써부터 목과 몸이 분리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A급 몬스터 좀비 무리까지 끌고 왔는데도 S급 에스퍼의 능력은 결코 쉽게 볼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S급 좀비 몬스터를 데리고 와야 하나.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S급 좀비 몬스터는 다루기가 까다로운데.”

마실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전장에서 멀어지는 서동연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알파 1팀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몸을 버둥거려 봤다. 그러나 단단하게 몸을 옭아맨 팔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동연의 팔은 살아 움직이는 밧줄처럼 이현을 필요 이상으로 속박했다.

“얌전히 있어, 신부야. 아이가 울잖아.”

살기 짙은 목소리에 김솔이 끄윽, 흑, 억눌린 울음소리를 냈다. 본능적으로 서동연이 지금까지 마주쳤던 좀비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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