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ouble Shot(더블 샷)-71화 (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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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네잎 클로버 구해 보세요. 블라인드에 대한 자료도 모두 찾아 주시고요. 바로 무인도로 가야 하니까 전용기와 헬기도 준비해 주세요.”

루나의 사무실을 나선 레오는 로버트에게 연락한 후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급하게 진행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알아 버린 지금, 미적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루나가 준 반지도 챙겼고, 일단 씻고 정장으로 갈아입고, 또 뭐가 필요하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던 레오의 발걸음이 멈췄다. 언제든 혜담의 마음이 온전히 열린 것이 느껴지면 곧바로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준비하긴 했지만 딱히 프러포즈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기는 레오의 얼굴에 난감함이 가득 묻어났다.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프러포즈 하더라? 영화에서는? 드라마는? 꽃. 아! 꽃을…… 장미꽃 백 송이.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손끝을 튕기던 레오는 다시금 머리를 쥐어뜯었다.

지금 상황에서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 갔다가는 꽃다발로 두들겨 맞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우리 못난이가 장미꽃을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또 뭐가 있을까? 분리수거도 안 될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혜담이 좋아하는 것. 혜담이 좋아하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던 레오의 시선이 자신의 아랫도리로 잠시 향했지만, 제 머릿속을 채운 것을 얼른 털어 낸 레오는 일단 다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드레스룸에 들어갔다고 해서 딱히 어떤 방책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색별로 쫙 걸려 있는 정장 앞에서 레오는 또 망설이고 있었다. 좀 캐주얼한 정장을 입어야 하나? 스리 피스로 제대로 갖춰 입어? 거기다 혜담이 평소에 어떤 색과 디자인을 좋아했는지를 떠올리는 레오의 머릿속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법이 없는 혜담이었기에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일단 정장은 두고 시계나 넥타이부터 고를까?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에 고민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던 레오의 손끝이 제가 소장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건들고 있었다.

“네. 구했어요?”

휴대전화가 울리자 스피커폰으로 받은 레오는 드레스룸 가운데 선 채, 한숨을 쉬었다.

― 네잎 클로버는 구하는 중이고, 블라인드와 관련된 자료 역시 수집하는 중입니다. 한데 지금 바로 무인도로 가시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 무인도 근처에 폭풍우를 동반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어 비행 금지령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가면 가는 거지.”

― 비행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그럼 무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든지요. 일단 그 근처라도 가야 언제든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비행이 안 되면, 그 근처에서 배로 가면 되겠네.”

레오는 철벽같은 로버트의 말을 반박하며 여행용 캐리어부터 열었다. 지금 고르지 못하겠다면 일단 들고 가 비행기 안에서 선택해도 될 일이었다.

― ……혜담 씨께 혹시 어떤 문제가 생긴 걸까요?

“어, 아, 아니. 하여튼 비행 허가받고, 다시 연락해요. 여기 픽업 올 시간이 안 되면, 내가 바로 공항으로 출발할 테니…….”

평소와 다르게 두서없이 말을 하며 레오는 정장과 시계, 넥타이, 커프스 등을 캐리어 안으로 마구 던져 넣었다.

― 네, 알겠습니다.

더는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말과 함께 로버트가 통화를 끝내려는 순간 레오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로버트! 선물로 주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 혜담 씨께 선물하실 겁니까?

주어가 없는 질문에 로버트는 정확한 대상을 콕 집어 다시금 물어 왔다.

“어.”

― 저보다 루나 씨가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로버트에게 말해 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레오는 통화를 끝내고는 그대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무인도는 왜 하필 이리 또 멀리 있어서. 일단 출발을 하고 가는 동안 머릿속을 정리하며 가장 이상적인 답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도 반지는 있잖아. 뭐라도 있는 게 어디야.

혼란스러운 레오의 뇌는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르고 있었다.

* * *

야외 데크에 있는 데이베드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혜담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는 바람에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석양 대신 바다 먼 곳에는 무거운 먹구름들이 가득했고, 늘 찰랑찰랑 듣기 좋은 소리를 내던 파도도 평소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이대로 더 잤다가는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을 게 뻔했다. 거의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늘 쾌청한 날씨를 자랑하던 곳이기에 몰려오는 비구름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날씨가 왜 이래?”

덮고 잤던 블랭킷을 집어 어깨에 두른 혜담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곤 조심스럽게 데이베드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전처럼 벌떡벌떡 일어났다가는 밀려오는 현기증을 참을 수 없기에 생겨난 최근의 버릇 중 하나였다.

뭐든 빠릿빠릿 신속하게 대충대충 후다닥이 아닌 천천히 느릿하게 꼼꼼하고 조심스럽게로 그의 삶이 바뀌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출근을 하고, 일하고,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또 일하고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혼자 살아온 것 같지만 늘 사람들 속에 있었다. 좋든 싫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상대에 맞추고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필요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무엇 하나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처음엔 혼자 떠나는 여행이 두렵기도 했다. 영상에서만 보던 적당한 크기의 이층집에 홀로 들어섰을 때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최고급이라는 것에 제 모든 인생을 걸 수 있었다.

부족한 것도 없고, 풍족하고 안락한 삶이 이곳에 있었다.

무릉도원이 여기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었지만 습하지 않았다. 햇살은 적당히 따스했고, 바람도 늘 일정하게 살랑거렸다. 해가 밝으면 같이 눈뜨고, 해가 일찍 지는 만큼 일찍 잤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시계를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현기증과 체력 부족으로 3일 동안 씻지 않아도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식사를 하거나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의견을 구할 상대가 없다는 건 정말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혼자라서 외롭다거나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아니 보통…… 자주…… 조금 많이 혼자 잠드는 침대가 허전하긴 했지만.

침대가 조금 더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나에게 전기장판이라도 보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엉뚱한 생각까지 간 혜담은 입술을 꾹 물었다가 놓았다.

어쨌거나 날씨가 궂어질 것은 분명한 것 같기에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펼쳐져 있는 파라솔을 접고, 데이베드도 어디 안 젖을 만한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혜담의 고민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늘 펼쳐져 있던 파라솔이기에 접으려 한다고 해도 접는 방법을 몰랐고, 무거울 것이 뻔한 데이베드를 옮길 만한 힘이 제게는 없었다.

어차피 대여한 곳이니 고장이 나면 주인이 고치겠지, 뭐. 깊게 생각하지 않은 혜담은 맨발로 데크를 걸어 실내로 들어갔다. 느린 걸음으로 집을 한 바퀴 돌며 창과 문을 확인하고 따스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온 혜담의 입에서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틀어 줘.”

아무도 없는 공간에 하는 혼잣말 같았지만, 이내 집 안엔 듣기 좋은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부엌으로 들어간 혜담은 냉장고에서 손질되어 담겨 있는 샐러드와 베이컨, 계란을 꺼냈다.

“계란은 삶고, 바싹하게 구운 베이컨 들어간 샐러드랑 또 뭐 먹지?”

한식도 좋지만 요즘엔 가벼운 브런치 같은 음식들이 좋았다. 냉장고 옆의 장을 연 혜담의 눈에 다양한 종류의 빵이 들어왔다. 토스트? 아니, 베이글? 이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단 건 별로 당기지 않고. 결국 혜담이 선택한 것은 베이직한 크루아상이었다.

계란은 삶고 크루아상은 오븐에 넣은 후 여기 와서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던 커피 머신 앞으로 간 혜담은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디카페인 커피를 내렸다.

“크루아상에 커피가 없으면 서운하지.”

부엌을 가득 채우는 크루아상의 냄새와 은은한 커피 향에 혜담의 보조개가 깊어졌다. 진짜 안 찾는 건가? 휴가계가 아닌 사직서를 낼 걸 그랬나? 그랬다간 이런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거머리 같은 놈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들러붙으면 저는 또 그에게 호로록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것이 뻔했다.

커피에서 깊은 향보다 쓴 향을 먼저 느낀 혜담은 어깨에 두르고 있던 숄을 조금 더 끌어 몸을 감싸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날씨가 궂어진 만큼 기온도 떨어진 것 같아 샤워 후 숄을 걸치길 잘한 것 같았다. 전기장판에 핫팩도……. 온기를 찾던 혜담은 곧 제가 이곳을 떠난다는 걸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만 버티면 되지, 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먼 지평선에 걸려 있던 먹구름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파도도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

“침실에 벽난로도 있던데, 오늘은 그거나 켜 볼까?”

빗방울까지 떨어지는 걸 확인한 혜담은 연이어 들리는 기계의 알림음에 몸을 돌려 완성된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혼자만의 식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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