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8)

#7

눈앞의 트러스티 호텔을 올려다봤다. 즉흥적이게 도착한 바람에 잠시 고민에 잠겼다. 묵야의 일만 관련되면 충동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탓이었다. 묵야가 소유하고 있다는 호텔은 오늘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호텔 로비로 향했다.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가고 싶었지만 13층이라는 어마어마한 높이에 마음을 접어야했다. 카드키를 든 한 쌍의 커플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층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엘리베이터가 곧 1층에 도달했다. 머리카락이 촉촉한 중년여성과 젊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어머니와 아들이 사이좋게 호텔을 찾았을 리는 없었다. 젊은 남자는 300이라는 돈을 생각하고 있었고 중년여성은 남편에게 죄책감을 가지는지 약간의 후회가 비쳐졌다.  

“안타실 거세요?”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한 쌍의 커플이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멍하니 선 나를 쳐다봤다. 

“아뇨, 지금 탑니다. 죄송합니다.”

7층과 13층을 순서대로 누르고 어질어질한 엘리베이터의 감각을 맛봤다. 7층에서 내린 연인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이제 갓 연애를 시작한 자들인지 생성되는 글자들의 색이 온통 붉었다. 

묵야의 객실 문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반지갑에 넣어뒀던 카드키를 찾았다. 열까말까 고민하다가 이 와중에 더 고심해 봤자지 싶었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묵야가 없을 수도 있었다. 역시나, 객실 곳곳을 뒤져봐도 묵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배치된 과일에 눈을 돌렸다. 잘 익은 한라봉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삼겹살의 느끼함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상큼한 과일이 먹고 싶긴 했다. 한라봉 하나를 잡아서 쓱쓱 껍질을 벗겼다. 두꺼운 껍질 안에는 알이 꽉 찬 한라봉의 속살이 숨어있었다. 당도가 굉장했다. 앉아서 네다섯 개는 순식간에 해치울 만한 맛이었다. 묵야 먹으라고 놓은 것이라 딱 하나만 맛봤다. 

“갈……까?”

아무도 없는 방안에 내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문자가 없는 방은 한적함을 넘어서 쓸쓸했다. 문자들의 향연에 익숙해진 탓인지 이런 휑한 방이 더 적응하기 힘들다. ‘재회, 기다림.’ 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연한 보라색의 문자가 눈앞을 아른거렸다. 내게서 생성된 문자였다. 그 녀석들을 잡아 손안에서 굴렸다. 햄스터를 올려놓고 핸들링 하는 것처럼 손목을 비틀자 ‘재회’가 대롱대롱 내 손 끝에 매달렸다. 두 녀석을 허공에 풀어주고 나폴거리는 것을 구경했다.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하게 허공을 유영했다. 시시각각 형태는 바꾸는 녀석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두 녀석이 내게 달려 들었다. 놀란 글자들이 품안에 숨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것을 손으로 움켜쥐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어느새 들어온 묵야가 고개를 비틀고 서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 언제 왔어요?”

“2분 전에.”

조금 전에도 아니고, 2분 정도라니. 남자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환상인지 아닌지 가늠하고 있었지.”

혹시. 묵야에게도 문자가 보인걸까? 깜짝 놀라서 소파에서 튀어 올랐다. 묵야가 놓치지 않고 내 등에 팔을 둘렀다.

“환상이 아니군.”

문자가 아닌, 나를 말했구나. 나 역시 그의 등에 팔을 둘러 화답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다급하면서도 다정한 동작으로 묵야가 내 옷을 벗겼다. 툭하고 떨어진 묵야의 정장 안 쪽에서 무언가를 본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와의 키스가 더 중요했다.

옷가지를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뜨리며 침대로 이동했다. 침실에선 알싸한 소독향이 풍겼다. 전라가 되어 시트위에 눕고 마차가지인 묵야가 내 위에 올라탔다. 묵야의 발기한 기둥이 허벅다리에 비벼졌다. 내 성기 역시 한껏 발기해 있었다. 따뜻한 묵야의 가슴이 상체에 문질러졌다. 꿈틀대는 용의 머리를 손으로 가리고 묵야의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까슬한 묵야의 혀가 내 혀를 슬쩍슬쩍 건들이며 장난치듯 안으로 들어왔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키스가 삽시간에 밀어닥쳤다.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묵야가 목덜미를 빨아들여 그 살을 잘근거리고 위로 솟아오른 유두를 꾹 눌렀다. 

“말랑말랑하다.”

“하아… 목덜미요?”

“아니, 둘 다.”

묵야가 입을 크게 벌려 유두를 먹어치웠다. 쭉쭉 빨아올리는 바람에 가슴의 살이 위로 들렸다. 묵야의 혀에 뾰족하게 선 유두가 쓸려나갔다. 묵야가 입을 떼어내자 그 부근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빨갛게 부어있기까지 했다. 묵야가 젖꼭지에 손을 가져대자 신음이 터졌다. 타액으로 연해진 살은 약간의 충격에도 전기가 일 듯 찌릿 거렸다. 다리사이를 묵야가 파고들었다. 닫힌 엉덩이에 미끈거리는 선액을 분비하는 묵야의 기둥이 닿았다. 묵야는 금방이라도 삽입할 것 같은 자세로 부풀어 오른 유두를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양쪽의 유두는 질척하게 젖어 조명아래 축축이 빛났다. 젖꼭지는 만지기만 해도 쓰라림이 느껴질 것 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묵야가 침대 상단머리에 허리를 비스듬히 기댔다. 묵야는 자신의 다리 쪽을 향하도록 내 몸을 뒤집어 내가 그의 다리 위에 엎드리도록 만들었다. 내 얼굴 바로 밑으로는 묵야의 성기가 열을 뿜고 있었다. 더불어 묵야의 정면으로 내 둔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그의 몸 위에서 내려오려 하자 묵야가 허벅지의 뒷면을 꽉 붙들었다.

“한 번. 한 번만 하지. 대신에 시간은 내 뜻대로 해도 될까?”

“…네.”

묵야가 한발 양보했으니 나도 이 정도는 물러서줘야겠지. 마약을 먹은 날과 같은 섹스는 무리였다. 그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허리에 힘 빼.”

묵야가 찰싹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쳤다. 엎드린 자세로 내 몸무게를 팔로만 지탱하고 있어 조금 불편했다. 살짝 힘을 풀자 묵야의 기둥이 입술 근처까지 다가왔다. 요도위로 축축하게 올라온 선액을 혀로 훑었다. 꿈틀하며 기둥이 반응을 보였다. 혀로 귀두를 할짝이자 더 단단해져가는 기둥이 아랫입술을 쳤다. 묵야의 힘에 의해 허리가 들리고 엉덩이 양쪽이 벌려졌다. 숨겨진 구멍이 죽 늘어나는 생경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벌써부터 아랫배가 뻐근한 기분이었다. 뜨거운 숨이 평소엔 드러내 보일 리 없는 곳에 닿았다. 곧 뭉클한 물체가 구멍의 입구를 간질였다. 그것이 묵야의 혀란 걸 알고 놀라서 앞으로 도망 가려했지만 나를 잡고 있는 묵야의 힘이 더 강했다. 

“더! 더러워요!”

“좋아하잖아.”

“네?”

묵야가 엉덩이를 벌린 채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허리가 꼬였다.

“제가 언제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 때 그랬어. 여길 핥아주는 게 좋다고.”

묵야가 말을 마치며 혀를 쓱 쓸어 올렸다. 구멍이 움찔움찔했다. 마약에 취했을 때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묵야의 음모에 얼굴을 대고 힘을 뺐다. 솔직히 쪽팔려서 그렇지 기분은 좋았다.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묵야의 성기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저런 것을 뒤에 넣고 용케도 병원에 안 실려 갔다. 울퉁불퉁한 도깨비 방망이를 잡고 귀두를 입에 넣었다. 혀를 긁으며 들어오는 기둥에 양 입가가 찢어질 듯 늘어났다. 

묵야의 혀끝이 구멍의 입구를 쑤셨다. 내 성기에서부터 뚜욱 하고 떨어진 선액이 묵야의 가슴팍까지 길게 이어졌다. 입에 담은 묵야에 성기에 더 집중을 해 발끝까지 저미는 쾌감을 밀어내려 애썼다. 아무리 쑤셔 넣어도 기둥의 절반이 남아있었기에 뒤의 혀를 내리눌러 목구멍의 길을 트려 노력했다. 목젖에 걸리자마자 켁하며 기둥을 뱉어냈다. 목구멍 안쪽의 진득한 침이 묵야의 귀두에 붙어 실처럼 늘어졌다. 눈을 감고 그의 기둥을 다시 물었다. 귀두를 쪽쪽 빨아올리고 아래의 기둥은 손으로 흔들었다. 혀의 마찰로 인해 힘이 빠진 구멍에 묵야의 손가락 하나가 안을 파고들었다. 

“흐읏.”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몸을 축 늘어뜨렸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 안쪽의 살을 벌리듯 내부를 갈랐다. 

“안에 살은 부드러워. 겉은 처음처럼 딱딱하지만.”

“그런 거 얘기하지 말아요!”

귀두를 뱉어내고 꽥 소리를 질렀다. 

“왜? 좋아하잖아.”

“안 좋아해요.”

“야한 말 해주니까 더 흥분해서 달라붙었었어.”

거짓말. 묵야와의 섹스는 손을 꼽지만, 그는 행위를 할 때 결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마약에 취했을 땐 야한 말, 좋은 말 등을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묵야의 기둥을 콱 깨물었다. 세게 깨물면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귀두의 살점이 슬쩍 들어가도록 힘을 줬다.    

“큭.”

그래도 고통은 전해졌는지 묵야가 손가락을 구멍 안으로 거칠게 쑤셔 넣었다.

“왜 거짓말을 해요? 제가 마약 했을 때 기억 없다고 막 지어내면 안 되죠.”

“그런가?”

묵야가 손가락을 하나 더 늘리며 엉덩이를 깨물었다. 

“근데 사실인데.”

저 남자의 속을 읽을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로고. 사실이라고 잔뜩 우겨대는 묵야가 얄미워 입안에 넣은 성기를 쭉쭉 빨았다. 부피가 큰 덕에 흡입력이 배가 들었다. 묵야의 기둥이 천장과 혀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렸다. 꼭 내 입과 그의 성기가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묵야가 손목을 돌려 구멍 안에서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묵야가 원하는 대로 넓어지는 내벽 안에서 갑자기 그가 손을 뺐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구멍이 자의를 벗어나며 저절로 오므라들었다. 손가락을 따라 딸려나간 덕에 구멍의 살이 화끈하고 따끔거렸다. 구멍의 입구에 묵야의 혀가 닿았다. 아픈 곳을 쓸어주듯 더듬는 혀끝이 오싹했다.

“아읏…. 아아.”

기둥을 문 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음들이 쏟아졌다. 묵야가 손가락 세 개를 푹 찔러 넣었다.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처음과는 다르게 더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이 내벽을 파내는 것처럼 움직였다. 혀를 내밀어 묵야의 기둥 밑부터 핥아 올렸다. 동시에 오돌토돌한 기둥이 혀를 긁어내렸다. 묵야가 갑자기 허리를 일으켜 침대 상단에 등을 대고 완벽한 자세로 앉았다. 묵야는 내 몸을 돌려 앉아있는 그의 위에 올라타도록 만들었다. 위에서 묵야를 내려다보는 게 생소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그를 내려다 볼 일이 드무니까. 눈앞의 유두를 문 채로 묵야가 내 엉덩이를 벌렸다. 엉덩이의 구멍에 묵야의 귀두가 찰싹 붙었다. 앞으로 들이닥칠 고통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괜찮아, 많이 풀어뒀으니까.”

신기하게도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하아, 하고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에 묵야의 것이 틀어박혔다.

“아윽! 아아아!”

처음과 같이 못 참을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뻐근하고 빠듯한 감각에 성기가 바짝 섰다. 손을 뒤로 해 얼마나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제일 두꺼운 귀두는 안에 완벽히 들어가 있었다. 

“이주인, 너무 야하다.”

묵야가 단번에 허리를 쳐올렸다. 

“흐아아아아!!!”

뿌리 끝까지 박힌 충격에 머리가 멍했다. 내장이 밀려올라간 압박감에 벌려진 입을 묵야가 막았다. 묵야의 손이 따뜻하게 아랫배를 감쌌다. 커다란 손이 배앓이 할 때처럼 위로하듯 쓰다듬었다. 

“아으… 으흣.”

성기를 묵야의 복근에 비비자 그의 손등과 겹쳐 눌려지며 성기가 압박됐다. 

“아프진 않아?”

묵야는 슬쩍 허리를 들었다가 내리는 동작을 하는 내게 물었다. 

“안 아파요.”

그 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묵야가 아래서 위로 퍽퍽 쳐올렸다. 묵야가 두 손을 뒤로해 양 엉덩이를 한쪽씩 쥐었다. 옆으로 벌리자 구멍이 한계까지 늘어나며 묵야의 기둥을 물었다. 묵야의 목을 끌어안고 흔들림에 맞춰 성기를 마찰했다.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보다 더 애가 탔다. 러브젤을 쓰지 않고 서로의 애액만으로 마찰하는 삽입은 뻑뻑했지만 안을 쑤실수록 질척거리는 소리가 깊어졌다. 묵야는 침대의 머리를 두는 반대반향으로 나를 드러눕혔다. 허리 아래에 쿠션이 들어와 좀 더 편한 자세로 묵야의 것을 머금을 수 있었다. 침대가 삐걱일 정도로 거세게 움직이던 묵야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내 스스로 성기를 쥔 채로 묵야를 올려봤다.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고 나를 내려 보는 묵야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전신에 열이 확 붙었다.

“이주인.”

“하아, 네…?”

“다른 새끼하고 이런 짓하면.”

묵야는 천천히 귀두까지 기둥을 빼냈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느린 동작이었다.

“죽인다.”

나를? 아니면 그 상대방을? 푹하고 다시금 안을 뚫어 올리는 묵야 때문에 의문은 지속되지 못했다. 

“아아아… 빨리… 안을…….”

“이주인, 대답해.”

“아, 알았… 알았어요!”

묵야는 숨겨두었던 독점욕을 드러내며 안을 혹독할 정도로 쑤셔 박았다. 퍽퍽 쳐올리는 행위와 맞물려 자위하듯 성기를 꽉 쥐어흔들었다. 정액이 가슴 위로 튀어 올랐다. 이미 차 안에서 한 번 내뱉었던 지라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정을 하느라 딱딱하게 굳은 내 내벽을 묵야는 멈추지 않고 밀어 올렸다.    

“큭, 빠듯한데….”

묵야의 숨이 거칠어졌다. 사정이 끝나자 힘이 풀려 축 늘어졌다. 묵야의 움직임을 따라 내벽이 멋대로 배 안을 이동했다. 귀두가 구멍의 끝에 걸쳐졌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것이 반복됐다. 바이크로 도로를 질주할 때처럼 천장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번져보였다. 근육이 잘 짜인 묵야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용이 꿈틀대며 내 손을 먹어치우려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로 손이 잡아먹히는 것과 같은 불안감에 묵야의 뒤로 손을 가져갔다. 위로 바싹 올라붙은 그의 대둔근이 단단했다. 사정이 끝나 늘어진 내 성기가 털렁거렸다. 그에 반해 묵야의 기둥은 점점 딱딱해져갔다. 귀두의 홈과 막대를 뚫고나온 구슬이 도드라졌다. 울룩불룩하게 구멍을 파고 들어갔다 나오는 동작이 더 진한 감각을 선사했다.

“아아아! 아읏!”

그의 기둥이 안쪽의 모든 살을 드득거리며 긁고 지나갔다. 생채기가 남을 것만 같았다. 전립선을 찌르는 힘에 의해 성기가 반쯤 다시 섰다. 일정한 규칙 없이 안을 쑤시던 묵야가 내 몸을 뒤로 뒤집었다. 내부에서 기둥이 뱅글 돌아갔다. 

“흐앗!”

섰던 성기가 침대와 내 무게에 눌리며 압박됐다. 묵야가 다리를 벌려 그 사이에 일자로 핀 내 다리를 가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릎으로 내 양허벅지가 서로 맞닿도록 옥죄였다. 묵야는 손으로 엉덩이 밑의 살을 쪼개듯 벌린 채로 안을 쑤셔 박았다. 묵야의 묵직한 불알이 엉덩이를 퍽퍽 가격했다. 난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허리를 흔들었다. 성기가 시트에 비벼지며 쾌감이 배가 됐다. 묵야의 무게가 내 쪽으로 쏠려 숨이 턱턱 막히고 신음조차 웅얼거리며 흩어졌다. 살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거세지는 순간 묵야가 성기를 구멍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구멍이 뻐끔거리며 제자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을 내려다보던 묵야가 낮은 신음을 내뱉고는 다시 안으로 퍽퍽 치고 들어왔다. 침대 시트가 계속 앞으로 밀려나갔다. 불알이 거세게 부딪히는 엉덩이의 살이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아아아! 묵야!!!”

묵야는 얕고 잘게 흔들던 동작을 멈추고 쾅하는 굉음이 들리듯 안을 뚫어버릴 기세로 내리눌렀다. 곧 푸들거리는 묵야의 기둥에서 터져 나온 정액이 뱃속을 쏘아 올렸다. 정액이 내벽을 때리는 감감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위화감만 느껴졌다. 손을 내려 내 성기를 만져보니 나도 어느 샌가 두 번째 사정을 마친 상태였다. 

여섯 번에 걸쳐 배 안을 빵빵하게 채울 듯한 사정이 끝났다.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묵야의 기둥이 미끌거리며 빠져나왔다. 막힌 숨을 찾고자 천장을 바라보도록 몸을 돌렸다. 묵야는 그런 내 발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침대 선반에 놓였던 수건을 엉덩이 안쪽에 덧댔다. 불알까지 수건으로 감싸고 몸을 일으켜주자 내부에서 덩어리진 정액이 느슨하게 흘러내렸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벌리지 않아도 아직 구멍은 닫히지 않은 상태이기에 정액이 술술 빠져나왔다.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부운 얼굴이 시트에 쓸리는 지도 모르고 쾌감에 빠져있었다. 묵야가 내 얼굴을 잡고 상처가 남아있는 뺨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왼쪽 오른쪽을 순서대로, 마지막으론 이마에 입술을 댔다. 욕실로 가기 전까지 나른하고 귀찮을 정도의 후희가 이어졌다. 

향현문자 29

묵야의 광대한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한라봉이 먹고 싶었다. 여러 번 관계를 갖지만 않으면 확실히 뒤에 부담은 적었다. 엉덩이 안쪽의 구멍이 뚱하고 입을 내밀고 열을 뿜고 있을 테지만, 몸을 밍기적거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라봉을 반으로 나눠 껍질을 깠다. 하나는 묵야를 주고 하나는 내가 먹었다. 입이 메말라서 그런지 처음 먹었던 것보다 더 달았다. 샤워가운 사이로 설핏 보이는 묵야의 문신도 익숙해져가는 중이었다. 

“텔레비전, 켜줄까?”

“네.”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고개만 끄덕였다. 소파 앞에 놓인 벽걸이 브라운관은 유치원생 한 명이 족히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였다. 일자로 긴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댔다. 묵야도 옆에 앉아 새로운 한라봉을 까서 내게 내밀었다. 험악한 문신을 새긴 남자가 무표정하게 한라봉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한라봉을 씹으면서 좀 전에 묵야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누굴 죽일 건데요?”

“무슨 말이지?”

“내가 다른 사람하고 섹스하면 죽일 거라면서요.”

“아, 그거.”

묵야가 한라봉 두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이주인 너는 못 죽일 것 같으니 상대방이나 괴롭혀야겠지?”

묵야의 눈이 접혀졌지만, 절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괴롭힌다는 말이 죽인다로 들린 것도 착각이 아니었다.

“전 성욕이 그리 불타는 편이 아니라서요.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나도 그래.”

“네?”

반문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성욕이 없는 편이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전부 고자겠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묵야씨가 성욕이 없다는 소리는 안 믿겨져서요.”

“그런가?”

묵야는 한라봉 껍질을 한 군데다 쌓아올렸다. 치우기 쉬우라고 배려하는 행동 같기도 했다.  

“이주인, 성욕과 연인끼리의 섹스를 동일시하면 안 돼. 성욕은 단지 성적 행위에 대한 욕구일 뿐이야. 상대방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생겨나는 욕정이지.”

“그걸 그렇게 나눠요?”

“내가 너와 하는 섹스는 단순히 성욕만을 위한 게 아니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묵야가 마르지 않은 내 머리를 당겨 냄새를 맡았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는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묵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까지 이어져 있는 허물처럼 벗어던진 옷가지들을 주워들었다. 소파 옆에 떨어져있는 정장 상의를 주어드는 묵야에게 급히 소리쳤다.

“잠시 만요!”

묵야가 정장을 팔에 걸치곤 나를 쳐다봤다. 쾌감에 머리가 흐려서 그냥 넘어갔었지만 묵야의 정장에는 질이 좋지 않은 녀석이 붙어있었다. 정장의 팔뚝부분에 둥지를 튼 검은 덩어리를 떼어냈다. 뭐지 이게?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자들의 집합체였다. 색들이 전부 까맣고 지나치게 많은 문자들이 섞여있어 내용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이제 됐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로 돌아갔다. 묵야는 남은 옷들을 다 주워서 세탁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전 뭐 입고 가라구요.”

“캐주얼한 차림이 좋으면 직원에게 시키면 돼.”

“괜찮아요, 더럽혀 진데 없으니 제 옷은 그냥 꺼내두세요.”

묵야가 세탁통에 담겨진 내 옷을 한참 동안이나 내려 봤다. 

“너무 깔끔한 남자는 사랑받지 못한다던데.”

묵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탁바구니에 넣어진 내 옷을 꺼냈다. 무자비할 것이 분명한 저 남자가 내 말 하나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게 신기했다. 손 위에 올려두었던 검은 덩어리를 양 손을 포개어 문질렀다. 문자들이 소멸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소멸시키는 순간 몇 년간 쌓인 먼지처럼 매캐한 연기가 팍 흩어졌다. 그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어차피 독기는 이미 문자를 소멸시킴과 동시에 몸에 흡수됐다. 손바닥을 내려 보자 미처 소멸되지 못한 강한 의지가 남아있었다. 

‘실각, 실추, 묵야, K3, 계략, 모사.’ 다섯 글자는 고대 파피루스에 적힌 빛바랜 상형문자처럼 군데군데 모서리들이 떨어져 나가있었다. 그럼에도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적은 숫자의 문자는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관련 맺기가 쉽지는 않았다. 손바닥에 마른 진흙가루를 털 듯 양 손을 포개어 비볐다. 다섯 글자들도 완벽하게 소멸됐다. 속이 뒤집히기에 한라봉 껍질을 서둘러 주워 그 향기를 맡았다. 상큼한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다행히 피를 토할 정도는 아니었다.  

“왜 껍질을 먹지? 여기 많잖아.”

내 옷을 소파에 걸쳐줬던 남자가 한라봉을 새로 까고 있었다. 배부른데…….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 꾸역꾸역 먹었다. 묵야가 다시 옆에 앉아 내 머리를 자신의 허벅다리에 올려놓았다. 

“좀 쉬어.”

“안 힘들어요.”

“그럼 한 번 더 할까?”

“그건 좀…….”

다리를 쭉 펴서 묵야를 올려다봤다. 묵야가 검지로 내 뺨을 쿡 눌렀다. 

“아앗.”

“많이 부었었을 텐데, 다행히 붓기가 많이 빠졌군.”

묵야는 주먹 쓰는 사람답게 상처에 일가견이 있었다. 뺨의 상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쏟는 묵야 때문에 화제를 전환했다.

“괴한들… 벵골어 사용하는 사람들 맞죠?”

묵야를 보던 이래 최고로 놀란 기색이었다. 내가 묵야에 대해 잘 몰랐다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했지만.

“경찰이 벌써 거기까지 알아차렸나?”

“네.”

“그렇군.”

묵야는 걱정이 없어보였다.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장난질 치는 데만 열중했다. 

“집은 안가고 왜 여기서 지내요?”

“집이 꽤 멀거든.”

“어딘데요?”

“혜화동.”

“머네요.”

아무리 같은 서울에 있는 지역끼리라도 이동하려면 지방보다 먼 지역이 있었다. 강남에서 혜화동을 가는 것보다 강남에서 분당을 가는 게 차라리 빠른 것처럼. 차도 덜 밀리고.

“묵야씨는 조폭일 하기 전에는 뭐했어요?”

“계속 이 일 했는데.”

“아는 사람에게 듣기론, 묵야씨가 이 년 전에 불현 듯 나타났다던데요.”

묵야가 내 머리를 주물댔다.

“실질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이 년 정도 된 것 같군.”

“그동안은 음지에서 활동했어요?”

“그렇지.”

묵야는 지난 기억을 떠올리듯 눈이 흐려졌다.

“사 년 정도는 해외에 있었고, 그 동안은 밖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지.”

“왜요?”

탈레반이 판치는 이스라엘도 아니고 밖에 나가지 못할 사정이 뭐가 있지? 

“작은 사회가 하나 있어. 그 사회는 실제 밖의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그 안에서 자유라는 명목은 찾기 힘들어.”

“그럼 그 문신하고 구슬도…. 그 작은 사회라는 곳에서 한 거예요?”

“궁금한 게 많은 고양이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죠.”

“죽지 마.”

“하하, 안 죽어요.”

“내가 하나에 대한 답을 하면, 너도 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는 건 어때?”

“좋아요.”

묵야가 소음만 유발하던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일어나서 대화를 이어갈까하는데 묵야가 내 이마를 꾹 눌렀다. 

“그대로 누워있어.”

“네.”

물론 나도 이 자세가 편했다.  

“질문은 제가 먼저 했어요.”

“그래, 그 작은 사회에서 한 게 맞아. 내 의지였고… 고통의 강도는 기억나지 않는군. 이제 내 차롄가?”

“네, 묵야씨 차례요.”

다음 번 물음에선 작은 사회가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마음먹었다.

“이주율은 친동생인가?”

“친동생이죠.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 남은 가족이에요. 이제 제 차례에요. 묵야씨가 말한 작은 사회란 게 뭐에요? 상징적인 표현 말구요.”

묵야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타인에게서 답을 기다리는 기분이 신선했다. 

“꽤 복잡해. 일단 그 작은 사회에 들어가려면 서약서를 써야 해. 서약서에 사인을 한 순간부터 목숨은 내 것이 아니게 되지. 원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원치 않아서 들어오는 자들도 많아. 일종의 수감소라고 보면 이해가 편하겠다. 수감소의 소유자가 그들의 주인이지. 그 안에선 여러 가지를 가르쳐.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상식 밖의 것들도 포함해서.”

“묵야씨는 왜 들어갔어요?”

“이주인, 그건 반칙인데….”

묵야는 연이은 내 질문에 태클을 걸었다.

“그럼 물어본 것만큼 서로 묻기 해요, 됐죠?”

“장사능력이 탁월하군.”

질문 하나에 답 하나씩은 조건이 너무 협소했다. 타인을 알아가는 단계에서 인연은 깊어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 과정을 묵야와 건너가려 했다. 

“내 경우는 원치 않아서 들어간 측에 속해. 아버지가 임의대로 나를 집어넣었다는 말이 맞겠군. 반항할 생각도 없었으니 강제는 아닐지도 모르지. 몇몇의 가족들이 나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겼거든. 아버지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어. 그래야 당신이 나를 아들로 생각하는 명분이 생긴다고 했지…. 사실 난 아무래도 좋았어. 계약서에 작성된 기간은 칠년이었지만, 일방적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더니 그 안에서 나를 빼주더군.”

나만큼이나 뭔가 묵야의 사정이 복잡했다. 

“누군가의 부탁이요?”

“건드려서 안 되는 걸 내 위의 형제가 건드렸지. 그것에 대한 복수를 부탁받았었어.”

복수를 부탁했다니. 형제끼리 싸움의 골이 꽤 깊은가? 

“그럼 그 부탁이라는 일은 잘 해결됐어요?”

“글쎄, 아직 진행되고 있는 단계지.”

어떻게 진행할 것이냐는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경고와 일맥상통할 것만 같은 기분이기에.

“혹시 묵야씨와 가까운 주변 사람 중에 묵야씨를 실추시키려는 사람이 있어요? 눈에 드러날 정도로 적대감을 띠우는 사람이 있거나요.”

좀 전에 소멸시킨 문자들을 생성해낸 사람은 필시 묵야에게 지나칠 정도의 반감을 지닌 자였다. 저 정도로 악한 문자 덩어리를 만들어낼 정도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조심히 행동해도 눈에 드러나는 법이다.

“가까운 사람이라…. 내 위의 형제가 그렇지 않을까?”

묵야는 그런 것쯤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형제싸움을 했다하더라도 친형제에게 저런 독한 악감정을 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 역시 이주율이 미울 때가 많아도 마음속에서 증오가 우러나는 일은 없었다. 그럼 저 문자 덩어리를 생성해낸 사람이 대체 누굴까?   

“이주인, 나도 솔직히 답했으니 너도 그래야만 해.”

“네.”

“몸이 안 좋아?”

단단히 대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몸이요?”

“피를 토하거나, 헛소리를 하거나.”

“피를 토하는 건 아주 가끔이구요, 그것도 몸이 딱히 안 좋아서는 아니에요. 헛소리는 마약 먹고 한 걸 말하는 거예요? 그 상황에선 누구든 헛소리 하겠죠.”

“허공을 보고 멍해있는 경우도 많지.”

“그건…….”

묵야에겐 미안하지만 문자를 보는 능력에 대해선 함구하기로 할까?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약속했는데 반대로 묵야가 내 질문에 거짓말을 했다면……. 열 받아서 문을 박차고 나가는 내 모습이 그러졌다. 그의 믿음을 얻고 싶은 만큼 나도 솔직해져야 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사이코메트리 알죠?”

“들어는 봤지.”

“그거랑 비슷한 건데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는 거예요. 다만 사이코메트리처럼 사물을 통해 읽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강렬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문자로 형상화 돼서 나타나요, 그리고 그게 제 눈엔 보여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공상과학만화에 심취한 철없는 어른의 헛소리 같았다. 묵야가 침묵했다. 나는 묵야가 까놓은 한라봉을 한 조각 먹은 뒤 말을 이었다.

“문자들이 막 허공에 떠다녀서 그걸 보느라 멍해있는 경우도 있고요, 피를 토하는 건 지독한 기운을 가진 문자를 소멸 시킬 때에요.”

주저리주저리 떠드는데 묵야의 표정엔 처음과 같이 변함이 없었다. 

“이주인.”

“네?”

“너, 머리가 아픈 건 아니지?”

묵야의 허벅지를 베고 있던 머리를 번쩍 일으켰다. 묵야가 걱정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묵야는 읽히지가 않으니 문자를 읽는 능력을 증명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 곤란한데.

“저 아주 멀쩡해요.”

“K3말고 다른 약은 한 적 없어?”

“몇 번을 말해요, 없습니다. 사이코메트리는 믿는다면서요, 그거랑 비슷한 거예요.”

“믿는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 단지 사전적인 의미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럼 사이코메트리 안 믿어요?”

“당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귀신은요?”

“없어.”

“신은요?”

“당연히 없는 걸 왜 자꾸 묻지?”

더 이상 설득시키기가 곤란해졌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하나도 믿지 않는 남자에겐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은 뭐란 말인가. 사파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둘은 아니겠지만, 내가 본 사건들에선 ‘K3’와 ‘묵야’를 제외하곤 다른 문자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주율이 언급하지도 않았을 테고, 묵야는 초자연적인 현상 따위는 전혀 믿지도 듣지도 않는데……. 

알면 알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길 같았다. 태형 형이 사파와 관련된 사건은 묵야가 나타난 이후로 어려워졌다고 했다. 묵야가 모든 진실을 알면서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의심을 품었다. 나를 바라보는 묵야의 눈에는 일말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찰청에서 봤던 중학생처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뻔뻔한 사람은 할 수 있다고 해도 묵야와는 거리가 먼 사례였다. 저 남자가 거짓에 거짓을 덮어씌우는 사기꾼은 절대 아니었다. 

“이주인, 정말 어디도 아픈데 없는 거지?”

묵야의 시선이 내 뇌 쪽을 향해 있었다.

“좌뇌 전두엽, 우뇌 전두엽까지 전부 멀쩡해요. 정신병도 없구요.”

“그럼 됐다.”

당신이 주렁주렁 달고 온 독한 문자들이 없애주는 게 나다. 라고 얘기한들 씨알이 먹히지도 않을 상대였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몇 번 접해봤어도, 저 정도로 아예 무시하는 사람은 묵야가 처음이었다. 다시 벌렁 묵야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묵야씨.”

“말 해.”

“바이크 타이어 엉망으로 만든 거, 묵야씨가 한 짓이었어요?”

그 후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내 타이어를 사이코적인 일반인이 공격한 이유에 대해서. 물론 답들은 전부 마땅찮았다. 바이크가 엉망이 되자마자 고쳐준 걸로 봐선 묵야에게 의심이 실렸다. 

“아니. 내가 하진 않았지.”

“그럼요?”

“내 부하가 했겠지?”

묵야는 애매하게 대답하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확신을 가졌다. 거짓말을 못하는 남자가 맞다.

“왜 그랬는데요?”

“타이어의 바람이 많이 빠져있기에 위험해서.”

“그럼 말로 하지 그랬어요. 타이어를 헝겊조각처럼 넝마를 만들어놓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안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으니까.”

“어쨌든……. 고마워요.”

“별말씀을.”

무릎베개가 묵야가 말한 어리광 중에 하나라면 만족스러웠다. 묵야의 허벅지는 딱딱한 돌베개 같았지만 그가 내 머리를 만지는 손길은 좋았다.

“묵야씨에게 복수를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어요? 혹시 묵야씨가 사랑했던 사람?”

“음… 사랑했었나? 잘 모르겠군.”

“복수할 정도로 화가 났으면 사랑하는 사람이었겠죠. 어떤 사람이었어요?”

묵야가 자신의 종아리를 가리켰다. 그 부근에는 뱀이 나신인 여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문신이 있었다. 

“문신에 그려진 여성분이요?”

“맞아.”

“사귀는 사이였어요?”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려 했는데 심장이 지끈했다. 독한 문자들을 소멸시키고 나서 피를 토할 때는 비교도 안 되게 아팠다. 

“친누나와 사귈 수 있는 사람도 있나?”

이주율. 0.1초도 안 되서 생각한 답을 지웠다. 문신의 정체는 묵야의 친누나였다. 아팠던 가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사라졌다. 

“친누나를 왜 뱀에게 물어 뜯기게 해요.”

갑작스레 소름이 돋았다. 내 몸에 문신을 새긴다고 한들 이주율이 뱀에게 뜯기는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 것을 몸에 달고 있는 묵야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그게 사실이니까.”

“누나가 뱀한테 물렸어요?”

묵야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귀엽다는 식으로 대답 없이 내 머리를 헝클었다. 진지하게 물은 내가 오히려 실수를 한 상황 같았다.

“이주인, 정말 머리 아픈 건 아니지?”

“몇 번이나 말해요. 멀쩡해요. 병원 가서 검사라도 받을까요?”

“그럴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초체력이 부족하다 뿐이지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묵야가 소파에 몸을 누였다. 성인 남자 둘이 누우니 넓은 소파도 비좁아졌다. 그래도 딱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 이점은 있었다. 묵야가 나를 껴안고 팔베개를 해주었다. 묵야는 내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나는 묵야의 가슴팍에 얼굴을 마주댔다. 이불을 끌고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객실은 따뜻했다. 자다가 추워질지도 모르니 묵야의 몸에 더 바싹 다가갔다. 용의 머리가 부담스러워 눈을 감았다. 먼저 잠이 든 것은 묵야 쪽이었다. 

오늘 묵야와의 대화는 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상처는 누구에게든지 존재한다. 묵야에게도 어떤 상처가 존재할지 모른다. 만일 그에게 상처가 있다면 내가 그를 만나 상처가 치유 되가는 것처럼 그도 나처럼 되기를 바랐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아해서 어쩌려고, 더 사랑하게 되면 어쩌려고. 이주율, 태형 형은 무슨 낯짝으로 보려고. 심란한 생각들이 가슴을 괴롭혔지만, 이 욕심들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나도 그의 곤한 숨소리를 들으며 이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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