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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6화 (7/146)

6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딩동댕이란 소리가 들리자 도화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있는 남자의 등으로 손을 뻗었다.

흑립을 벗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던 묵범은 갑작스러운 도화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짓이지?’

도화의 손은 남자의 등에 매달린 태아귀를 움켜쥐고 있었다. 응애, 응애-! 찢어질 것 같은 아기 울음소리가 좁은 골목에 울렸다.

“쉿. 조용히. 차사의 손에 잡히면 넌 끝이야.”

남자의 등에서 억지로 떨어진 태아귀는 도화의 손에 들려 버둥거렸다. 바로 코앞에서 태아귀의 울음을 듣는 것은 곤욕이었지만, 저승차사의 손에 순순히 넘길 순 없었다. 자신은 태어나기라도 했지. 이 녀석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죽어 원귀가 된 것이라 안쓰러웠다.

“태아귀인데 덩치가 꽤 큰 것을 보면 조만간 악귀가 될 것 같군.”

흑립을 벗고 제 모습을 드러낸 묵범은 품에서 부용삭을 꺼냈다. 붉은 밧줄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손에서 꾸물댔다. 마치 뱀이 먹잇감을 찾으려고 머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도화의 손에서 마구 흔들리던 태아귀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온통 검어서 눈코입도 보이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부용삭을 보고 경계하는 듯했다.

“악귀가 되어도 그닥 재미는 없어 보이니, 신속하게 없애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묵범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도화에게 말했다. 도화는 첫눈에 묵범이 정상적인 저승차사가 아님을 눈치챘다. 아니, 저승차사라는 것을 떠나서 그냥 사람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세상 어느 누가 초면인 사람 뒤로 몰래 다가가서 허리와 엉덩이를 주물거린단 말인가.

“악귀는 네놈 같은데?”

도화가 은장도를 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한 뼘 길이었던 은장도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그 모습을 본 묵범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도화는 그런 묵범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쪽에서는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충분히 내보이고 있는데, 뭐가 좋다고 저리 웃는 걸까.

“감은 좋은데 시력은 좋지 않나 보군요. 어찌 이 얼굴을 보고 악귀 타령을 할까.”

“아니면 색정귀인가?”

“색정귀라. 꽤 구미가 당기는 귀신이지만, 그것 역시 아닙니다. 흠. 오히려 당신이 색정귀 같아 보입니다.”

“뭐, 뭐…?”

색정귀처럼 몸을 더듬은 주제에 누가 누구더러 색정귀라는 건지 모르겠다. 도화는 아직 얼얼한 허리와 엉덩이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손에 든 태아귀에게 속삭였다.

“도망가.”

[……?]

부용삭 때문에 미동도 없던 태아귀가 움찔거렸다. 말을 알아듣는 건지 그냥 옆에서 들린 소리에 반사적으로 반응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화는 부디 태아귀가 제 말뜻을 알아듣길 바라며 재차 말했다.

“네 아비의 복수는 나중에 생각하고 도망가. 괜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생각 따윈 하지 말고. 그래도 정 한이 풀리지 않으면 날 찾아.”

도화의 속삭임을 들은 묵범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저승차사를 코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저승차사를 이길 자신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면 뭘 잘못 먹고 판단력이 흐려진 건가요?”

쯧쯧, 안타깝다는 듯이 묵범이 혀를 쳤다. 도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들고 있던 태아귀를 온 힘을 다해 골목 밖으로 집어던졌다.

‘아직 사람을 해치는 수준까진 되지 않은 것 같으니 희망은 있어.’

저 멀리 날아가는 검은 덩어리를 보며 도화는 오래전 스승이 제게 했던 충고가 또 떠올랐다.

[제자야. 넌 정을 줄일 필요가 있단다.]

도화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사부의 충고에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것은 단순히 정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만난 지 30분도 안 된 원귀에게 정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정이 아니야.’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도화는 제 뒤로 다가오는 기척을 향해 은장도를 휘둘렀다. 길쭉해진 검신이 무엇이든 반으로 가를 기세로 공기를 찢었다.

“흠. 제대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묵범은 저 멀리 날아가는 원귀가 아닌 도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원귀를 향했던 자신의 흥미가 하얀 피부의 남자에게 완전히 옮겨 간 것을 인정했다.

저딴 애새끼 원혼 따위. 저렇게 겁 없이 돌아다니다 다른 원혼한테 잡아먹히거나 지나가던 차사한테 걸려 소멸당하겠지.

묵범은 눈앞의 이름 모를 청년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흥미로운 검을 들고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 마치 삐쭉삐쭉 털을 세운 고양이 같다.

“음… 아닌가?”

잠시 도화의 모습을 감상하던 묵범은 방금 한 생각을 정정했다. 고양이치고는 덩치가 심히 크니 표범이나 재규어라고 해야겠다.

“뭐가 아니지?”

묵범의 혼잣말에 날이 선 도화가 즉시 반응했다. 흑립이나 검은 도포를 걸친 것을 보면 분명 저승차사가 맞는데. 하는 언행은 너무나도 색정귀였다.

‘얼굴이 너무… 잘생겼어.’

가끔 본 차사들은 대부분 평범했다. 내가 안면 인식 장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 분위기, 존재감 등이 서로 비슷했다. 이유는 원귀와 악귀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얼굴이란 게 천차만별인 것처럼 차사도 그러했다. 저렇게 튀는 외모가 없다고 장담할 순 없다.

흑립으로 존재를 지웠던 것을 보면 저승차사인 건 확실하다. 그렇다는 것은…….

“요즘 저승은 색정귀도 차사로 쓰나?”

“허어? 색정귀? 제가요?”

묵범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반문했다. 도화가 대답 대신 인상을 쓰고 노려보자 묵범이 푸하하! 크게 웃었다.

“내가 살다 살다 색정귀라고 불려 보긴 처음인 것 같군요.”

“아니야?”

“애석하지만, 색정귀는 아닙니다. 색정귀가 어찌 차사 노릇을 합니까?”

묵범은 빙글빙글 웃으며 도화에게 성큼 다가섰다. 도화는 묵범이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서며 검을 고쳐 잡았다. 묵범은 아직 부용삭을 손에 들고 있다. 부용삭은 원귀와 악귀를 잡아들이는 밧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효과가 있었다. 단지 악한 기운에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뿐이었다.

부용삭을 본 도화의 머릿속에 지금껏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막 원귀가 된 영혼 빼돌려서 정화시키기, 아무 잘못 없이 잘 살던 망량들 차사의 눈에서 벗어나게 하기, 산신이 있는 산을 훼손하는 인간들 혼내 주기, 죄 없지만 단명할 인간 수명 늘려 주는 방법 알려 주기 등, 참으로 다양한 일을 저질렀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모두 저승차사의 임무를 훼방 놓는 일이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도화가 부용삭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였다.

‘저기에 묶이면 산 채로 저승에 갈지도 몰라.’

저 멀리 사라진 태아귀와 똑같이 잔뜩 긴장한 도화는 변태 색정귀 저승차사와 맞설지, 아니면 이대로 도망갈지 재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은 자신 있으나 지금 당장 도망치면 태아귀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시간이 모자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버티다간 내가 부용삭에 묶일지도 몰라.

도화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혀로 입술을 축이다 깨물며 머리를 굴렸다. 저렇게 큰 덩치라면 달리기는 좀 둔하지 않을까?

본인의 덩치도 만만치 않게 크면서 행복회로를 돌리던 도화는 묵범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또 뒷걸음질 쳤다.

“엇….”

하지만, 비좁은 골목은 도화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몇 걸음 물러서지도 않았는데 건물 벽이 도화의 등에 닿았다.

젠장. 그냥 도망쳐야겠어.

호기롭게 은장도를 꺼내긴 했지만, 은장도 속의 ‘검’을 사용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그냥 검을 휘두르기만 한다면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지만, 저승차사를 상대로 그게 먹히지 않을 건 뻔했다.

대가가 평범한 것이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은장도에 깃든 검이 보통 변태가 아닌지라 도화는 은장도를 쓸 때마다 이렇게 깊은 고뇌에 빠져야 했다.

도화의 고뇌가 은장도까지 흘러 들어갔는지 손아귀 속 검 자루가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보게. 도화.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나?]

검 속에 있으면서 어찌나 눈치는 빠른지. 도화에게 어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라고 부추긴다.

[닥쳐. 현천.]

도화가 검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그러자 현천이라 불린 검이 검신이 흔들릴 정도로 부르르 떨었다. 그 떨림이 고스란히 손에 흡수되자 도화는 더욱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칠성이 검신을 떨어 대는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변태 자식.]

[어허. 무례하구려. 귀하디귀한 이 몸에게 그런 상스러운 말을 쓰는 자는 자네밖에 없을 걸세.]

[변태라고 불리기 싫으면 대가를 바꾸든가.]

[흠, 흠. 그럴 순 없소이다. 무료한 검생에 유일한 낙을 포기할 순 없지.]

[그걸 낙이라고 하니 내가 변태라고 하는 거야.]

도화는 꿍얼대는 현천의 말을 무시하고 벽에서 등을 뗐다. 기회를 봐서 골목을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저 차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아는 차사라면 염라 앞으로 끌고 가 죄를 고하라고 했을 테니까.

등을 떼고 슬쩍 발끝 방향을 옮겼다. 이름 모를 차사는 이쪽이 도망칠 틈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롭게 웃으며 제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변태 차사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 의식하기 싫어도 의식이 되었다. 만약 시선에 물리적인 힘이 있다면 자신의 허리에 손자국이 진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젠장. 현천보다 더 변태 같은 자식을 만날 줄이야.’

집에 돌아가면 한동안 몸을 사려야겠다. 팔미호 화린의 의뢰를 위해서 서울은 돌아다녀야 하니, 귀령면(鬼領面)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젠장. 귀령면은 쓰기 싫은데.’

스승의 유품인 귀령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저 변태와 다시 만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이 자리를 무사히 뜨는 게 중요하니, 귀령면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현천. 저 새끼 동태 좀 살펴 줘.]

[자네도 눈에 있는데 왜 내가 살펴야 하나? 피도 안 주면서.]

[여기서 내가 쟤한테 잡혀 가면 넌 영원히 내 피를 못 먹을 텐데?]

[뭐라? 흠. 그럴 순 없지.]

도화의 말에 현천이 기겁했다. 그와 동시에 뭉툭하던 날 위에 예리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묵범이 그 변화에 잠시 관심을 현천에게 돌렸다.

‘지금이다!’

도화는 묵범의 시선이 제게서 떠난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뒤로 돌려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

묵범은 도화가 들고 있는 검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물씬 풍기기 시작하자 더욱 즐거워졌다. 따분한 천계에서 벗어나 하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나 저승차사의 노동 강도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물론 묵범은 설렁설렁했지만, 본디 놀기 좋아하고 명령받길 싫어하는 묵범이 저승차사 일을 제대로 수행할 리 만무했다.

이래라저래라하는 고리타분한 선배 차사들의 잔소리, 생각보다 재미 없는 악귀 사냥 때문에 다시 천계로 올라갈까 고민하던 차에 눈앞에 신기한 청년이 나타났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들고 있는 무기까지. 무엇 하나 제 흥미를 끌지 않는 것이 없다. 이건 천계에서도 찾지 못할 유흥거리였다.

‘그런데 감히 도망을 쳐?’

묵범은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도화의 동그란 뒤통수를 쳐다보며 웃었다. 지금 뒤따라 가도 충분히 잡을 수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냥은 쫓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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